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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1:1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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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1장 14절-16절: 예수께서 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벙어리가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기이히 여겼으나 그 중에 더러는 말하기를 저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고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을 구하니.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보면 벙어리가 있다.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있고, 벙어리는 아닌데 벙어리처럼 보여지는 사람이 있다. 밥을 먹고 말은 할 줄을 아는데 묻는 말에 대답도 않고, 때와 상황에 따라서 말할 때가 있는데 말을 않고 있어서 벙어리는 아닌데 벙어리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다.
육신의 벙어리 중에는 날 때부터 뇌손상으로 말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또 사고로 인해서 되는 벙어리도 있다. 뇌는 정상인데 혀에 이상이 생겨서 말을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귀가 먹어서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하니까 역시 사람이 쓸 수 있는 말을 못하게 되는 벙어리도 있다. 또 귀도 혀도 정상인데 마치 무인도에 있었던 사람처럼 배우지 못하고 듣지를 못했다면 표현을 할 수가 없으니 벙어리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다. 벙어리도 여러 가지를 볼 수가 있다.
우리가 신체적으로 귀와 혀와 뇌에 이상이 생겨 기능이 잘못되어서 된 벙어리는 누구든지 잘 안다. 눈으로 보이는, 그리고 인식할 수 있는 벙어리는 누구든지 잘 안다. 그런데 성경은 일반적으로 안 믿는 사람도 아는 육신의 벙어리를 들어서 그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벙어리로 보시는 영적인 의미의 신령한 뜻을 넣어 말씀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 벙어리를 볼 때 영적인 면으로 생각을 해야 한다. 영육 결합체로 된 우리에게 영인성장 면이 잘 되라고 주시는 말씀이 아니란다면 성령으로 기록된 이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는 값어치가 없어진다 그 말이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따먹고 죄와 허물로 죽은 인간의 후손인 우리는 역시 죄와 허물로 영이 죽었던 고로 하나님에 대해 듣지도 못했고 알지도 못했다. 인간 자신을 모르고 살았다 그 말이다. 하나님을 모르면 인간 자신을 모른다. 아무리 사회에서 공부를 잘 하고 대통령이라고 해도 하나님을 모르면 인간 자기를 모르는 거다.
인간 자기를 하나님께서 만드셨으니 성경을 통해서 인간 자기를 지은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아야 되는데 하나님을 모르니 성경을 모르고, 성경을 모르니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인간이 왜 출생이 되었고 존재되어 있는지 자기를 모른다. 무엇을 하다가 가야 될지를 모른다. 먹고 마시고 배 부르는 것으로 인생의 가치를 말한다면 너보다 돼지가 훨씬 낫다. 먹고 마시고 편안한 것에 가치를 둔다면 돼지가 낫다.
그런데 아무리 믿음이 없고 예수를 안 믿는다고 해도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는 여러 가지 기술이나 학문이나 생각이나 지혜나 지식이나 도덕성 등의 모든 면에서 일반적으로도 가치판단이 되게끔, 비교가 되게끔 그런 세상으로 되어 있다. 그걸 보고서라도 성경을 통해서 인간 자기의 존재가치를 알고 깨닫고 해야 한다. 예수를 믿을 것 같으면 그래야지 안 그런다면 예수 믿는 효력이 없다. 가치가 없다.
믿는 사람이라고 해도 가치 없게 믿으면 밟히는 거고, 일반 세상에 살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미련하게 살면 왕따 당하고 아무도 안 알아준다. 인간이면서 왜 이런 생각을 못하고 사느냐? 짐승은 그런 생각을 못한다. 그런데 인간이면서 왜 그런 생각을 못하느냐? 그러니 짐승과 수준이 같다. 사람이면서 짐승 같은 사람이 많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성경을 손에 들기 전에는 인간 자신을 모르고 살았다. 교회에 다녀도 교회에서 바로 못 가르쳐 주면 수 년 수십 년을 믿어도 인간이 바로 되는 걸 모른다. 그러면 자기 복만 채워달라고 한다. 이건 쉽게 말하면 돼지가 자기에게 먹을 걸 많이 달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우리는 영적인 면에서 하나님과 의사적으로 통할 수가 없는 귀머거리였다. 귀머거리는 벙어리가 되는 거다. 원리가 그렇다. 딴 말은 잘 들리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못 깨달으면 하나님의 뜻을 말을 못하니 영적인 면에서 벙어리다. 그리고 소경이었다. 영적인 면에서 소경이었다. 영적 기능 지능 면에서 아무 쓸모없는 문둥병과 같은,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주님 닮은 것으로서의 참 사람의 형상을 볼 수 없는 자였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기본은혜를 기초로 하고 이제는 고쳐지게 되었다.
시장에 가면 기름집이 많이 있는데 기름집에서는 참기름을 판다. 그런데 참기름 맛이 제각각이다. 다른 식용유와 배합을 해서 참기름처럼 해서 팔기도 하고, 중국 깨를 한국 깨처럼 해서 기름을 짜서 팔기도 한다. 가짜 참기름과 진짜 참기름의 값이 얼마나 차이가 나느냐? 많이 나느냐, 적게 나느냐? 참기름 집에서도 그런 차이를 볼 수 있다. 그런 걸 보고 ‘더러운 세상이구나’ 하지만 말고 진짜 참 사람은 예수님뿐인데 인간을 예수님과 비교해 보면 가짜가 얼마나 많을까?
좋게 말해서 이제 갓 난 아이는 말을 못한다. 크면서 말을 배우기 시작하고, 점점 커가면서 말 표현을 잘 하듯이 하나님의 진리본질의 적중성에 놓고 거기에서 교훈을 받는다면 옳은 것으로 점점 자라가게 된다. 그런데 진리본질이 아닌 교회에서 백날을 배워도 그거는 딴 소리다. 그걸 알아라.
예수님을 믿고 하나의 종교인으로 살았다면 이런 사람은 성경을 봐도 종교적으로만 해석을 하지 영인성장 위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뜻은 알지를 못하는고로 귀머거리와 같고 벙어리와 같은 거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이 많이 있다. 귀머거리가 많고 벙어리가 참 많다. 이것이 어디에 많은가 하니 안 믿는 사람은 수에 칠 가치가 없는 거고 교회 안에 많다. 영적인 이치를 못 알아들으면 그 면에 대해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벙어리가 되는 거다.
우리 모두 자기가 하나님의 뜻에 대해 어느 정도 다른 사람에게 정확히 말할 수 있느냐? 배워서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한다고 해도 어린 아이가 말을 해도 어른들은 잘 못 알아듣듯이 그런 현상은 아닌지?
대제사장과 제사장 그리고 율법사들과 서기관 그리고 바리새교인들과 유대인들 이 모두가 영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었다. 그 훌륭한 선생들이고 세계적인 인물들인데, 하나님 앞에 제사장이고 율법사고 하나님의 말씀에 박사들인데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는다.
생각이 좀 있는 사람이라면 예수 믿으면서 성경을 본다면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이나 율법사나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은 것처럼 나도 그들과 비교하면 가슴을 칠 상태인데도 맹숭맹숭한 정신 마음이라면 화인 맞은 것이 아니고 뭐냐? 옳은 소리를 해도 양심에 찔리지도 않고, 자기 말 한다고 듣기 싫다고 안 나오고. 대학교에 가면 ‘네 속이 어떻다’ 하고 말을 해 주느냐? 딴 소리 하고서는 돈이나 내라고 한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들으니 어떻게 예수님의 뒤를 따르겠느냐? 다시 말하면 어떻게 예수님처럼 만들어질 수 있겠느냐? 당신을 따르라는 것은 예수님처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직분을 얻고 그만큼 따랐다면 만들어져 있어야지 일반보다도 못하다면 마귀가 얼마나 웃을 노릇이냐?
교회 안에 귀먹고 벙어리 되고 소경 된 인도자들이 참 많다. 그런 자들은 결국은 성경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죽인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구원을 살려야 하고, 예수를 살리면 그게 자기의 구원인데 그 예수를 죽였으니 자기 구원을 죽인 것과 똑같은 것이다. 그러니 육신도 하나님의 형벌의 심판으로 녹아지는 것이다.
그들이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을 싫어한 것이냐? 예수님의 말씀이 마귀의 말이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냐? 그들이 신앙한다는 그 정신과 사상이 악령이 들린 것이고 귀신이 들린 것이 아닌가? 악신 들린 사울 왕이 진리의 성도 다윗을 죽이려고 했다.
본문의 벙어리는 신체적으로 처음부터 타고 난 벙어리가 아니고 귀신이 들려서 벙어리가 된 것이다. 그 전에는 말을 잘 했는데, 말을 하기는 하는데 갑자기 벙어리가 된 것처럼 말을 잘 안 하는 사람이 있고, 말을 잘 안 해서 벙어리처럼 되었었는데 갑자기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앞에서도 여러 가지의 벙어리 상태를 생각해 봤는데, 일반적으로 벙어리는 아니지만 모르면 의사소통을 못하니까 벙어리처럼 되는 것이 있다. 아는 사람이 많은 가운데 나만 혼자 모르면 대화가 안 되니 벙어리처럼 되는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가 있다. 또 말하기가 싫으면 벙어리처럼 되는 거고, 교인이 교회에 다니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이치를 모르면 예수님의 구원을, 하나님 말씀을, 온전한 성품에 대한 구원을 전할 수가 없다.
온전한 성품이 되는 게 인간구원이다. 예수님처럼 만들어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사람이 구원되는 것 이상 값진 게 없다. 아무리 금은보석이라고 해도 사람이 구원되는 것 이상은 없다. 이건 값으로 못 따진다.
예수님을 모르면서 전하게 되면 하나의 기독교 종교인으로서 종교적인 세상을 말하게 될 뿐이다. 안 믿는 사람이나 성경을 못 깨닫는 사람은 종교적인 세상을 좋아한다. 우리는 종교적인 세상이 아니라 주님처럼 온전케 되는 신앙적인 세상이다. 신앙사상 면에서의 벙어리는 하나님의 의사성을 모르고 전한다.
사람이 귀신이 들린 상태를 보면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다. 예수를 믿으면서 귀신이 들린 사람은 가정적으로도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 특히 여자분들 중에 밤새도록 기도하고 떠들고, 그 다음에 집에 와서 살림살이가 제대로 되겠느냐? 교육도 안 되고 일반적인 생활도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안 믿는 사람이 볼 때도 혀를 찰 수밖에 없는 문제가 많이 생긴다. 이건 성경을 못 깨달아서 그렇다. 말하자면 가르치는 소위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분들이 문제가 심각하다.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에서 보면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인간의 그 상태 자체가 항상 죄 아래 사망 아래서 살고 있는 거다. 이 상태의 사람은 성질만 조금 부리면 귀신들이 금방 들어가서 장난을 칠 수 있게 노출이 돼 있다.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애들이 놀이터에서 놀면 그 어린아이를 유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처럼 항상 귀신에게 노출이 돼 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서 자기의 성격 성질을 바로 못 고치고 하면 귀신들려서 귀신들의 밥이 되기 참 좋은 거다. 거짓되고 사기성을 가진 목사들에게 이용물이 되기 좋다. 그들의 밥이다.
선악과 따먹은 그 자체가 항상 사망 아래 죄 아래 노출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어떤 사건이 오면 그만 그 사건에서 자극을 받아서 여러 형태의 미친 상태가 나오게 된다. 밥도 안 먹고 말도 안 하고 방구석에 가만히 있고, 속에서 벌떡증이 일어나서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실 수도 있고. 밖에 나가서 속에서 나오는 대로 휘젓고 다니면 다른 사람들이 가만있겠느냐? 길 가는 개를 잡고도 싸우려고 하고. 그러면 그 개가 가만있겠느냐?
악한 귀신이 들렸다는 것은 자타에게 악한 짓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을 뛰쳐나가서 무덤에 가서 옷을 벗고 살기도 하고, 이 귀신이 벙어리로 만들기도 하고, 눈을 멀게도 하고, 흉악한 짓을 하게도 하고, 간질병이 들게도 하고. 여러 가지 형태가 나온다.
성경의 역사는 잘 알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셨듯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는 기도가 있다. 기도는 연상 하는데 주님과의 인격적인 기도는 없고 ‘능력 달라. 자기 소원대로 뭘 이뤄 달라. 그러면 영광을 돌리겠다’ 하는 건 다 귀신들린 것이다. 정상이 아니다.
일반사람들을 평소에 보면 말 잘하고 일 잘하고 평범하게 보인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였고 사람이 좋게 보여지기도 했는데 예수님께서 영의 눈으로 보니 병이 들린 것도 보이고 귀신이 들린 것도 다 보여진다. 왜 그러냐? 예수님 당신이 하늘나라에 계시면서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보여진다. 우리도 성경을 통해서 영의 눈이 밝아지면 사람이 보여진다. 성경을 통하기 전에는 돈만 보이고, 집만 보이고, 차만 보이고,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보인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눈으로 보니 병든 것도 보이고 귀신이 들린 것도 다 보인다. 앉은뱅이도 보이고 문둥이도 보이고. 예수님이 오셔서 이런 것을 다 드러내준다. 우리에게 보여준다. 보여줌으로써 우리 자신을 보게 했다. 마치 어두운 세상에 빛이 비춰지면 안 보이던 것이 잘 보이는 것처럼. 그래서 창조의 첫 날에 햇빛이나 달빛이 아닌 당신의 말씀으로 된 빛을 만드신 것이다.
이 빛은 창조의 역사의 맨 처음의 빛이다. 쉽게 인간의 표현으로 말한다면 이 빛은 말씀이 빛, 영의 빛이니 이 영적인 차원의 빛을 가지고 보게 되면 혼돈스럽고 혼란스럽고 혼잡스런 상태를 정돈 정립을 잘 하게 된다. 이 영의 빛이 없는 사람이 이 빛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못하면, 그 말씀으로 기준 된 사상이 아닌 사람은 자기의 정신이나 마음이나, ‘속에서 어떤 것이 먼저 되고 나중 되고’ 하는 이것이 혼잡스럽다. 간단히 말하면 자기가 자기 마음을 못 잡는다. 그러니 눈에 보이는 면에서 생산될 게 아무 것도 없다. 창조에서 이걸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강해지느냐? 계:에도 있지만 하늘로부터 얼굴이 해같이 빛나는 천사가 있는데 두 발을 한 쪽은 바다를 밝고 한 쪽은 땅을 밟고 손에는 작은 책을 들고 있다. 그러면 작은 책이 누가 보기에 작은 책이냐? 인간 너희들이 보기에는 작은 책이지? 그 작은 책이 얼마나 강한 줄을 아느냐? 네 얼굴을 빛이 되게 만들고, 네 다리로 바다를 밟고 땅을 밟고 온 세상을 밟을 수 있는 능력자가 되게 하는 거다.
그런데 인간 너희들은 이 성경책을 하찮게 여기고, 아무렇게나 여기고, 값어치 없게 여기느냐? 성경을 통해서 나오는 강하고 힘 있는 것을 모르지? 그래서 그걸 작은 책이라고 표현을 한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함부로 했고 안 읽고 하시 했느냐? 그러니 네 꼴이 그 모양인 것이다. 성경에서 나오는 것 이상 강한 게 없다. 하나님의 약속(무지개)이 그 머리 위에 있고. 사람도 그런 사람이 있다.
불타질 세상은 너의 구원에 이용물인데 인간 너는 세상을 두 발로 밟았느냐, 아니면 밟히고 살았느냐? 그걸 말해주고 있다. 돈이면 세상에 굽신굽신하고, 세상을 따라가고, 그 위주로 살고, 그 위주로 시집가고 장가가고 안 그랬느냐? 그건 밟히고 산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강하겠느냐? 약하고 지질이도 못난 사람이다. ‘복 복’은 하면서도 왜 강한 사람이 되려고는 안 하느냐? 강한 자는 정복이 나온다.
선악과 따먹은 후에 보여지지 않고 숨겨진 것이 참 많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으로 오시니 우리 속에 숨었던 생각들이 다 드러난다. 우리 속에 고쳐야 할 성질과 성격들이 너무 많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해도 안 고친다. 속에 썩고 뭉그러지고 심판받을 그 성격들이 도사리고 있어서 도무지 못 고친다. 그렇게 살아봐라.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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