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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기도하기]
유대인 수용소에서 두 명의 남자와 한 아이가 교수대에 매달렸습니다. 어른들은 곧 숨을 거두었지만 아이는 죽지 않고 30분이나 버둥대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는 유대인들에게서 침통한 탄식이 흘러나왔습니다. “아,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홀로 고스트의 생존자 엘리 위젤이 이 상황에서 전하는 말이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그분은 저 교수대에 매달려있지 않은가.”
“대통령은 어디에 있습니까.”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에서 피격된 후 야당은 대통령을 추석 연휴에도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국민이 죽어가는 시점에 대통령은 무엇을 했느냐는 생떼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에 진정성이 보이려면 야당의 백 드롭에 쓰인 이 질문에는 물음표가 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답을 듣고 싶지 않아 ‘ ? ’을 뺀 모양입니다. 게다가 피격 공무원은 자진 월북한 것이라는 해경의 발표를 반박해야 합니다. 2013년 월북을 시도하던 민간인이 우리 군의 총격으로 사망한 경우에 대해서도 변명해야 합니다. 그 사건을 미화하여 비를 세운 사실에 대하여서도 반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세월호 때 7시간을 밝혀야 합니다. 이것을 못한다면 야당의 주장은 완전 코미디입니다. 문제는 이런 정치 논리가 이 나라 어떤 국민에게는 공감을 일으킨다는 점입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의 수준과 비례한다는 말이 딱 맞습니다.
시인 유자효는 추석을 용서*라고 했습니다. 추석은 ‘모든 것을 용서하는 넉넉한 얼굴’을 마주하는 날입니다. 이 말이 맞는다면 우리는 지난 세월 한 번도 ‘추석’을 맞은 적이 없습니다. 물고 할퀴느라 정신없는 이 나라, 증오와 혐오를 부채질하며 끝없는 분쟁을 부추기는 세력들이 이 땅에서 추석을 추방해버렸습니다.
하나님,
나는 더이상 추석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이 땅에 추석은 없습니다. 저 악당들을 물리치지 않는 한 추석은 없습니다. 보름달은 떴지만 한가위는 오지 않았습니다.
주님,
지금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미움과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여 싸움을 만들고,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무리들 속에서도 여전히 화해와 사랑의 끈을 잇고 계시지요. 그 주님의 은총으로 오는 추석을 애타게 기다립니다.
Navi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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