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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무척 길군요...그러나 이 어두운 밤도 끝날 때가 있겠지요? 그래요 해는 곧 뜰 것입니다. 밝아오는 새벽을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
성경본문 : | 골3:12-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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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 : | 들꽃교회 |
그리스도의 평화 (pax Christi)
골3:12-17
2021.12.26. 성탄절 1주 들꽃교회 주일예배
전한이 최용우
15-17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2.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3.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4.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
5.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와 감사로 친양하라
6.무슨 일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7.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신앙생활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우리의 노력과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가 신앙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뭔가를 노력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행위로부터만 나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숨을 쉬려면 공기 중에 산소가 충분하게 있어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 하나님의 행위가 무엇인지를 오늘 본문이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15절) 앞서 3장 14-16장에 나오는 다섯 가지 덕목들이 실현되어야 할 교회 공동체가 가능할 수 있는 토대가 바로 그리스도의 평강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무엇일까요? 우리말 성경은 헬라어 ‘에이레네’를 평강으로 번역했습니다. 바울 편지에 나오는 인사말을 번역할 때도 ‘평강’으로 번역합니다. 마5:9절은 같은 단어 에이레네를 ‘화평’이라고 번역했고, 예수 탄생의 목자 전승을 다룬 눅2:14절에서는 ‘평화’라고 번역했습니다. 문맥에 따라서 세 가지 다른 말로 번역했는데, 그 뉘앙스가 조금씩 다릅니다.
평강(平康)은 주로 살아가는 게 편안하다는 뜻으로 쓰이고,
화평(和平)은 싸우던 두 사람이 싸우지 않게 되었다는 뜻으
평화라는 번역이 가장 간명하면서도 정확한 번역입니다.
‘팍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라는 말은 로마의 제국주의적 평화를 의미합니다. 정치, 경제, 군사적인 강압을 포함합니다. 초기 기독교는 이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팍스 크리스티’(그리스도의 평화)를 외쳤습니다. 이 평화는 제국주의적 폭력에 저항한다는 뜻을 포함합니다. 이 개념을 오늘날 세상에 적용한다면 ‘자본주의 세상’에 저항한다는 개념이 되겠습니다.
2.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다.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15절)
여기서 ‘한 몸’은 교회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허공에 떠 있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은 바로 이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만 확인될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앞에서 언급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인내 다섯 가지 덕목(골2:12)과 연관해서 생각해보면 그 덕목들은 인간 사이에서 추구되어야 할 것들입니다. 그 인간 사이의 관계는 바로 교회 공동체에서 확인될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기자는 그것을 그리스도의 평화와 연결해서 설명했습니다.
우선 평화가 실제로 가능한지를 생각해보십시오. 개인적인 차원에서 사람들은 평화를 누리지 못합니다. 평화가 아니라 다툼이 우리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평화로운 게 아니라 오히려 불안합니다.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국가적으로 그렇습니다. 먹을 게 부족하기 때문에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소유가 늘어도 그것으로 사람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합니다. 로마의 평화는 다른 나라를 억압적으로 다룰 때만 성립되었습니다. 오늘날 미국의 평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완전한 평화가 실현된 적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에이레네 투 크리스투’는 단순히 마음의 평정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더 근원적인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건져내신 하나님의 구원 사건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원수 관계에서 친구 관계로 변화되었습니다. 원수 관계라는 것은 죄와 죽음을 가리키고, 친구 관계라는 것은 생명을 가리킵니다.
3.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게 하려면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15절)
그리스도의 평화는 곧 하나님과의 평화입니다. 그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우리는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게 되었으며,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는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생명의 능력입니다.
이런 말을 여러분이 자주 들어서 너무 뻔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 사실이 늘 새롭게 경험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경험이 말처럼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선은 예수님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더 깊이 인식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이 온 영혼을 다해서 상대방에게 가까이 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신약성서는 모두 그것을 증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모든 영혼을 기울인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평화에 들어가는 첩경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의 평화가 당신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마음과 영혼을 지배하게 하라는 말입니다. 문제는 이런 말씀대로 사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거냐 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절실하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세상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내 마음과 영혼을 주장하게 하려면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마음에 평화가 깃듭니다. 기쁨이 깃듭니다. 그래서 감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습니다.(롬12:1-3)
4.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과 영혼을 주장하게 하려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가득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지혜로 피차 가르치기도 하고 권면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16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디모데후서3:10-17)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성경은 인간에게 유익한 책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합니다. 구원 받은 인간은 반드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끊임없이 성숙해야 한다는 것이 바울 신학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삶의 유익과 구원을 주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도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상고하여 삶의 유익을 얻으며 확실한 구원 가운데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공부하고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수많은 기회를 만들어서 제공해야 합니다. 주일낮 한번 예배를 드리는 신앙으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풍성하게 거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그 속에 거하지 않으면 지혜를 얻을 수도 없고 그리스도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을 주장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5.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와 감사로 찬양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과 영혼을 주장하게 하려면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16절)
여기에서 ‘찬양’은 ‘예배’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 사건에 가까이 가는 방법의 하나로, 이것이 가장 핵심적인 것인데, 예배를 말합니다.
기독교 영성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좀더 진지하게 생각하십시오. 초기 기독교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만약에 예배가 없었다면 기독교는 일종의 철학이나 사회운동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겁니다. 지금도 그렇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긴 합니다. 기독교에 그런 요소가 없는 건 아니지만 본질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배를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예배를 열광주의, 율법주의, 냉소주의로 접근하면 곤란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생명의 신비인 영광을 돌리는 지고지선의 종교의식입니다. 마르바 던은 <고귀한 시간 낭비>라는 책에서 이 부분을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예배는 돈벌이도 아니고 취미생활도 아니기에 낭비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것보다 고귀한 시간 낭비입니다. 자녀들에게도 바른 예배 참여를 가르쳐야 합니다. 당장은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예배에 정기적으로 참여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영적으로 큰 차이가 납니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 경험이 그 사람의 영혼을 바르게 키우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의 평화에 이르는 가장 중요한 길입니다. 단순히 교회에서 모이는 예배 시간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삶에서 골로새서 기자가 말한 것처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놀라운 방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6.무슨 일을 하든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과 영혼을 주장하게 하려면, 무슨 일을 하든지 내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예수의 이름으로 하라고 합니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17절) ‘예수님의 이름’은 기도할 때만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교훈은 말에나 일에나 무엇을 하든지 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행실의 근본 원리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라는 말은 주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사용한다는 것인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헌상할 때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라고 인정하며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헌상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온전케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헌상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품으셨던 하나님 나라의 진전에 대한 소망을 우리의 마음속에 품고 드려야 합니다. 즉 하나님 나라가 내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과 나의 일에서 우선순위의 가장 앞에 있다고 하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면서 하나님 앞에 헌상을 해야 합니다.
이런 것이 있어야 비로소 우리가 드리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상달됩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것을 기뻐하시고 주님의 거룩한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드린 부족한 것들이라도 영광스럽게 사용하시고 드린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과 영혼을 주장하게 됩니다.
7.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내 마음과 영혼을 주장하게 하려면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17절) 다시 한번 감사를 말합니다.
감사의 생활은 드리는 생활이며, 동시에 축복받는 비결이입니다.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되도다”(행20:35)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영적인 은혜와 더불어 범사에 육신이 잘되는 축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38에서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믿고 감사하는 생활, 드리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 차고 넘치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몸으로 감사의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건강의 축복으로 채워 주시고 물질을 드려 감사할 때 경제적인 축복을 주셔서 생활에 부족함이 없는 윤택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범사에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주장하는 참된 기쁨을 소유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풍성한 말씀에 거하여 시와 신령한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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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1.The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두란노)
2.정용섭 <그리스도의 평화 & 그리스도의 말씀>(골3:12~17)
2021.12.26. 설교 원고
3.김효성<신약성경강해>p.740-7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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