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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창4:1-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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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말씀의 숲 교회 네이버- 말씀의 숲 교회(서울 은평) |
나의 예배는 아벨인가? 가인인가?
(창4장 1-15절)
저는 여러분을 향한 기도가 있어요. 우리 성도님들이 늘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그 행복을 찾아가는 기쁨이 넘치고, 늘 여러분의 삶에 아주 가까이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통해, 행복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 저의 소망이고, 기도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함께 날마다 행복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부터 ‘예배’에 대한 부분의 말씀을 묵상하고 있어요. 지난 시간,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은 한마디로 ‘정성’ 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래서, ‘정말 나는 얼마나 예배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가?‘ 를 생각해 보았고,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씀드렸어요.
예배가 다 예배가 아니고, 예배라고 해서 그 예배를 하나님이 다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마음에 드는 예배를 오늘도 찾으신다는 거지요. 나는 이곳에 어떤 마음으로 왔는지 하나님이 다 알 고 계신다는 거고요. 분명, 이중에 같이 앉아 있어도, 받으시는 예배가 있고, 받지 않으시는 예배가 있다는 거지요.
오늘은 우리가 잘 아는 가인과 아벨을 생각해 보려고 해요. 가인은 형이고, 아벨은 동생이지요. ‘형만 한 아우는 없다’ 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오늘 가인과 아벨을 보면서, 예배를 드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님은 형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고,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으시는 것을 보여주지요.
첫 번째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어요. 여러분, 신앙인이라면 대부분 성경을 읽다보면 이 질문을 하게 되요. ”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고, 아벨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까?“ 그리고 누구나 나름대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어요.
어떤 이는, 형 가인은 곡식을 드렸고, 동생 아벨은 짐승을 잡아서 드렸기 때문이라고 말을 해요. 제사드릴 때 드리는 예물에 따라, 받으시고, 안 받으시고가, 갈려졌다라고 하지요.
짐승을 잡아서 드렸다는 것은 피를 흘렸다는 것이고, 그 피는 진정한 희생을 의미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고, 예물에 피 흘림이 없었기 때문에,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 라고 말을 해요.
그런데 우리는 알지요? 제사의 제물이 곡식이든, 짐승이든 하나님이 가려서 받으셨다면, 하나님이 아니시지요. 만약 하나님이, 드리는 제물에 관심이 있었다면, 좋은 것, 많은 것을 원하셨겠지요.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고, 정성을 보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부자가 드리는 헌금보다, 과부의 두 렙돈을 더 귀중하게 생각하신 이유가 분명 있어요. 많고, 적고, 좋고, 나쁘고, 이런 것들이 ‘정성’안에 포함 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것만이 정성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가인과 아벨 누구의 제사는 받고, 안 받고의 차이는 분명 어느 순간, 가인이 드리는 제사에는, 마음의 중심에 정성 드려 예배드리는, 마음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7절에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 하세요. “네가 (예배드릴 때) 선을 행하였다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라고 말씀하시고, 그것을 죄와 연결시키는 모습이 보여요.
그러니까 뭔가는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낮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자세히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지만, 아벨은 부끄러운 예배를 드렸다고, 우리는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저와 여러분에게도 어떤 때는 가인의 제사가 드려질 수 도 있고, 어떤 때는 아벨의 제사가 드려 질 수 도 있다는 거지요.
그 평가는 하나님이 하시는 거예요. 마치 여러분이 오늘 예배드리고, 교회 문을 나설 때, 하나님이 교회 문을 나서는 여러분 각자에게, 둘 중에 하나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는 오늘 가인이었다’. ‘너는 오늘 아벨이었다!’ 둘 중에 하나를 하나님이 말씀하시겠지요.
여러분 우리가 참 위험한 것이 있어요. 예배를 드리다 보면, 우리의 예배가 점점 가인의 예배가 되어 갈 수 있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아벨과 같은 마음이겠지만, 점점 조금씩 나의 예배가 어느 순간, 가인의 제사가 되어가고 있을 수 있다는 거예요.
특별히, 신앙생활이 오랜 된 분들일수록 나의 예배가 아벨에서 가인으로 넘어가고 있지는 않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너무 오래다 보니, 예배가 그저 드리는 습관이 되고, 형식이 되고, 주일마다 시간이 되어 드릴 수밖에 없는 ‘때움’이 된다면, 나는 가인의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가능성이 많아요.
저를 보았어요. 모태 신앙이예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교회 갔을 것이고, 예배드렸을 거예요. 가만히 보면 제 나이에 맞게 주일이면 50년이 훨씬 넘게 매번 예배를 드렸겠지요. 제 기억으로도 거의 주일 예배에 빼먹은 기억이 없었어요. 그러니 아마도 50년 넘게 매주 예배를 드렸을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50년 넘게 매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제 기억으로는 ‘아 지겨워~’ 라고 해 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아 또~~’ 라고 예배드린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저와 같이 오랜 시간 신앙생활을 하신분도 있을 거고요. 살면서 신앙생활을 듬성듬성 하신 분들도 있었을 것이고, 어떤 분들은 신앙 생활하신지 얼마 안 되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
여러분 정성을 다해서 예배드리는 것 쉽지 않아요. 우리는 늘 아벨과 가인의 경계선에, 서 있을 수 있어요. 그 정성이 습관이 될 때, 우리는 가인의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지요.
그래서 매주 마다 내가 드리는 예배에 나의 정성을 점검해야 하고, 그러한 습관과 형식에 빠지지 아니하기 위해서는, 늘 자신을 새롭게 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예배는 아벨에서, 가인으로 넘어갈 수 있어요.
그렇다면, 그러한 습관과 형식에 빠지지 아니하려면, 늘 주일마다 새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기도’입니다. 나의 예배가 습관과 형식에 빠져 아벨의 제사로 망쳐 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예배의 자리에 와서, 먼저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기도를 하실까요? ”하나님, 오늘 드리는 예배위에 오늘 부어주실 은혜를 주옵소서“. ”오늘 나에게 주실 새 은혜를 기대합니다“. 라고 하는 그 기도가, 나를 날마다 새롭게 할 수 있는, 시작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일날 교회 오면 10분이든, 20분이든 조용히 앉아서 기도하시라는 거예요. 일주일 만에 보기에 성도들 보면 반갑지요. 이야기도 하고 싶지요. 그런데 교회 온 목적은 하나님 만나로 온 것이니까 하나님께 먼저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기도함으로 나의 예배가 아벨의 예배에서 가인의 예배로 끝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나를 늘 새롭게 해야 하지요. 그래야 습관과 형식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 개척하고 지금까지 저는 매 예배 때 마다, 나름대로 준비하는 것이 있어요. ‘예배의 콘티’를 만드는 거예요. 한 시간 드리는 예배를 좀 더 정성스럽게 드리기 위한, 저의 작은 노력이지요.
여러분, 방송에 어떤 프로그램 하나가 나가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콘티가 있어요. 진행 계획표라고 할 수 있어요. 프로그램이 진행하기 위해서, 순서 순서마다 세부 사항까지 적어 놓은 것을, 콘티라 하지요.
저도 개척 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매주 예배 콘티를 작성해요. 주보에 순서가 있지만, 그것 말고, 저와 예배자가 함께 볼 수 있는 콘티를 따로 매주 작성을 합니다.
예를 들어, 이렇게 적어 놓지요. 찬송가 4절 마지막 절을 부를 때, 오늘 기도자가 앞으로 나온다! 기도자가 기도를 마치고, 기도자가 좌석에 들어갈 때 까지, 반주자는 반주를 한다! 또 설교자가 설교할 때, 히터의 소리를 줄이기 위해 히터를 잠시 끈다!
이런 세세한 콘티를 매주 작성을 해요. 늘 같은 예배에 빠져, 아벨의 제사가, 자칫 가인의 제사로 넘어가지 않기 위한, 저의 작은 노력이지요. 그래서 정말 예배가 습관으로 드려지지 아니하고, 실수하지 아니하고, 정말 늘 새롭게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하는 작은 정성이지요. 왜요? 혹 저로 인하여 우리의 예배가 ‘가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늘 마음속에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가인의 제사가 아닌 아벨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여러분 각자가 노력해야 하고, 매주 마다 노력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아벨에서 가인으로 넘어 가는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 꼭 명심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 두 번째 우리는 가인을 한 번 더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인이 마음에 없는 예배를 드리고 나서, 화가 났지요. 그 화를 추스르지 못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본인의 제사를 받지 않는 것에, 그 분노를 참지 못하고, 동생 아벨을 죽였어요. 최초의 살인이지요.
여러분, 이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예배드리고 나서도 사람도 죽일 수 있다는 거구요. 아무리 예배를 드려도, 예배 후에 살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거예요.
왜요? 아벨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 것이 아니라, 가인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예배를 드리면, 예배를 드린 후에도, 여전히 내 감정은 조절되지 아니하고, 럭비공처럼 여전히 내 안에서 튀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정성 드린 아벨의 제사가 올려 졌다면, 뭔가 조금이라도 내 안에 감동과 변화가 있겠지요. 그런데, 나를 위한 예배, 내가 생각하는 예배를 드린다면, 예배 후에도, 사람까지 죽일 수 있는, 극단적이 생각까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지금 알려 주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 가인을 생각할 때,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나와요. 오늘 본문에 보면 가인의 이마에 표이지요. 가인이 살인을 한 후에, 하나님께 이야기 하지요. ‘사람들이 저를 죽일 겁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사람들이 너를 죽이지 못하도록 너에게 표를 주겠다’ 말씀하세요.
여러분, 가인이 살인을 저지르고 하나님이 가인을 내 쳤는데, 왜 하나님은 가인에게 표를 주어, 사람들이 가인을 죽이 못하게 했을까요? 하나님이 뜻밖에 가인을 지켜 주는 장면이 나와요. 살인까지 저질러서, 죽어도 마땅할 자를 오히려 지켜주는 이상한 상황이지요.
여러분, 살인을 저지른 가인을 보호함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것은 가인의 생명은, 하나님만이 주관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은 아주 의미 있는 거구요. 아주 중요한 내용이 그 안에 담겨져 있어요. 사람들이 가인이 드린 예배와 그 예배 후에 있었던 모든 일들에 대해 평가하지 못하고, 그것으로 가인에게 함부로 대하여, 사람들이 죄 짓지 못하게 하신 거예요.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함부로 우리 스스로 예배를 평가하지 못한다는 의미예요. 예배를 받으시는 이는 오로지 하나님이시고, 그 예배가 잘 드려졌는지, 그리고 아닌지의 평가는 하나님만이 하시기에, 너희 스스로 그 예배를 평가하지 말라는 거에요.
하나님이 아벨에게 표를 준 것은, 그리고 사람들이 아벨을 보고 어떻게 하지 못하게 한 것은, 사람들이 아벨을 어떻게 할 권한이 없다는 거예요. 아벨과 그리고 그 아벨이 드렸던 제사는, 하나님 권한 안에 있다는 거예요. ”야! 아벨, 너가 예배드리고 사람 죽였다며?“ ”너 나쁜 놈이네!“
여러분, 우리는 얼마나 우리 스스로 예배를 평가할까요? 예배를 잘 드리기 위한 노력과 정성은 우리의 몫이라면, 그 예배의 평가자는 하나님 한분이시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는 것이지요.
우리는 얼마나 우리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 예배를 드리는 자에서, 예배 평가자가 되어 가는지요? 하나님께 정성 드려 예배를 올려드리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지만, 스스로 예배의 평가자가 되어, 예배가 어떻다든가? 스스로 그 예배에 잣대를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되어, 판단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임무는 정성 드려 올려드리는 것이고, 그 예배를 받으시고 평가하시고, 복과 저주를 내리시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이 이시다 라는 사실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내가 정성 드려 예배드리는 마음부터 살펴보지 아니하고, 예배가 어떻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거예요.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는 것! 꼭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예배를 드릴 수 있어요. 오늘도 나는 아벨이 되어 정말 내 마음까지도 살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정성껏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꼭 살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나의 예배는 ”아벨인지“, 그리고 ”가인인지“ 평가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정말 아벨이 되면, 우리의 삶은 분명 바뀌게 될 것임을 믿습니다. 그 마음으로 예배의 성공자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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