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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딤후1: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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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중곤 목사 |
참고 : | 들풀쉼터교회 |
(2020. 9.13. 주일예배 설교)
성경 : 딤후1:7-8
제목 : 능력과 사랑과 절제
찬송 : 149(147), 182(169), 428(488), 510(276)
딤후1:7-8
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8.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바울사도는 로마에서‘온 이태를 자기 셋집’(행28:30)에 연금되어 있으면서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그가 고난에 직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목회자로서 믿음의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를 권면한 편지를 보낸 말씀이 디모데 전 후서입니다. 그 중에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능력’(能力;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힘)과‘사랑’(가장 따뜻하고 바람직한 인간관계, 또한 그러한 관계를 맺고 지켜가고자 하는 마음)과‘절제’(節制; self-control, 정도에 넘지 아니하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 하는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사41:10절에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말씀하셨고, 삼상17:45-49절에, 소년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믿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48. 블레셋 사람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49.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가지고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삼상17:45-49)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시므로, 우리가 능히 모든 것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람 된 우리는 재난이나 환난을 당할 때 개인의 영광과 욕망을 위해서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기보다 사람을 바라 볼 때가 많습니다.
이강우 목사님(서울 좋은 나무교회)은 “성도 100명과 제자 1명 중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하고 목회자에게 이 질문을 던진다면 대부분은 성도 100명을 선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목사님도 이 질문 앞에 성도 100명 선택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눈앞의‘성도’를 선택하고‘제자’를 선택하지 않는 결과는 코로나바이러스19 사태에서 보여 주듯이, 당장에 성도 100명이 교회에 유익할 것 같지만, 어쩌면 성도들은 장래 기약이 없는 군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와 같은 재난이 오면 주일에도 야외에 나가 텐트 치고 휴대전화로 영상예배를 드리는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배를 드린다면, 마음과 정성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까 하는 생각이드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현실은 주님께서 바라시는 죄에서 한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성도 100명을 선택하겠다는 의미 속엔 드러나지 않았지만, 목회자의 야망을 채우기 위한 성도 수에 집중한 결과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 조치가 연장되면서 4주 동안을 대면 예배가 금지되어, 성도님 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사회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건강과 안위를 위한 스스로 내린 결정이기도합니다.
이러한 재난 가운데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르냐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회가 어떠한 예배의 모범을 보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재난을 당할 때, 성도는 당연히 교회에서 이를 위해 다함께 기도하고 이 재난을 물리쳐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코로나 바이러스가 교회라고 비켜가지 않기 때문에, 만에 하나 우리 성도님들이 당할 재난에 대한 염려를 떨쳐 버릴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루살렘에서 박해를 받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루살렘에서 흩어져 가는 곳 마다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핍박이 복음이 전파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가 일시적으로는 교회공동체가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거리두기를 하면서 대면 예배를 중지하고 온 라인 예배를 드림으로, 교인들 간의 교제나 교회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재난을 통해서 교회가 바로서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평안할 대 보다 핍박과 재난을 통해 더욱 하나님 앞에 바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평안할 때 주님께 더 가까이 갈 것 같은데, 평안할 때는 안일함에 빠지게 되지만, 핍박을 당하고 재난을 당할수록 더욱 주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를 고난의 종교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것은 고난을 통해서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은 부요해지고 부족함이 없을 때, 안일함에 빠지는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어렵다고 하지만, 부족한 것이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칩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 믿음의 조상들의 핍박과 고난을 통한 믿음을 보시고 넘치는 은혜와 부족함이 없는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주신 세상을 구원할 본분을 잃고, 세상과 등지고 자신들 만의 담을 쌓기 시작하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에는 그래도 세상 여론이 교회 편이 많았는데 지금은 아무도 교회 편을 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믿지 않은 세상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세상 사람들과 주님 앞에 겸손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만에 빠져 주님을 멀리하고 너무 인간적인 안일함에 빠져 교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간의 탐욕에 너무 치우쳤습니다.
교회가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한 영혼을 사랑하고 구원하기에 온 힘을 다해야 함에도, 주님은 간곳이 없고 주님의 종이어야 할 목사들이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주님 보다 더 높아지려 하고 있습니다. 섬겨야할 종이 주인이 되려 하고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막8:34) 말씀하시지만, 자기 십자가마저 지는 지도자는 많지 않고, 성도들에게 자기 십자가마저 지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향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마24:2) 말씀하셨는데, 지금 교회는 더 큰 성전을 지으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초재교회 당시의 교회와 무엇이 다른지 우리의 위선과 거짓과 교만함을 회개하지 않는다면, 한국 교회 또한 언제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져 내릴지 우리자신을 돌아보아야합니다.
말1:10절에‘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는 말씀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합니다.
행17:24-25절에 ‘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 교회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한다는 명분하에 자신들의 권위를 위하여 웅장한 교회 건축과 교인수를 불리기에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 교회를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지 생각해보고, 우리는 교회 건물이나 교인 수가 많음으로 우리가 구원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다시 초대교회로 돌아가 행2:44-47절에‘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는 초대교회 모습과 ‘복음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복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복음에 대하여 눅2:10절에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하였고, 행8:35절에는 ‘예수님’이 복음이라고 하였으며, 행20:24절에는 ‘하나님의 은혜’라 하였고, 롬1:16-7절에는‘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의’라고 말씀 하였습니다.
복음은 우리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며,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시는 것입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이 온 세상에 전해질 때 우리 모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회복되는 감격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18세기 위대한 복음전도자‘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는 20대 초반에 복음을 듣고 체험한 구원의 감격에 대해서 "오! 죄의 무게가 사라지고, 수심에 잠긴 내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이 자리 잡게 되었을 때 내 영혼이 얼마나 큰 기쁨으로 가득 찼던가! 그것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 영광으로 가득찬 기쁨이었다. 그날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날이었음에 분명하다. 내 기쁨은 마치 홍수처럼 강둑을 넘어 범람했다."고 고백 하였습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진 연약한 인간이기에 복음을 듣고 깨닫지 않으면 복음의 감격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복음을 듣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는다는 말이요, 복음을 묵상하므로 갈급한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으로 충만한 성도는‘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엡4:22-24)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주님과 동행하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의 열매를 맺으며, 세상에서는 가난하지만 주님 안에서 영적으로 부요하며, 세상의 명예와 권세는 없지만,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얻게 되는 권세를 누리며, ‘그리스도의 향기’(고후2:15)를 나타내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되는 줄 믿습니다.
복음 자체이신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14:6)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롬3:24) 그리스도의 사람들 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 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복음을 전하고 증거 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증거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기 때문’(요일4:10)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살리려 하신 그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요일4:7-11).
복음의 증거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그 사랑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구원함을 받았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도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기쁨이요 소망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 눅9:58)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가난하셨으며,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4-15) 하시며 종 된 겸손한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마20:28, 막10:45)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주님을 믿고 따른다하면서, 어떻게 하든 세상에서 부요해 지기위해 주님을 이용하려했고, 낮아지기보다 높아지려하였으며, 섬기려하기 보다 섬김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얻으려하면서도 주님지신 십자가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어떻게 하든 피하려했고,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16:24, 막8:34)는 주님 명령마저도 우리는 따르려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고 명령 하시지만, 우리는 언제 부터인가, 맛을 잃은 소금이 되었고,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아닌, 빛을 잃은 등이 된지 오래 되어, 신뢰를 잃고, 세상 사람들에게 마저 밟히고, 찢기는 형편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찌해야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말씀 복음을 회복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부요한 자들 지식이 많은 자들을 제자로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소외 된 어부요 세리와 같은 낮은 자들을 제자로 세우셨고, 병든 이들을 고쳐주시고, 가난한 이들의 진정한 이웃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소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그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예수님을 따라 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하지도 섬기려하지도, 용서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심령이 가난한 이들의 이웃이 되어야하는데, 오히려 성도들을 더욱 어렵게 하고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지 않았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 보아야합니다.
우리가 언제 부터인가 이처럼 미적지근한 믿음으로 적당히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주님은 이러한 우리에게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계3:15-16)는 말씀을 듣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고, 섬김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회복하는 우리가 되어야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말씀하신 것 같이, 어떤 재난이나, 환난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주님을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으로 담대하게 이 모든 재난과 환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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