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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9:1-2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91-2: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우리가 깨달음을 받고 바른 신앙을 가지려면 먼저 우리의 기준이 되시고 근원이 되시고 원인이 되시는 그 분의 속성을, 그 분의 성품과 인격을 알지 못하면 바른 신앙으로 못 들어간다.

 

하나님의 본질은 시간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위치적으로나, 지식이 지혜가, 또는 하나님의 신적 도덕성이 능력성이 영원히 가는 것이다. 지식도 영원히 가고, 지혜도 영원히 가고, 권세도 영광도 행복도 기쁨도 영원히 가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 당신을 인간처럼 말을 한다면 오각의 오감성을 가지신 분인데, 하나님은 신이시니까 영이시니까 영감성이겠으나 인간 편으로 말을 하니 그렇다. 당신의 본체가 영이시니 모든 것이 영원히 가는 것이다. 우리에게 말씀을 주신 것도 영원히 가는 뜻이 그 안에 들어있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공의로운 하나님의 본질을 염두에 두고 그 분 앞에서 보여지는 병적 상태, 또는 정신적 상태, 또는 신앙을 한다면서 그 신앙이 적중하게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비뚤어진 상태, 그러니까 신앙을 안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기는 하는데 비뚤어진 상태, 또는 하나만 적중된 게 아니라 딴 것도 모두 적중성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적중성이 아닌 이런 것은 하나님 나라에 못 들어간다.

 

그런데 성경에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자, 병든 자를 고쳐준 것은 영원한 마음을 가지고 영원한 뜻을 넣어서 그런 병자를 고쳐주고 그런 귀신들린 자를 고쳐준 것인데, 주님은 낫게 하실 때 그런 마음으로 하셨는데 고침을 받는 자기 입장에서는 임시성적으로 생각을 한다. 주님은 영원에 뜻을 두고 고쳐줬는데 고침 받은 자기는 임시성으로 생각을 하는구나.

 

임시적으로 생각이 되는 이것은 예수 안 믿는 사람도 그런 생각을 가진다.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 받은 사람도 임시성적인 생각을 그렇게 가진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우리 입장에서는, 성경을 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는 우리 입장에서는 이방 불신자들처럼 임시적인 것을 생각하면 되겠느냐? 안 된다. 그런데 의사적으로 시간적으로 존귀적으로 주님과는 정반대로 간다.

 

그러니 예수를 믿어도 세상성적으로 믿어나가면 그 머리가 하나님처럼 영특하게 분별 있게 거룩하게 의롭게 선하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고방식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되니 세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차원을 높여주려고 깨닫게 하려고 당신처럼 만들려고 잡아 돌리는 건데, 세상을 잡아 돌릴 때 하나님의 뜻대로 믿는 사람은 자꾸 수입을 잡고 올라가는데, 영능의 실력이 올라가는데 예수 믿는 자기가 일반차원으로 들어가 있으니, 저질적으로 들어가 있으니, 사망적으로 들어가 있으니, 자기 성격 성질을 못 고치니 세상이 돌아가는 거기에 자극을 받게 되어서 별의 별 귀신들린 형태로써 나오는 것이다.

 

안 믿는 사람이 귀신들린 것은 우리 눈에도 보인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정신적으로 귀신들린 상태가 있다. 귀신은 일반적으로도 정신의 작용이 된다. 그 사람의 도덕성 그 인격성 면에서 자극이 들어간 것이다. 죽은 자에게는 그 작용이 안 된다. 산 사람에게만 된다. 그런데 이것을 말씀에 근거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이 고치시더라. 우리에게 특별계시로써 당시로 눈에 보이는 것을 들어서 그 속에 영적인 면을 고쳐주시는 뜻을 넣어서 하나님 보시기에 귀신들리고 정신적인 착오, 정신적인 괴리 이런 것을 고쳐주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서 눈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도 고쳐지는 것도 있지만 예수 믿는 우리 모두는 완전하지 않고 비뚤어지고 냄새나고 구부러져 있으니 예수를 믿고 진리이치의 말씀을 깨달음을 받고 그게 고쳐지고 해야 하는데 안 고쳐지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귀신들린 상태로 있으니 그것이 여러 가지 양상으로 나타난다.

 

악한 귀신도 있고 더러운 귀신도 있다. 악하고 더럽다는 것은 사람을 통해서 그게 나타나는 것이다. 더러운 생각, 악한 생각, 흉악한 생각, 뿐만 아니라 회당을 열심히 다녔는데도 평소에는 모르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오시니 그 속에 들어있던 것이 그냥 나타난다. 그래서 귀신들린 자가 성경의 역사는 잘 아는데, 다윗의 자손 나사렛 예수,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잘 아는데 예수님이 나타나니까 말하기를, 기도나 소원 목적으로 그 신앙이 말을 하기를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한다. 당신과 나는 인격적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냐? 지금도 하나님 앞에서 예배한다면서 구하는 것이 세상 것이라면, 세상에 있는 것을 계속 구하고 있다면 그가 성경의 역사는 안다고 할지라도, 성경구절을 쓴다고 할지라도 그 내용면에서 인격적으로 성품적으로 예수님과 관계없이 기도하고 부르짖고 말하는 것이다. 이건 예수님께서 보실 때 귀신이 들린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그런 기도를 한다면 이걸 고쳐야 한다. 목사들은 그걸 보고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고쳐줘야 한다. 그런데 세상을 구하고 축복 축복하면 아멘 아멘하는 게 정상이냐? 그게 성령님의 인도냐? 그게 성령님의 감화냐? 그게 기도냐? 그게 아멘이냐?

 

현재 우리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예수를 믿고 있다가 예수님이 오시면 그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올라가겠느냐? 그게 천국에 합당한 정신이냐? 죽을 때까지 이렇게 예수를 믿어도 그 사람은 바로 못 믿는다. 죽을 때까지 예수를 믿어도 안 고쳐진다. 평생 교회에 왔다 갔다 하며 신발을 수십 켤레 떨어뜨려도 바른 신앙으로 못 들어간다.

 

2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제자들을 내어 보내신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설교로 말로 행동으로 자랑을 하고 알리는 것이다. 말하자면 참 좋다’ ‘얼마만큼 좋으냐?’ ‘이만큼 좋다하는 것이고,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그 좋다고 하는 걸 감지하는 거다.

 

땅에 속한 세상의 나라들을 보면 자기 나라의 광고를 많이 한다. 왜 광고를 하느냐? 자기 나라에 여행을 와서 돈을 쓰라는 것이다. 그러면 여행자들은 다녀와서 장단점을 늘어놓는다. 그 말을 듣고 구미가 당기면 여행갈 마음을 또 먹고.

 

그런데 외국을 여행하려면 가려고 하는 그 나라를 잘 알고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야 한다. 잘못하면 자기가 죽는다. 알고 가도 피해가 큰데 모르고 간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말하자면 내가 살고 있는 한국도 위험한데 남의 나라에 가서 어디서 죽은들 어떻게 알겠느냐? 특히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더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잘 모르고 어떻게 그 하나님의 나라를 자랑할 수가 있느냐? 모르면 자랑을 못한다. ‘예수 믿고 세상에서 부자로 살고 갑시다하면 그게 하나님 나라의 자랑이냐? 하늘나라가 어떤 세계인지? 그 신령세계를 세상 육덩이 생각을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느냐? 그 나라는 어떻게 사는 건지를 모르고 어떻게 자랑을 할 수가 있느냐?

 

그리고 예수님께서 제자들 보내실 때 앓고 있는 자를 고치라고 내어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 앓고 있는 자란? 1. 육신이 어느 부위가 병이 들어서 고통스러워 앓는 경우가 있다. 2. 마음이 아파서 끙끙 앓는 경우도 있다. 3. 지권, 아는 것이 없고. 재권, 재산이 없고. 세권, 세상 권세를 가진 것이 없어서 끙끙 앓는 것도 있다. 앓는 자는 신음소리를 낸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쳐라.’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를 따로 전하고, 앓는 자를 따로 고치고 하라는 것인가? ‘예수를 믿어라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고서 앓는 사람은 따로 고쳐주는 것인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다가 육신의 병이 든 사람이 있으면 얼마나 아플까?’ 하고 기도를 해 줄 수 있다고는 하겠으나 그러나 세상 것을 가진 게 없어서 마음을 끙끙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 사람에게 돈 많이 주고 권세 주고 하면 기뻐서 나을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이냐?

 

하나님의 나라 전파는 따로 하고, 앓은 자는 따로 고치는 것이냐?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의 나라 전파란 신령세계를 전파하는 것이고, 앓는 자를 고치라는 것은 육에 속한 병을 고쳐주라는 것이냐, 아니면 영적인 면에서 앓는 것을 고쳐주라는 것이냐?

 

육신의 병만 고치면 영적인 병도 고쳐지는 거냐? 병원에서 의사가 육신의 병을 고치면 영적인 병도 고쳐준 거냐? 그러면 육적인 병이 따로 있고, 영적인 병이 따로 있는 것이냐? 붙어있을 수도 따로 있을 수도 있다.

 

세상에 속한 나라를 잘 알면 천국도 잘 알아지는 것이냐? 세상나라를 아는 것과 천국을 아는 것과는 따로다. 그런데 교회에서 보통 육신에 대한 병만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병을 고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육신의 병도 다 고치지 못한다.

 

교회에서 고치는 것은 주님이 고치는 것으로서 세상이 못 고치는 것을 고쳐내야 한다. 세상에서는 웬만한 육신의 병은 잘 고친다. 그러나 영적인 병, 정신적인 면에 들어가서는 못 고친다. 정신적인 것도 육신에 속한 정신이 있고, 영에 속한 정신이 따로 있다.

 

세상은 영적인 면의 병은 전혀 모르고 있다. 쉽게 말해서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것은 다 병이요 사망이요 죽음이요 죄 아래다. 하나님 앞에 영생적으로 바로 된 것은 하나도 없다. 다 죽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지도 못하고. 이런 사람은 모든 영적인 면에서 힘이 없고 약한 자이다.

 

옳은 것이 자기 앞에 왔을 때 결정을 못 내리고 주저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한 발자국도 걷지를 못한다. 자기 속에 세상소원이 무게를 잡고 있다면 그 사람은 무거워서 서지를 못한다. 하나님의 뜻이 안 보인다면 그 사람은 소경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치의 구원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옷을 벗고 있는 사람과 같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자기의 영적인 상태가 벌거벗고 있다면 그 사람은 주님의 말씀대로 눈 멀고 헐벗고 가련한 것이다. 인간 자기가 육신으로만 만들어졌다면 별 문제인데 인간은 영육 결합체이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을 위해서 육신이 움직여서 영적인 면을 키워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모르는 사람은 벗고 있는 사람이고, 그 사람은 자기의 수치를 모른다. 그래서 교회 안에도 보면 자기는 예수님을 수년 수십 년을 믿었어도 벌거벗고 있는데 자기는 그걸 모르고 있는 사람이 많다. 영적 상태는, 정신적 상태는 눈에 안 보이니 그 면에 그만큼 무디니 모른다. 그래서 자기가 마치 벗은 것처럼 되어 있음에도 그 자신을 모른다. 이런 사람은 다만 육신의 나이를 먹고 돈 좀 있고 하니까 자기가 세상에서 뭐가 된 것처럼 여기지만 그 인생은 아무 힘이 없는 거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것은 그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을 하나님의 온전으로 고쳐주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은 영적 실상의 인격과 성품과 능력이 말하자면 신령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참 사람이다.

 

자기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받을 자인데, 이런 자기가 어디에 속한 병을 앓고 있는지? 어느 나라에 속한 소식을 듣고 있는 건지? ‘예수 잘 믿어 세상에서 부자 되자하면 그게 어느 나라 복음이냐? 세상복음이다. 세상복음은 영원히 안 간다. 세상복음은 불에 탄다. 하나님의 저주요 심판이다. 세상복음의 지식을 먹는 것은 선악과를 먹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에서 복 받고 만사형통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가 돼야 만사형통이냐? 부자가 됐으면 어느 정도 부자를 말하는 거냐? ‘가진 것은 없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이건 어느 정도 부자냐? 왜 예수 믿는 사람이 말씀의 이치를 생각을 안 하고 무턱대로 예수 믿으면서 일반 종교인들처럼 돌아가고 있느냐? 예수 믿는 자기가 교회에 가서 어느 나라의 복음을 듣는 건지, 어느 면에 앓고 있는 건지?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면서 어느 나라의 병을 앓고 있는 자를 고치라는 건지?

 

영적인 면에서 정신적으로 마음적으로 앓고 있으면 그 사람의 육신은 말할 필요가 없다. 무슨 말이냐? 영적 정신적으로 병을 앓고 있으면 육신이 앓는 것은 금방 들어간다. 몸을 운전하는 건 자기 정신이고 자기 마음이다. 따라서 그 면에 병이 들어 앓고 있는 줄을 모르고 있다면 육신은 마음이 삐끗하면 금방 병들고 죽는다.

 

그래서 보면 날 때부터 육신적으로 약한 사람도 있고 날 때부터 건강한 사람도 있는데, 그러나 그 상태가 현재적으로 병이 들어있다면 정신적으로 어떻게 살았구나하는 게 나온다. 자기 스스로에게서 그게 나오는 거다. 어느 면이 약하고 어느 면을 몰라서, 어느 면이 강해서 신음소리를 내며 앓고 있는 건지? 약한 쪽이 있다면 반드시 강한 쪽도 있다. 그러면 그 강함은 그게 건설적이냐, 비건설적이냐?

 

육신이 약해도 힘은 없어도 고집이 강한 사람도 있다. 다 강하면 좋으냐, 다 무르면 좋으냐? 강한 때는 강하고 무를 때는 무르게 조절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강하기는 강한데 어느 쪽이 강하냐? 약하기는 약한데 어느 쪽이 약하냐? 정신면에서도 영과 육으로 나오는 거다.

 

오늘날 자기는 어느 면에서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건지? 안 앓고 있느냐? 가난한 사람은 가난해서 앓고 있고, 그래서 내가 언제나 부자가 되려나그게 있고, 부자가 된 사람은 안 앓느냐? 다 앓는다. ‘행여나 내가 잠잘 때 가져가지를 않을까한다. 그래서 cctv를 달아놓고, 담장에 유리를 박아놓고. 그게 앓는 증거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무엇을 느끼고 있는 건지? 신앙 면도 앓고 있지만 몸도 앓고 있는 것도 있고, 몸은 건강한데 신앙 면에서 앓고 있는 것도 있고, 몸은 좀 약한데 신앙 면에서는 평화를 누리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이걸 다 느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영양학적으로 어릴 때부터 먹는 음식이 육식에 편중이 되었다거나 가난해서 잘 먹지 못했다거나 하면 그것이 병적으로 진행되면서 어른이 되어서 큰 고통의 결과 거둘 수밖에 없는 원인의 진행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본다. 어린아이를 계속 한 쪽으로만 눕히면 아이의 뼈가 그렇게 굳어진다. 육신은 훈련에 따라 어느 정도 되어진다. 성경에도 있는데, 인간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인간이 왜 안 듣느냐? 모든 성격도 성질도 그렇다. 비스듬히 기대는 버릇으로 늘 앉으면 등뼈가 휘어지고 나중에 고통으로 살게 되는데 지금 아무렇지 않다고 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고 있다.

 

교회에 나가고 예수를 믿는다면 참 자기의 실상을 잘 깨달아야 하겠는데 깨닫지를 못하고 하나의 종교인으로 산다면 영적인 면에서 봤을 때 그 정신상태가 어느 면이 약하고 병이 들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한 채 살면 안 된다.

 

이런 일도 우리는 본다. 본인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속에 어떤 병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의사가 알려줄 때 크게 낙담하는 것을 본다. 신앙 면에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모르게 되면 사람이 영적인 면에서 무식하고 무지하고 무능한 고로 하나의 종교인으로 살면서 사단 마귀적 거짓과 이단적 종교적 유행에 완전히 이용을 당하게 되는 건데, 자기는 그렇게 살면서도 신앙과 믿음에 있어서 뜨는 것으로 착각을 하며 사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실상은 성경을 모르는 거다.

 

예언 방언을 하며 그것이 신앙인 것처럼 떠들어도 성경은 한 이치도 모른다면 그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것인데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자기 자신을 아느냐?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인간을 아느냐? 이런 사람은 파선을 당한 배처럼 신앙 성장적인 면에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들어있는 자기의 구원을 이루지 못하고 자기 일생을 그대로 끝내고 마는 거다. 고로 고치지 못하면 영능의 실력이 없는 비참한 삶이다.

 

사람이 날 때부터 늙어가는 사람이 있다. 성장이 되면서 늙는 게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성장성은 없는 상태로 늙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신앙 면에서 그래서는 안 된다. 예수를 믿으면 성장을 봐야 한다. 성경은 영적인 것이므로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까지 영원히 성장이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 나이는 적은데 늙어빠진 게 있다. 겉으로는 정상이고 많이 배웠는데 예배의 태도가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다. 고쳐야 한다. ‘앓는 자를 고쳐라.’ 우리가 다 앓고 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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