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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는도다.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05 추천 수 0 2022.01.18 09: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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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46-51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146-51: 가라사대 화 있을찐저 또 너희 율법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 저희를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이와 같이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으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저희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 더러는 죽이며 또 핍박하리라 하였으니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46: 율법사들이 성경에도 없는 짐을 지운다. 성경에도 없는 짐이 뭐냐?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그 머리통 속에 예수 믿기 전의 세상정신이 들어있고 어깨에 들어있고 한데 교회는 하나님의 진리본질로 사람을 깨닫게 해서 그 짐을 풀게 해 주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에게 오는 자는 가볍게 해준다고 했다. 그런데 율법사들은 짐을 지운다. 이걸 다른 면으로 보면 세상 속화된 교회가 성도들을 자꾸 열심 충성봉사 하라고 내모는 게 짐이다.

 

기독교는 사람이 깨닫는 것만큼 알아지고, 알아지는 만큼 모든 면에서 일처리가 바로 들어가기 때문에 깨닫게 되면 쉽다. 그런데 어렵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무겁다는 것인데, 그런데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뭘 이루라. 예배당을 짓는다. 헌금을 가져오라. 빈자리를 채워야 한다하며 자꾸 끌어 모으게 해서 짐이 되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교회에 빈자리를 채우려고 하면 어떤 성경구절을 이용을 하느냐? ‘내 집을 채워라성경구절을 그렇게 해석을 해 버린다.

 

세상 속화된 인도자들은 늘 세상을 소원 목적적으로 말을 하고, 모든 정신이 그 쪽으로 다 갔고, 그리고 그 축복을 받으라고 안수하고 기도를 한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이건 좋게 말해서 기독교라고 하는 하나의 종교가 된다. 우리는 기독교이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이게 천국복음이요, 이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다.

 

목사님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져 가는 천국복음을 전할 때 성도가 거기에 소속이 되어야 그 입장에 설 수가 있는 거다. 소속이 안 되면 그 입장에 안 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에게 소속이 안 되면 자기의 정신이 어떻게 신앙입장에 세워지겠느냐? 안 되는 거다.

 

사회에서도 어느 단체든 그 모임이 어디로 향해서 가느냐를 보고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과 같을 때 , 내가 같이 가야겠다이렇게 되는 거다. 그렇게 해서 같이 가는 거기에는 의논도 같이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소속의 그 입장에서라야 그 노선으로 가게 되는 거다. 그런데 소속도 아니고 입장도 아니라면 어떻게 그들과 손을 잡고 의논이 되느냐? 안 된다. 세상도 자기 세상이라야 말을 하고 일을 같이 하는 거지 자기 세상이 아닌데 어떻게 같이 하겠느냐?

 

쉽게 말해서 밥은 여기서 먹으면서 일은 딴 집에 가서 공짜로 해주면 어떻게 되느냐? 이건 이치적으로 보면 정신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목사라는 사람이 그런 분이 있다. 말씀은 여기서 받고 일은 딴 데 가서 하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이건 그 사람이 아무리 진리를 들어도 성령님은 그 마음이 거룩한 마음이 아닌 것을 안다. 성령님은 거룩한 사람을 잡고 당신의 복음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성령님이 나를 잡고 일을 하는 거지 내가 성령님을 잡고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성경에 보면 너희들이 성령을 받았느냐?’ 하니까 안 받았습니다.’ ‘그러면 성령을 받아라한 게 있는데 성령이 물건이냐? ‘성령을 받아라하는 이 구절을 보고 그 말의 뜻을 몰라서 성령을 물건처럼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으로 생각들을 하다. 육본주의 인본주의 세상주의로 나가는 교인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들려주면 거기에는 성령의 역사가 들어간다. 그런 면에서 성령의 역사를 받아라그 말이다. 교훈을 바로 받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건 모르고 성령을 자꾸 물건처럼 얘기를 한다.

 

성령을 받아라하며 입김을 내 품은 데가 있느냐? :에 있다. 입김을 내품는 것은 너희들이 나의 기운으로 살라하는 뜻을 말하기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처음에 만들어질 때부터 하나님의 입김으로 즉, 성령의 기운으로, 성령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어놓고 당신의 입김을 불어넣은 것이다. 아닌 말로 코로 들락날락하는 콧바람도 하나님께서 거둬 가면 끝난 것이다.

 

47-48: 율법사들이 무슨 악을 행했다는 것이냐? 조상들은 선지자를 죽였고, 율법사들은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이 말의 의미는 이 율법사들은 시대는 달라도 구약 때의 조상들과 정신이 똑같으니 어찌 너희들은 그렇게 한 통속이냐?’ 그 말이다. ‘내가 죽일 테니 너는 갖다 묻어라하는 식의 한 통속이다.

 

구약시대 때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람인데,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고 회개케 하고 준비를 시켜서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게 하는 것인데 이 선지자를 죽여 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앞서 말한 그 면이 돼 나오지를 못한다. 그러니까 앞서 말한 선지자로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실 것이 전부가 무효화 된다. 무효화 돼버리면 영리하고 똑똑한 백성이 되겠느냐, 어리석은 백성이 되겠느냐? 어리석은 백성이 된다. 그러니까 죄만 짓다가 그 일생은 끝나는 거다.

 

구약시대 때의 그걸 그대로 현재로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은 자기에게 선지자인데 자기가 그 면을 죽여 버리면 자기는 미래를 알 수가 없다. 선지자를 죽이면 자기의 미래는 흑암이 된다. 암흑이 된다. 그 이치를 알아야 한다. 구약의 그 역사를 들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이 이치를 말씀해 주시는 거다.

 

예수님 당시 때의 신약시대 율법사들은 하나님께서 모세로 통해 주신 율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율법의 원 뜻을 밝혀주는 예수님의 말씀에 양심이 찔리면서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을 죽여 버렸다. 그들은 예수님 부활 승천 후에 40년이 지나서 하나님의 형벌에 사라졌다. 역사가 이걸 증거 한다.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것을 알게 하심은 예수님을 죽인 그 자기는 자기의 구원이 죽는다는 것이다. 예수 믿으면 자기에게 구원인데 자기를 구원해 주실 그 예수를 죽였으니 자기의 구원은 죽는다. 그렇게 되니 이제 율법의 해석이 안 된다. 구원을 죽여 놓고, 예수를 죽여 놓고 어떻게 율법이 해석이 되겠느냐? 안 되는 거다.

 

이렇게 되면 쉽게 말해서 성경이 해석이 안 되니 인간 자기를 인간으로 만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도 모르게 되는 거다. 무엇 때문에 나를 인간으로 만들어 놓고 무엇 때문에 세상만사를 다 거치게 해서 죽음의 선을 넘어가게 하는지 그걸 모른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이 면을 전혀 모른 채 무조건 축복을 달라는 사람이 한두 사람이냐? 거의 모든 사람이 자기 기도 들어달라고 산이나 들이나 기도원이나 할 것 없이 악을 쓰고 있지 않느냐? 이는 형벌의 사람이다.

 

율법 속에는 우리의 이룰구원의 이치가 들어있는데 이것을 무시하는 신앙은 이룰구원이 없고 예수를 믿어도 예수 믿는 효력이 없다. 쉽게 말하면 지옥 가고 천국 가고 그걸 말함이 아니고 예수라는 학교에 들어갔는데 예수공부를 못하면 말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지만 아무 것도 알지를 못하니 학생들 같으면 졸업을 해도 아무 것도 모르는 것과 같이 된다. 그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이 집사도 많고 강도사도 많고 목사도 많다.

 

이런 말을 들을 때 그러면 한국교회가 다 그렇다는 말이냐?’ 하는 사람이 있다. 내가 한국교회가 다 그렇다고 했느냐? 또 내가 한 말이 나만 제일이라고 했느냐? 들을 때 잘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본질로 말을 하는데 그 말을 받는다면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긍정적으로 돼서 믿음의 사람으로 들어가는 거지만 그걸 안 받는 사람에게는 부정적으로 구원이 이뤄지지 않는다. 구원이 안 이뤄지면 학교를 다녀도 공부를 못하는 것과 같아서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이 내려지게 돼 있다. 이용물이 돼버린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종교의 한 종파다. 이들은 유전을 중요시 하고, 모세율법을 엄수하고, 사람들에게 보이기를 좋아하고, 주님보다 돈을 더 좋아한다. 그리고 자칭 의롭다 하고, 교회를 핍박하고, 성경을 곡해하고, 예수 믿는 것을 방해하고, 예수님을 시험하고 핍박한다. 예수님께서는 이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아. 마귀의 자식들아. 소경이라. 외식자들이라고 하면서 화를 선언해 버렸다.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이걸 보면서 그들처럼 믿으라는 것이냐, 그들처럼 믿지 말라는 것이냐? 그들처럼 믿지 말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사두개인들이 또 있는데, 이들도 유대종교의 한 당파다. 이들이 신약시대에 제사장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제사장이면서 부활을 시인을 안 했다. 이런 꼴이 어디 있느냐? 그리고 천사도 영도 시인을 않는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걸 다 시인을 한다. 유대 안에서도 그렇다.

 

성경에 보면 적그리스도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한다고 했다. ‘할 때는 그리스도와는 정 반대이다. 그러면 이 말의 뜻이 그가 적이면서 그리스도라는 말이냐? 그러니까 진짜 그리스도는 예수인데, 저쪽에서도 내가 예수라하고 있으니 예수님께서 그걸 어떻게 보시겠느냐? 만일 유대인들이 투표를 한다면 어느 쪽에 투표를 많이 하겠느냐? 적그리스도 쪽에 많이 찍는다. 오늘날 신앙정신을 보면 그런 게 많다.

 

적그리스도라고 하는데 이 적그리스도가, 가짜 그리스도가 예수님을 향해서 적이라고 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볼 때 자기가 적그리스도이면서 예수님을 향해서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건지? 예수님이 진짜 종들을 통해서 적그리스도를 향해 저 자가 적그리스도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는 자기가 자신을 향해 나도 그리스도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 거냐? ‘은 그리스도의 일을 안 한다. 그러니까 그 내용 면에 들어가서 보면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령의 열매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이 일을 하는데 적그리스도는 이단자들이요 거짓된 자들이기 때문에 진리를 대적하고 나오는 자들이므로 성경을 가지고 세상 복 복하고 돌아가게 된다. 세상은 불에 탄다. 그런데 적그리스도는 그것을 참 복처럼 말을 한다. 그게 거짓이다. 영적으로 말하면 이게 전부 사단 마귀 귀신들의 일이다.

 

점쟁이들을 볼 때 점 안 치고 무당 짓 안 할 때는 멀쩡하게 보인다. 그냥 볼 때는 멀쩡한데 그러나 그 정신 마음속에는 항상 악령의 감화성이 있다. 그 기운이 늘 돌고 있다. 누가 돈을 가지고 와서 점 좀 봐 달라하면 그 기운을 짜내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도 가만 보면 기도하면서 막 용을 쓴다. 자기 스스로 막 기름을 짠다.

 

기도할 때는 용쓰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기도를 하면 마음이 편하고 좋을 텐데 세상 어떤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후라이팬에 기름이 닿듯이 뭐가 바삐 돌아가서 달달 볶으니까 주시옵소서하며 밤새도록 달라고 한들 주기는 뭘 주시느냐? 오히려 지혜를 구하는 게 더 빠르다.

 

제사장직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사두개인인데 그들은 부활도 인정하지 않고 천사도 영도 시인을 안 한다. 그러니 세상 판이다. 바리새인들은 성경에 있는 것을 다 시인을 하면서도 예수님을 안 받아들인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그 예수를 안 받아들인다. 지식적으로는 성경을 잘 아는 것 같은데 성령님의 영감의 감화성으로 속성적으로 들어가서는 안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지식만 가지고 남 정죄를 잘 하고 예수님을 정죄하고 헐뜯고 한다.

 

그 다음에 헤롯당이 있다. 이 헤롯당은 헤롯 왕가의 사람들이다. 헤롯왕의 아들 헤롯 안디바스, 손자 헤롯 아그립바 1. 이들은 세례요한을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고 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핍박할 때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합세를 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같이 있을 때는 바울이 설교를 하면서 이들을 나눠놓는다. 이게 이해가 되느냐? 사도바울이 바리새파인데 전도할 때 설교할 때 나는 바리새파라하며 예수 부활 때문에 내가 핍박을 받는다하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서로 다툼이 일어났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주님을 핍박할 때는 사두개인들 바리새교인들 그 다음에 헤롯 당파, 그 다음에 로마가 합세가 된다. 그러니까 각자 자기들 나름대로의 사상과 법을 갖다가 예수님에게 적용시켜서 예수님을 죽인다. 그걸 알아야 한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하나님의 말씀, 진리생명의 말씀, 좁은 길로 가는 의사단일의 적중성으로 간다. 이게 생명 길이다. 당신 한 분의 의사에 맞춰서 걸어가는 것, 이게 예수님이 걸어가신 길인데 세상에 속한 교인들은 우리의 이 말씀을 받지를 못한다. ? 우리는 철두철미한 천국주의로 나가는데 그들은 세상주의로 나가니까 성경을 달리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떤 성경을 가지고도 세상 쪽으로 해석을 한다. 예를 들면 사랑하라. 구제하라. 선을 행하라할 때 세상 식으로 해석을 한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그런 거는 형편이 되면 하면 되는 거다.

 

우리의 해석은 하나님의 본질로 들어간다. 하나님은 선이시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그 본질이 인격 면으로 들어가서 그 다음에 그게 사상화 성품화 되면 사람에게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시간에 따라 선이 나가는 것이 다양한 방편으로 나온다.

 

안 믿는 사람은 자기를 도와주고, 잘 해 주고, 업어주고, 등 두드려주고, 돈을 주고 해야 선이라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걸 선으로 보느냐? 그들은 선악과 따먹은 지식으로 그렇게 하기 때문에 아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과, 바리새인이 돈을 주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아이가 말을 잘 들을 때 사탕을 사 주는 것과, 말을 안 들을 때 사탕을 사 주는 것과는 의미가 다른 거다. 마음속에서 움직이는 걸 우리가 보는 거다.

 

우리 입장에서 오늘날 일반교회들을 보면 예를 들어서 여호와의 증인들을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인다. 안 받아들이면서도 여호와의 증인이 뭐가 틀린 줄을 잘 모른다. 내가 볼 때는 둘 다 선악과 따먹은 지식의 개념으로 들어가 있으면서 각자 주장이 다르다.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도 우리가 여호와의 증인을 안 받아들인다. 그리고 세상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이고 옛사람 부패성적이고 마귀적인 가르침을 하는 일반적인 교회의 교훈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그런 일반적인 교회에서 우리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마지막 심판 때까지 그들의 입장에서도 우리는 예수님의 것이라하고, 우리도 예수님의 것이라하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막에 심판은 필히 있는 것이다. 서로 다 옳다고 하니까 대 재판장이신 분이 내려와서 심판을 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재판인데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재판은 뭘 가지고 하는 거냐? 모양새가 아니라 너희들이 하나님의 본질로 됐느냐, 아니냐?’ 하는 심판이다. 갈대 같은 측량대를 주고 잰다. 속성적으로 재야 되고, 인격적으로 재야 되고, 영감적으로 어떤 감화성을 받았는지 재야 한다. 그런 면에서 가짜냐 진짜냐, 악령의 감화냐 성령의 감화냐?’ 하는 이게 교회에서 돼야 하고, 설교에서 나와야 한다. 틀리면 안 된다.

 

49: ‘이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그러니까 본분에서 지혜는 누구냐? 주님이다. 예수님이 지혜라고 할 때 지혜는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담고 있는 것이다.

 

주님이 선지자와 사도들을 보냈다. 주님이 성육신으로 오시기 전에 이 주님은 선재적 그리스도로서 구약시대에도 계셨다. 이 분이 선지자와 사도들을 보냈다. 선지자와 사도들에게 하늘의 신령한 지혜를 주어서 보냈다. 따라서 선지자와 사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받아가지고 온 것이다.

 

라합에게 두 정탐꾼이 왔다. 사건적으로 보면 그 두 정탐꾼을 누가 보낸 것이냐? 여호수아다. 여호수아 = 예수다. 상징적 계시적인 뜻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구약시대의 여호수아라는 사람을 통해서 두 정탐꾼을 라합에게 보낸 것이다.

 

라합은 술집을 하고 있었으니까 미리 그 소문으로 들었다. 그런데 두 정탐꾼이 온 것은 그에게 구원이 온 것이다. 구원의 소식을 두 정탐꾼이 가지고 온 것이다. 라합으로서는 그걸 살려야 한다. 살려야 라합과 자기에게 소속된 모든 사람들 살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두 정탐꾼이 온 것은 구원이 온 거고, 동시에 지혜가 온 것이다. ‘, 내가 살아야 되겠다. 이제 여리고성이 무너질 텐데 내가 살아야 되겠다그게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으로 약속을 하는 것이다. 그게 지혜다. 구원 속에는 지혜도 들어있고 사랑도 들어있고 다 들어있다. 사건에 따라서 조금씩 강조점이 다른 것이다.

 

선지자와 사도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지혜를 가지고 온 것인데 이들을 잘 영접을 했더라면, 잘 받아들였더라면 하나님의 지혜를 가질 수 있는 건데, 인간을 왜 지었는지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 수 있었을 것인데 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죽였으니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지혜가 없다. 선지자를 죽였으니 미래를 알 수가 없는 것이고, 사도들을 죽였으니 구원에 대해 알 수가 없는 것이고, 하나님이 나의 구원을 위해 선지사도를 보냈는데 다 죽여 버렸으니 어떤 일이 벌어지겠느냐?

 

50-51: 우리가 역사 속에서 정신 마음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도 그걸 지금 자기가 현실적으로 죽여 버리면 어떻게 되겠느냐? 도매금으로 들어갔다.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그러니까 예수 앞에 누구들을 보고 한 말이냐? 바리인들, 율법사들, 종교 지도자들을 보고 한 말이다.

 

그러면 이걸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억울하지 않느냐? 왜 남의 죄를 내가 둘러쓰느냐? 다른 사람이 잘못했는데 왜 내가 얻어맞느냐? 그런 느낌이 안 드느냐?

 

아벨은 가인의 동생인데 이 동생은 목축을 했고, 형 가인은 농사를 했다. 두 형제가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한 후에 형이 동생을 죽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 하나님 앞에 둘 다 예배를 했는데 왜 동생을 죽이는 일이 나왔느냐? 그러니까 형이 예배를 잘 드린 건가, 잘못 드린 건가? 이걸 알아야 한다.

 

이게 지금 모든 교회 교인들에게 해당되는 말이다. 하나님 앞에 예배를 했는데 왜 뛰어가서 동생을 죽이느냐 그 말이다. 그러니까 예배를 잘못 드리면 누굴 죽인다? 동생을 죽인다. 이 안에는 많은 이치가 들어있다. 어쨌든 역사적으로 보면 이래서 아벨은 인류 최초의 순교자가 됐다.

 

스가랴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전 뜰 안에서 요아스 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가랴는 바라가의 아들로서 성전에서 죽임을 당했다. 시간적 역사적으로 사가랴와 스가랴의 이 사건을 보통 같은 사건으로 보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도 이걸 다른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현재 지금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고(사가랴나 스가랴의 사건이 같은 사건이라고 하고. 혹 다른 계시가 나올지 모르니까 그 면은 보류시켜 놓고) 아벨로부터 사라갸까지 오는 사이에 선지자들의 많은 죽음이 있다. 더 나아가서 사도들의 죽음도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을 율법사들 너희들이 다 담당하리라고 그랬다.

 

이게 말이 되느냐? 왜 예수님 당시 때의 율법사들이 가인이 동생을 죽인 것까지 다 당해야 하느냐? 성경에 보면 영적으로 보지 않으면 해석 불가능한 게 참 많다. 일반 역사적 측면으로는 안 된다. 시간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고 사람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데 여기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했으니까 이 세대라는 말속에는 율법사들까지 다 포함이 된다. 그러나 사실 역사적으로 보면 율법사들은 시대적으로 아벨이나 선지자들이나 사가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왜 이 율법사들이 담당한다고 하느냐?

 

그리고 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율법사들에게 너희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였고, 율법사 너희들은 그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는도다라고 했으니까 이 말씀은 시대적 시간적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율법사 너희들이나 너희 조상들이나 영적 신앙 사상적으로 성질이 다 똑같다하는 의미로 율법사들이 예수님을 죽이는 일까지 할 것이라는 뜻까지 포함된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그 말씀하신 안을 들여다보면 교회에서 받는 교훈이 정말 핵심이구나. 자손들이 후대에 내려가면서 재앙을 받고 하나님의 형벌을 받았다고 하면 단순히 불쌍하다고만 보지 말고 안 보이게 내려가는 교훈의 정신이 중요한 핵심이다. 신앙사상이 바로 내려가는 게 핵심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율법사들을 놓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사들은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가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동생 아벨을 광야에서 죽였고, 심지어 전에서 백성들을 위한 중보사역에 수종드는 자리에까지 들어와서 제사장을 죽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이 죽였느냐? 가인이 그랬고, 가인의 가문의 족속들이 가인과 같은 정신 사상이 들어 있어서 그랬고, 그 사상의 후손들이 그랬다. 그래서 이걸 다 통째로 말해서 이 세대 사람들이다. 그 사상과 정신의 흐름의 사람들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그 세대 사람들의 사상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이걸 보면 같은 형제요 같은 가족이요 같은 민족임에도 죽여 버린 것이 가인과 아벨이요, 선지자들을 죽인 것도 모두가 자기 백성들이다. 모두 같이 있는 자들이 죽였다. 같은 백성들이고 같은 형제들이고 같은 나라 사람들인데 죽였다.

 

그렇다면 오늘날 예수 믿는 자기는 신앙 성질적으로 보았을 때 과거에 형제를 죽인 선지 사도들과 같은 사람들의 성질을 가지지는 않았느냐? 있고도 남는다. 없는 게 아니다. 구약 때의 사람들처럼, 신약 때의 율법사들처럼 환난주고 핍박하는 성질은 없는지? 신앙 질적인 면에서 화를 받은 그 세대 속에 들어 있지는 않는지?

 

망한 그런 자들 속에 현재 나와 같은 신앙의 성질을 가졌었는데 그로 인해 그들은 죽임을 당했다. 그러니까 나를 잘 관찰을 해서 내가 그런 성질을 가졌으면 질적으로 그 면으로 흐르는 거기에서, 그 무리들로부터,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거기에서 탈출을 하라는 것이다.

 

내가 화를 받는 신앙을 가졌다고 인정이 되면 그런 화를 받는 그들의 신앙으로부터 탈출을 할 수가 있겠느냐? ‘네가 가진 신앙이 그들의 질과 똑같다했을 때 잘못된 거기에서 탈출을 할 수 있겠느냐? 자기 살 길을 찾아야 하다.

 

성경은 왜 보느냐? 성경이 그냥 옛날얘기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역사를 한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살아계시고, 하나님의 진리의 옳은 말씀의 이치가 자기 속에 떨어지면 자기가 죽을 곳에서 살 곳으로 탈출을 해야 한다. 역사가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보여줬으니 현재 모두가 자기가 가진 신앙이 멸망 받을 그 세대의 신앙의 질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 스스로가 회개하면서 탈출을 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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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91 마가복음 유대교 신학자의 질문 막12:28-34  정용섭 목사  2022-03-08 82
17290 누가복음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눅12:6-9  김경형 목사  2022-03-07 68
17289 누가복음 선한 이웃이 되라 눅10:25-37  강승호 목사  2022-03-06 152
17288 디모데전 경건한 그리스도인 딤전4:6-10  전원준 목사  2022-03-03 259
17287 요한복음 나는 어떤 믿음인가? 요3:1-15  강승호 목사  2022-03-01 274
17286 요한일서 서로 사랑하라 요한1서4:7-12  강승호 목사  2022-03-01 121
17285 누가복음 두려워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눅12:4-7  김경형 목사  2022-03-01 124
17284 고린도전 하나님의 비밀 맡은 일꾼 고전4:1-21  전원준 목사  2022-02-10 196
17283 누가복음 때가 임박하니라 눅21:25-36  강승호 목사  2022-02-09 142
17282 누가복음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눅12:1-5  김경형 목사  2022-02-07 89
17281 누가복음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눅23:33-43  강승호목사  2022-02-03 161
17280 고린도전 하나님이 함께하는 일꾼 고전3;9-23  전원준목사  2022-02-03 191
17279 고린도전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 고전1;1-16  전원준목사  2022-02-02 221
17278 누가복음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 눅12:1  김경형목사  2022-01-31 98
17277 마가복음 우리 눈을 뜨게 하소서 막10:46-52  강승호목사  2022-01-25 331
17276 누가복음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고 눅11:52-54  김경형목사  2022-01-25 95
17275 사사기 의인의 삶 삿11:29-40  강승호목사  2022-01-20 210
» 누가복음 저희는 죽이고 너희는 쌓는도다. 눅11:46-51  김경형목사  2022-01-18 105
17273 고린도전 자랑스러운 교회 되자 고전 1;10-31  전원준목사  2022-01-13 254
17272 욥기 욥의 회개 욥42:1-6  정용섭 목사  2022-01-12 155
17271 히브리서 속죄와 구원 히5:1-10  정용섭 목사  2022-01-12 123
17270 마가복음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 막10:17-22  정용섭 목사  2022-01-12 115
17269 욥기 욥의 재난 & 욥의 믿음 욥1:1, 2:1-10  정용섭 목사  2022-01-12 140
17268 마가복음 생명과 지옥 막9:42-50  정용섭 목사  2022-01-12 142
17267 야고보서 지혜 그 ‘너머’ 약3:13-4:3  정용섭 목사  2022-01-12 129
17266 잠언 지혜 & 그 너머 잠1:20-33  정용섭 목사  2022-01-12 113
17265 마태복음 놀람의 근거 막7:24-37  정용섭 목사  2022-01-12 103
17264 마가복음 진정한 삶 막8:27-38  강승호목사  2022-01-10 173
17263 누가복음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눅11:42-46  김경형목사  2022-01-10 78
17262 요한복음 자비의 못 요5:1-8  강승호목사  2022-01-06 178
17261 고린도전 축복받는 하나님의 교회 고전1;1-9  전원준목사  2022-01-06 269
17260 누가복음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눅11:40-44  김경형목사  2022-01-03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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