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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33 추천 수 0 2021.01.27 09: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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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9:10-11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910-11: 사도들이 돌아와 자기들의 모든 행한 것을 예수께 고한대 데리시고 따로 벳새다라는 고을로 떠나 가셨으나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

  

무리들이 어떻게 알고 따라왔느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내어 보내실 때에 나가서 귀신을 내어 쫓고 병자를 고치고 두 벌 옷을 가지지 말고등등을 시키셨는데 주님의 종들이 나가서 전할 때는 그런 인격이 갖춰져야 한다.

 

제자들이 나가서 예수님께서 시키신 대로 순종을 할 때는 일하는 데만 순종만이 아니라 먼저 말씀에 순종성, 그 다음에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주님과 대립이 없이 순종성이 들어가야 한다. 이런 순종이 되려면 주님 앞에 의사단일이 되어야 하는 건데, 아무리 목숨을 바쳐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게 아니라면 그건 순종이 아닌 자기 방식일 뿐이다.

 

하늘나라의 복음은 오직 하나님 뜻대로, 천국복음 하나뿐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천국의 성질을 가지지 않고서, 천국의 인격을 가지지 않고서 어떻게 천국복음을 전할 수 있느냐? 땅의 소원 목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어떻게 천국복음이 전해지느냐? 땅의 소원 목적을 전하면서 성경구절을 쓴다고 해도 이건 천국복음이 아니다. 이러면 아무리 성경구절을 둘러씌워도 목적은 세상이 된다.

 

제자들이 하늘나라 복음을 적중성으로 잘 증거했기 때문에 무리들이 잘 증거한 사도들의 정신의 뒤를 따라 밟아왔다. 말하자면 숨바꼭질하듯이 사람을 따라왔다는 게 아니라 사람을 따르는 그 이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넣어준 천국복음의 정신을 따라서 나아온 것이다. 그러니까 무리들이 사도들이 증거하는 예수님의 그 가르침의 뒤를 따라가면 예수님을 만나게 되겠구나그렇게 마음을 먹고 따라왔더니 과연 예수님을 만나게 된 거다.

 

말씀을 전할 때 먼저 사람의 속에서 소원 목적이나 인격성에서 역사가 되도록 해야 하는데 오늘날 주님의 종들이라고 하면서 자기 피알하는 사람이 많다. 이건 주님증거가 아니다. 자기 이력증거, 업적증거, 능력광고, 신분증거 즉, ‘어디서 공부하고, 무슨 학박사 따고가 주님 앞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 천국복음 자랑은 아무 것도 없구나. 표면적인 것을 왜 자랑하느냐?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 딴에는 자기가 주님의 종이라는 것을 말뚝을 박기 위해서, ‘나는 가짜 종이 아닙니다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거다.

 

물론 잘못된 교회겠지만 그런 데서 신물이 나서 산이나 골방에서 직접 계시를 받았다고 하며 떠드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도 크게 잘못된 거다. 또 그런 게 생기니까 역시 종교계가 알아주는 어떤 배경을 자꾸 자기 뒤로 내세운다. 그래서 외국에 가서 공부를 많이 했으면 그릇이 크다고 한다.

 

주님이 보는 그릇과 사람들이 보는 그릇은 다르다. 세상으로 정신이 들어있으면 아무리 세상으로 배경이 되어 있어도 그 그릇은 지극히 적다. 이러면 병으로 말한다면 병 입구가 바늘구멍만해서 하나님의 것을 못 받는다. 세상으로 가득 들어있는 거다.

 

그런 가르침 그런 지시를 따라가면 세상 넓은 길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미약했으나 나중에는 창대케 된다? 처음에 교회에 들어와서는 나 같은 거하다가 세계로하는 그런 물을 먹다가 보니 점점 넓어지는 거다. 하늘을 향해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정신으로 세상 쪽으로 넓어진다. 그렇게 돼서 세상 넓은 길을 만나게 되면 그게 천국인가?

 

예수 믿으면 이렇게 창대케 되는구나. 살만하다이렇게 되니까 그 넓은 길에 마귀가 딱 있다가 악수를 한다. ‘잘 오셨습니다. 세상에 목숨 바쳐서 충성할 자가 없는 차에 마침 잘 왔습니다. 성경은 알 것 없고 마귀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됩니다한다. 그걸 따라가다가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받게 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남의 주머니를 터는 거나 도둑질이나 싸움을 잘하면 발이 넓어진다. 각 도시마다 지점이 생긴다. 목사의 세계도 발이 넓은 사람이 많다. 여기저기 다 다녀보고서 본인이 말씀 깨달음이 그래도 거기가 좋거든 그것을 잡고 거기서 말씀의 우물을 파라. 그런데 그러지 않고 여기 조금 저기 조금 이러는 목사는 평생을 가도 자기 우물을 못 판다. 거지처럼 얻어만 먹게 된다.

 

하나님의 종은 성경으로 보니까 계시완성 문서계시로 되기 전까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이란 말이 있다. 무슨 기도를 하다가 응답을 받았다가 아니라 직접. 그런데 옳은 진리본질의 사도들 밑에서 같이 하는 동역자들을 보면 사도들과 같이 고난도 겪고 돕기도 하고 한다. 이게 다 이룰구원이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신령천국에 가서 면류관을 던지는 것은 네가 써라하는 것도 되는 거다. 자기가 면류관을 쓴 것은 주님의 덕으로 된 것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당신이 그만큼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해 주었으니 당신이 쓰시오’ ‘아니다. 네가 써라서로가 그렇게 하게 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세상을 따라가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못 만나보고 즉, 한 이치도 깨닫지 못하고, 자기 하나도 못 고치고 그대로 인생은 끝나는 것이다. 한 이치를 깨닫는 것은 주님을 한 번 만난 것이니 그렇게 만나게 되면 그 이치의 주님을 또 만나보고 싶어진다. 마음속에서 자꾸 도수가 높아진다.

 

참 제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에서 가르침을 받고 주님으로 인격화 실상화 되고 영인 성장화 되고 무장화 되는 자요, 그렇게 되어서 보냄을 받은 자가 참 사도이다. 이것은 주님이 보내신 종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가 나오는 것은 주님이 보내신 참 종이다.

 

너도 나도 남녀노소가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 목사 나도 목사. 하나님의 종이다하고 나오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을 해 볼 문제이다. 왜 그런가 하니 세상을 따라가고 구하고 이루라고 하며, ‘복 복하고, 신비적 체험을 강조하고, 간증을 시키고 하는 이건 아무리 보아도 넓은 길이지 좁은 길은 아니다. 거짓 종들은 이단자들은 앞에서 말한 대로 그렇게 인도를 하기 때문이다.

 

사도의 뒤를 따라온 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는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의 말씀도 들려주시고 병든 자도 고쳐주셨다.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들려주시는 여기에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의 말씀이 그대로 들어가서 천국의 사상화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병든 자들을 고쳐주셨다. 일반적인 면에서도 생각이 꼬부라지고 마음이 넓지 못하고, 또 영적 차원에서도 그만큼 닫힌 것들을 고쳐주셨다.

 

이런 사람의 속에 든 중심사상의 병은 영적인 차원에서 고쳐 들어가야지 일반차원으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고친다. 선악과 따먹은 인간의 그 지식 그 생각 그 소원 목적 그 사고방식을 살리려면 생명과를 먹이는 것밖에 없다. 예를 들면 죽은 송장에게 입을 딱 벌려서 음식을 먹이면 죽은 그 생명이 살아나느냐? 숨이 끊어졌으면 숨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게 이치다. 그런 것처럼 선악과 따먹고 죽은 사람은 성령님의 역사로써, 생명과로써, 진리와 성령의 영감으로, 예수님의 구속으로 기본구원으로 살리고, 교훈으로 생명과의 이치를 먹여야 신령한 정신으로 살아나고 자라난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늘 고치면서 살아야 한다. 고치는 것만큼 햇빛이 드는 거다. 햇빛이 든다는 것은 생산도 되고 활동도 되는 거다. 고쳐지는 건 없이 일부터 시키면 역행이 된다. 서지도 못하는 어린아이에게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느냐? 자체적으로 힘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힘이 생기면 심부름을 시킨다. 먼저 사람을 세워놓고 그 다음에 심부름을 시키는 법이다. 이게 이치다. 예수 믿는 것도 이치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쓰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이치를 어기고 살면 자기 미련함으로 자기가 고통 속에 죽을 수밖에 없다.

 

병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왜 그런가 하니 어떤 면의 병을 말하는 건지를 모른다면 신앙사기 당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병이라 할 때 세상 땅에 속한 육신의 질병이 있고, 이 질병은 고난과 고통과 죽음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 이 병은 하나님의 말씀 불순종으로 선악과 따먹은 후부터 나온 것이다.

 

또 영적인 병이 있는데, 이 영적인 병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끊어져 있는 상태다. 믿는다고는 할지라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끊어져 있을 수 있다. 그러면 신령한 하늘나라의 것을 못 받아먹는다. 육신의 음식도 받아먹지를 못하면 사람이 기운이 없고 여러 가지 병이 생기듯이 영적인 면에서 받아먹지를 못하면 깨닫지를 못하니, 이것은 영원 궁극적 자기의 실상을 모르는 상태다. 즉 눈 멀고 헐벗고 한 예수님께서 자기를 보시는 그 차원을 모르는 상태다.

 

사람들이 자기를 보는 눈이 있고, 내가 나를 보는 눈이 있다. 내가 나를 보는 눈이 정확하냐? 내가 나를 보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 더 정확할 수가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있는 곳에 갈 때의 나, 나 혼자 방에 있을 때의 나, 일할 때의 나, 길을 갈 때의 나 등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 옷의 모양새나 신발이 다 다르더라. 격에 맞아야 한다. 신사 옷을 입고 논에 가서 모를 심느냐? 그래서 거울 앞에서 자기를 비춰서 자기 모습을 가꾼다.

 

예수님이 보시는 눈 멀고 헐벗은 그 차원은 신적 지혜지식성, 신적인 도덕성, 신적인 능력성 즉, 자신의 영적 기능과 지능 면을 모르는 상태다. 이게 다 병이다. 꺾어져 있고 꼬부라져 있고 둔감하고 한 자기를 신앙의 세계에서 안다면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의 것으로 고치려고 애를 쓰고 그리로 마음이 들어갈 것이고 신경이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도 그 면에는 별로 마음이 안 기울어지고 세상 쪽으로 자꾸 기울어져 있다면 언제 고쳐지느냐? 이건 세상의 눈에 잘 들어보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은혜가 잘 받아질까?

 

육신의 병은 세상 병원이나 의원이 낫게 해 주기도 하고, 낫지 못해서 죽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자기의 정신 마음을 하나님에 비춰보면서 자기의 잘못된 점을 고쳐달라고 한다면, 성격이나 성질이나 지식이나 지혜나 모든 면에서 고쳐달라고 한다면 고쳐주더라.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영적인 면에 병이 들어 앓고 있는데도 그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온전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를 못 본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몸을 보는 눈만이 아니라 마음을 보는 눈도 있다.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기가 어느 정도로 비뚤어져 있는지 그것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그냥 세상적인 마음을 갖고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고 가느냐? 예수를 믿으면 고쳐가야 한다. 잘못된 정신 성격 소원 목적 게으름 시기 질투 헐뜯는 거 하나하나 고쳐가야 한다. 이게 다 병이다. 그런 것을 자기가 , 이게 내 병이로구나하고 안다면 고쳐달라고 해야 한다. 여기 보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주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더라.

 

병적인 정신 마음, 모든 인격 면에서 비뚤어지고 잘못된 상태를 알게 해 주시려고 육신에 보이는 모든 병자들을 동원시킨 것이다. 그럼에도 여기서 육신의 병만을 생각한다면 예수님은 육 운동을 한 셈이 된다. 그리고 그렇게만 본다면 예수님은 모든 병을 다 고쳐준다고 했으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육신의 병을 다 고쳐줘야 하는데 그렇지를 않으니 예수님의 일은 실패가 된다.

 

예수 믿으면서 자기가 정신 마음 성격 성질 이게 어느 정도 비뚤어져 있는지 항상 찾아라. 바로 찾으면 바로 된다. 나침반은 어느 쪽을 가리키느냐? 항상 북쪽을 가리킨다. 인도자가 하나님의 진리본질에 맞출 줄을 모른다면 교회도 상징적으로 말하면 배인데 인도자인 나침반이 잘못돼서 목적지로 못 가게 할 테니 이러면 어떻게 되겠느냐? 난파가 된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 볼 때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준 것을 단순히 이방 세상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육신의 병으로만 강조를 한다면 이는 거짓 종들과 사기꾼들이게 당하기 쉽고 필경은 그들에게 놀아나게 된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 앞에서는 모든 질병을 가진 자를 다 낫게 해 주셨고, 어떤 곳에는 죽은 자도 살리셨다. 또 제자들에게도 당신의 능력으로 그렇게 하도록 하신 것도 있다. 그런데 이걸 육신의 병자나 육신이 죽은 자로만 말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라고도 했으니 죽은 자들이 모여 있는 공동묘지로 가야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 교회 안에 육신의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자도 많고 육신이 죽은 자들도 많고 한데 교회에 오래 다녔다면, 또는 누구든지 교회 안에 들어오면 다 낫고 가야지 왜 낫지 못하고 죽느냐? 육신의 병만 가지고 고집할 것이라면 그런 말이 되는 것이다.

 

교회에 다녀도 병 고침을 받지 못하는 것은? 1. 예수님께서 그 교회 안에 안 계시면 육신의 병이 안 낫는다? 2. 병자가 믿음이 없어서 안 낫는다? 3. 목사가 능력이 없어서 안 낫는다? 정답이 있느냐?

 

1번이 정답란다면 예수님이 그 교회 안 계신다는 것이니 목사도 교인도 예수님이 계시는 곳이 어디인지 같이 찾아야 할 것이고, 두 번째인 병자가 믿음이 없어서 안 낫는 것이라면 병자 자기가 믿음을 키우든지 목사가 키워주던지 해서 병이 낫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인 목사가 능력이 없어서 안 낫는다고 인정이 되면 목사 자기가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 교인들이 세상적인 육적 목사를 하나님이 종이라고 신처럼 받들고 있고, 목사가 병자에게 안수해도 병이 안 나으면 그 목사는 교인들보고 네 믿음이 없어서 병이 안 낫는다고 한다.

 

여기서 육신 목적으로 육신의 병 나음을 찾겠다면 정답이 무엇이냐? 어떤 답을 해도 정답은 없다. 그러나 영적인 면에서 생각을 하게 되면 정답을 알게 된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우리의 실상화 되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하러 오신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이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를 고치고, 눈 먼 자를 보게 하고, 귀신들린 자를 귀신을 좇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을 했고,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실천을 하셨다. 영적인 차원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가르침에서는 성령의 역사로서 이런 일이 되어지는 것이다. 한 마디로 구별되고 분별되고 고쳐지고 살아나는 역사가 있다.

 

영적인 면에서의 이런 일이 잘 되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무엇도 가지지 말라하는 그것부터 실천이 돼야 하는 것인데 오늘날 주님의 종들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세상 것을 더 가지려고 부르짖고 있으니 이런 자들이 무엇을 버렸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그런 종들에게 치료하는 주님의 역사가 있겠느냐? 없는 거다. 이치가 다 어그러져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거다.

 

영적인 귀머거리는 보청기로 듣게 되느냐? 영적인 소경은 돋보기안경을 써도 안 된다. 영적인 꼽추는 무엇으로 고칠 수 있겠느냐? 영적인 꼽추란 사람의 말을 항상 왜곡해서 듣는 것. 또 한 번 오해를 하면 도무지 그 마음을 펼 줄을 모른다. 꼽추는 보기가 싫다. 그런데 성경에 분을 언제까지 품으라고 했느냐? 분은 해 지기 전까지 품으라고 했다. 그런데 자기 속에 뭔가가 안 펴진 게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다 자기 자신을 쳐다보도록 했다. 내 속에서 꼬부라진 게 있으면 소화도 안 되고, 소화가 안 되면 그 다음에는 모든 신체 각 곳으로 영양전달이 안 된다. 그러면 신체가 반란이 생긴다. 그러니 그 때 그 때 풀어버려야 한다.

 

예수님께서 모두 고치셨다고 하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이 예수는 구원이니 이 분이 영적인 면에서 다 고친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고침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 믿는 게 어떤 면으로 보면 고쳐주실 것을 믿습니다. 깨닫게 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면에? 잘못된 면, 모르는 면. 어떤 면을 모르는 거냐? 성격이나 도덕성에 관한 것이냐, 지식에 관한 것이냐? 잘못된 것은 다 고쳐야 한다. 고친다는 것은 다른 면으로는 성장이고, 다른 면으로 말하면 만신창이가 된 우리가 영적인 면에서 하나하나 고쳐지니 온전해지는 것이다.

 

사람이 고쳐지지 않으면 성장이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자칫 잘못하면 고치지는 않고 성장만 하려고 한다. 이래서는 안 된다. 이러면 어떻게 되겠느냐? 고쳐진 후에 완전을 향해 올라가야 바로 될 터인데 고치지 못한 상태에서 자꾸 올라가려고만 하니 귀만 커지고 이상하게 비뚤어진다. 먼저 우리 자신을 살펴보고 먼저 고쳐라. 우리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이 예수님의 교훈이라야 만이, 구원의 교훈이라야 만이 하나님의 온전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자기는 어떤 교훈을 듣고 무엇이 고쳐졌느냐? 고쳐졌다면 몇 가지나 고쳐졌느냐? 안 고쳐졌다면 그 이유가 우리 모두 현재 자기의 육신적 물질적 조건 때문에 영적인 면이 안 고쳐지는 거냐? 물질적인 조건 면이 어려워서 영적인 면이 안 고쳐지는 거냐? 영적인 면은 물질과는 관계가 없는 거다. 자기 육신의 삶의 목적과 예수 믿는 목적과 대등하게 놓으면 예수 못 믿는다.

 

무엇 때문에 자기가 영적인 면에서 안 고쳐지는 건지 심사를 안 해도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에게 임할 수 있느냐? 인도자의 세계에서는 교인을 자기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냐, 예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냐? 성령님의 역사는 어느 쪽이냐? 예수님의 사람으로.

 

우리 모두가 자기 인생의 나이가 저물기 전에, 또 시대가 더 어둡기 전에 자기 인생의 나이도 생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자기가 저물어 들어가는 건지, 해가 떠오르는 건지? 부정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출생하자마자 공동묘지로 냅다 달리고 있는 거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들이 공동묘지에 도달하기 전에 어찌하든지 먹고 마시고 배부르게 살자하고 있다. 그렇게 달려가 보았자 결국은 공동묘지인데 그렇게 살고 있다.

 

하나님의 종들이 거의 세상을 떠났고 진리의 종들을 찾기 힘든 때가 어두운 때이다. 이러한 때에 주님은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모두 고침을 받기 원하심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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