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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생명 안에서 산다는 것

로마서 김기석 목사............... 조회 수 276 추천 수 0 2020.12.04 21: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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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6:1-5 
설교자 : 김기석 목사 
참고 : 청파감리교회 http://www.chungpa.or.kr 

새 생명 안에서 산다는 것
롬6:1-5
(2020/04/12, 부활절)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을 해야 하겠습니까?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러 있어야 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에는 죽은 사람인데, 어떻게 죄 가운데서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 예수와 하나가 된 우리는 모두 세례를 받을 때에 그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그의 죽으심과 연합함으로써 그와 함께 묻혔던 것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새 생명 안에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죽음을 죽어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우리는 부활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연합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람페두사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우리 가운데 그리고 어둠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온 세상에 넘치기를 빕니다.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싶지만 지금은 차마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로 인해 죽어가는 이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가족들과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손도 잡아 보지 못하고, 장례 절차조차 생략한 채 속절없이 세상을 떠나는 모든 이들을 주님께서 안아주시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그 가족들의 마음에 드리운 슬픔과 그늘에 주님의 은총의 햇살이 비쳐들기를 빕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저는 람페두사 섬에서 난민들을 돌보는 의사 피에트로 바르톨로가 쓴 책을 읽었습니다. 일부러 그 책을 선택한 것은 전쟁과 테러 그리고 극심한 가난을 피해 유럽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의 아픔과 그리스도의 수난이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최남단의 섬 람페두사는 어떻게든 유럽에 가고 싶어하는 아프리카와 서아시아 난민들이 꼭 거쳐야 하는 관문과도 같은 곳입니다. 죽음의 사막이나 계곡을 통과하여 당도한 리비아와 튀니지에서 그들은 작은 목선이나 고무보트에 실린 채 검은 바다를 건너야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이들이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피에트로는 난민들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일을 합니다. 헤어졌던 가족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하는 일도 합니다. 그가 가장 힘들어하는 일은 시체가 되어 그 섬에 당도한 사람들을 해부하여 사인을 밝히고 기록하는 일입니다. 그 책을 읽다가 가슴이 턱 막히는 이야기와 만났습니다.

2013년 10월 3일에 벌어진 난민선 침몰 사건으로 인해 368명이 희생당했습니다. 겨우 8일 후인 10월11일에 또 다른 조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몰타의 난바다에서 800명이 탄 배가 침몰했고 일부만 살아남아 람페두사에 도착했습니다. 살아남은 시리아 출신의 한 젊은이가 유독 피에트로의 눈에 띄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기쁨도 안도감도 없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아홉 달 된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습니다. 어렵사리 입을 연 그는 자기가 겪은 참극을 털어놨습니다. 큰 파도에 부딪쳐 배가 뒤집혔고, 수영을 잘하던 그는 아홉 달 된 아기를 자기 풀오버 속에 밀어 넣고, 한 손으로는 아내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세 살짜리 아들을 잡은 채 등헤엄을 치며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구조대가 바로 와주면 좋으련만 그들은 오지 않았습니다. 숨이 가빠지고, 물결이 높아지고, 물살이 거세졌습니다. 모두가 함께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다가왔습니다. 망설임 끝에 그는 독하게 마음먹고, 오른손을 펴서 세 살짜리 아들이 자기 손에서 빠져나가게 했습니다. 아들이 천천히 멀어지는 모습을 그는 망연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손을 놓은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헬기가 그들을 구조하러 왔습니다. 그는 자기를 용서할 수 없다며 오열했습니다. (피에트로 바르톨로·리디아 틸로타, <소금 눈물>, 이세욱 옮김, 한뼘책방, 2020년, p.63-65)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 6년 전 4월 16일에 벌어진 세월호 참사를 겪었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304명의 생명이 스러졌습니다. 우리는 이 일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생명이 최우선 가치로 존중되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다소 나아진 부분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생명 중심의 세상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인간이지 하나님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불편을 겪고 있지만 세상에는 이런 비극이 여전히 많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 부활을 낭만화하거나 감상적으로 소비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다는 게 우리의 고백입니다. 피부색이나 인종, 국적, 경제력, 배움의 정도, 성별,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존중받고, 살 권리를 인정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예수님의 꿈이었습니다. 아픔과 절망의 땅에 기쁨과 희망을 파종하는 일은 주님을 따르는 우리의 소명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이 아무리 작다 해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왜 세상이 이 모양이냐고 항변합니다. 앞에서 말했던 의사 피에트로 바르톨로는 우리 생각을 전환할 것을 제안합니다.

“나는 자주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하느님이 인간의 이 모든 고통을 허용하고 있으니, 이따금 신앙이 흔들리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느님? 하느님이 무슨 상관인가? 고통을 야기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들이다. 탐욕스럽고 무자비한 인간들, 돈이나 권력 따위만 믿는 사람들. 단지 인신매매 조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신매매가 성행하도록 방치하는 사람들,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을 빈곤 상태에 그대로 두고 싶어하는 사람들,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고 부추기고 싸움질에 돈을 대는 사람들의 책임인 것이다. 문제는 인간이지 하느님이 아니다.”(피에트로 바르톨로·리디아 틸로타, 앞의 책, p.190)

하나님이 고통을 허용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세상의 고통을 모른 체 하고, 제 살 궁리만 하는 이들이야말로 이런 세상을 만든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선한 이들의 침묵이야말로 불의한 이들이 활개치는 세상의 못자리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형상인 사람을 도구화하고, 불구로 만들고, 죽음으로 내모는 세상에 대한 ‘정지 명령‘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운명에 뛰어들었습니다. 세례를 통해 옛 사람과 결별했습니다. 여전히 옛 사람의 흔적이 남아 우리를 욕망의 방향으로 잡아 끌지만, 그래도 우리는 욕망이 아니라 은혜에 반응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고,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많은 이들이 부활절 무렵이 되면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이라는 스캔달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당혹스러워 합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부활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하고, 어떤 이들은 그것이 우리 신앙의 근본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부활이 제자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변화의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 답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십자가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은 이가 어찌 부활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고통 받는 이들 편에 서서 눈물을 흘리고 땀을 흘리지 않고 어떻게 부활을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부활은 몸을 바치는 이들만 이해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부활이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육체를 다시 되찾는 것 즉 육체의 소생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울도 부활의 몸을 설명하기 위해 은유적 언어를 사용합니다.

“죽은 사람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것으로 심는데, 썩지 않을 것으로 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심는데, 강한 것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으로 심는데, 신령한 몸으로 살아납니다. 자연적인 몸이 있으면, 신령한 몸도 있습니다.”(고전15:42-44)

∙사랑엔 낭비가 없다
부활은 더 큰 생명에 안김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한 사람들, 다시 말해 그분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은 썩지 않을 유산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믿음이 있는 한 세상의 어떤 위협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 수 없습니다. 그는 이미 새 생명 안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김남조 선생님이 최근에 내신 시집 <사람아, 사람아>를 읽다가 ‘낭비 없는 사랑’이라는 시와 만났습니다.

“사랑엔 낭비가 없다
더 많이 주었다면
그 풍요로 이미 보상받았다
그 사람 있었기에
불 꺼진 한 세월이 밝고 따뜻했다고
그리 알 일이다

사랑엔 계산법이 없고
순수와 관용이라는
열쇠가 있을 뿐이다”

‘사랑엔 낭비가 없다‘는 말 한 마디는 아흔이 넘은 노시인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인생훈입니다. 시인의 말처럼 불기 없는 세상, 불 꺼진 세상을 우리가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낭비처럼 보이는 사랑을 선택한 이들이 우리 가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계산하지 않는 사랑, 그 사랑을 선택한 사람은 이미 부활을 사는 사람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주님이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세상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을 돕고 싶어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통해 조각난 세상을 깁고 싶어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속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어 욕망의 숨결로 탁해진 세상을 정화하고 싶어하십니다. 람페두사의 의사 피에트로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 코로나19와 맞서느라 사투를 벌이는 모든 의료진과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이 그런 것처럼, 우리도 서 있는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앞서 가시니 두려울 것 없습니다. 소금 눈물이 그치지 않는 세상이지만 우리는 생명과 평화의 세상을 향해 끈질기게 걸어가야 합니다. 그 길 위에서 맘껏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우리가 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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