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햇볕같은이야기는 최용우가 1만편을 목표로 1995.8.12일부터 매일 한편씩 써오고 있는 1천자 길이의 칼럼입니다. 그동안 쓴 글이 15권의 단행본으로 만들어져 인터넷 교보문고에서 판매중입니다.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동의 없이 가져다 쓰셔도 됩니다. 책구입 클릭!

용서하는 사람이 되려면

2021년 성동 최용우............... 조회 수 104 추천 수 0 2021.07.02 08:15:12
.........

♣매일 아침 차 한잔 마시면서 전해드리는 햇볕같은이야기 그 6980번째 쪽지!


□35.용서하는 사람이 되려면


1.“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마6:14-15) 기독교는 ‘용서’의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이 기독교 교리의 핵심입니다. ‘용서’를 빼면 기독교가 아니죠.
2.어떤 제자가 물었습니다. “얼마나 용서해줘야 합니까?” 예수님은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라” 어떤 설교자는 또 그것을 70x7=490번이라고 친절하게 계산까지 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냥 무조건 다 용서하라는 말이지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이 반성을 한다거나 배상을 한다거나 어떤 조건을 따라서 용서하고 용서하지 않고가 아닙니다. 무조건 용서입니다.
3.아니, 내가 손해를 보았는데 어떻게 무조건 용서를 해요? 성경은 ‘자기를 부인(否認)하면’(마16:24, 눅9:23) 죄가 죄로 안 보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고 했습니다. 나는 못하지만 내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인 성령님이 우리를 용서하게 하십니다. 나에게 손해를 끼친 어떤 사람을 용서하면 그에 대한 훨씬 큰 보상이 다른 이들을 통해 옵니다.
4.한 성서연구 모임에서 ‘용서’라는 주제로 얘기를 나누었는데 어떤 분이 “나는 용서해야 할 일은 없고 용서 받아야 될 일만 많은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순간 싸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최용우


♥2021.7.2. 금땡이 날에 좋은해, 밝은달 아빠 드립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391 2019년 하동 기독교의 본질은 ‘구원’인가? [4] 최용우 2019-06-15 394
6390 2019년 하동 방탄소년단과 기독교 [1] 최용우 2019-06-14 659
6389 2019년 하동 골든 타임 file 최용우 2019-06-13 256
6388 2019년 하동 여호와 하나님은 방패 [1] 최용우 2019-06-12 275
6387 2019년 하동 여호와 하나님은 해 최용우 2019-06-11 368
6386 2019년 하동 공교한 일을 연구하여 최용우 2019-06-10 144
6385 2019년 하동 때를 기다리는 지혜 최용우 2019-06-08 293
6384 2019년 하동 인간답다는 것 최용우 2019-06-07 343
6383 2019년 하동 인간은 원래 선하다 [2] 최용우 2019-06-06 356
6382 2019년 하동 선이란 무엇인가? -애린 [1] 최용우 2019-06-05 241
6381 2019년 하동 선이란 무엇인가? -건덕 최용우 2019-06-03 223
6380 2019년 하동 선이란 무엇인가?-신신 [1] 최용우 2019-06-01 222
6379 2019년 하동 마누라님의 말씀 [1] 최용우 2019-05-30 242
6378 2019년 하동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최용우 2019-05-29 271
6377 2019년 하동 능력의 원동력은 경건 최용우 2019-05-28 228
6376 2019년 하동 무너진 경건생활 최용우 2019-05-27 250
6375 2019년 하동 인사를 잘하자 [3] 최용우 2019-05-25 330
6374 2019년 하동 생각은 실제여 최용우 2019-05-24 212
6373 2019년 하동 생각을 생각하고 [1] 최용우 2019-05-23 210
6372 2019년 하동 죄의 무게 [1] 최용우 2019-05-22 338
6371 2019년 하동 영혼의 무게 [1] 최용우 2019-05-21 393
6370 2019년 하동 고령화 사회 [1] 최용우 2019-05-20 183
6369 2019년 하동 도무지 [2] 최용우 2019-05-17 325
6368 2019년 하동 치매(癡?) [1] 최용우 2019-05-16 267
6367 2019년 하동 믿음의 디테일 [4] 최용우 2019-05-15 274
6366 2019년 하동 지식과 믿음 최용우 2019-05-14 278
6365 2019년 하동 고난 받는 특권 [1] 최용우 2019-05-13 176
6364 2019년 하동 죽음은 복이다 [4] 최용우 2019-05-11 285
6363 2019년 하동 개혁과 혁명 [2] 최용우 2019-05-10 212
6362 2019년 하동 팔의론(八醫論) 최용우 2019-05-09 203
6361 2019년 하동 간접적인 대화 [1] 최용우 2019-05-08 185
6360 2019년 하동 축복의 대화 [3] 최용우 2019-05-07 314
6359 2019년 하동 소수와의 대화 최용우 2019-05-04 138
6358 2019년 하동 간헐적인 대화 최용우 2019-05-03 190
6357 2019년 하동 직접적인 대화 [1] 최용우 2019-05-02 179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