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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71 추천 수 0 2021.08.31 18: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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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0:27-32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027-32: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사람이 무엇이든 사용하려면 그것을 아는 지식부터 바로 돼야지 무엇이든지 다루게 된다. 아무 것도 모른다면 무엇을 사용할 수 있을까? 그런 것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바로 알지 못한 채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에는 서로 통하지를 않아서 고통이 오게 된다. 모든 사랑이 편견이 되고 만다. 편견 된 인간사랑은 교회에서 성도를 섬길 줄 모르게 된다. 그리고 사랑이 없는 기도는 실천이 없다.

 

28: 율법사의 대답 자체는 옳았다. 왜냐하면 율법을 그대로 외워서 말을 했으니까. 그러면 성경구절을 외우면 믿음이 큰 것인가? 당시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모두 성경구절을 외우면서 예수님을 죽였다. 이 율법사도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성경구절을 외우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성경구절로 자기의 신앙을 위장하고 있는 식이다.

 

우리도 이런 율법사의 마음을 아는데 예수님께서 왜 이 율법사의 마음을 모르실까? 예수님은 그의 마음과 정신을 훤히 꿰뚫어 보신다. 알고 계시면서 이를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하셨는데, 예수님을 모르고서도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일이더냐? 예수님을 떠나서는 실천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29: 율법사가 이 말을 한 것은 내가 예수님 앞에 잘 보여서 칭찬을 받아야지. 예수를 나와 비교를 시켜서 내가 예수보다 훨씬 위인 것을 예수로 알게 해야지. 대답을 못하게 만들어야지. 깜짝 놀라게 만들어야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율법사의 그 마음을 모르실까?

 

30-32: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그 당시에 누구를 말할까?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고했는데 어떤 사람이란 누구든지 다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다. 사실은 예수님 앞에서 이 얘기를 듣는 율법사도 포함이 된다. 예수님은 율법사를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하니까 이 율법사는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났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면 저주요 강도를 만나게 되어 있는 길이다. ‘예루살렘이란 평화의 터라는 뜻이 들어있는 성이다. ‘여리고향기로운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평화의 터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평화 되어 있는 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의 향기로운 냄새를 맡고 여리고로 내려가는 모양새다. 그러나 여리고에서 아무리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고 해도 여리고로 내려가는 그 정신 사상은 저주받은 사상이다. 여리고는 구약 때 보면 저주받은 도시요, 무너진 도시요, 이 여리고 성을 건설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된다고 하나님께서 경고를 한 일이 있다. 그런데 저주받는다고 했는데도 누가 여리고를 건설하다가 저주를 받았느냐? 히엘이다.

 

제사장과 레위인이라면 하나님과 평화 하는 사상에서 살아야 할 텐데 왜 이처럼 저주받은 여리고 사상으로 내려가는 것일까? 이들은 성전 안에서 하나님의 제사에 수종 드는 사람이요, 지금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종들인데 이런 자들이 여리고로 내려간다는 게 아무리 봐도 좋게 안 보인다. 왜 저주받을 곳으로 내려가느냐?

 

여리고, ‘향내가 나는 고을할 때는 이걸 영의 눈을 가지고 신앙 정신 사상으로 보면 자기가 즐거이 가는 곳이 바로 자기 코에 향내가 나는 곳이다. 사람은 향내가 나는 곳으로 자꾸 따라간다. 하나님과 평화할 수 있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그 권 밖으로 나가서 자기가 좋아하는 향기가 나는 곳으로 따라간다. 쉽게 말하면 그 정신 사상은 세상으로 나간다. 하나님을 섬기는 정신 사상은 세상으로 내려간다. 이건 여리고로 가는 거다. 그러니까 이건 영의 눈으로 보면 좋게 안 보이고 저주의 길로 내려가는 것이다.

 

이것은 영적 신앙사상으로 보면 필연적으로 강도와 한 통속이다. 여리고로 내려가는 거기에는 강도를 만나게 돼 있다. 그런데도 왜 내려가느냐? 그 길로 가는 것은 강도와 한 통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은 이룰구원 면에서 강도를 만나게 돼 있다. 이치가 그렇다.

 

내려간다는 것은 세상과 세상의 것을 소원 목적하여 사는 것을 말한다. 세상을 소원 목적하여 갈 때는 그것이 아무리 세상에서 최고 최상의 것을 향해 가는 것이라고 해도 세상을 향해 올라간다’”고 하는 게 아니다. 신앙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갈 때 하늘로 올라간다고 하는 거지 세상을 따라 가는 걸 세상으로 올라간다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굳이 올라간다고 표현을 한다면 세상에서 왕이 되려고 올라가는 것이다. 내려간다고 하는 것은 세상을 소원 목적하여 가는 것을 말한다.

 

강도는 무엇을 하는 자인가? 사람에게서 돈이나 물건을 뺏으려고 사람을 상해한다. 그러니까 강도에게 피해를 안 당하려면 몸에 귀중품을 지니지 말아야 하겠고, 강도가 나타날 수 있는 길은 피해야 한다. 말하자면 강도에게 기회제공을 하면 안 된다. 자기 몸에 귀중품을 갖게 되면 강도에게 기회제공을 하는 것이다. 신앙 사상적으로 강도를 만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진리통치권을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비진리적인 세상적인 가르침을 받으면 여기에는 반드시 거짓 종과 이단자 즉, 영적 면에서 보는 강도를 만나게 된다. 강도의 소굴로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도 잘못된 교회에 들어가면 그런 교회에서 수십 년을 믿어도 깨달음은 없다. 그러면 이게 뭐냐? 이룰구원의 정신에서 강도를 만난 것이다. 그런 목사는 늘 말하기를 세상에서 부자로 살려면 예수를 잘 믿으라고 한다. 그러나 이건 성경에서 보면 마귀의 말이다. 그러니까 마귀의 종은 충성봉사 잘 하라라고 하고, ‘전도 잘하고, 십일조 잘 내고, 성경 많이 보고, 기도 많이 하라는 이것 빼고는 없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하는데 속에 깨달아진 게 없다면 너의 시간성, 너의 투자성, 너의 젊음성, 너의 활동성 전부는 도적맞은 것이다. 도적맞은 증거가 뭐냐? 네 속이 텅텅 비었다. 네 것은 없다. 예수를 믿으면 예수의 것으로 자기 속에 가득 들어 있어야 되겠는데, 하나님의 집에서 부요자로 나와야 되겠는데 예수 믿으면서 그게 없으니 그건 도적맞은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성경을 통해 영의 눈이 밝아서 도적맞는 사람이 안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 왜 거짓 종들에게 도적을 맞느냐? 성경에 보면 거짓 종들은 밝히 드러나게 되어 있는데 어떻게 예수를 믿기에 도적을 맞으면서 믿느냐? 이건 헛 믿는 것이다. 그러니 맨날 밥 먹고 사는 게 헛 밥 먹는 거다. 헛 사는 거다. 헛 예수 믿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예수 믿는 게 자기의 본업이다.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사는 건 부업이다. 왜 그러냐? 창조의 목적이 그렇다. 너에게는 하나님의 이 창조의 목적이 안 들었느냐? 왜 거꾸로 가느냐? 영의 눈이 밝아야 영적 강도가 보이는 것이지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는 영적 강도가 보이지를 않는다. 이렇게 되면 여리고로 내려가서 건설하는 것이 세상축복처럼 보이는 거다.

 

모래 위에 집을 지을 수 있느냐? 그런 곳에 허가를 내주느냐? 이치를 말하는 거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그 반석 위에서 네 집이 세워지는 거다. 모래 위에 세워지면 헛 거다. 노력투자 시간투자 물질투자 일생을 투자한 게 다 헛 거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강도들이 왜 옷을 벗기고 때렸을까? 돈이나 금목걸이나 금팔지 등을 빼앗으면 될 텐데 옷을 벗기고 때렸는가? 그의 옷이 밍크오바처럼 값이 나가는 것이라서 옷만 벗겨서 가져간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이 돈이 없으니까 옷을 벗기고 때린 것인지?

 

여기에는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 하나님의 은밀계시의 뜻이 들어있다. ‘이라고 할 때 신앙사상 면에서의 옷은 곧, 그 사람의 보호, 또는 유지되는 모든 물질성을 말한다. 물질이 많으면 그게 그 사람의 옷이라. 지식이 많으면 그게 그 사람의 옷이라. 그러니까 세상에서는 그런 옷들이 있으면 자기가 부끄럽지를 않다. 그래서 지식이 없으면 부끄럽다. 그건 옷을 벗은 것과 같다.

 

그런데 우리교회에 나오면서도 저 사람이 분명히 옷을 벗었는데 자기 딴에는 안 벗은 거다. 옷을 입었다면 옷을 입은 꼴이 그 모양이겠느냐? 왜 자기 스스로 부끄러운 짓을 하느냐 그 말이다. 그런데 자기가 옷을 벗었는지, 입었는지를 모른다. 그러니까 사람이 일반적으로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면 부끄러움이 옷에서 나는 것이냐, 자기 양심에서 느껴지는 것이냐? 양심에서 느껴지는 거다. 그게 인간이다. 사람이 양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를 다른 사람과 비교할 때 내 모습이 초라하구나이런 것을 느낄 수 있다. ‘, 저 사람은 예수 믿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구나하게 되면 부끄러워지는 거다.

 

내가 여기서 목사님들을 가르치는 것도 목사님들에게 박사들과 싸워보라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당하면 안 된다. 평신도라도 그렇다. 일반 세상박사를 넘어뜨려야 한다. 그게 뭐가 힘이 있느냐? 그게 힘이 있다고 해도 세상 물질성적으로 된 지식밖에 없는 거다. 아무리 철학이라도 그건 바탕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 바탕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야 만이 사람이 바로 세워져 올라간다.

 

영이 죽어있는 사람은 사람이 인격 면에서 성장되는 바탕은 모른다. 고작 해봐야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하면 그걸로 그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공부가 자기를 지켜주는 줄 알고 있다.

 

왜 때렸느냐? 안 내어놓는다고 때렸다. 사람을 때리는 것도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 있고, 말을 가지고 때리는 것도 있다. 씨름도 힘 대 힘의 씨름이 있고, 말씨름도 있다. 씨름선수가 상대방을 높이 치켜드는 것은 상대가 잘났다고 치켜드는 게 아니라 내리꽂으려는 것이다. 웅변하는 사람도 상대방을 추켜 올려놓고 말로써 처박아 버리는 것도 있다.

 

거짓 종들과 이단자들의 가르침 속에는 공갈 협박성이 들어 있다. 무슨 말이냐? 하나님의 진리이치는 안 가르쳐 주고 충성봉사 물질봉사만 강조하고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 공갈협박자로서 강도와 같은 거다. 돈을 안 가져온다고 때리는 것과, 공부를 못한다고 때리는 것과는 그 소원 목적성이 다르다.

 

기독교 신앙의 세계에서 세상을 소원 목적하는 가르침은 저주받은 여리고로 내려가는 것과 같다. 여리고로 내려가면 저주를 받게 되어 있다. 결국은 세상과 함께 불탄다. 영적으로 보면 그 신앙은 강도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강도를 만나서 만신창이가 된 사람을 보고 피해서 빨리 여리고로 내려갔다. 여리고로 내려가는 이 두 사람도 성경을 잘 아는 사람이다. 여리고로 내려가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을 잘 안다. 얼마나 잘 아느냐? 그들은 성경구절을 늘 눈썹과 눈썹 사이의 미간에 붙이고 옷깃에 붙이고 소매 끝에 달고 다니기 때문에 그 성경을 잘 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고 있고, 이웃을 사랑한다고 하고 있고, 성경구절을 잘 안다. 강도를 만난 자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일반 상식적으로도 잘 안다. 여리고로 내려가지 말고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치료해줘야 한다는 걸 잘 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강도 만난 자를 피해서 여리고로 내려갔다.

 

우리의 신앙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야 한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진리통치가 있는 평화의 터요 평화의 도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루살렘이라고 하면 다 좋게 말하면 안 된다. 무슨 말이냐? 예루살렘 안에는 성전이 있는데, :에 보면 마귀가 예수님을 데리고 성전 꼭대기로 올라갔다. 예수님이 자원적으로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는 게 아니라 마귀의 말대로 올라가 주신 것은 마귀도 예수 믿는 사람을 성전 꼭대기처럼 세상의 높은 자리로 올릴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마귀가 성전 꼭대기로 즉, 노회장 총회장으로 올려놓으면 그 다음에 하는 말은 더 올라가라가 아니라 예수님께 했듯이 땅으로 뛰어내리라하게 돼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예루살렘의 성전이라 할지라도 거기서 뛰어내리면 땅이다. 하늘은 아니다. 그러니까 마귀의 말인즉 잘 뛰어내려라. 조심히 뛰어내려라.’ 땅의 운동을 잘 하라. 그러면 네가 안 죽는다. 안 죽고 세상에서 성공한다하는 것이다. 마귀의 이 말을 들었다면 뛰어내리는 것이고, 뛰어내렸으면 자기의 신앙 믿음은 죽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격 면에서 자란 것은 없다.

 

오늘날 자기가 믿음이 성장이 안 된 이유가 뭐냐? 직분을 받았으면 올라가야지 왜 뛰어내리느냐? 하나님이 세우신 종은 뛰어내리지를 않는다. 이 말씀을 듣다보면 이웃교회고, 그 전에 다녔던 교회고 다 분별이 나오는 거다.

 

자기에게 자꾸 피해가 오고 고통이 가중된다면 빨리 빨리 벧엘신앙으로 올라가라. 가정에 보석반지 묻어둬 봐야 네 집은 도둑이 든다. 결혼할 때 기념예물? 다 팔아서 복음에 써라. 네가 예수 잘 믿는 쪽으로 부지런히 배워라. 그런 거 놔두면 뭐 할 거냐? 하나님의 허락이 되면 도선생이 그냥 가져가 버린다. 그게 무슨 기념이냐? 우상단지다. 그러다가 쌓아놓았던 걸 도둑을 맞으면 벧엘신앙으로 올라갈 줄은 모르고 자꾸 자기가 피해 입은 걸 남 탓만 한다. 야곱의 일생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왜 그 정신이 성경대로 못 할까?

 

어찌되었던 우리가 오늘날까지 왔는데, 이 자리까지 온 것만 해도 참 하나님의 은혜지만 또 한편 돌이켜 생각을 하면 벧엘신앙으로 빨리 못 올라왔구나이게 들어있다. 저주받은 여리고로 여전히 내려가고 있으면서 자기 기도 들어달라고 한다면 그게 바로 된 신앙관이냐? 오늘날 이런 기도가 많다.

 

하나님 앞에 진정 자기가 바른 생각을 가지고 바른 노력을 하는 데도 깨닫는 은혜가 없다면 교회 인도자들의 가르침이 여리고로 내려가는 것인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는 것인지 두 가지 중에 하나이니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절대로 예수 헛 믿지 말아라. 이 바쁜 시간에 안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부자로 살려고 밤낮으로 날뛰는데 예수 믿으면서 왜 헛 믿겠느냐? 예수 믿는 게 남아돌아가는 시간이냐? 안 믿는 사람들은 세상을 건설하지만 우리는 자기 속에 사람을 건설이다. 그러니 자기가 예수 믿는 걸 심사숙고를 해야 한다. 자기 일생 전폭을 도둑맞는 짓은 하지 말아야 한다.

 

강도를 만난 자는 물질을 빼앗겼고 몸도 상처를 입었다. 그러나 회복될 가능성은 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에게 당하지는 않았지만 영의 눈으로 보면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의 길로 들어섰으니 그 길은 여리고로 내려가는 사상이기 때문에 자기 일생의 시간 속에서 날마다 날마다 이뤄야 할 이룰구원이 영원히 소멸이 돼 버렸다. 자기 일생의 시간 전폭이 소멸이 돼 버렸다.

 

세상사상을 가지면 세상으로 가는 동안에 얼마나 배부르게 잘 살 런지 모르지만 네 일생 자체가 벌레가 다 파먹는다. 이런 말이 심감이 안 나거들랑 죽을 때까지 세상 염려 근심 걱정을 하며 살아봐라. 치매에 안 걸린다고 보장할 수 있겠느냐?

 

예수 믿는 사람은 치매에 걸리면 안 된다. 예수 믿는 사람은 눈 밝을 때까지 성경을 읽고 늘 생산이 되는 하나님의 영의 운동을 머릿속으로 마음으로 자꾸 하면 치매에 안 걸린다. 세상을 짊어지고 살다가 치매에 걸리면 그게 뭔 줄 아느냐? 안 믿는 사람들은 이걸 모르겠지만 그건 일종의 고문이다. 자식을 우상으로 삼지 말아라. 치매에 걸린다. ‘오냐. 오냐하고 키워놓으니 자기 부부밖에 모르고. 그러니 자식이 어릴 때도 자식 때문에 속상하고, 키워놓으니 또 속상하고 한다.

 

사람이 어느 정도 성인이 되면 사람을 위할 줄 알고, 부모를 위할 줄 알고, 이웃을 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 나오는 것도 힘들고, 일반 인격적으로 상식적인 것도 생각을 못하고 한다면 사람이 저질스러워서 어떻게 살겠느냐? 누가 그런 사람을 좋아하겠느냐?

 

여리고 내려가는 신앙사상에는 강도를 만나서 죽어가는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세상으로 내려가는 사상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사람의 모든 사고를, 소원 목적을, 정신을 하나님 쪽으로 밀착시킬 수가 없다. 세상으로 내려가 있으니까 구원이 안 되는 거다. 우리교회도 그렇다면 다 도망가 버려라. 그러나 옳다면 본인들을 위해서 바로 믿어라. 목사 위하라고 하지 않는다.

 

사람이 도적을 만나서 시간이 자기를 다 파먹고, 세상정신이 자기를 다 파먹고, 인격적으로 속성적으로 성품적으로 사람이 망했는데, 말하자면 자기 골 속에 구멍이 송송 났는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구원시킬 것이냐? 하나님 쪽으로, 구원 쪽으로, 영생 쪽으로, 생명 쪽으로 해야 정신이 살아나고 지식이 고상해지고 사람이 살아난다. 사람을 구원을 시키려면 여리고로 내려가던 그 걸음걸이, 그 소원 목적, 그 일생을 예루살렘으로 업고 되돌아와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이걸 보는 눈이 없는 게 안타깝다.

 

약탈자 강도는 물건을 빼앗기 위해 몸에 상처를 주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들인데 죽어가는 이 사람을 보고도 피해서 그냥 갔으니 강도보다 악한 자이다.

 

우리는 종교적인 직분이나 명예 영광만 보지 말고 신앙의 본질 즉, 하나님의 본질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 예수 그리스도이니 하나님의 본질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그 방향과 목적을 잘 알아야 한다.

 

오늘날까지 자기가 예수 믿은 것이 바로 믿은 건지, 잘못된 게 많은 건지? 바로 됐으면 바로 된 것이 쉼 없이 끊임없이 앞으로 나가야 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쳐야 한다. 안 그러면 네가 죽는 거다. 네가 하나님의 심판에 회부되는 거다. 하나님의 수술의 도마 위에 네가 놓일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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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54 누가복음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1) 눅5:31-32  김경형목사  2020-01-08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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