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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78 추천 수 0 2022.01.10 09:4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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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42-46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142-46: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한 율법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2-45: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실 때 45절에 한 율법사가했으니 율법 전문가가 옆에서 그 말을 들었던 모양이다. 듣고 하는 말이 왜 우리까지 싸잡아 말합니까?’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의 속이 찔린 것이다.

 

이 진리를 공부할 때 목사님들이 많은 찔림을 받는 것 같다. 무슨 말인가 하니 내가 전하는 말을 듣고 한다는 말이 그러면 한국교회가 다 잘못됐다는 말입니까?’ 한다. 어쨌든 하나님의 본질에 입각해서 완전한 목사나 완전한 교인은 없다. 그렇다면 내가 전하는 말이 옳다면 자기는 고쳐가야 하고, 바로 잡아가야 하고, 하나님의 속성적 온전을 향해서 즉,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하나님의 도덕성, 도덕성에는 선 사랑 거룩 진실, 또 하나님의 능력성, 하나님의 능력성은 의와 주권, 그러니까 그 면에 대해 완전한 자는 없으니 고쳐가야 할 우리들인데 고치려고는 하지 않고 왜 한국교회 전부가 잘못된 것처럼 말을 하느냐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질적 면에서 보면 세상 넓은 길로 가고 있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생명 길 좁은 길을 가는 건지, 아니면 세상 길 넓은 길로 가는 건지 분별을 해야 한다. 넓은 길로 가고 있다면 좁은 길로 가는 교회를 찾아가야 한다. 넓은 길로 가는 것 같은데 인정정실이나 직업이나 사업상 이리저리 연결이 돼 있으면 그 사람은 망한다. 하나님 앞에 심판이다. 옳은 교회는 그렇게 찾는 게 아니고 그렇게 다니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옳은 말씀을 들을 때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다 잘못됐다는 말입니까?’ 할 것이 아니라 본질에 입각해서 잘못됐으면 잘못된 거고 바로 됐으면 바로 된 거다. 그게 정확한 거다.

 

본질이란 썩지 않고, 불타지 않고, 지금 내가 가져도 신령천국에서 영원히 나에게 효력성을 주는 것이다. 그게 다 하나님의 것이다. 지식도 그렇고, 지혜도 그렇고, 도덕성도 그렇다. 그런데 교회에서 구하라는 것이 그게 아닌 세상과 세상 것을 구하라고 하다면 이것은 넓은 길이요 멸망의 길이다. 이건 마지막에 불탈 것은 빤한 것이고, 문제는 현재에 있어서 하나님의 백성의 머리가 썩는다. 머릿속에 세상이 가득 들어있으니 생각하는 게 사망적이고, 이해타산 가치평가성 모두가 사망성이다. 영생으로 생명으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옳은 말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는 것은 옳은 말씀에 자기의 양심이 찔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목사님이면서도 목사님의 말씀이 옳기는 옳은데 그렇게 하면 교회가 부흥이 안 된다라고 한다. 아니, 예수님이 너 보고 교회 부흥시키라고 했느냐, 너 하나 똑바로 만들어지라고 했지. 그러니 이건 완전히 세상 판으로 들어가 있는 거다.

 

옳은 말씀을 들을 때 통회 자복하는 회개가 나와야 할 텐데 율법사는 예수님의 말씀 즉, 구원의 말씀에 반박이 들어갔다. ‘너만 제일이냐? 너만 옳으냐?’ 하고.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사함을 받지 못하는 성령 훼방 죄이다. 성령 훼방 죄는 옳은 진리로 통해서 너 고치자하니까 양심에서 옳다하는데도 불구하고 안 고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자면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옳은 것임을 알면서도 그 말씀을 따라갔다는 내가 망하고, 못 먹고 살고, 부자가 안 되고, 교회부흥이 안 되겠는데하는 건 전부가 성령 훼방 죄이다. 이건 못 고친다. 이 성령 훼방 죄는 영원히 훼방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되지 못하게 만들었으니 그 면에서는 그 순간에서는 그 어떤 것도 영원히 회복이 없다. 그래서 사함을 받지 못하는 거다.

 

내일 회개할 것은 내일이고 오늘 회개 못한 것은 오늘이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가고 해가 뜨고 지는 것이다. 오늘 아침에 어제와 똑같은 해가 떴다고 해서 그게 어제 그 해고 어제 그 시간이냐? 아니다. 우리 모두 자기 속의 모든 피부 세포조직이 어제 것과 같은 것이냐? 아니다. 어린아이는 새 것으로 학대 성장으로 들어가고, 나이 든 사람은 그만큼 세포조직이 죽어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어제 죽고 오늘도 죽고, 일단 죽은 것은 회복이 안 되는 거다. 그래서 우리에게 시간을 준 것이다. 영원히 돌이킬 수가 없다. 그래서 46절에 화 있을진저라고 하시는 말씀은 사함을 못 받는다는 말이다.

 

46: 어떤 자들에게 화를 선언한 것인가? 이들은 참으로 고약한 사람들이다. 율법은 성경이다. 모세오경은 성경이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주님 당신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이 성경을 가르친다고 하는 율법사들에게 즉, 성경 전문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전문가들에게 예수님께서 화를 선언했다. 이방인이나 믿음이 없는 자에게가 아니라 율법사에게, 교회를 가르치는, 유대백성을 가르치는 율법사에게 화를 선언했다.

 

그러면 이들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말인가? 율법사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요, 성경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서 의사적으로 하나님께 가까이 인도할 책임을 진 사람이다. 그런데 그 일은 하지 않고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워놓고 자기들은 한 손가락도 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무슨 말이냐? 글자 그대로 봐도 정말 이 율법사들의 인심이 고약하고 악한 사람들로 보인다. 분명히 같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인데 왜 짐을 넘어지도록 지워놓고 나서 짐을 진 사람이 그 짐이 무거워서 넘어져도 한 손가락도 대지 않는가?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해 구체적으로 모르는 것도 죄짐이다. 모르면 사람이 고통스럽다. 짐을 지면 고통스럽듯이 모르면 죄가 되는 거다. 죄라고 하니까 사람에게 나쁜 행동을 했다고 해서? 이건 일반사람들도 다 아는 거고 우리 기독자는 그 정도만 알면 안 된다. 내가 하나님의 것을 모르면 모르느니 만큼 그 사람 속에는 세상 딴 것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모든 생활면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지을 때 세상 것으로 관계를 지어 들어가게 되니 이게 죄가 들어간다. 그러니까 먼저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교인들이 안 믿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을 잘못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고방식으로 죄를 보고 있다.

 

자기가 모르고 못 깨닫고 알지 못하면 그대로 죽으면 모르겠는데 살기는 살아야 하는 것이니 이렇게 살아갈 때 사람들과의 관계성을 짓게 되는 것이니 이때 무슨 마음을 가지고 관계를 짓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해서 보면 전부가 엉터리로 관계를 짓게 된다. 망할 것으로 짓고 있고, 불탈 것으로 짓고 있고, 얻어맞을 것으로 관계를 짓고 있고,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자기는 죄를 지은 줄도 모르고 살게 된다. 그러면서 사람을 해치지만 않았으면 됐다는 거다.

 

학교학생들이 친구들과 싸우면 벌을 받는다. 그런데 공부를 전혀 못해도 상주고 칭찬해주고 하느냐? 사람을 해치지 않았어도 학생이 공부를 못하면 벌을 받는다. 실력이 없으니 벌을 받는다. 그 벌은 열심히 하라고 쇼크를 주는 거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모르면 얻어맞는 거다. 모르면 사건이 왔는데도 그 사건을 왜 줬는지를 모르니까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될는지? 자기 딴에는 해결하려고 했는데 엉터리로 가게 된다. 우리에게 이런 게 정말 많다. 그래서 평생을 고생하거나 평생을 지옥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죄짐이라는 게 뭐냐? 먼저는 모르는 것도 죄짐이다. 이건 잘 믿는 게 아니란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다면 깨닫는 살이 오르고 성장이 돼야 하는데 맨 날 배우고도 맨날 그 타령이라면 그 사람을 어디에 쓰겠느냐? 심부름을 시킬 수가 있나? 가르치라고 할 수가 있나? 아무 것도 못한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성경에 보니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면 모든 민족 위에 머리가 되게 한다고 했다. 머리가 되게 한다는 게 무슨 말이냐? 머리가 되는 게 미련한 사람이냐?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을 부르면서 세상 것을 구하게 하는 것도 죄짐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이건 사람의 머리 위에 짐을 올려놓는 것과 같다. 머리에 짐을 올려놓으면 무겁고 고통스럽고 힘들고 짜증난다. 백성들을 깨닫게 해줌으로써만이 임시에서 영원성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낮은 무식한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올라가게 된다.

 

예수님께서 무식한 제자들을 왜 부른 것이냐? 가르쳐서 깨닫게 해서 세상에도 없는 천국대사로 내보낸다. 하나님의 대사라면 그 머리가 영리한 거냐, 미련한 것이냐? 영리한 것이다. 세상나라에서도 대사를 보낼 때 도덕성이 문란하고 성격 성질이 고약스럽고 미련퉁이를 보내느냐?

 

율법사라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낮은 차원에서 높은 차원으로 질적 면으로 탈출을 시켜서 참 자유로 영능의 실력자로 인도케 하는 책임을 진 사람들인데 그렇게는 못할망정 어떻게 사람이 지기 힘든 짐을 자기 백성에게 지운다는 말이냐?

 

예수님은 창세 이후 마지막 그 날까지 그 누구도 못하는 믿는 자에게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내려오는 유전 죄를 도말해 주셨고, 동시에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은 영을 살려주셨고(중생), 또한 성령으로 성경을 깨닫게 해서 영능의 실력자, 믿음의 실력자로 만들어 주시면서 사망권 아래 들어있는 것을 생명계로 끌어 올려주신다.

 

사망권이란 무엇이냐? 예수 믿으면서도 예수님의 것으로 갖지 못한 것은 전부가 사망권 아래 있는 것이다.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믿기 전의 지식을 자기의 기준적 지식으로 삼지 말고 성경 하나님의 뜻을 기준지식으로 삼고 사는 지식적 전환을 해야 된다는 말이다. 지식적으로 거듭나야 하고, 또한 성품적으로 사람에게 대함이 거듭나야 한다. 그러니까 지혜지식 면이나 도덕성적인 면이나 능력성적인 면에서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지를 못하면 거듭나지를 못했다 그 말이다. 영은 거듭났어도 인격적인 면에서 거듭나지를 못한 것이다. 거듭나지 못한 것은 예수를 믿어도 심판의 짓을 하게 된다. 사망권 아래 거한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 사망권 아래에 있는 모든 속성들을 생명권 안으로 옮겨야 하다. 바꿔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속 성품을 바꿔치는 것. 성령님의 역사가 거듭나게 한다는 것은 바꾼다는 것이다. 하나님 것으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생명권 안으로 영생권 안으로 들어가면, 질이 그렇게 된 것은 구원이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구원이지만 현재 예수 믿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 교훈으로 통해서 하나님의 것으로 들어가는 이것이 이루어지는 구원이다. 성경에서는 예수 믿으면서 예수님의 성격 성질 지혜지식으로 성장이 되는 걸 다 구원이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진리진실로 참 자유를 가지고 다스리게 하고, 다스린다면 그만큼 실력이 붙은 것이다. 그 실력에 따라 죽음 저 너머 신령천국에서 영원히 존귀영광자로 누리게 해 주신다.

 

그런데 율법사들이 자기 백성들에게 즉, 자기 교인들에게 어떤 무거운 짐들을 메게 했을까? 율법 외에 장로들의 유전까지, 그러니까 진리정신으로 유전이 아니라 인간들이 만든 유전, 조상들이 만든 유전, 안 해도 될 것을 하게 했다.

 

오늘날 우리교회는 안 하고 있고, 또 안 하는 교회도 많은데, 교회에서 추도식을 하면 안 된다. 이건 성경이 아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고르반 사상이 있는데, 부모에게 할 것을 안 하고 하나님께 했으면 부모공경을 한 것으로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게 어떻게 되는 거냐? 부모에게 할 것은 해야 하는 건데, 만일 부모가 몸이 아픈데 그 병을 고칠 돈을 하나님께 바치면 부모의 몸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 섬기는 실습을 부모로 통해 하는 것인데 이건 부모를 무시한 것이고 돌보지도 않는 것이다.

 

자식들은 부모공경을 할 줄 알아야 하다. 모든 좋은 은혜는 위로부터 온다. 부모공경을 할 줄 모르고 부모를 생각할 줄 모른다면 너도 부모가 돼 봐라. 네 자식은 개차반이 될 거다. 너보다 한 술 더 뜰 것이다. 그래서 부모 자기감정으로 자식을 가르치거나 자식을 위한다 하지 말고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가르치라는 것이다. 자식의 기를 죽인다고 성질대로 두면 그 자식이 그대로 크면 그 기가 가만있겠느냐? 오죽하면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교육법도 가르쳐 주셨을까?

 

나는 한 번도 부모에게 안 맞았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는 네가 성질이 좋으냐?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자기는 부모에게 안 얻어맞았으니까 다른 사람으로부터 꾸중도 안 듣겠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듣겠다는 것이다. 이게 얼마나 못된 거냐?

 

그리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율법사들은 마음중심을 씻는 것보다 떡 먹을 때 손을 안 씻는 것을 죄인처럼 취급한다. 이거 참 문제다. 죄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고, 또한 그 불순종 상태에서 자기의 성격 성질을 못 고친 채 사람과의 관계를 지으면서 일반적으로도 남을 해코자 했을 때 이게 다 죄다. 이걸 더 크게 느껴야 하는데 이 율법사들이 자기 속은 안 쳐다보고 예수님께서 손을 안 씻었다고 해서 그걸 죄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손을 안 씻는 것은 그걸 미끼로 하게 해서 그들에게 교훈을 들려줘서 그들의 속을 지적해주고 고치게 하려고 안 씻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볼 때 예수님과 죄인들이 같이 식사하는 것을 죄로 보고 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하면 안 되느냐? 자기 집에 안 믿는 부모형제가 있을 텐데 그러면 안 믿는 부모형제와 가족들과는 식사도 안 하고 잠도 같이 안 자느냐?

 

그리고 이들은 성도들에게 성경에도 없는 것을 하나님께 맹세를 시켜서 그걸 이행치 않으면 죄인이라고 하고 있다. 율법에도 없는 격식을 만들어서 성경처럼 굳혀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이레에 두 번씩 금식기도를 안 하면 죄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두 번 이상 금식을 하면 의인이 되느냐? 40일 금식을 하면 엄청난 의인이 되느냐?

 

그리고 이들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백성들을 속이고 있다. 철학은 헛된 속임수다. 선악과 먹고 나온 타락되고 저주받은 세상철학 거기에다 성경구절을 포장하는 것. 율법사들이 그렇다. 이들은 자기의 속은 주님께서 보실 때는 다 썩었는데 성경을 잘 안다는 것으로 포장이 돼 있다. 예를 들면 꼭 그렇다기보다도 사람 속은 안 고쳐졌는데 성경구절을 많이 외우면 그 사람이 믿음이 좋아 보이느냐, 안 좋아 보이느냐? 좋아 보인다. 말하자면 그런 식으로 포장이 돼 있다. 속사람이 안 고쳐졌다 그 말이다.

 

헛된 속임수는 자신들의 신비로운 체험을 내세워서 백성들을 미혹하는 것. 성격 성질이 하나도 안 고쳐졌는데 신비로운 체험을 했다고 하면 믿음이 대단한 것으로 보여진다.

 

영적 진리신앙 사상이, 생명 길 좁은 길로 가는 이 옳은 사상이 유전이 돼야 하는 건데 이것이 아닌 눈에 보이는 활동적 표면적인 유전은 외식이 돼 버린다. 표면적으로 가면 외식이 된다. 위주가 그렇게 된다. 그러니 이건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신 목적과는 정 반대적 신앙이다.

 

이들은 성경에도 없고 하나님의 뜻도 아닌 것을 하나님 앞에서 맹세시켜서 그걸 지키게 하고, 안 지키면 죄라고 했는데, 사람을 그런 데다 맹세를 시키면 안 되는 거다. 우리는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야 한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선서를 하는 건데, 그런데 헌금을 얼마 바칠 것을 미리 써서 내게 하면 IMF가 걸리면 어떻게 할 거냐? 돈에 대해 맹세를 시키면 안 된다.

 

그런 것은 맹세보다 하나님 앞에 할 마음이 있으면 있을 때 하면 되는 거고, 없으면 못하는 거다. 오늘 최대한 하면 된다. 맹세보다 이게 훨씬 더 좋다. 맹세를 해 놓으면 나중에 그게 짐이 돼서 맹세한 걸 이루게 해달라고 기도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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