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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요한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176 추천 수 0 2022.04.03 19: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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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10-18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대구샘터교회 http://dabia.net/xe/1047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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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보기 : https://youtu.be/9e_AjXGF6vA 

성경본문 : 요한복음 1:10~18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성탄 후 둘째 주일, 2022년 1월2일

 

오늘 설교 본문이 속한 요한복음은 관념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특히 서론 격인 요 1:1~18절은 요한복음 전체를 압축한 말씀이기에 더더욱 관념적으로 들립니다. 제가 이 본문을 얼마나 충실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어렵지만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께서 설교자에게 힘주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오늘의 요절이라 할 수 있는 요 1:12절을 읽겠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말과 그의 이름을 믿는다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와 특별한 관계를 맺는다는 뜻입니다. 결혼할 때 남편은 아내를 맞아들이고 아내는 남편을 맞아들이는 거와 같습니다. 스승과 제자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우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산다는 뜻입니다. 농부의 자녀는 농부의 자녀로 삽니다. 농사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겁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요즘과 달리 성경이 기록되던 2천 년 전에는 아주 밀접했습니다. 왕의 아들은 왕자이고, 딸은 공주입니다. 그들은 왕자답게, 공주답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중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건 뭔가 불편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군요. 젊은이들은 이런 말도 한다고 합니다. “자네 같은 친구가 아직도 교회에 다니다니 놀랍군!” 그렇게 냉소적으로 비칠만한 일들이 교회에서 종종 벌어지긴 했습니다. 그건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말은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의미심장하고 성령 충만하게 산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살기를 원하시지요? 저도 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면 하나님이 누군지를,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기에 하나님을 알고 싶어도 알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에 관한 생각과 말도 서로 다릅니다. 마치 시각장애인이 코끼리의 한 부분만 만져보고 말하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구약성경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을 기록한 고대 유대인들이 택한 방법은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이 곧 하나님의 명령이니까 그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라고 여긴 겁니다. 오늘날 모범생들이 인정받는 거와 비슷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은 생각을 완전히 바꿔서 유대의 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성되었다고 믿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말씀 자체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근거가 무엇인가요?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파격적인 주장을 한 것일까요? 요 1:18절의 대답은 아래와 같습니다. 개역개정 성경 번역이 매끄럽지 않아서 대신 공동번역 성경으로 읽겠습니다.

 

일찍이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다. 그런데 아버지의 품 안에 계신 외아들로서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이 하느님을 알려주셨다.

 

‘하나님 품 안에 계신 외아들’이라는 표현에 두 가지 사실이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품 안’이고 다른 하나는 ‘외아들’입니다. 하나님의 품 안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능력은 사랑이기도 하고 자비함이기도 합니다. 비유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여러 나라의 대사들이 와 있습니다. 그 대사들은 자연인이 아니라 그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기에 특별한 권위와 능력이 있습니다. ‘외아들’이라는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유일하게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름을 붙일만한 다른 이는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만이 “하느님과 똑같으신 그분”입니다. 하나님과 똑같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예수 그리스도에게 하나님의 본성이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을 알려주셨다.”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온전히 계시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요 1:12절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증언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 까다롭게 들리는 설명이었지요? 이왕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적인 문제가 나왔으니 한 걸음만 더 들어가겠습니다. 요한복음의 서론인 1:1~18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에 관한 요한복음만의 고유한 변증입니다. 이를 로고스 그리스도론(logos-christology)이라고 부릅니다. 요 1:1절은 “태초에 말씀이, 즉 로고스가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14절에 따르면 그 로고스는 육신이 되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서 ‘말씀’은 헬라어 ‘로고스’의 번역이고, 육신은 ‘사르크스’의 번역입니다. 로고스와 사르크스는 정반대 개념입니다. 로고스는 이성, 언어, 진리, 만유의 원리 등등을 가리키고, 사르크스는 질료로서의 육체를 가리킵니다.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는 말은 보이지 않는 신이 보이는 모습을 갖추었다는 뜻입니다. 로고스를 물리학이 말하는 양자나 장력(field force)으로, 또는 동양 사상에 나오는 도(道)로 바꿔도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마리아라는 여자의 몸을 통해서 살과 피가 있는 인간이 되시어 우리와 똑같이 이 세상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독생자의 영광

 

14절의 대답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타난 독생자의 영광입니다. 그 독생자가 바로 공동번역 성경이 18절에서 말하는 외아들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어떤 역사적 위인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고유한 영광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경험했기에 그를 아버지의 독생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도 비유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어떤 한 사람이 여러분에게 유일무이한 존재로 경험될 때가 있을 겁니다. 대개는 젊은 시절 사랑에 빠졌을 때 그런 경험이 일어납니다. 상대라는 그 존재가 빛으로 경험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영광이라는 단어가 함축하는 뜻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14절은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말합니다. 독생자의 영광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은혜와 진리의 발현입니다. 그 은혜와 진리는 유대인들이 전심전력으로 붙들었던 율법과 대립합니다. 17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율법은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을 기준으로 삼는 관점입니다. 관점이 다른 겁니다. 율법은 예를 들어서 수능 점수로 학생을 판단하는 관점이라면 은혜와 진리는 오히려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을 판단하는 관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온갖 수고를 통해서 성취하는 율법의 수고와 자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에게서 발현하는 은혜와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까.

 

이를 오늘 설교 제목과 연결해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하나님과 종 관계를 맺는 방식이고, 은혜와 진리는 하나님과 자녀 관계를 맺는 방식입니다. 즉 하나님의 종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종이 감당해야 할 의무가 아니라 아들과 딸이 누려야 할 자유와 결속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은 점수를 잘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서 오는 기쁨에 휩싸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그렇게 사십니까? 모든 구체적인 인생살이에서 종이 아니라 자녀처럼 삽니까?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충만하십니까? 쉽지 않지요? 늘 왔다 갔다 하지요? 저도 비슷합니다.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권세

 

12절 말씀에 아주 특이한 표현이 나옵니다.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권세는 헬라어 ‘엑수시아’의 번역입니다. 엑수시아는 영어로 authority, 또는 power를 가리킵니다. 공동번역과 새번역 성경은 ‘특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어떤 단어가 엑수시아에 가장 가까운지 제가 판단하기 어려우나 가장 일반적인 의미로 본다면 ‘권위’라는 단어가 괜찮아 보입니다. 특권도 괜찮습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려면 면허증을 따야 합니다. 그 면허증이 권위입니다. 변호사가 되려는 사람도 자격증이 있어야 합니다. 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격증이 있다고 해서 권위가 저절로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자격증은 형식적인 권위만 보장합니다. 자격증보다 더 중요한 건 능력입니다. 능력이야말로 엑수시아가 가리키는 참된 권위입니다. 특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엑수시아를 주셨다는 말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능력은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려고 노력해도, 그러니까 자녀로서의 권위가 있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써도 큰 효과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개는 그런 노력을 포기하거나 자기의 작은 성취를 자랑하면서 삽니다. 그런 노력으로 닿을 수 있는 최상의 삶은 바리새인의 삶입니다. 다른 사람이 존경하고 부러워할 만한 수준에 오르는 겁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미 잘 알듯이 다른 사람에게 존경받는 자리에 올라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인생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건 엑수시아가 가리키는 능력도 아니고 권위도 아니고 특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능력을 갖추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관계는 연인관계와 비슷해서 다른 사람이 개입할 수 없습니다. 여기 명의가 있다고 합시다. 그의 권위는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의학 지식에서 옵니다. 다른 의사가 감당하지 못하는 병을 정확하게 진단해내고 치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체스의 최고수는 다른 사람이 볼 줄 모르는 길을 미리 볼 줄 압니다. 프로 축구의 고수는 축구공의 흐름을 다른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보고 처리할 줄 압니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알고 더 깊이 들어갈 때 그 분야에서 권위를 확보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갈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위를 갖추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예수에 관해서 얼마나 깊이 알고, 얼마나 가깝게 지내시나요? 지난 2천 년 역사를 통해서 그 신앙의 깊이로 들어가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실감하시나요? 바울과 비견될만한 위대한 영적 스승들의 삶이 얼마나 특별했는지 아시는지요? 이에 관해서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리스도교 신앙은 따로 배우지 않아도 된다거나, 그런 지식은 신학자나 목사에게만 필요하지 일반 신자에게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렇게 살아보세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무엇인지 끝내 알 수 없을 겁니다. 교회 생활 외에 인생살이에는 재미있는 게 더 많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몰라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할 분들이 계실 겁니다. 물론 그렇습니다. 요즘 재미있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국내외 여행을 다니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어떤 분은 학문적인 성과를 내려고 하겠지요. 돈을 버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자식 키우는 재미도 있고, 손자와 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으니 인생살이에서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그런 재미의 이면이 있다는 사실을, 즉 그런 재미있는 삶에는 반드시 그림자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다 아실 겁니다. 그래서 4~5세기의 교부였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향해서 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내 마음이 주님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평안함이 없었습니다.”

 

하나님만 집중하는 삶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특권, 권위, 능력이 실제로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날까요? 가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말을 앞세운 채 거들먹거리는 그리스도인들을 봅니다.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게 틀림없다고 허풍을 부립니다. 심지어 자기가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나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그런 증거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이 다 그렇게 살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그런 인생이 보장되는 건 아닙니다. 정말 그리스도교 신앙의 깊이에서 살았는데도 결혼하지 못(않)하거나 자식을 낳지 못하거나, 큰 병에 걸린 사람도 많습니다.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아내는 유명한 악처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 중에서도 비뚤게 나간 자식으로 인해 마음고생 한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능력과 특권은 다른 게 아니라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삶 자체입니다. 그의 영혼이 하나님으로 가득 채워지는 삶입니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게 습관이 되면서 우리 영혼은 산만해질 대로 산만해졌습니다. 없는 걱정도 끌어다가 걱정할 정도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에게 집중한다는 말은 현실에서 거리가 멉니다. 교회 생활에 대한 열정도 우리를 하나님에게 집중하게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방해합니다. 교회업무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영혼의 자유와 안식이 줄어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교회업무에 매달리는 삶과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삶은 같은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게 집중하는지 아닌지를 검증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말씀드린다면 자기 축소입니다. 자기에 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자기가 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겁니다. 자기를 무가치하게 여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에게 영적 촉수를 맞출 때만 진정한 의미에서 자존감이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이게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은 대개가 자기를 강화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인정 투쟁입니다. 인정받지 못하면 실망합니다. 다시 애를 쓰다가 다시 실망합니다. 이와 달리 신앙의 깊이에 들어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삶의 현상은 자기 부정, 자기 무화(無化)입니다. 그래서 그의 영혼은 자유롭습니다.

 

얼마 전에 프랑스에 있는 한 봉쇄 수녀원 이야기를 유튜브로 시청했습니다. 수녀원 건물 바닥에 엎드려 무심한 태도로 물걸레질하는 한 늙은 수녀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자신에 관한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이 하나님께만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아니겠습니까.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런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여러분에게도 주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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