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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1:34-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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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1장 34절-36절: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34절: 자기 몸의 등불은 눈을 말하는데,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하는 것은 구별이 잘 된다는 것이다. 자기 몸에 때가 끼어있는지, 뭐가 묻어있는지, 그리고 자기의 언행심사가 구별 분별이 돼서 하나님의 성품을 잘 닮는다는 것이다.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눈은 몸의 등불이다. 눈이 나쁘면 뭘 보겠느냐? 그래서 자기 눈이 머리에 박혀 있는 거다. 위에 박혀 있는 거다. 만일 눈이 머리털 속에 박혀 있다면 눈비가 오면 다 맞고 해가 비취면 눈이 부실 것이다. 그래서 눈을 벼랑에 박아놓고 빗물이 타고 내려가라고 챙을 해 놨다. 그래서 눈은 위에 달린 것이다. 눈은 몸의 등불이라.
사실 눈이 나쁘면 눈이 위에 달려도 구실을 못한다. 눈이 나쁘면 몸을 밝히 볼 수도 없고 몸의 활동을 자유로이 할 수도 없다. 눈이 나쁘면 자기 몸을 보는 면에서 어둡다. 눈이 나쁘면 느낌부터 우중충하고 흐리다. 눈이 나쁘면 머리도 아프고 답답하다. 머리를 항상 시원하게 쾌활하게 기쁘게 해야 한다. 머리에 고통을 주면 그 다음은 볼 것 없다.
우리가 여러 가지 은밀한 뜻을 볼 수 있는데, 머리통은 항상 올려야 한다. 숙이면 안 된다. 숙이면 피가 머리로 몰리고 눈이 흐리다. 영적인 면으로 볼 때도 우리가 항상 땅을 쳐다보면, 세상 것을 쳐다보면 그 사람의 머리는 아프게 돼 있다. 세상을 보니까 근심 걱정 고통뿐이다. 하늘을 보라고 머리를 위로 달아놓은 것이다.
자기 머리가 위로 달렸으니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하나님의 것을 받고 해야 제대로 땅을 밟을 수가 있지 자기 머리가 세상이라고 하는 땅을 쳐다보고 있으면 발도 힘들고 몸도 힘들고 머리도 아프고 근심 걱정도 되고 눈알이 빨개진다. 잠을 잘 때는 머리를 항상 서늘하게 해야 한다. 발은 따뜻하게 하고. 눈이 성하면 거울 앞에서 자기를 단장할 수 있다. 이러면 자기의 온 몸과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두 등불(눈)을 절벽에 박아놓았고 양쪽 귀도 절벽에 달려있는 것은 입과 코와 연락관계를 신속히 하라고 머리 두뇌 가까이에 박아놓은 것이다. 만일 양 볼기에 두 눈을 박아놨다면 어떻게 될까?
영적으로 말하면 진리지식의 영의 눈이 밝아야 본인 자신의 마음을 성찰하게 된다. 자신의 출생목적, 왜 자기가 출생을 했으며 왜 자기가 존재하고 있는지 존재목적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의 길을 갈 수가 있다. 영의 눈이 밝아야 하나님의 뜻에 맞춰 바로 살아갈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만들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육에 의해 살아가도록 돼 있다. 이게 성경에 분명히 있는 건데, 좁은 문이 열렸을 때 들어갈 줄 알아야 좁은 길을 갈 수가 있다. 그러니 좁은 문 쪽으로 들어가라. 넓은 문은 아무라도 찾을 수 있고 갈 수가 있다.
좁은 길을 가려면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하는 그 순간을 포착해서 그 다음에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의사를 찾아서 그 의사에 맞춰 들어가면 자기는 좁은 길을 갈 수 있다. 이건 생명 길이다. 왜 좁은 길 좁은 문이라고 하느냐? 하나님의 한 뜻이라서 그렇다.
인간이 바로 살려면 하나님의 뜻밖에 없다. 다른 이런 저런 사람의 세상의 뜻은 안 된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안에 많은 뜻이 있다. 구복주의를 외치는 사람, 신비주의를 외치는 사람, 사회주의 극기 극복주의 은둔주의 자유주의 등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이런 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좁은 길도 아니다. 이건 다 이방 종교인들처럼 걸어가는 고행 길이다. 고행 길은 자기가 자기를 학대하는 길이다. 그게 이방 종교인들의 길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안에 자꾸 자기 몸을 해하고 자학을 한다. 금식을 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영의 눈이 밝아야 자신의 마음을 성찰할 수 있다. 자기 마음이 하루에 몇 번씩 달아나는 것이 있느냐? 영의 눈이 어두우면 자기가 아무리 이성적으로 바로 산다고 해도 전부는 모순투성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존재목적대로 결코 걸어갈 수가 없다.
그러나 영적 지식에 눈이 밝으면 자기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지 성찰이 잘 된다. 또 교회운동들의 활동 속에 모든 영들의 움직임이 감지가 된다. 각 교회마다 예수 믿느라고 활동을 하는데 그 활동들의 배후에 어떤 영들이 움직이고 있는지 감지가 된다. 그리고 영의 지식에 눈이 밝으면 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된다. 세상은 전부가 눈이 어둡다. 소경이고 어둡다. 이런 세상 사람들에게 ‘신앙사상이 뭐다. 어떻게 하는 게 옳게 믿는 거다’ 하고 깨닫게 하는 게 주님께 인도하는 것이다.
35절: 다른 사람의 눈이 아니고 자기 눈이다. 자기 눈이 어두운지 밝은지 검사해 봤느냐? 육신의 눈이야 안과에 가면 검사할 수 있지만 영의 눈을 밝혀주는 병원은 세상에는 없다. 나의 눈부터 어두운지 밝은지 살피고 심사하라는 말이다. 밝으려면 성경에 보면 ‘안약을 사서 발라라’ 했다. 자기 눈이 밝은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허물을 잘 찾는다. 그리고 언행심사에 자기 단속을 잘 한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단속을 잘 한다. 분위기에 잘 휩쓸리는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자기를 보는 눈이 어두운 사람은 자기의 언행심사를 단속을 못하고 자기가 스스로 고통을 만들고, 또 자기 고통을 자기 탓으로 안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돌리면서 다른 사람을 헐뜯고 깎아내리고 자기 자랑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자고 일어나면 무엇부터 해야 하느냐? 자기 눈곱부터 빼야 한다.
예수님의 눈은 불꽃같다. 그만큼 우리에게 영의 눈이 밝으라는 것이다. 관찰하고 구별하고 심사하고 속지 말아야 하고 바른 길을 가야하고.
36절: 부분적으로 밝거나 어두운 게 아니라 온 몸이 전체적으로 밝다는 것은 관계적인 면에서 하나님 앞에서 언행심사가 막힘이 없다는 것이고 구원이 잘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온전으로 구원을 잘 이뤄간다는 것이다. 모르면 이룰구원이 안 되는 거고. 단순히 세상적 역사적 학문지식을 잘 안다고 그것을 천국복음인양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거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생명과는 먹고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훈과 직결이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세상적인 사상인 선악과를 먹이면 성도들의 영의 성장은 다 죽는다. 성장이 안 된다. 이렇게 되면 그 교회의 인도자는 사단 마귀의 종이 되는 것이다.
큰 성 바벨론이 너무 크기 때문에 멸망을 받은 것이냐?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서 지으라고 한 그 성전보다 바벨론성이 더 커서 하나님이 심통이 나서 불을 질러버린 것이냐? 크고 작은 게 문제가 아니라 교훈의 질이 문제였다.
하나님의 진리본질의 신앙을 모르고는 다른 사람의 신앙을 말을 할 수가 없다. 무슨 말이냐? 정답을 모르고 남의 답을 ‘틀렸다. 맞다’ 할 수는 없다. 내가 정답을 모르고 있는데 다른 사람의 시험지를 보고 ‘틀렸다. 맞다’ 할 수 없다. 그게 이치다. 하나님의 본질을 모르고 다른 사람의 신앙이 ‘옳다. 그르다’ 말을 할 수 없다. 본질을 안다면 말을 할 수 있다. 눈이 밝으면 말할 수 있다.
진리본질을 모르는 사람이 남의 속의 죄가 보이느냐? 안 보인다. 자기 속의 죄부터 보여야지 자기 죄도 모르는데 어떻게 남의 죄를 말할 수 있겠느냐? 귀신들린 사람들이 남의 죄가 보인다고 떠드는 것이다. 알고 보면 그게 자기 죄인데.
마음이 부끄러우면 고칠 생각부터 해야 하는데 고칠 생각은 안 하고 도망갈 생각부터 하고 있다면 이게 바로 된 것이냐? 주님의 손 안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요나가 주님의 손을 피할 수 있었느냐? 달나라 별나라로 올라간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끄집어 내린다.
그러니까 옳은 것을 자기 것으로 삼고 옳게 살면 자기가 옳은 사람이 된다. 정답을 알면 자기가 정답 같은 사람이 된다. 자기가 빛을 들고 있으면 빛 된 사람이 된다. 옳은 것을 버리면 사람이 뭐가 되겠느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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