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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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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 헬무트 틸리케,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서울: IVP, 2019), 33-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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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빠진 타이어 신학>
이 신학생은 마치 새로 알게 된 소문을 옮기고 싶어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수다쟁이처럼 신화와 전설과 양식사를 다룬 ‘최신 연구’의 내용을 친구에게 설명해 줍니다.
이 신학생은 상대방이 순간의 공포를 극복하기도 전에, 자신이 학교 강의실 앞에서 주워들은 영적 유형 속에 그를 분류하여 넣습니다. 그러면서 못 배운 그 친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말한 것은 ‘전형적인 경건주의’나 ‘전형적인 정통주의’,아니면 ‘감리교 신자’가 하는 말이야:’ 또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오시안더(Osiander) 같은 유형이구나. 오시안더 학파는 칭의론의 법정(法廷)적 성격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
그러고는 학문 연구로 얻은 미심쩍은 부산물, 즉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유식한 말들을 그 친구에게 생색내며 설명해 줍니다.
그 신학생이 세 번째 학기를 마치고 돌아오자 고향 사람들은 그에게 직접 성경공부를 맡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물론 젊은 직공이 심히 유식한 신학생 친구 앞에서 자신의 순진한 성경 해석을 한 번 더 발표하게 될까 봐 난처해하는 줄은 모르고서 말입니다.
당연한 일입니다만, 합창단의 단원 하나가 음악 학교에 가서 테너로 훈련을 받고 처음으로 고향을 방문하여 노래한다 하면, 그가 어떻게 노래할지 모든 합창단이 극도로 관심을 갖고 지켜봅니다. 실망은 끝이 없을 때가 허다합니다.
이 젊은 성악가는 안면 근육을 한껏 일그러뜨리고 땀날 정도로 큰 몸짓을 아낌없이 구사하면서, 이전에 자신이 고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그리고 그 지역 합창단에서 단역(端役)으로 노래할 때보다 훨씬 더 개탄스러운 음색을 만들어 냅니다.
인물만 바꿔 넣으면, 이야말로 딱 저 신학생의 모습입니다. 그는 온갖 해석학 도구를 아낌없이 활용하고 어떤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라는 분위기를 온몸에서 풍기면서, 사람들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이 달가워하지도 않는 세세한 사항들을 제시합니다.
이 때문에 생생한 젊은 그리스도인의 내면 근육조직은 추상적 관념의 탱크에 깔려 끔찍하게 압살당하고 맙니다. 성경공부 후에 이어진 토론 시간에 뭔가 있지 않을까 기대했을지 모르지만, 여기에서도 그 신학생은 생생하게 살아 있고 자유로우며 편안한 모든 대화에 관념이라는 마비주사를 찔러 넣는 경악스러운 재능을 펼쳐 보입니다.
이러한 경험 때문에 많은 교회가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신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면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 헬무트 틸리케,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 (서울: IVP, 2019), 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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