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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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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말야 양심이 있어야지.
1966년 10월 31일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시청앞에서 열린 환영 대회장으로 향하는 존슨 대통령 일행을 촬영하던 카메라에 서울시의 무허가 판자촌 모습이 우연히 잡힌다.
1960년대 말-1970년대 초반에 서울시 주택의 30% 이상이 무허가 판자집이었다. 지독하게 가난하던 시절의 슬픈 풍경이자 우리 역샤의 한 단면이다.
아무튼 이 일로 정부는 난리가 나고, 그 결과 도심(청계천)의 무허가 판자촌을 무자비하게 헐고 그곳 주민들을 강제로 경기도 광주 중원(현재 성남 수정구, 중원구)에 마련한 시설에 수용한다.
그런데 광주에 급히 조성된 수용 시설은 청계천 판자촌보다 여건이 훨씬 열악했다. 강제 이주된 사람들은 살아갈 길이 막막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불만이 폭발해서 1971년 8월 10일에 광주대단지 사건이 일어난다. 당시 정부와 언론은 이들 기층 민중들의 생존권 투쟁을 폭동, 난동으로 규정하며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실상 이 사건은 해방 이후 최초의 주거권 내지 생존권 투쟁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 당시 경기도 광주의 행정구역 중 하나였던 영동(영등포 동쪽, 현재 서울 강남)에 대규모 개발이 시작된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또다시 반복된다.
정부는 올림픽 성화가 지나가는 길목에 자리한 판자촌, 달동네, 재개발 지역을 싸그리 철거하기로 결정하고 단숨에 이를 시행한다. 성화 봉송을 중계하는 방송 카메라에 서울의 그런 모습이 잡히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엄청난 수의 소위 달동네와 판자촌, 허름한 주택들이 철거 깡패와 용역들이 휘두르는 쇠파이프와 곤봉에 의해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강제로 쫓겨나 경기 외곽(부천 등)으로 이주한다. 그리고도 몸뚱아리를 피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산으로 도망쳐 땅을 파고 비닐을 덮은 채 생활한다.
이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강제로 쫓겨난 자리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초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물론 그 이익의 상당수는 정권과 이런저런 식으로 연결된 투기꾼들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그것이 바로 서울의 그늘진 역사다.
나는 서울의 초고층 아파트들을 볼 때마다 구약성경 창세기 4장의 한 사건이 떠오르곤 한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심다.
"네 동생 아벨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느니라."
오늘 한 채에 수십억씩 하는 아파트에 살면서, 스스로 행복하다고 믿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그 아파트가 선 자리에서 강제로 쫒겨났던 수많은 사람들의 절규를 듣고 있는가?
물론 불가능한 이야기다.
우리에게 그런 귀가 있었다면 현재 한국은 아파트에 목숨을 걸고 인생을 거는 사회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유력한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윤석열 씨가 문재인 정부를 가리켜 '약탈 정권'이라 규정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두 가지가 궁금했다.
첫째, 윤석열 씨는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권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던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에 대해서는 뭐라 말했었을까?
나의 검색 능력이 부족하여 그런지 몰라도 최소한 내 수준에서는 그가 이전의 독재자들을 향해 그렇게 대놓고 비난했다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둘째, 과연 윤석열 씨는 문재인 정부에게 무엇을, 얼마나 빼앗겼길래 이 정권을 향해 '약탈'이란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그는 검찰총장 자리를 빼앗긴 것이 그리도 분하고 억울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스스로 검찰총장 자리를 내던졌으며,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에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아니던가?
전임 검찰총장보다 무려 5기수나 낮으면서도 앞의 4기수에 해당하는 선배들을 제치고 검찰총장이 된 그야말로, 이 정권에서 가장 많은 특혜를 누린 사람이 아니던가?
그가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에 재직하는 동안 그의 부인이 운영하는 사업채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협찬이 몰렸다니 이 또한 그가 얻어누린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무엇보다 서울 강남의 초고가 아파트에 사는 그야말로 이 정권 하에서 빚어진 부동산 폭등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가 아니던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우둔한 머리로는 그가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더 많은데도, 그런 그의 입에서 약탈이란 말이 거침없이 나오는 것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나는 우리사회의 20-30대가 가령 문재인 정부를 향해 '독재' 운운하는 것은, 그들이 진짜 독재가 무엇인지를 겪어본 일이 없어서 벌어지는 촌극으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편이다.
하지만 윤석열 씨처럼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살아봤던 사람들이 현 정부를 가리켜 독재가 어쩌구 약탈이 어쩌구 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더욱이 박정희와 전두환이 손에 피를 잔뜩 묻히고 칼춤을 추던 시절에 그 밑에서 호가호의 하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현 정부를 향해 독재 운운하는 것은 너무 볼썽사나와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사람이 말야 양심이 있어야지.
김요한 (도서출판 새물결플러스 &새물결아카데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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