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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고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95 추천 수 0 2022.01.25 09: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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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1:52-54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152-54: 화 있을찐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맹렬히 달라붙어 여러 가지 일로 힐문하고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을 잡고자 하여 목을 지키더라.

 

52: 모세로 통해 인간에게 율법을 주신 이가 누구냐? 우리 주님께서 성육신으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선재적 그리스도로 계셨던 주님께서 주셨다. 성육신 되신 예수님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시기 전에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로 계셨다. 이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모세로 통해서 율법을 주셨다.

 

율법을 주신 이 분이 율법사들에게 계속 화를 선언하신다. 재앙을 선언하신다. 그래서 성경을 연구하는 목사님들, 교회의 인도자들은 정말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한다. 주님이 왜 계속 재앙을 선언하느냐? 화를 선언하느냐? 율법사들이 자신들은 지식의 열쇠의 가지고도 안 들어가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까지 막아버리니까 재앙을 선언한다.

 

지식의 열쇠를 누가 가지고 있느냐? 교회로 보면 교회 인도자들이다. 물론 그 때 당시 율법사 서기관들이 절대권 비슷하게 가지고 있었다. 중세기로 와서는 천주교에서 교황만이 성경을 보고 일반 평신도들은 성경을 못 가졌다. 평신도가 성경을 해석하면 이단시하고 큰일 났다. 심지어 루터가 성경을 많이 연구해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을 하자 천주교에서 그를 죽이려고까지 했다. 이 분이 아무리 성경을 봐도 인간의 사죄는 교황이 하는 게 아닌 것을 깨달아서 천주교의 가르침에 반기를 들고 진리를 선언한 것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보면 그 이전에도, 종교개혁 이전에도 선구자들이 있었다. 그 분들이 성경을 해석을 하니까 이것이 천주교와 대적이 되어서 그러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도 했고, 또한 이미 죽어서 땅에 묻힌 것도 파서 뼈를 불사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지식의 열쇠 즉, 성경을 가지고 해석하는 게 주로 보면 목사님이나 신학박사나 교회를 가르치는 분들이 많이 가지고 있다.

 

율법사들은 모세오경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구약의 모세오경이 있다. 그래서 교회의 인도자와 지도자들은 이 율법의 뜻을, 하나님의 뜻을 잘 풀어서 백성들에게 가르칠 의무와 책임이 있다. 하늘나라의 일을 잘 가르쳐 줘야 한다. 하나님 뜻을, 마음을, 정신을, 도덕성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의중을 잘 가르쳐 줘야 한다.

 

율법사들은 메시아를 늘 기다리고 있었으니 성경을 보고 깨달아서 장차 주님이 성육신으로 오시면 백성들이 그 분을 잘 영접할 수 있도록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고 오히려 완전히 주님을 죄인취급을 해서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그리고 얘기는 조금 다른데, 지금 교회 인도자들 중에는 일반이치도 모르고 영적 이치도 모르는 분들이 성경을 해석을 한답시고 예를 들자면 구약시대에 가인이 어떻게 해서 나왔느냐? 성경에 보면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런데 하와가 뱀과 관계를 해서 나왔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렇게 되면 이치가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이치로 따져 들어가면 그렇게 되면 가인을 누가 만든 게 되는 거냐? 마귀가 만든 것이 되니 뱀 마귀가 인간을 창조한 자가 된다. 과학적으로 봐도 사람과 짐승 사이에서 사람이 태어나느냐? 이건 다른 거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그런 말을 한다. 이건 정말 뱀이 웃을 일들이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뱀 자체를 마귀로 말하는 우스꽝스런 교인도 있다. 그러면 가룟유다에게 처음부터 마귀라고 했으니까 이 가룟유다를 마귀가 만들었다는 말이냐? 세상과 인류를 창조하신 분은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런 말들은 이치적으로도 틀리고 자연법칙적으로도 틀리고 생리법칙으로도 틀리는 말이다.

 

그런 말들을 하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말할 건덕지도 없는 거다. 그런 것들과 비교를 하면 이단의 말은 신사적이라고 할만하다. 그러니 그게 짐승의 소리냐, 사람의 소리냐? 그럼에도 교인들이 전혀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런 말을 듣고 있고, 그런 사람이 목사가 돼서 가르친다고 하고 있으니 어떻게 된 거냐?

 

정말 앞으로 교회를 가르치고자 하는 목사님들은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교회 인도자가 잘못되면 교인들의 영적 성장 면은 깡그리 망하는 거고, 망하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벌이 들어가는 거고, 그 다음에 그런 자들이 교회를 한다고 떠드니까 교회가 귀신의 집이 된다. 귀신이 들려서 그 모양들이다. 그러니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해 보여도 누군가가 자기의 마음을 쑤시면 귀신의 성질이 튀어나온다. 그 때는 사람처럼 안 보이고 짐승처럼 보인다.

 

덧붙여서 말한다면 예수 믿는 사람은 일반적인 성격 성질도 빨리 고쳐라. 어떤 사람이 와서, 어떤 상황이 와서 자기를 쿡 찌를지 모른다. 그 때 바로 믿은 건지, 잘못 믿은 건지 드러나게 돼 있다. 그럴 때 남 쳐다보지 말고 얼른 자기를 쳐다볼 줄 알아야 한다. 안 그러면 은혜를 못 받는다. 혹 은혜를 받았다고 해도 그 한 장면을 통해서 다 둘러 엎어버리게 된다. 맛있는 반찬에 국과 밥을 상에 차려놓으면 고약한 성질을 가진 사람은 그걸 둘러 엎어버린다. 그런 것과 같다.

 

율법사들은 문자로 된 글자로 된 그 면만 고집하여 지켰는데, 또 한 문제는 백성들이 자기들처럼 안 하면 다 죄인으로 취급을 했다. 오늘날도 주기도문을 외울 줄 아는 사람은 의인이고, 주기도문을 외울 줄 모르는 사람은 죄인이냐? 주기도문을 외울 줄은 몰라도 주기도문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면 주님은 그 사람을 주기도문을 외운 것으로 인정해 주신다.

 

주님이 주기도문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라고 주기도문을 가르쳐준 것이지 외우라고 가르쳐준 게 아니다. 그러니까 못 외워도 주기도문의 사람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고쳐진 사람이다. 그러나 주기도문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는 못한 채 외우고만 있으면 주님이 그 사람을 칭찬을 하겠느냐?

 

천국에 가면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을까? 주기도문으로 만들어진 것이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교회는 예배를 시작할 때나 마칠 때 주기도문을 안 외우니까 이단이 아닌가하는 사람도 있다.

 

하루를 믿었던 열흘을 믿었던 십년을 믿었던 진리이치를 바로 깨달아서 다른 교회의 교훈을 정신 사상적으로 구별 분별이 들어간다면 그건 마귀의 정신이 들어가서 분별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로 분별이 되는 것이다. 구별 분별은 성령의 역사라야 되는 것이다. ‘우리와 다르다가 아니라 구별 분별이 들어간다. ‘저 정신은 어디로 흘러가고, 저렇게 성경을 해석하면 어떤 결과가 되겠구나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되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하와가 뱀과 붙어서 나온 게 가인이라고 하는 말이 무슨 소리인지 구별 분별이 들어가게 된다.

 

37절 이후로 보면 그들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속마음을 지적해 주실 때 신앙양심의 소리에는 귀를 막았고, 백성들에게는 자기들도 지지 못하는 짐을 지워놓고, 또 이들은 돈을 좋아했고, ‘높이 대접받는 자리에 내가 앉아야지했다.

 

앉는 자리도 높은 자리가 있다. 일반상식이지만 옛날에 어른들을 문 옆에 앉게 하느냐, 아랫목에 앉게 하느냐? 그런데 음식을 탐하는 자들은 음식자리를 모른다. 왜 그러냐? 높고자 하고, 대우만 받고자 하는 사고방식이 들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식사자리에 청하면 우르르 가서 서로 몸을 부딪치면서 높은 자리에 앉는다. ‘뭐가 맛있다하면서 거기 가서 턱 앉고 했다.

 

손님을 청했으면 그 사람을 식사자리의 중앙에 앉혀야 한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청해놓고도 맨 가 끝하고도 그 예수님 앞에 몸에 고창병이 든 사람을 앉혔다. 그러니 인간표현으로 말한다면 예수님이 밥맛이 있겠느냐?

 

예수님께서 식사자리에 앉으셔서 왜 37절 이후의 말씀을 하시느냐? 영원 궁극적 영능의 실력 면에 격차가 있기 때문에 그런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 당신을 가운데 안 앉혀서 심통이 나서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에티켓도 영적 면을 생각을 하면서 그 이치에 맞게 지켜야 하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 내가 대접을 받아야지하는 생각으로 살았고, 의인인척 했다. 이 말이 그들이 나는 죄인인데 의인인척 해야지가 아니라 죄를 모르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의사와 뜻을 알 수 있는 영적인 세계는 전혀 못 들어가니 제 삼자가 볼 때에 의인인척 되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성경을 가졌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영적인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바다에서 헤엄을 친다는 것이 무슨 말이냐? 기도하다가 제 혼자서 몸이 붕 뜬다는 말이냐? 그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치의 깨달음에서 이치에 맞게 마음대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이치는 톱니바퀴와 같아서 이치에 이치를 물고 이치에 이치를 물고 나오게 되는 고로 이렇게도 맞고 저렇게도 맞고 딱딱 맞아 들어가는 거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이치의 깨달음에서 사는 게 재미가 있고 마음속에서 잔치가 열리는 거다. 기도해서 그게 아니다.

 

성경도 모르는 사람이 기도해서 입신하고 하는 건 큰일 날 소리다. 그게 무슨 하늘나라에 갔다 온 것처럼 알지만 그건 성경과는 다른 거다. 깨달음의 세계는 기도하면서 몽롱한 게 아니라 영적인 세계를 깨닫는 거다.

 

율법사들은 깨달음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을, 이치를 알려고 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는 자들을 가로막았다.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 그러느냐? 목사들이 그러고 있다. 아닌 말로 성도 중에 성경을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얘기를 해 봐라. 얘기를 할 때는 측량대가 있어야 한다.

 

신앙이라 할 때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미신은 기준이 없다. 이방신을 섬기는 자들은 기준이 없다. 자기 고행이요, 자기 속에서 나오는 열심으로 이러면 잘 봐주겠지한다. 그래서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 거다. 우리 기독교 신앙은 그 분의 의사성에 맞아야 한다. 그래서 깨달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 깨달음은 맞는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당신의 의사성에 단일성으로 맞는 쪽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그러느냐? 그러니 성경을 안 봤다는 말이 되는 거다. 성경을 봤다면 영적인 이치가 나오는 건데 100번을 봤다고 하는데도 그게 안 나온다면 그건 안 본 거다.

 

이들은 백성들을 모두 율법의 행위에 얽매여 놨다. 지금은 다른 면으로 보면 예수 잘 믿는다. 믿음 좋다고 하는 걸 어디에 얽매여 놓느냐? 충성봉사 금식기도 성수주일 십일조, 또 성경보고 전도하고. 이건 다 행동 활동이라는 공통성이다. 여기에는 깨달음은 없다.

 

그런데 성경 깨달음은 행동 활동 아니라 깨달아져서 그런 행동 활동이 나오는 게 옳은 것이다. 못 깨닫고 나온 것은 인간 자기 사고방식으로 나온 것이다. 그래서 깨닫는 게 중요한 거다. 깨닫지 못하고 충성봉사로 자꾸 직분 올려주고 칭찬을 하면 그 사람은 충성봉사로 인한 못된 뿔이 나와서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고 목사와 장로와 싸우고 한다.

 

목사들끼리 싸우면 그게 일반사회에서 말이 되어 돌아다닌다. 그러면 내가 차를 타고 가는데 옆에 앉은 사람들이 에이, 교회들 못 쓰겠다하고 욕을 한다면 그들 옆에 앉은 나에게도 욕을 하는 게 되는 거다. 그러면 싸운 그 사람들이 나를 염두에 두고 싸운 거냐? 그게 아니라 자기 감정 때문에 싸운 거다. 그 바람에 우리교회도, 나도 본의 아니게 욕을 먹게 된 거다. 인간들로 인해 주님이 욕을 먹는데 믿는 나는 욕을 안 먹겠느냐?

 

우리 하나하나 모두에게는 주님의 얼굴이 있다. 주님의 이름이 있다. 그런데 교회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 못한다. 자기 고집대로, 자기 성질대로 믿으려고 하지 주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하는 면은 생각을 안 한다. 그걸 생각하면서 예수를 믿는다면 그래도 신적인 도덕성을 깊이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개인적인 성격이나 성질이나 일반적으로도 고쳐야 한다. 안 고치고 믿으면 누가 욕을 먹겠느냐?

 

53-54: 거기에서 나오심은 바리새인의 집에서 나오신 것인데, 그 집에서 많은 말씀을 들려주셨는데, 거기에서 나오실 때 그들이 예수님께서 식사 전에 손을 안 씻었다고 이상하게 보며 여러 가지 꼬투리를 잡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너희들은 사람들이 그 위를 걸어 다니면서도 모르는 평토장한 무덤과 같다고 했다. 평토장한 무덤이란 봉분을 워낙 밟아놓으니까 길처럼 평평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덤이라서 그 밑에는 썩은 송장이 있다. ‘너희들이 그런 것과 같다고 했다.

 

교회에 다니면 깨달음이 들어가야 하고, 깨달음이 들어가면 그 사람은 능력자가 되는 건데 교회에 오랫동안 다녔어도 깨달음은 없이 직분적으로 닳고 닳아놓으면 그의 속은 마귀 같은 속성이 그대로 들어있다. 진리의 말씀으로 그게 푹 파여져서 드러내져서 진리로 채워져야 하는데 그게 없다. 귀문이 밝고 영의 정신을 보는 눈이 밝다면 이웃교인들의 말을 들으면 그걸 금방 알 수 있다.

 

거짓 종들과 이단자들은 교회에서 잘못된 것이나 사건을 보고 얼마나 꼬투리를 잡느냐? 사실 그런 것들로 인해 교회들이 꼬투리를 잡히게도 생겼다. 우리는 마귀가 어떤 사람들을 붙잡고 쓰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 다음 그들이 채소 즉, 근채의 십일조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렸다고 했고,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시장에서 문안받기를 좋아하고, 선지자들을 죽인 너희 조상들처럼 너희들도 역시 따라한다느니 하면서 이제 창세 이후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죽은 스가랴의 흘린 피까지 율법사 너희들이 담당한다고 하면서 화를 선언했다.

 

왜 그런가? 이는 너희들은 율법사로서 모세오경 성경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율법은 예수님께서 선재적 그리스도 계실 때 모세에게 준 것인데, 율법사들이 이 율법에서 영적인 하나님의 뜻을 부지런히 깨달아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백성들이 잘 영접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는 않고 율법사 자기들도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 깨닫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백성들마저 못 깨닫게 가로막고 있고, 그리고 사람이 지지 못할 즉, 율법사 자기들도 못 지을 감당 못할 큰 짐까지 백성들에게 교인들에게 지워놓았으니 이런 날강도들이 어디 있느냐?

 

오늘날 이런 교회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짐을 지우는 게 뭐냐? 사람이 깨달음을 받으면 이건 예수님 앞으로 점점 가까이 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은 다 나에게로 오라했으니 예수님께로 점점 가는 자는 짐이 가벼워진다. 깨달음이 되니까 사람이 사는 게 쉬워진다. 모르면 짐이 돼버린다. 그러면 어찌 살까?’ 하고 맨날 근심이다. 안 할 걱정 근심도 자꾸 하게 되고.

 

교회에서 교인들에게 왜 짐을 지우느냐? ‘충성봉사 잘 해라. 그러면 부자 된다하는 게 짐이 아닌 줄 아느냐? 정신적인 짐도 있다. 물질적 짐도 있고 책임적인 짐도 있다. 그런데 신앙 면에서는 사람이 깨달아지면 짐이 없어진다. 짐이 있다고 하는 것은 걱정 근심이 들어 있고, 수심이 들어 있고, 세상 원망불평이 들어 있는 거다. 그 사람은 짐을 진 사람이다.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는 다 짐이 있는 거지만 진리이치의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신앙 영적 면에서 그런 것이 짐으로 여겨지지를 않는다. 깨달아짐으로써 이런 때는 이렇게 해결이 들어가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해결이 들어간다. 그러니 이건 짐이 아니라 지혜에서 나오는 수단이다.

 

그러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자기가 못 받으면 그만큼 어두워져 있고 짐스럽게 사는 것이다. 이러면 사는 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신경을 쓰고 머리 아파한다. 사람이 왜 그렇게 사느냐? 세상에서 뭘 한들 못 살겠느냐? 사람이 워낙 많아서 뭘 해도 먹고 살 수는 있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뭘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 많이 있는 것이다.

 

37절 이후로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초청으로 점심을 드시러 가서 앉으시자마자 책망이 나왔다. 그러니 점심을 드실 사이가 있었을까? 예수님께서 먹을 생각으로 들어 가셨겠느냐? 아니다. 들어가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노만 선언하고 나오셨다. 책망을 하는데 그들이 밥맛이 있겠느냐?

 

책망만 하고 나오신 것은 바리새인의 교훈과 같은 사상에서 내가 나온 것처럼 너희들도 나오라하는 것이다. ‘내가 그런 곳에서 나온 것처럼 너희들도 그런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말고 탈출을 하고 나오라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언행심사가 다 계시다. 예수님의 행동도 하나님의 뜻을 말씀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 바리새인의 집에서 나오셨다는 것은 그런 외식주의 신앙사상에서 나오라는 뜻이다. 우리교인들은 그런 외식적인 사고방식에서 탈출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받는 신앙사상에서 나오라.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또 맹렬히 달라붙는다. 막 질문공세를 하고, 어찌하든 허점을 찾으려고 한다. 오늘날 자기의 신앙입장에서 볼 때 서기관 율법사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이 좋은 사람들로 보이느냐, 나쁘게 보이느냐?

 

그런 사람들은 종교적인 명예와 영광도 있다. 그런 것처럼 한국의 어느 큰 교회다하면 그 교회의 목사님을 훌륭하게 생각하고, 그 교회에 누구도 나가고 대통령도 다니고 하니까 좋은 교회다하는 사고방식의 신앙을 가졌다면 그건 버려라. 바리새인들은 단체도 크고, 유대인들도 알아주고, 로마라는 세상도 알아주고 하니까 다 좋게 본 것처럼 오늘날 교인들이 이방 불신자들도 알아주고, 온 교계가 알아주고,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다니고 하면 좋은 교회로 본다면 주님도 그런 걸 알아주는 거냐?

 

그들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부러워하고 알아주는 것을 다 가졌다. 그러나 예수님은 혼자이시고, 명예도 없고, 부자도 아니고, 건물도 없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쁘냐? 오늘날 자기 신앙이 예수님의 정신으로 살려는 게 없다면 이건 예수님의 그런 조건들이 나쁘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바리새인들처럼 알아주는 사고방식으로 살려는 것이다.

 

그런 사고방식이라면 그런 데로 가야 한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속성을 입고자 한다면 주님을 따라야 한다. 말씀을 영접하고 깨닫고 자기의 인격화로 만들고 해야 한다. 그게 성경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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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60 누가복음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눅11:40-44  김경형목사  2022-01-03 72
17259 로마서 섬김의 축복(신년) 롬 12;10-13  전원준목사  2021-12-30 5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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