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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61 추천 수 0 2021.07.27 18: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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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0:21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021: 이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인간이 살아갈 때 육신의 소원, 세상에 대한 소원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영의 소원도 있다. 육의 소원은 인간 편에서 세상 사는 삶이 윤택해지는 것이고, 영의 소원은 하나님의 우리에 향하신 뜻인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인간이 온전하게 되어가는 그 면의 소원이다. 그래서 우리 기독자들이 어느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그게 있는 거다. 육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육이 기뻐하고, 영의 소원이 이뤄지면 영이 기뻐하고. 그래서 성령으로 기뻐하는 게 있고, 육으로 세상으로 기뻐하는 것이 있다. 그러면 어느 것이 예수 믿는 참 기쁨이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그랬는데, 그 앞에 70인의 제자들이 나가서 무슨 일을 했기에 주님이 이렇게 성령으로 기뻐하느냐? 왜 신의 영감의 감화로 기뻐하느냐? 제자들이 둘씩 나가서 뭘 했느냐? 예배당을 지은 게 아니라 사람을 온전케 했다. 병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한 것은 하나님 앞에 사람을 온전케 한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일반인들이 보는 온전케 된다는 의미는 병 낫고 하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영적인 뜻이 그 안에 들어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온전케 되는 것이다. 이걸 예수님이 성령으로 기뻐하셨다.

 

그러면 오늘날 자기는 예수 믿는 먼에서 어떻게 해야 주님이 기뻐하겠느냐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주일도 빼먹으면서 제 마음대로 믿는 게 어떻게 예수 믿는 거냐? 예수 믿으면서 뭘 바라는 거냐? 이러면 사람이 바로 되겠느냐? 일반적인 삶도 바로 살겠느냐?

 

이방 세상 사람들은 세상 사는 조건이 잘 풀리면 대단히 기뻐한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세상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기뻐한다는 것은 자타에게 하나님의 온전한 역사가,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이룰구원이 잘 되어나가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을 말한다. 주님은 이것을 기뻐하는 것이고, 이 기쁨은 성령으로 기뻐하는 것이고, 우리 역시 그런 것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성령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성령의 감화 감동, 성령의 정신, 성령의 마음이 아니면 어떻게 기뻐할 거냐? 마귀마음을 가지고 기뻐할 거냐?

 

그런데 교회 안에서 보면 마귀로 기뻐하는 자가 참 많다. 이건 뭘 몰라서 그런 거다. 이러면 남 잘 되는 꼴을 못 보는 거고, 선행을 하는 거 의행을 하는 꼴을 못 보는 거다. 예를 들어서 자기는 안 해 놓고서 남이 한 걸 보고서 내가 하면 더 잘할 수 있다하는 것. 이게 무슨 말이냐?

 

예수님의 기쁨은 어느 것이냐? 예수님은 무엇으로 기뻐했느냐? 성령으로. 그러면 우리교회의 기쁨은 무엇으로 기뻐해야 하느냐? 성령. 그러면 오늘날 자기가 기뻐하는 것은 무엇이냐? 교회들이 예수님의 기쁨과 다르다면 이는 사단 마귀의 기쁨이다.

 

대제사장과 율법사와 서기관 유대인들, 그리고 헤롯과 빌라도와 로마군인들, 그리고 온 백성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걸 기뻐했다. 또 예수님을 죽여 놓고 원수 되었던 헤롯과 빌라도가 술을 부어놓고 기쁨의 잔을 나눴다. 이는 사단 마귀의 기쁨이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잘 되어나가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 남이 잘 돼 나갈 때에 그 사람을 쳐다보며 나만큼 되면 안 되지하면서 남을 끌어다 뭉개버리는 소리를 하면 안 된다. 그건 마귀의 시험이다. 그런 경우는 교만하기 때문에 은혜를 못 받고, 자기가 떨어질 폼을 잡는 거다.

 

남이 좋은 건 영이던 육이던 칭찬을 해야 한다. 깎아내리면 악한 짓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악한 것은 신앙의 길로 들어가는 사람을 뒤로 끄집어 당겨서 앞으로 못 가게하고 빈정대는 것이다. 남을 잘 꼬집는 이런 사람은 자꾸 나쁜 친구를 만든다. 우리는 남이 덕이 안 되는 말을 하면 듣지를 말고 그 말을 중단시켜라.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은 후에 슬퍼했다. 물론 예수님의 부활할 때는 기뻐하겠지만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 자체는 슬픈 것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땅에 묻혀진 것은, 땅에 떨어진 것은 반대적으로 보면 종교세력이 왕성한 것이다. 종교세력이 왕성하면 진리는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교권을 가지고 진리를 죽인다.

 

우리는 교회들이 연합 단합하는 게 뭘 의미하는 건지를 영의 눈으로 잘 봐야 한다. 육적 세상적 왕성을 목표로 나가면 진리를 찾기가 어려워진다. 그런데 보통은 육적인 왕성을 성령의 불이 붙은 것으로 생각을 한다.

 

물론 하나님의 본질이라면 자꾸 커져야 한다. 옳게 커지는 이건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다. 그런데 잘못되게 세상적으로 인본주의로 커지는 것은 안 된다. 이거는 심판이 들어가고, 교회적으로 그렇게 커지면 시험이 들어간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까지 그게 쪼개지거나 바로 서는 것이 없다면 그곳은 귀신집이 된다.

 

보통 보면 큰 교회라는 것을 건물 크고 사람 많이 모인 것을 말한다. 그러나 큰 교회와, 하나님 앞에 큰 사람과는 다르다. 사람이 내적으로 예수님의 형상을 따라 커야 하는데 그건 없이 사람만 많다고 해서 큰 교회가 아니다. 그런데 각 교회에서 교인들이 뭘 크다고 하는지를 보면 대부분 규모적으로 크고 사람 많고 하는 걸 주로 말을 한다. 우리 기독자들은 그런 걸 가지고 자랑을 하면 안 된다.

 

슬퍼하던 이들과 같이 마음을 함께 하지 않은 자들은 예수님을 따르지 아니한 자들이다. 우리 입장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예수님을 따른다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이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을 슬퍼해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어느 쪽 슬픔과 기쁨을 가지고 있는지 자기를 잘 심사하라. 몸이 아픈 것을 슬퍼하는 건지? 몸이 아픈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니, 깨달음을 받으니 그게 더 기쁜 건지? 그렇게 돼야 생기가 나고, 하나님의 역사는 영을 위해 육적으로도 들어가는 거다.

 

타향살이를 하다가 고향에 가면 무척 피곤하다. 육신은 피곤한데 마음속으로는 고향이 가까워지면서 더 기쁘고 즐겁고 더 힘이 난다. ‘빨리 가서 가족을 만나야지하며 만남을 상상을 하며 혼자서 기쁘다. 그 기쁨이 나그네 길을 가게 한다.

 

자기는 어떤 기쁨을 가지고 있느냐? 우리 궁극교회 교인들은 몸이 아플수록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깨달음을 더 생각을 하라. 그리고 감사제목을 발견하라. 감사를 발견할 줄 모르고 현실불만으로 되면 자기는 못 올라온다.

 

:의 말씀이 안 보이느냐? 원수들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을 간다. 그러면 우리의 원수는 뭐냐? 비진리 인본주의 육적인 여러 가지다. 그들이 뭘 둘러쓰고 와도 내 쪽에서 이건 이렇고 이건 이렇고해 들어가면 그들은 다 도망을 간다. ‘일곱이란 완전히 다 들통 나고 도망을 간다는 뜻이다. 진리본질 앞에서 거짓된 자기가 탄로가 난 것이다. 악한 것이 탄로가 났고 거짓된 것이 탄로가 난다. ‘다 죽여 버렸다그게 아니라 탄로가 났다 그 말이다. 실력이 약한 것, 못 깨달은 것, 거짓된 것, 악한 것, 냄새나는 것, 변질된 것이 다 탄로가 나버렸다.

 

그런데 이것 것들이 오히려 자기를 정복을 해버리면 자기는 어떻게 되겠느냐? 악한 정신, 거짓된 정신, 불타고 비뚤어지고 왜곡되고 한 게 들어있으면 그 사람이 어떻게 되겠느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은 그걸 다 정복을 한다.

 

각 교회 인도자들은 남이 하는 것을 따라서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진짜 하나님 앞에서 좋은 것에는 이 들어간다. ‘에도 많은 특이 있고, 맛을 내는 특이 있다. 일인자 되는 특이 있고, 머리가 되는 특이 있다. 그래서 우리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은 다른 교회에 다니는 것처럼 다닐 바에야 아예 그런 교회로 가라.

 

자기 어깨 위에는 교회가 달려있고, 목사가 달려 있고, 더 올라가서 주님의 얼굴이 달려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묵사발을 시켜도 내가 주님의 얼굴에 더러운 칠을 하면 안 된다. 그건 네 얼굴에 똥칠을 하는 거다. 우리교회의 정신을 일반처럼 생각을 하지 말아라. 일반교회에 다니는 것처럼 생각을 하지 말아라. 다른 교회에서는 실력이 있던 없던 모아서 제각끔 자기 장기자랑을 하며 휩쓸려 가는 거지만 우리는 성경대로 앞서고 뒤서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는 게 있는 거다.

 

그리고 자기의 마음바탕이 얼마나 거룩하고 깨끗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신이, 성령님이 내 몸 안에서 역사를 한다. 내 몸 밖의 역사는 자기가 몰라도 된다. 그건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알아서 조성시키고 이룰구원 면에서 덕이 되도록 역사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땅 밑에도 계시고, 땅 위에도 계시고, 물속에도 계시고, 하늘에도 계시고, 안 계시는 곳 없다하는 말은 그런 모든 것을 들어서 너의 이룰구원의 차원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기가 비뚤어지게 나가면 세상의 별스런 것이 다 와서, 하다못해 모든 만물까지 자기에게 고통이 된다. 그런 것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은혜인데 비뚤어진 자기에게는 그게 고통이 되는 거다.

 

과거에 잘못 믿어서 잘못된 그게 자기 속에 깔려 있다면 그런 습성과 관습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옳은 진리를 받는다고 해도 그것을 갉고 닦고 내보내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 그냥 듣기만 하고 가만히 있다면 이건 큰일 났구나.

 

예수님은 어느 때 기뻐했느냐? 70인의 전도자들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보고하는 내용을 들은 후이다. 실은 예수님은 안 들어도 다 안다. 실은 이미 성령으로 알고 계셨다.

 

지금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가 사람 속에 바로 들어가서 그 정신으로 박혀 자라나고 있다면, 정신이 그렇게 들어가고 소원이 그렇게 들어가고 있다면 이 사람은 귀신이 나간 사람이요 잘못된 사고방식이 나간 사람이다. 세상 소원 목적이 나간 사람이다. 마귀가 들어가서 장난을 할 수 있는 요소가 없는 자이다. 이렇게 되면 성령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종교를 믿으면 사람이 그렇게 되겠느냐? 없다. 아무 교회에나 나가면 그렇게 되겠느냐? 없는 거다. 그러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성경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 정신이 나갔느냐? 안 나갔다. ‘너희들은 평토장한 무덤 같도다.’ 겉은 멀쩡한데 속에는 썩은 시체다.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의 입장에서 소원 목적이나 정신이, 모든 이해타산 평가 면에서 바로 서 있다면 그게 보이는 거다. 그래서 기뻐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는 거다. 이게 바른 것이다. 자기가 자기를 그렇게 볼 줄 알아야 한다.

 

첫째는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보통 이런 게 보이면 물릴까 싶어서 도망을 간다. 뱀을 보면 도망을 간다. 왜 도망을 가느냐? ‘뱀과 전갈을 밟으며했으니까 밟아야지, 뱀이 도망을 가도록 해야지 왜 제가 도망을 가느냐? 성경 글자대로 보면 뱀과 전갈을 밟으며했으니 이건 대단한 실력이다. 뱀이 마귀는 아니다. 뱀이 마귀라면 뱀탕을 끓어먹는 사람은 실력이 대단한 거냐? ? 마귀를 삶아 먹으니까.

 

뱀은 독이 이빨에 있다. 거짓 종들이나 이단자들의 독은 입에 있다. 그러니까 뱀과 전갈을 밟는다는 것은 그들의 교훈을 무시할 정도의 실력이 있다는 것이다. 모르면서 무시한다가 아니라 실력적으로 밟고 들어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뱀은 앞으로 이빨로 물고 전갈은 뒤로 가서 쏘고. 이게 거짓 종들의 수단 방법이요 마귀의 수단 방법이다. 처음에는 좋아하고 헤헤하고 사람을 홀딱 해도 뒤에 가서는 꽉 문다. 사기꾼들이 그런 거고, 거짓 종들이 그런 거다. 보통은 좋은 약은 입에 쓰다. 그러나 당장은 안 타나나도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약효가 나타난다.

 

뱀과 전갈을 밟으며.’ 누가 밟느냐? 성도, 사람이 밟는다. 밟는다는 의미는 항복 굴복을 시킨다는 의미이다. 정복을 해 버린다. 즉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실력도 없이 욕지거리나 하고 윽박지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궁극교회 교인들에게 여호와의 증인들이 달라붙었다면 그냥 가라고 문 탁 닫고 들어가면 그들을 이긴 것이냐? 아니면 자기들이 나와 같이 있으면 실력적으로 불리하니까 도망을 가도록 하는 게 좋은 거냐?

 

실력이 없으면 못 싸운다. 실력이 없이 싸우게 되면 불리해지고, 그러면 그들이 성경을 갖다 대고 말을 하면 말대답하기가 어려우니까 귀찮으니 가세요하고 보내게 되면 이상한 사람들이 또 찾아온다. 그러나 실력적으로 이겨버리면 그 사람이 다시 또 오겠느냐?

 

뱀과 전갈을 밟으며하는 것은 실력적 의미이다. 우리가 신앙 사상적으로 소원 목적적으로 세상을 소원 목적을 하고 있으면 뱀과 전갈을 못 밟는다. 뱀과 전갈이란 거짓된 이단자들이나 비진리적인 사람들 즉, 사람을 해롭게 하는 자들을 말을 하는 거다. 그런데 자기의 소원 목적이 세상 것으로 가지고 있다면 뱀과 전갈 같은 사람들의 소원 목적도 땅의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그들을 밟을 수가 없는 거다. 레벨이 같으니까 밟을 수가 없다.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 어떤 능력까지? 사람을 못 쓰게 만드는 능력도 능력이다. 사람을 유혹하고 미혹하는 것도 능력이다. 그러나 참 능력은 아니다. 사람을 해치고자 하는 것은 전부가 거짓된 능력이다. 이런 것을 다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책망할 때는 책망하고, 교육할 때는 교육하고, 깨닫게 할 때는 이치적으로 바로 깨닫게 하는 거다.

 

이 권세는 하나의 인간권세가 아니라 그 인간을 잡고 쓰시는 하나님의 권세다. 하나님의 권세는 공의가 바로 들어간 권세다. 공의를 무시하면 자기가 해를 당한다. 그래서 인간 쪽에서 상대방을 헐뜯고 뭉개고 하는 건 못 쓴다. 그런데 옳은 이치로 바로 들어갔을 때 그걸 무시하면 자기가 해를 당한다. 왜냐? 이런 사람은 자기의 잘못된 사고방식이 일상생활을 하는 면에서도 비뚤어져 있기 때문에 일반적인 면에서도 해를 당하게 되고, 사람이 바로 못 돼 놓으니 이중삼중으로 손해가 막 들어간다.

 

예를 들면 집이 한 채 다 타버렸다면 그 집만 날아간 것이냐? 그 집을 지은 그 사람의 시간 노력 물질투자 그 사람의 정력이 다 날아간 것이다. 그걸 어디서 찾겠느냐? 가슴을 칠 노릇이고 한탄을 할 노릇이다. 찾을 길이 없다. 우리는 그렇게 예수를 믿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 자꾸 깨달음에서 보태져 나가고, 활동 면에서 말씀대로 적용이 돼 나갈 수 있도록 해야지 일반적으로 복이나 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갈수록 사람이 망한다.

 

제어할 권세를 주었다. 너희들을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니라.’ 해할 자가 없다? 그러면 제 마음대로 해도 해할 자가 없는 것이냐? ‘마음대로란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로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신령천국에서는 그 세계에 있는 자기를 제재할 자가 있느냐? 하나님이 제재를 하느냐? 없다. 마음대로다. 우리의 소원풀이 한풀이는 신령천국에서 천년왕국에서이다. 네 마음대로 해 먹어라. 그런데 실력이 있어야 왕 노릇을 해 먹는다. 그러면 이 땅에서도 비슷한 맛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본문을 말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마음대로라고 할 때 부정적으로도 해석을 해 보고, 긍정적으로도 해석을 해 봐라. 도둑놈이 속에 든 대로 제 마음대로 하면 어떻게 되겠느냐? 남을 해치고 사기 치고 거짓말 하고 못되게 굴고 남의 재산을 털어가고 한다. 마음대로라면 어떻게 되느냐? 비록 타락된 세상의 법이지만 이런 사람은 잡아간다.

 

그런데 진리의 사람의 마음대로라면 이 사람의 마음대로는 뭘 하겠느냐? 아무 것도 안 하면서 길을 마음대로 간다는 말이냐? 이런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그 마음대로에는 무슨 일을 하겠느냐? 사람의 차원을 깨닫게 하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만드는 이 일을 하게 된다. 이 일을 터치할 그 무엇도 없다. 왜냐하면 그 일은 하나님의 일이요, 성령님이 거기서 역사를 하게 때문에 그렇다. 이건 하나님의 역사다.

 

인간이 이 일을 한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그 일에 수종자요 심부름이다. 이건 멋있는 마음대로. 쉽게 말하면 이게 참 자유다. 참 자유를 가진 사람은 이런 일을 하게 돼 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죄에서 풀어내는 교육이 들어간다.

 

이 일을 하는 사람은 인격과 성품적으로도 이건 내가 한다가 아니라 예수님이 하시는 거다. 이 사람이 말을 하면 역사는 그 말의 이치를 통해서 상대 속에서 성령님께서 하시는 거다. 나는 심부름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 말주변이 좋으니 사람을 감동을 시키겠다? 그런 수법은 때려 치워라. 그건 못 쓰는 거다. 그러려고 웅변을 배운다? 성령님은 그 웅변을 통해서 역사하는 게 아니다.

 

자기가 세상 것을 뭘 배워놓으면 주님이 가만 보고 있다가 , 이거 쓰기 좋겠다하며 쓰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런 게 아니다. 당신의 역사는 당신이 사람을 보고 알아서 하시는 거다. 그릇 안을 깨끗이 해 놓으면 주인이 좋은 것을 담는다. 금그릇에는 귀한 것을 담는다.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뱀과 전갈을 밟고 모든 능력을 제거할 권세도 준다.’ 세상에 이렇게 될 존재가 누구냐? 바로 자기다. 자기에게 한 말이다. 제자들의 실력을 가질 수 있는 바로 자기에게 한 말이다. 그러니 세상 그 무엇이 부러울 게 있느냐?

 

세상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세상에는 사람이 만들어지는 공부는 없다. 사람이 만들어지는 일은 신의 역사다. 우리는 이 신의 역사에 수종을 들 수 있는 실력을 닦을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아무리 타락이 돼도 이런 사람을 원하고 있다. 아무리 마지막의 심판이 온다고 해도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부르고, 이런 사람을 찾으신다. 그게 옳은 교회다.

 

성경에 보면 여자 중에 세례요한을 나은 자보다 큰 자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세례요한을 낳은 자가 누구냐? 세례요한을 그의 어머니가 나았다. 그러면 세례요한이 몸이 컸다는 말이냐? 키가 컸다는 말이냐? 머리가 컸다는 말이냐? 다리가 컸다는 말이냐? 발이 컸다는 말이냐? 뭐가 크다는 말이냐?

 

거기에서 뭘 말하고자 하는가 하니 사람이지만 그 여자와 같은 즉, 여자란 교회를 말하는 건데, 교회는 예수님의 신부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세례요한과 같은 인물을 배출했다면 그같이 큰 교회는 없는 거다. 비록 세상은 안 알아주지만, 교계에서도 안 알아주지만 그걸 보는 목사의 심정도 알아줘라. ‘나를 알아달라가 아니라 그게 주님의 심정이다.

 

그 다음에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항복했다. 눈에 안 보이는 귀신들이 항목을 했다. 사람이 항복이 아니라 귀신들이 항복이다. 그러면 귀신들이 사람을 보고 항복한 것이냐? 우리가 예쁘게 생긴 사람에게 항복을 하느냐, 눈이 부리부리하고 얼굴에 흉이 있는 사람에게 항복을 하느냐? 제자들이 뭘 가졌기에 귀신들이 항복을 했느냐? 누구 이름에 항복을 한 거냐? 주의 이름으로 항복을 한 것이다.

 

그러면 주의 이름으로예수이름으로 물러가라그 말이냐? ‘주의 이름이란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해도 그의 성품이나 그 사람의 인격 면에서 주님의 성질과 속성이 나간다는 것이다. 이게 주의 이름이다. 거짓된 종들이 속성이 주님의 이름으로 안 만들어진 채로 병자를 세워놓고 예수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다고 하며 몽둥이질을 하고 하는 건 살인미수다.

 

주의 이름으로.’ 먼저 자기가 주의 속성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자기의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태도나 물질을 쓰는 면에서 바르다면 나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하면 자기의 말이나 행동을 생각을 하면서 , 그렇습니까?’ 하게 되지만 욕이나 하고 욕심이나 부리고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건 다 하고서 나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우리교회에 나오십시오하면 너나 믿어라하게 된다. 그게 주의 이름으로 하는 거냐? 내적인 실속이 없는 주의 이름으로이걸 어디다 쓰겠느냐?

 

주의 이름으로.’ 그러니까 타 종교의 이름으로 귀신이 항복한 것이 아니다. 그런 경우는 귀신이 더 잘 달라붙는다. ‘주의 이름으로주의 이름에 손색이 없는 사람으로이다.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예수 믿는 것이 자기 얼굴에 주의 이름이라는 것이 붙어있는 것이다. 그러니 믿는 사람이 주의 이름에, 얼굴에 먹칠이 안 되도록 하기 위해서 모든 면에서, 언행심사에서 하나님 앞에 조심을 해야 한다. 자기를 늘 살피고 행여나 내 말 때문에 저 사람이 믿을 것인데 못 믿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한다. 숫제 말을 안 했으면 좋을 건데 말을 해서 예수님의 얼굴에 더러운 칠이 되도록 하는 면을 생각해야 한다.

 

주님과 동행을 한다는 말이 길을 갈 때 주님의 손을 잡는다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마음을 잘 다스리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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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45 야고보서 고난속에 믿음의 꽃을 피우자 약1;1-4  전원준목사  2021-07-31 390
» 누가복음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눅10:21  김경형목사  2021-07-27 161
17143 골로새서 신앙의 MVP 골4;9-18  전원준목사  2021-07-24 387
17142 에배소서 간절한 기도 엡3:14-21  강승호목사  2021-07-21 413
17141 누가복음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눅10:20  김경형목사  2021-07-20 401
17140 요한복음 나는 영생을 믿습니다! 요3:14-21  정용섭 목사  2021-07-18 277
17139 출애굽기 십계명 “너머” 출20:1-17  정용섭 목사  2021-07-18 251
17138 로마서 아브라함의 믿음, 우리의 믿음 롬4:13-25  정용섭 목사  2021-07-18 333
17137 마가복음 예수와 복음 막1:9-15  정용섭 목사  2021-07-18 222
17136 시편 하나님의 빛, 하나님의 공의 시50:1-6  정용섭 목사  2021-07-18 141
17135 마가복음 예수의 축귀 능력 막1:29~39  정용섭 목사  2021-07-18 109
17134 신명기 선지자의 운명 신18:15-20  정용섭 목사  2021-07-18 119
17133 고린도전 세상의 외형 고전7:29-31  정용섭 목사  2021-07-18 169
17132 골로새서 행운의 사역자 두기고 골4;7-8  전원준목사  2021-07-17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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