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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용 목사] 고난과 위로의 상관관계

묵상나눔 윤용 목사............... 조회 수 63 추천 수 0 2020.09.26 08:18: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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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과 위로의 상관관계

(고린도후서 1:1-11)

1. 고난...

바울은 고난받았다.
위대한 사도였던 바울에게서도 고난이 비켜가지 않았다.
얼마나 고난이 심했으면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이었다.

(고후 1:8, 새번역)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힘에 겹게 너무 짓눌려서, 마침내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신자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고난을 없애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런 일은 없다.
위대한 사도에게조차 고난이 비켜가지 않았던 것은
모든 신자에게 고난은 필수적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사역자의 길 뿐 아니라 모든 신자의 길에서
고난은 반드시 존재한다.
고난이 없이 참된 신자가 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신앙은 고난을 통해서 갈림길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고난이 오면 신앙이 더 좋아지는 사람과
고난이 오면 신앙을 버리는 사람이라는
극단적인 갈림길이다.

어떤 이는 고난이 찾아와서 예수를 믿게 되고,
또 다른 이는 예수를 믿는 여정 중에 고난을 만난다.
그러나 어떤 이는 고난이 와서 신앙을 버리기도 한다.

신자란, 고난이 왔을 때 더 예수를 붙드는 사람일 것이다.

2. 위로

고난이 왔을 때 버티고 견딜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신자가 고난을 당할 때 알아야 하는 주님의 성품이 있다.

(고후 1:3, 새번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는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요,

주님은 언제나 자비로우신 아버지시요,
온갖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자비로우시고 위로를 주시는 하나님의 성품은
신자가 고난을 당할 때 더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고후 1:5, 새번역)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치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의 위로도 또한 넘칩니다.

고난을 당할수록 주께로부터 받는 위로도
넘쳐나기 때문이다.

신자가 고난을 버틸 수 있는 이유,
심지어 죽을 것 같은 고난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고난 중에 받는 위로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고난의 때에 고난과 고난이 주는 고통에만 집중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고난과 위로는 상관관계를 가지지만
고난의 때에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조건이 충족된다면 고난은 언제나
주님의 위로를 가져다 준다.

3. 위로의 전염

놀랍게도 고난과 위로의 상관관계는 전염이 되는 것 같다.

(고후 1:4, 새번역) 온갖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그 위로로, 우리도 온갖 환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과 동행자들은 고난을 당했고
고난 중에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계속했기에
하나님의 놀랍고 깊은 위로를 누렸다.

그런데 그렇게 위로를 누렸기 때문에
마음에 간직한 그 위로로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었다.

사실 위로는 같은 일이나 비슷한 일을 겪어서
그 아픔을 아는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먼저 고난과 위로를 경험한 사람이라야
나중에 아픔을 겪고 고난을 겪는 사람에게
가장 참된 위로를 전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위로는 전염성이 강하다.
고난과 위로의 상관관계를 경험해서 아는 사람은
다른 고난받는 사람을 위로할 준비가 된 사람이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심지어 고난을 받는 이유가,
다른 고난받는 사람을 위로하기 위함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한다.

(고후 1:6, 새번역) 우리가 환난을 당하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여러분이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위로로, 우리가 당하는 것과 똑같은 고난을 견디어 냅니다.

고난과 환난을 견디는 힘은 두 가지다.
하나님의 위로와
먼저 고난 당한 사람의 위로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 고난을 당한 사람은
자신이 당한 고난, 당하고 있는 고난이
후에 고난 받는 누군가에게
참된 위로를 주기 위한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4. 위로를 전하는 방법

고난을 당하고 그 때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된다.
그런데 사람이 위로를 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사람은 어떻게 해야 참된 위로를 전달할 수 있을까?

고난을 올바르게 '해석'해야 한다.
고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고난에 대한 바울의 해석은 남달랐다.

(고후 1:8-9, 새번역) [8]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여러분이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힘에 겹게 너무 짓눌려서, 마침내 살 희망마저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9] 우리는 이미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우리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받은 고난과 환난이 얼마나 심했던지,
살 희망마저 잃었고
죽음을 선고받은 몸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그런데 그 고난에 대한 바울의 해석은 특이했다.
'죽었다.'가 아니라,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는'
고난이라는 해석이었다.

사람을 위로하려면 고난을 제대로 해석해야 한다.
그런데 고난에 대한 해석이 남달라야 한다.
어떻게 해야 남다른 해석이 가능할까?

고난에 대한 바울의 해석의 특징은
한 마디로 '긍정적'이었다.
신앙은 '고난과 사건에 대한 긍정적 해석'이라고
정의를 내릴 수도 있겠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고난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보려고 노력하고 애쓰면 될까?
애를 써서 관점이 바뀌기는 어렵다.

고난에 대해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면
고난을 묵상하기보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 된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고난이 찾아오기 이전부터 계속 하고 있었다면
고난이 찾아왔을 때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해석'이 될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는 과정을 통해서
고난을 긍정적으로 보는 관점이
이미 생겨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의 고난을 긍정적으로 해석해야만
고난 당하는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위로할 수 있다.

5. 나는?

설교자로 살아온지가 5년이 좀 넘었다.
부족한 설교에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이다.

그런데 나는 신대원 2학년 때 왜 교회를 개척해서
설교자로서의 삶을 시작했을까?

매일 묵상하는 말씀을 통해서 받은 은혜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고,
내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누리는 은혜를
다른 누군가도 함께 누렸으면 해서였다.

말씀을 묵상하는 성도들을 세워서,
스스로 하는 묵상을 통해서
생명의 은혜를 생산해내는 성숙한 신자를 세우고 싶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설교와 성경공부와 세미나를 통해서
스스로 말씀을 묵상하는 신자를 세우려 할까?
그 이유는 분명하다.

내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누린 가장 큰 은혜가
내 삶에 찾아왔던 고난을 해석하는 은혜였다.

경기도에 올라와서부터 묵상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sns에 매일 묵상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나눔'을 위해서였지만,
매일 묵상글을 쓰면서 나의 묵상이 점점 깊어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묵상이 깊어진다는 것은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간다는 것이기도 했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이 나의 삶에 일어났던 사건들과 고난들을 해석하는 것이었다.

과거에 내가 경험했던 사건들,
특별히 고난들에 대해서
묵상하는 그 날의 본문이 새롭게 해석해주는 경험을
언젠가부터 하게 되었다.

다른 날에는 그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다른 관점으로 해석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묵상글에는 과거의 동일한 사건들이
여러번 반복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동일한 사건이지만 여러 관점에서 해석되면서
그 사건이 입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입체적으로 보게 되면서 비로소
과거의 그 고난과 사건들이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되었다.

그 내용들을 설교로 풀어낼 때가 많았고,
내가 당한 고난과 실패와 좌절의 이야기들을 통해서
성도들은 특별히 더 은혜를 받는 것 같았다.

분명 고난, 실패, 좌절의 이야기인데 거기서 끝나지 않고,
주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희망과 소망의 이야기로
해석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온 몸에 전율이 생길 정도로
큰 감동과 은혜를 누리는 것은 대부분
나의 삶의 이야기가 새롭게 해석될 때다.

그런 의미에서 시편 기자의 고백은 참으로 놀랍다.

(시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을 당한 것이 유익이라니,
말씀을 묵상하기 전에는 이 구절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면 할수록,
말씀이 나의 과거의 고난들을 해석하는 것을 경험할수록
시편 기자의 이 말에 너무나 깊이 동의가 된다.

나의 삶에는 크고 작은 고난이 많았다.
고난이 너무 아파서 죽고 싶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그런데 그 고난의 과정을 통해서 감사하게도
나는 주님께 더 매달렸고 말씀을 더 붙들었다.

그랬더니 감사하게도 말씀은 나의 삶을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해주었다.
그래서 나는 살았다.
말씀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고
내 삶을 바라보는 눈도 새롭게 열리는 것을 느꼈다.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는 시편 기자의 고백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나의 남은 삶을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너무나 분명한 답이 나온다.

우선은, 내 삶을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해석하는,
그래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내 삶을 바라보게 해서,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말씀을
나의 남은 삶 동안 결코 놓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말씀으로 자신의 고난과 삶을 해석하여
삶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관점인
하나님의 관점, 긍정적 관점을 갖게 되는
말씀의 사람들을 세우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시대가 악해져가고 있는데,
그 정도가 점점 심해져 가고 있다.
교단들의 총회가 시행될 때마다
자조와 한탄과 절망의 소리들이 터져나온다.
교단 총회에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에 신자 개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나 분명하다.
신자 개개인이 목사와 교회에게 그리고 교단에게
자신의 신앙적인 운명을 다 맡기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이 되는 시대다.

신자 스스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으로 자신의 삶과 고난을 해석해서
삶에 대한 놀라운 통찰과 긍정적 관점을 갖게 되는
참된 말씀의 사람들이 세워져야 할 시대인 것 같다.

그 일을 위해 나의 남은 삶의 시간들을
더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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