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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출처 : | http://www.mytwelv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0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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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교회09] 세상의 이웃 되는 교회 - 세린교회
박정제 2021.11.01
작은 교회의 모습은 존재하는 수만큼 다양하다. 세상은 크기와 숫자로 ‘작다, 크다’고 쉽게 단정 짓지만, ‘작음’ 안에는 독특함, 아름다움, 소중함이 담겨있다. 세상은 ‘작음’을 무시하며 외면하지만 작음의 독특함과 아름다움은 결코 무시되어서 안 되며 무시될 수도 없다. 작은교회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바로 작음의 가치를 알리기 위함이다.
7번째 교회인 ‘세상의 이웃되는 교회’ 세린(世隣)교회를 소개한다. 세린교회는 작은 교회로서는 이례적으로 26년이란 오랜(?) 역사가 있다. 26년 역사에 3명의 목회자를 모셨고 3대 담임을 맡은 이재형 목사님이 19년째 섬기고 있다. 오랜 시간 작음의 자리에도 부르심의 소명을 따라 부단하게 뛰었다. 수많은 절벽을 경험하며, 긴 절망의 자리를 치열하게 살아냈다. 어떻게 살아냈으며, 어떻게 버텨왔는지 또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지 그 드라마를 시작한다.
‘황량한 광야, 아무리 찾아도 답도 길도 없었지만, 하나님은 그곳에서 별빛을 보게 하시며 여기까지 은혜로 인도하셨다. 그때는 그것이 은혜인지도 모른 채 그 자리를 지켰고, 포기하지 않도록 때마다 별빛을 통해 여기까지 인도하셨다’
이재형 목사님의 고백이다. 목사님은 처음 세린교회 교육사로 사역을 시작했다. 1대 목사님은 ‘세상의 이웃이 되는’ 꿈을 가지고 교회가 정식 개척되기 전부터 시작해 약 5년을 사역하고 은퇴했다. 후임으로 오신 2대 사역자는 전도사로 와서 목사안수를 받고 다른 곳으로 가셨다. 가시면서 후임도 정하지 못했다. 그렇게 후임도 없이 6개월이 지나자 성도들은 교육사로 있던 이재형 당시 전도사를 담임으로 청하였고 전도사님이 수락해 목회가 시작되었다.
‘아직’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담임자가 빈 교회를 바라보며 순종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덜컥 수락하고 교회를 섬기기 시작했다. 바르게 열심히만 하면 되겠지 하고 최선을 경주했다. 그러나 목양의 자리는 만만하지 않았다. 다양한 문제가 생기고 특히 신천지 이단집단 때문에 교회의 주축들이 한순간에 떠나버리는 일이 발생하면서 목사님의 순수한 열정에 위기를 만나게 된다.
초대 목사님때부터 교회를 섬기던 권사님이 계셨다. 서울에서 인천까지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오셔서 15년간 아낌없는 헌신을 해오시던 분이다. 사건의 발단은 권사님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면서였다. 같은 병실 입원 환자의 방문객과 교제를 나눴는데 그 사람이 신천지였다. 당시만 해도 신천지가 드러나지 않았던 시기라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만남은 퇴원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권사님이 신천지 훈련을 받게 되고 과천 본부까지 가게 되면서 15년을 섬긴 교회를 훌쩍 떠나게 된다.
목사님은 신천지에 빠진 권사님을 설득하면서 ‘만리장성 장벽 너머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15년 동안 말씀을 가르친 목사의 말이 통하지 않고 몇 개월도 되지 않은 신천지의 가르침에 따라가는 권사님을 보며 목사로서의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담임목사가 성도를 잘 가르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 찢어진 가슴을 더 난도질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디도서 3장 10절의 말씀으로 목사님을 위로하시고 버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
‘이단에 빠진 사람은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말씀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아무런 희망의 불빛 없는 그 순간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 한 절로 모든 공격과 절망을 버티며 빠져나올 수 있도록 인도하셨다.
그렇게 큰 소용돌이를 경험한 직후 텅 빈 예배당을 견뎌내며 1년여를 섬기니 새로운 영혼들이 전도되어 어르신 여섯 분이 모이는 노인 중심의 목회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기쁨으로 주일 사역을 마친 저녁, 임신 중이던 사모님이 하혈을 시작했다.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받아 보니 유산이었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목사님과 사모님은 누구나 경험하듯 심한 우울감과 불안감으로 한층 더 매서운 겨울바람을 견뎌야 했다. 특히 목사로서 주일은 기대감과 소망의 날이었는데 주일 저녁에 그런 일이 벌어지며 목회자로서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받았다.
그런 목사님과 사모님의 마음을 아셨을까? 바로 다음 날 위로의 천사를 보내주셨다. 월요일 저녁 중년의 여성 성도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그분은 개척교회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교회에 등록하겠다고 했다. 신천지를 경험했기에 경계하는 게 더 자연스러웠지만, 목사님과 사모님은 성령의 감동 속에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물밀듯 밀려와 유산의 아픔을 치유하며 새로운 희망이 솟아났다. 비록 그분은 한 달이란 짧은 기간 머물다가 교회를 떠나셨지만, 목사님과 사모님께 희망을 선물한 소중한 분으로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희망이 솟아날 즈음 감리교단에서 진행하는 뜨레스 디아스를 통해 목사님은 큰 은혜와 감동을 받고 상처를 넘어 새롭게 일어났다. 그 힘으로 복음학교란 훈련에 참여하며 다시 전도에 대한 열정으로 무장하고 다시 시작했다.
“밥 먹고 전도만 했습니다. 밥 먹고 나가서 전도하고,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전도하고, 설날이든 추석이든 전도했습니다. 서른다섯 살 겨울, 큰아이가 젖을 먹을 때였습니다. 한번은 매우 추운 날 아이를 포대기로 싸서 업고 나가 전도를 했는데 아이 얼굴이 빨갛게 얼어붙고 볼이 터져 피고름이 나기도 했습니다. 잘 싸매고 했지만 계속 찬바람을 맞다 보니 그렇게 된 겁니다.”
사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목사님만 나가서 전도를 할까 고민하다가 전도의 열정을 식게 하려는 유혹처럼 생각돼 포대기를 겹으로 싸서 아이를 업고 전도의 현장을 지켰다. 전도뿐 아니라 성도를 섬기는 데 있어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당시 정식 결혼을 올리지 못하고 후처로 살아온 할머님이 계셨는데, 할아버지가 소천하시며 살고 있던 집에서도 떠나야 하는 막막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알콜 중독 상태라서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기도 벅찬 분이었다. 목사님은 할아버지 재산 일부를 받아 임대주택이라도 분양받아 사는 방법을 수소문해 알아냈지만, 할아버지의 자녀들에게 확인 각서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상식적으로 후처에게 재산분할을 하겠다는 각서를 누가 흔쾌히 써주겠는가?
하지만 할머니의 내일이 걱정돼 목사님은 소천하신 할아버지의 자녀들이 있는 제주도까지 달려갔다.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표를 살 형편도 되지 않았지만, 기도하며 기적같이 비행기 삯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렵게 제주도 땅을 밟았으나 목사님을 기다리고 있던 건 문전박대였다. 온갖 욕설과 비난 속에서도 목사님은 간절히 매달리고 또 매달렸다.
누가 보더라도 안 될 일이었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도전한 일이었다. 각서를 받지 못하고 돌아와 실망스럽고 할머니를 대면하기도 민망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다. 하나님은 간절한 종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할아버지의 큰 따님이 전화를 걸어와 가족들의 각서를 받아 보내주겠다고 했다. 할렐루야
단지 할머니의 딱한 사정 때문에 생판 모르는 자신들에게 욕설을 듣고 문전박대를 받으면서도 각서 한 장 써 달라고 울부짖는 목사님의 모습에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그 모습에 감동이 된 큰 따님이 형제들을 설득해 각서를 써서 보내주셨다.
그러나 이런 수고와 헌신을 무력하게 만든 사건이 또 한 번 일어난다. 여섯 분의 어르신이 신천집사(新薦執事) 교육을 마치고 첫 번째 재직 임명을 하기로 한 날이다. 현수막을 붙이고 기쁨으로 선물을 마련하고 설렘으로 임직 예배를 기다리던 주일 날 아침. 시간이 되었음에도 임직자가 아무도 교회에 오지 않았다. 단 한 사람도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목사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
다른 분을 통해 나중에 전해 들은 말이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르신들을 섬기며 그분들을 세워가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다 했는데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니, 가슴을 찢어 내보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까지 사랑으로 섬겼는데 사랑이 없어서 떠난다고 하니 목사님의 황당함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별빛 은혜는 이런 상황에도 놀라운 해석을 만들었다.
“누가 보면 매우 가슴 아픈 사건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죠. 그런데 저는 그때 이게 목회구나, 주님이 이런 일을 만나게 하셨구나. 내가 지금 당하는 이 자리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며 성장케 하시는구나 생각했어요.”
하나님은 고통스러운 자리를 주님을 선명하게 만나는 자리로 바꾸시며 고통을 버텨내도록 인도하셨다. 나중에 몇 분이 돌아와 그날의 진상을 알려주었다. 어르신 여섯 분을 전도하는데 결정적인 통로가 됐던 분이 조종한 일이었다. 자신이 더 존중받아야 하는데 그분들과 함께 직분을 받는 것에 불만을 품고 저지른 일이다. 한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사단의 역사가 얼마나 교묘하고 대단한지...... 그럼에도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작은교회 목사님들이 얼마나 가슴을 찢고 있는지 이 글을 쓰는 나도 울음을 터뜨리게 한다.
1년 반 동안 밥 먹고 전도만 했는데 교회가 성장하기는커녕 도리어 깨지는 경험을 하면서 목사님의 자존감도 무너졌다.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내가 하는 일들이 맞는 방향인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목사님은 방향을 찾고자 새로운 배움을 가지며 이리저리 방황하기 시작했다. 특히 다음 세대를 향해 가야 한다는 마음이었지만 어린 시절 선생님이셨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로 다음 세대 사역을 시작하지 못하고 주저하며 그동안 달려온 길에서 조금은 벗어나 자신도 모르는 안식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10여 년의 긴 시간을 이런저런 활동에 참여하며 그토록 받고 싶었던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잃어버린 자존감을 찾을 수 있어 교회보다 이런 활동에 열심을 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생 때부터 출석하며 교회를 지키던 고등학생 성도가 친구들이 있는 다른 교회로 가도 되느냐고 물었다. 어쩔 수 없이 그 친구마저 다른 교회로 보내고 가족만 남게 되었을 때 이젠 정말 교회를 내려놓아야 할 순간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순간 목사님의 마음을 추슬러 주시며 이젠 아무도 없는 지하교회를 지키도록 인도하셨다. 자신을 부르신 첫 자리가 교회였음을 가슴 깊이 고백케 하셨다. 비록 지하교회지만 이 자리가 자신을 부르신 자리라고 말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아무도 찾지 않는 지하교회를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지켰다. 날마다 성경 읽기와 기도로 묵묵히 자리를 지켜내는 가운데 하나님은 긴 시간의 돌아옴을 기뻐하시며 세린교회에 조금씩 길을 열어가기 시작하셨다.
토요학교 그리고 이음진로도서관
무엇을 할 수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별한 아이디어도 없었다. 그저 성경을 통독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알고자 그 어느 때보다 예배당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주님과 깊은 교제를 시작했다. 그렇게 목사님과 사모님이 다시 일어났을 때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라마나욧선교회를 만나며 처음으로 세린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고민하기 시작했고, 세린교회의 목회 철학을 세우며 어떻게 세상의 이웃이 되는 교회가 될 것인가 고민했다. 지금까지는 그저 전도하고 예배하고 성경 공부를 하는 곳이었다. 방향을 모르고 열심만 가지고 목회를 했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세린교회를 세우신 하나님의 뜻인 ‘세상의 이웃’이 되기 위해 다가가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도전한 것이 토요학교다. 학교에서 방치된 아이들을 위해 토요학교를 열어 아이들의 친구가 되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으며 강도를 만나 위험한 상황을 만났던 한사람의 이야기가 코로나라는 강도를 만나 건강한 놀이시간과 교육의 기회를 상실할 수도 있는 아이들의 이야기로 느껴졌고 이들을 위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친구가 되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목사 호칭을 포기했다. 쉽지 않았지만, 세린(世隣), 즉 세상의 이웃이 되어야 하기에 아이들의 친구처럼, 삼촌처럼 다가가려 한 것이다. 목사라는 호칭을 포기하고 다가가니 아이들이 서서히 문을 열고 토요학교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교회 구조도 완전히 바꿨다. 오래된 장의자를 다 버렸다. 실내 운동장처럼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채워가기 시작했다. 돕는 손길을 통해 이런 사역을 할 수 있는 힘도 하나님은 허락하셨다. 한주 한주 아이들이 모이는 모습에 흥분하고 아이들과 함께 친구가 되면서 또 그 아이들로 세상의 이웃이 되도록 하기 위한 몸짓도 함께 만들어 가며 교회가 되어가는 뿌듯한 감정을 경함하게 됐다.
그러나 코로나 방역 4단계로 기쁨 넘치는 아이들과의 만남인 토요학교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하려고만 하면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전화 통화로, 공원에서 일대일로 아이들을 만나며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렇게 몸부림치며 토요학교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던 2020년 겨울, NGO 땡스기브와 연결이 됐다. 코로나 상황에서 토요학교로 아이들이 모이는 공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세린교회를 찾아왔고, 예배당을 도서관 공간으로 리모델링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코로나로 모이지 못하는 시간 동안 하나님은 놀랍게도 새 일을 행하셔서 부모와 학교에서 방치된 아이들의 도서관을 세워주셨다. 코로나 기간을 기적의 타임으로 바꾸신 것이다. 목사님도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며 아이들과 지역의 이웃이 되기 위해 구체적인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나도 보이지 않던 앞길이 왜 그리 많이 보이는지 그 모든 것이 손에 잡히며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갈 세상의 이웃되는 교회의 모습에 오늘도 가슴이 울렁인다. 코로나가 끝나기만 하면 강도 만난 아이들의 이웃이 되는 공간으로 멋지게 출발할 것이다. 세린교회는 도서관 이름을 고민하면서 희망이 있는 미래와 아이들을 이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음진로도서관이라 정했다. 세상의 이웃이 된 세린과 함께 천국과 이어지는 곳이 되기를.
다시 생각해 보아도 길도 없고 특별한 아이디어도 없었다. 다만 하나님을 놓아야 한다고 외치는 세상의 소리를 쫓지 않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붙들었다. 비록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부족했지만 믿음으로 몸부림치며 주님이 주신 작은 별빛 하나로 그 자리를 버텼다. 이제 하나님은 홍해에 길을 내듯, 광야에 샘을 터트리듯 놀라운 기적으로 세상을 하나님과 잇게 하는 세상의 이웃되는 세린교회로 세워가신다. 앞으로 그 기적은 계속해서 놀랍게 일어날 것이라 믿는다.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별빛 은혜로 이끄신 세린교회는 이제 세상의 이웃이 되기 위해 길 되신 주님을 따라 영혼들에게 별빛처럼 보여주는 기적의 길을 만들어 주는 교회로 세워져 갈 것이다. 길이 보이지 않고 힘겨움에도 주님의 부르심 때문에 버티며 고민하는 작은 교회 사역자들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진정 당신들이 이 시대의 진짜 목사다.’
박정제 living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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