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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19-25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819-25: 이 후에 예수께서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그 복음을 전하실쌔 열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예수의 모친과 그 동생들이 왔으나 무리를 인하여 가까이 하지 못하니 혹이 고하되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당신을 보려고 밖에 섰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 하루는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매 이에 떠나 행선할 때에 예수께서 잠이 드셨더니 마침 광풍이 호수로 내리치매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어 위태한지라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지더라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시니 저희가 두려워하고 기이히 여겨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물을 명하매 순종하는고 하더라.

 

19-21: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왔다. 문제는 무슨 마음으로 왔을까? 아들이라고 또는 형이라고 보고 싶다고 왔을까? 아니면 집 나간 지 오래되어서 집에 가자고 찾아왔을까? 아니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으려고 왔을까? 아니면 예수님의 그 일을 하지 말게 하려고 찾아왔을까? 아니면 모친과 동생들 자기들의 기준과 주관대로 즉, 한 가족이기 때문에 인정정실로 예수님을 찾아온 것일까? 아니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살려고 찾아온 것일까?

 

주일날 일가친척들이나 형제들이 찾아왔을 때 왜 찾아왔을까? 믿는 자기에게 찾아왔으면 부모형제이던 누구든지 나랑 같이 교회 가자. 먼저 하나님 앞에 예배를 올리고 그 다음에 대화를 하자해야 옳다. 그런데 부모형제가 오래간만에 찾아왔다고 주일날도 어기고 토요일도 주일예배 준비도 없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 부모형제 이웃 친척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주님과 원수로 만들어 놓느냐? 주님과 원수로 만들어 놓으면 괜찮겠느냐?

 

주님은 온 세상만물 천지를 다 주관하는 분이시요, 심지어 나의 구원을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분이신데 내가 주님의 마음을 거스려 놓고 딴 짓을 하면 믿는 마음에서 편안할까? 이런 사람이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당할 때 이게 왜 왔는지그걸 생각을 할까? 얻어맞으면 무조건 피하려고 하고 좀 도와달라고 맨날 그러고 있으니 얻어맞을 수밖에 없는 거다.

 

우리가 주일날마다 먼저 신명기를 읽지 않느냐? 원수가 쳐들어오면 일곱 갈래로 도망하리라? 원수가 누군데? 눈에 보이는 원수만 알지 사단은 눈에 보이는 배후에서 자기의 신앙 믿음을 없이 하려고 하고, 나와 주님과의 사랑을 끊으려고 여러 가지 수단 방법을 다 쓰는 건데 그 면에 대해서 신앙 정신 사상에 대해서 모르면 눈에 보이는 것밖에 모른다. 이러면 사람이 미련해진다.

 

내 모친과 동생들이 누구냐?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내 모친과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주님이 이 말씀을 했다. 그러니까 당신의 말을 안 들으면 당신의 모친과 동생이 아니라 그 말이다. 말하자면 당신의 식구가 아니다. 천국백성이 아니다. 천국의 가족이 아니다 그 말이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처럼 이런 면으로 신앙의 정신 사상이 살이 찌고 힘이 올라야 한다. 그런데 이 면에는 힘과 살과 뼈대가 안 생기고 먹고 마시는 육신적인 관계성으로만 힘을 쓰고 있으니 이런 건 다 얼마 안 가서 날아가고 원수가 되기도 한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주님의 이 말씀이 맞느냐?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왜 따라하지 않느냐? 예수 믿으면서도 그런 정신이 없다.

 

21절의 이 말씀이 일반적으로 보면 어찌 그리 매정할까? 육덩이 교인들이 이 말을 들을 때에 예수님을 욕을 하고 돌아설 일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다고 하자. 만일 목사가 그렇게 말을 한다면 이놈의 교회 말고 딴 교회는 없느냐하며 딴 교회로 가버릴 것이다.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 수가 있느냐? 세상을 좀 섞어가면서 살아야지.’ 그렇다면 말씀대로 따라 살지 않을 바에야 뭐하려고 예수를 믿느냐? 그렇게 하면서도 예수를 믿는다면 그 사람은 자기 좋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내가 예수를 믿어드릴 테니 예수 당신은 나를 좀 좋게 해 주십시오그 말밖에 더 되느냐? 이건 도둑의 심보다.

 

21절의 이 말씀을 만일 예수님의 모친과 동생들이 들었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이 말씀이 일반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예수 믿는 신앙은 일반사람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거다. 이해가 될 리가 없다. 왜냐? 일반사람들은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지식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는 생명과 먹은 지식으로 사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이해될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안 믿는 사람, 믿음 없는 사람을 따라가느냐? 이건 벌써 주님과 원수로 살겠다는 것이다.

 

세상 이방인들이 예수님의 그 말을 들었을 때 예수님의 그 말씀이 이해가 될까? 이해가 되는 말이냐, 오해가 되는 말이냐? 오해가 되는 말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일반지식의 개념으로 이해가 안 되는 말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령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에 감동된 말씀인데 어찌 일반지식의 개념으로 이해가 되고 믿어지겠느냐?

 

일반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에 덤벼드느냐? 성경은 하늘의 뜻을 담은 계시말씀이다. 이 계시의 말씀은 영원히 너를 좋도록 하는 말씀이다. 너는 임시적인 생각을 가지고 인간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말을 하지만 네 말은 결국은 네 말에 의해서 너는 모든 것과 원수가 되는 말이다.

 

성경은 영원한 실상세계의 뜻을 담은 말씀인고로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알기가 어렵다.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이니 성령의 감화 감동이 돼서 깨달아야 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가야지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해석도 안 되거니와 그건 이방 식이다. 이런 자가 교회의 인도자가 되면 거짓 목사가 되고 이단자가 된다. 지식이 바뀌지 못하면 아무리 열심히 충성봉사를 해도 하나님 앞에 거짓이요 이단의 성질이다. 주님과 다르다 그 말이다.

 

사람이 육신의 음식을 편식을 하면 자기 몸이 어느 면이 서서히 약해지면서 병이 오게 된다. 그 병이 나타나게 될 때까지는 몸의 어느 면이 약해지고 균형을 잃어가는지 흐트러지는지 자기는 모르는 거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면에서도 이치적으로 고루고루 영양이 들어가야 되겠는데 세상적인 교훈에는 영양가가 없어서 백날을 들어도 신앙 믿음의 사람으로 올라가지를 못한다. 그래서 진리이치를 못 깨닫고 자란 사람은 수십 년을 믿어도 그 사고방식은 일반적이다. 이런 일반적으로 돌아가는 사고방식은 수 년 수십 년을 믿어도 믿음이 없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본질의 믿음이 없는 사람이 참 많다.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이 안에서도 본질의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 런지?

 

우리교회에 처음 올 때는 말씀이 좋다고 오는데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원칙적으로 가려면 과거처럼 살려니까 상당히 부딪히는 거다. 주일날 손님이 찾아오지, 시골에서 불러 내리지, 아버지가 어머니가 불러 내리지, 그러니 안 갈 수도 없고.

 

집사 정도가 된다면 평신도라도 그런 게 정확하게 돼야 한다. 그래야 네가 산다. 네 가족도 산다. 비 맞은 소똥처럼 살면 안 된다. 네가 그렇게 살아봐라. 그 성격 성질이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누가 너를 알아주느냐? 사람이 믿는 정신에는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이 시원시원한 데가 있고 정신이 발라서 사랑도 가고 기도도 가고 하는 거다.

 

사람이 성경도 안 보았고 믿음으로 살지도 않았고 일반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다녔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기란 어렵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듣기 어렵다고 불평불만만 한다면 이는 자기의 성격 성질부터 고쳐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건 말씀을 듣는 자세가 아니라는 말이다. 먼저 인간 편에서 가질 마음의 자세는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의 자세이다. 마음을 비우고 기다리는 자세다. ‘재미있다. 없다하는 것을 찾는 게 아니라 이것이 영원히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하고 옳은 정신과 마음의 이치를 찾아야 한다.

 

한 숟가락을 떠 넣고 배부르기를 바라느냐? 한 숟가락을 떠 넣고 또 한 숟가락을 떠 넣고 꼭꼭 씹어 맛을 음미해야 한다. 집에 가서 성경을 읽을 때에 천천히 읽고 마음속으로 씹는 맛으로 성경을 읽어라. 눈으로 빨리 읽으려고 하지 말고.

 

성경을 읽으면서 일반생각이라도 양심이 부끄러운 자기가 보이면 고쳐달라고 기도를 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편 그 자기가 발견된 것에 감사하고. 성경이 아니면 발견이 안 되는 것이니까 감사를 하고, 그 감사를 할 때 이 못난 사람을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셔서 못난 나를 발견하게 하시고 참 나를 깨닫게 하십니까?’ 해야 한다. 깨달아진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충성되이 삶을 살 수 있게 기도를 하라. 이건 하나님이 들으시는 귀한 기도이다.

 

듣기 어렵다고 못 알아듣겠다고 신경질을 부린다면 그런 사람은 평생을 믿어도 믿음의 사람이 되기란 어렵다. 설교시간에 조는 사람이 있는데 조는 이유는 늦잠을 자서. 늦게 잔 이유는 많다. 이건 규례대로 하는 게 아니다. 늦게 자면 아침 일찍 못 일어난다. 또 조는 이유는 심한 노동을 해서. 이런 경우는 육신의 음식을 영양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 또 하나는 영양의 불균형 때문이다. 머리가 띵 하다. 또 약을 먹어서 조는 경우, 또 재미가 없어서 조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재미있는 얘기를 하면 깬다. 그러다가 이치 있는 설교를 하면 그만 또 존다.

 

예수님을 찾아온 모친과 동생들은 집 밖에 섰다. 쉽게 말해서 세상 육신 세상 사는 인정정실 그런 정신은 밖에 있구나. 다시 말하면 그런 정신은 예수님을 못 만나는구나. 부모님과 형제들이 그 정신으로 찾아온 것이다. 이건 집 밖에 있는 것이다. 안으로 못 들어오고 밖에 있는 거다 그 말이다.

 

그러니까 천국복음의 예수님의 정신 사상과 모친과 형제들의 정신 사상과는 다르다. 예수님은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다라고 하시는데 모친과 형제들은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으니 밖에 있는 것이다. 아가페 밖, 생명권 밖, 사랑권 밖, 애정권 밖이다. 다른 말로 하면 성전 밖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만나려면 천국복음을 듣고 천국복음과 단일의사의 인격이 돼야 만나진다는 의미이다.

 

또 예수님의 부모형제는, 즉 가족은 어떻게 하는 자라야 당신의 가족이라고 여기시느냐? 21절에 말씀을 해 놓았다. 이게 아니라면 예수님의 가족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고 순종하는 이 자들이 내 가족이다. 그것이 아니란다면 예수님이 가족이 아니다. 그러면 궁극교회의 가족은 어떤 사람이냐? 정답은 나오는 거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살아야지 네 불뚝 내 불뚝하며 인간과 담 쌓고 살면 되겠느냐?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의 눈으로 볼 때는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을 못 만난다고 여길까? 무리들이 진을 치고 있기 때문에. 핑계가 무리들에게로 들어간다. 무리들이 없으면 쑥 들어와서 예수님보고 옷 갈아입자. 먹을 것 가지고 왔다. 집으로 가자하는 등의 얘기가 될 텐데 무리들이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내 형제들이 누구냐? 바로 이 사람들이 형제다라고 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은 이 사람들 때문에 못 들어온다고 생각을 한다.

 

예수님께서 설교를 중단하고 무리들보고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으니 잠깐 기다리십시오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고 안 만나주는 예수님이 원망스럽고, 또 예수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무리들을 원망하고 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모친과 형제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못 만나는 것이 남 탓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예수님의 가족이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를 밝혀줄 등불처럼 귀히 여기고, 높이 올리고, 자기의 뜻은 버리고 자기 속에 천국의 정신 사상을 높이 빛처럼 올릴 것이다. 말씀을 귀히 여겨라 그 말이다.

 

22-25: 이건 다른 각도로 보여주는 거다.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는 이 말을 했을 때 멀미를 하는 사람은 겁이 덜컥 날 것이다. 멀미가 왜 나는 거냐? 멀미가 발끝에서 나느냐, 손끝에서 나느냐, 가슴에서 나느냐? 머리에서 난다. 왜 멀미가 나는 거냐? 멀미가 나는 이유는 소화가 안 되거나, 어쨌든 신체에 이상이 생겼거나, 뇌에 문제가 있거나 하면 멀미가 나게 된다.

 

멀미를 안 하는 사람은 배 타고 가자고 하면 신바람이 난다. 배를 타고 가면 자기가 물 위로 떠서 가는 기분이다. 배를 타고 가면 물 가운데서 육지를 볼 수 있다는 것, 갈매기에게 먹이 주면서 갈매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것. 얕은 물 위에서 물속에서 물고기가 노는 것 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물 가운데 섬 사이로 갈 수 있다는 것. 풍경이 좋다는 것이다. 파도를 헤치고 망망한 바다를 향해 돌진하며 간다는 그 자체도 신나는 일이다. 어쨌든 호수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는 말씀에 신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상황이다. 그러니 제자들이 신이 났다.

 

베드로와 형제들, 그리고 한 동네에서 자란 친구들의 주머니 속에는 항상 낚싯바늘과 낚싯줄이 준비돼 있을 수도 있다. 먼저 낚인 물고기의 입을 먼저 열면 돈이 나온다고 하니 낚싯대를 항상 들고 다닌 제자도 있었을 듯하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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