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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항해하면서 발견한 다시 읽고 싶은 글을 스크랩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이 워낙 넓다보니 전에 봐 두었던 글을 다시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그래서 스크랩할만한 글을 갈무리합니다. (출처 표시를 하지 않으면 글이 게시가 안됩니다.) |
| 출처 : | http://www.mytwelve.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1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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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교회14끝] 탄광촌에 꿈을 만드는 교회 - 신평화교회
박정제 2022.02.08
라마나욧선교회는 작다는 것이 아픔과 불행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와 혁명을 만드는 최적의 자리라 믿는다. 예수님께서도 작은 자리에서 작은 사람들과 함께 교회를 설립했기 때문이다.
라마나욧선교회는 세상의 시각에 저항해 작은교회의 신문지 한 장으로서 교회가 하나님과 세상을 향하여 포기하지 않고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난 10년을 함께 했다. 그동안 열두 개 교회 이야기를 통해 주님께서 이끄시는 교회의 다양성과 통일성, 그리고 그 진정한 힘을 소개하고 싶었다. 필력의 한계로 교회의 주인이신 주님을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고 종에 불과한 목사님의 이야기로만 마친 때도 있어 아쉽다.
작은교회 이야기의 마지막은 41년 동안 태백산 골짜기에서 자리를 지켜온 신평화교회다. 1980년 6월 29일, 탄광에서 일하던 분들이 세운 교회에서 여덟 가정이 분립 개척한 교회로 ‘평화교회’로 개척했다. 전임 목사님이 부임하고 교회 앞 도로가 ‘신태백로’로 지정되면서 신(新)자를 더해 신평화교회로 개명했다.
탄광촌이 활성화되었을 때는 기도가 뜨겁고 열정적인 교회로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러나 탄광촌이 쇠락하면서 사람들이 떠나고 어쩔 수 없이 노인들만 남겨진 태백산 자락의 초라한 교회로 변해갔다. 김주백 목사님이 부임할 때 교회에는 장로님과 권사님, 몇몇 젊은 집사님과 성도님들까지 20여 명이었다.
2015년 11월 8일 주일. 김주백 목사님이 4대 담임목사로 오신 후 신평화교회의 의미를 물었지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요한복음 14장 27절을 근거로 ‘신평화’를 정의했다. 세상에서 경험하지 못한 하늘의 평화를 경험하는 교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 14:27)"
신평화교회에 부임하기 전 하나님은 목사님을 24년에 걸쳐 깊은 고난의 터널을 지나게 하셨다. 목사님 본인이야 어려서부터 고생했으니 괜찮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고생하는 모습은 견딜 수 없는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목회 외에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고 부름의 소망을 붙들고 달려왔다. 긴 시간의 광야 길에도 얼마든지 포기할 이유가 많았지만, 주님이 써 주실 것을 믿고 말씀에 전념하며 기도의 무릎을 꿇고 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사역지가 준비되었으니 가라.’
1주일 후, 놀랍게도 신평화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목사님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부임지가 ‘태백’이라는 소리에도 주저함과 두려움이 전혀 없었다. 사모님은 서울에서 자라 농촌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고, 당시 아이들의 나이는 스물, 열일곱이었다. 태백으로 가면 여러 가지로 불편하고 힘들 거라는 걸 알았지만 모두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야 한다며 순종해 주는 가족들이 있어 더욱 행복했다. 목사님은 긴 시간의 단련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믿음으로 그곳이 빈들이든 산골이든 상관없다고 외치며 탄광촌으로 달려온 것이다. 부임할 당시의 목사님 나이는 48세. 하나님 앞에 결단하며 고백했다.
‘주님 여기가 저의 마지막 목회지입니다. 저는 이곳에 살려고 온 것이 아니라 죽으러 왔습니다. 복음을 이곳에 뿌리고 죽겠습니다. 주님 저를 사용해 주소서.’
그런 마음을 담아 첫 사례비 전액을 하나님께 감사예물로 드렸다. 그러나 현실은 쇠락해가는 탄광촌에 있는 교회,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지역과 소통이 단절된 교회의 목사였다. 교회 내부적으로는 목사와 성도 간 불신의 골이 깊었다. 어디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었다. 그러나 목사님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에 먼저 모범을 보이며 최선을 경주해 갔다.

인간적으로 무엇을 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제일 먼저 기도하는 목사가 되었고, 저녁에도 기도 시간을 정해 하나님을 섬기는 목사의 모습을 보이며 묵묵히 예배를 준비했다. 전임 목사님이 70세에 은퇴하셨기에 40대 젊은 목사님의 열정이 신선했을 수 있다. 하지만 목사님은 인간적인 신선함이 아니라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이 주는 은혜의 신선함과 평안함이 예배에 넘쳐흐르기를 기도했다.
아울러 교회 안 잘못된 관행과 습관화된 신앙의 잡초도 제거해 갔다. 몇몇 성도님의 저항도 일어났다. 그러나 마지막 목회지임을 선언하고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고자 죽기를 각오한 목사님의 열정에 성도들은 서서히 따르기 시작했다. 교회와 영혼을 향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예배 속에 흐르기 시작하니 견고한 벽처럼 막아섰던 목사와 성도 간 불신의 벽이 서서히 무너지고 예배에 대한 기대가 생겨났다.
내부를 바꾸는 것과 함께 외부적으로 신평화교회가 이단이라는 잘못된 소문을 바로잡기 위해 3개월 동안 노력했다. 성도들을 통해 백석 교단에 속한 건강한 교회라는 사실을 알리면서 간판도 새로 교체하며 지역민들과 소통하면서 이미지를 바꾸어 갔다. 무엇보다 지역 어르신들의 삶에 필요한 교회가 되도록 동네 어르신들에게 다가갔다.
응급상황에 처한 어르신을 병원까지 이송하는 역할부터, 글을 잘 모르거나 눈이 어두워 관공서에서 민원을 보는 일이 어려울 때 친절히 도와드렸다. 여름철 밭에서 일하는 시기에는 재정을 쪼개 참을 준비해 다가가 대화를 나누며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회가 있는 지역은 태백산 줄기에 위치해 겨울이면 눈이 많이 내렸다. 목사님은 허리를 다치기 전까지 4년 동안 300미터나 되는 거리의 눈을 홀로 치우면서 동네 어르신들이 다치지 않고 다니실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교회와 목사가 자신들의 앞마당만 챙길 게 아니라 이웃을 내 몸처럼 생각하면서 그들의 앞마당을 쓸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르신들이 정류장에 앉아 계시면 시내 가시냐 묻고 차로 목적지까지 모셨다. 여름철 밭에서 일하다 쓰러지는 분이 계시면 어르신을 업고 차에 태워 병원에 모셔다드렸다. 그렇게 지역 사람들과 소통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신평화교회는 이단이 아니고 목사님이 참 좋은 분이라고 소문이 났다. 교회와 목사님에 대한 좋은 인식으로 소문이 나자 지역에서 영혼들이 구원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까지 15명 이상의 영혼이 전도되어 태백산 깊은 골짜기에 있는 교회에 부흥이 일어났다. 목사님은 말한다.
“‘목사가 죽기로 각오하고 복음의 열정으로 헌신하면 어디서든 영혼 구원은 일어납니다. 목사에게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복음의 열정이 무디어지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부터 공장에 다녔다. 1983년, 열일곱 살 때 부천 삼정공단 봉제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할 때의 일이다. 당시 봉제공장의 삶은 밤낮 없이 일하는 곳이었다. 다행히 사장님의 배려 속에 야학을 공부하며 미래의 꿈을 꾸었다. 힘겨운 공장 일에, 야학까지 하면서도 예배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그 과정을 이겨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에서 기도하던 중 갑자기 혀가 말리며 방언이 터지고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샘솟았다. 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몰려오며 그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바뀌게 되었다. 그는 그때 하나님을 향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삶은 힘겨웠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목사가 될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세월은 지났다. 군에 입대하고 제대가 2개월 남았을 때 제대 후 어떻게 살까 고민하다가 작정 기도를 시작했다. 특별한 응답은 없고 작정 기도 마지막 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1)’는 말씀을 받았다. 그러나 다시 바쁜 삶에 이끌려 구체적인 결정을 못 한 채 삶에 내몰려 바쁘게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목사님의 고백을 들으시고 기억하셨기에 그를 인도하기 시작하셨다. 제대 후 만나는 주변의 신앙인들 특히 어머님이 다니시던 교회의 식구들과 전도사님들은 한결같이 신학교 가서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강권했다. 주변 사람들의 말에 기도원을 일곱 번이나 올라 주님이 부르셨으면 확신을 달라고 기도했다. 당시 하나님은 목사님의 기도에 대답하지 않으셨다.
1990년. 서울 숭인교회 주일 저녁 예배에 참석했을 때였다. 시골교회를 섬기는 목사님께서 오셔서 선교 보고를 하시며 말씀을 전하는 순간 김주백 목사님은 자신을 부르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주의 복음을 위해 살겠습니다.”란 고백을 구체적으로 하게 되었다. 그렇게 신학을 하고 목회자가 되었다.
목회자가 되면 바로 길이 열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목사님을 기다리고 있던 건 24년 광야 길이었다. 모세의 40년에 비하면 절반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이 기간 하나님은 모세처럼 목사님의 젊음과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허비하게 하셨다. 그 답답함과 고통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왕궁에 있던 모세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기다리게 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김주백 목사로 태백의 탄광촌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렇게 24년 메마른 광야에서 자신을 내려놓게 하셨다.

목사의 길을 포기하면 그때의 젊음으로 무엇인들 하지 못했겠는가? 그럼에도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목사님의 의지가 아니었다. 모세가 이드로의 집에서 처가살이하며 40년을 버티게 하셨던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그렇게 붙드신 것이다. 태백산 자락 신평화교회를 맡기기 위해서 말이다. 인간의 가능성을 내려놓고 주님을 의지하는 단련의 시간이 있었기에 쇠락해가는 지역, 태백이라는 산지 교회를 ‘나의 마지막 목회지’라고 선언하며 죽기를 각오하고 섬길 수 있었던 것이다. 24년간 목사님을 단련하시며 주님이 흘리셨을 눈물이 보인다. 당신의 종이 24년을 버텨내도록 외면하셨던 주님은 얼마나 우셨을까?
목사님은 그렇게 하나님의 연단 속에 24년을 견디고 일어났다. 24년이란 시간은 젊음과 시간의 허비된 무력한 시간이 아니라 쇠락한 탄광촌을 일으키는 영적인 지도자로 세워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희망 없는 탄광촌 마을, 사람들에게 외면당한 교회, 그래서 스스로 주저앉아 버린 교회를 일어서게 할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은 무려 24년 전부터 김주백 목사로 광야 길을 걷게 하셨던 것이다.
오늘도 많은 목회자가 김주백 목사님처럼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시간을 믿음 하나로 버텨내고 있다. 도저히 길이 없을 것 같고, 기회가 오지 않을 것처럼 보여 포기하고 싶은 유혹이 많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난 24년간 김주백 목사님과 함께하셨고 신평화교회에서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교회를 붙들고 기도하던 성도님들과 함께하셨다. 24년을 버틴 목사님과 40여 년을 견디며 신평화교회를 위해 기도하던 성도들이 만나 일으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앞으로 더욱 기대된다. 목사님은 기도하며 꿈을 외친다. ‘이곳은 열대야가 없는 청정지역이기에 힐링 지역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인구가 계속해서 줄고 있지만, 이제는 힐링이 필요한 사람들이 모이는 마을이 될 것이라고 외친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 에덴동산 같은 전원교회로 신평화교회를 세워갈 것이라 당당히 외치며 기도한다. 아울러 지금 있는 성도들이 연로하시기에 교회에 실버타운을 세워 성도들을 천국까지 인도하는 교회로 세워갈 계획도 세우고 있다.

우리 자신에게는 방법이 없기에 엎드려 기도할 뿐이다. 걸어가는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 되는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며 하나님이 하실 일을 믿음으로 바라본다. 그렇게 말씀과 씨름하고 기도하며 당당하게 나가자 알콜 중독자가 치료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등 다양한 일들이 일어나 힘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주님을 깊이 경험하며 목사님과 신평화교회는 불가능해 보이던 탄광촌 교회와 지역에 희망의 등불을 켜고 있다.
24년 고난은 보물을 만든 가장 빠른 길이었다. 오늘도 언제까지인지 모를, 앞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넘고 있는 많은 사역자와 성도들에게 외친다.
고물로 버려지지 말고 보물로 버텨내라고. 당신을 향한 위대한 하나님의 뜻이 있다고.

박정제 livingd@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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