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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수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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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성경 속에 많은 사건들이 있는데, 그 사건 속에 우리의 인격 혹은 성품이 이룰구원,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있는 이치들이 박혀 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안에는 그들의 소원도 목적도 취미도 간구성도 이해타산도 가치판단 평가성도 들어 있으니 우리는 이런 것을 하나님과 비교해서 자기를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이렇게 할 때 예수 믿는 신앙정신이 슬기롭게 되고 지혜롭게 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된다. 성경의 한 사건 한 사건 속에는 우리의 이룰구원의 많은 도리가 포함되어 있으니 믿는 우리는 이것을 깨달아서 자기의 현실에서 구원을 이뤄가야 한다.
기브온 족속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멸하라고 명하신 가나안의 일곱 족속 중에 하나인 히위족에 속하는 거민인데, 이들이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가나안의 일곱 족속에 속하는 여리고와 아이를 정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여호수아에게 와서 자신들은 먼 곳에 사는 족속으로서 이스라엘과 화친을 하러 왔다고 속여서 여호수아가 그들을 멸하지 않겠다는 화친을 맺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와서 가나안 땅의 족속과의 전쟁에서 하나 하나 이긴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역사로 된 복음소식을 들은 거다. 그래서 기브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스라엘에게 죽지 않기 위해 싸우려고 한 게 아니라 변장을 하고 여호수아에게 찾아와서 화친을 하자고 했다. 여호수아가 그들과 화친을 한 후에 그들이 가나안 땅에 사는 족속임을 알고 나무 패며 물 긷는 종을 삼았다. 이 일 후로 기브온 족속들은 군말 없이 이스라엘의 종노릇을 잘 했는데, 여호수아가 그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는데도 나중에 사울이 그들을 쳤다.
우리가 이 사건의 역사를 보면서 그 때로 가서 보면 여호수아가 기브온 족속들의 말만 듣고 받아들여야 했느냐, 하나님께 물어보아야 했느냐? 물어봐야 했는데, 그러면 물어본다는 게 뭐고, 그들을 받아들인다는 게 무슨 뜻일까? 이 사건은 지금의 우리교회에 주는 말씀이고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말씀이니 표면적 액면적인 이 역사는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적용이 되는 거다. 그 때의 역사 속의 사람들의 정신과 사상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를 보면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는 거다. 성경을 역사로만 알면 자기의 현실을 통해 이룰구원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기브온 족속들이 자신들이 살려고 여호수아 앞에 와서 화친을 하자고 했는데, 이것을 교회로 가지고 와서 보면 예수 믿는 사람이 성경을 표면적 액면적으로 알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도 하고, 소문도 듣고, 교회에서 충성봉사를 하면서 ‘하나님을 열심히 잘 믿겠습니다’ 라고 하는 게 여호수아 앞에, 즉 하나님 앞에 맹세를 하는 거다. 이렇게 하는 게 사람이 바꿔져서 나온다면 옳은 신앙인데 ‘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 병이 낫는다’는 등의 소문을 듣고 자기의 육적인 면이 잘 되기 위해 예수를 믿고 열심을 내는 것은 기브온 신앙이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들의 외모와 말만 듣고 판단을 해서 그들에게 속아서 그들을 살려둠으로서 가나안의 모든 족속을 죽이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되었다. 지금의 우리도 이런 것에 속으면 안 된다. 기브온 족속 속에 들어 있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 육적으로 살고자 하는 거냐, 영적으로 살고자 하는 거냐? 그들이 비록 이스라엘의 종노릇을 하려고 했을지라도 육신이 살고자 한 거다. 그럼에도 여호수아가 이걸 보지 못하고 외모 외형을 보고 그들과 화친을 맺은 것은 큰 실수를 한 거다.
하나님께 물어본다는 것은 기도로 물어본다는 것도 되겠지만 하나님의 신앙의 본질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구원을 이뤄가는 정확한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기브온 족속의 정신을 신앙으로 비유해서 말을 하면 비신앙적이고 세상적이고 비진리적이고 육적이고 옛사람 부패성적이고 마귀적인 사상인데 이것을 보지 못한 채 겉으로만 보고 잘못된 판단을 한 거다.
이 일로 인해 그 후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기브온 족속들로 인해 계속해서 신경이 쓰이게 된다. 후에 사울이 왕이 되었는데 이 사울은 기브온의 후손인데도 기브온 족속들을 죽였고, 이로 인해 다윗 때에 이스라엘이 기근으로 고통을 받기도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기브온 족속의 정신과 사상을 분쇄하고 성질적 성분적 성격적으로 이스라엘성으로 거듭나야 할 텐데 여전히 기브온의 정신과 사상으로 살면 세상과 죄에 종이 된 상태로 고통을 겪게 된다.
이방인인 기브온 족속들은 소속은 이스라엘이 되었지만 입장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여전히 기브온이다. 교인들도 예수를 믿어서 소속은 예수로 되었지만 정신과 사상의 입장은 예수가 아닌 세상의 입장으로 사는 사람이 많다. 기브온 족속들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의 종노릇을 했듯이 영의 눈으로 보면 오늘날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종노릇을 하는 사람이 많다.
성경을 표면적 액면적으로만 보고 믿음생활을 하게 되면 이 사람은 신앙을 육신생활의 소원 목적에 붙이게 된다. 이런 신앙은 그 성격 성질이 세상의 종이다. 이 종은 하나님의 집에서 천국을 받고 그 유업을 상속받을 수 있는 충실한 종이 아닌 빼앗기고 착취당하고 이용당하는 노예로서의 종이다. 오늘날 말세시대의 교회 안에 이런 신앙이 팽배해 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교회로, 현실로 가지고 와서 ‘예수를 믿어도 어떤 신앙을 가진 자들이 세상에 속한 거로구나. 세상에 속한 정신 소원 목적을 가지고 예수를 믿는구나’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신앙은 하나님의 나라는 받겠지만 하늘나라의 것을 상속받지는 못한다. 그리고 이 땅에 살면서 물질의 바람, 사건의 바람이 불면 흩어지고 날아가고 만다. 이 말은 눈에 보이는 교회에서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에 입각된 정신 사상으로 무장이 되지 않는다는 거다.
여호수아와 기브온 사람들과의 약조에는 오늘날 현실에서 되어지는 신앙정신이 다 나와 있다. 기브온 사람들이 여호수아의 집에서 물 길고 밥하고 청소하고 있으니 이스라엘이 어떻게 되겠느냐? 이들의 이방 종교성과 정신이 이스라엘 사람들 속에서 점점 커진다. 이스라엘 속에서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이 아닌 이질성의 정신이 점점 커지면 어떻게 되겠느냐? 우리는 성경 속에서 자기를 봐라. 그러면 눈을 열어주신다.
◆ 거짓된 신앙을 가진 자들은 그 속성이 환경만 조성이 되면 언제든지 이단자들과 손을 잡게 되어 있다. 이단자들은 항상 물질과 결합이 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말을 하면 예수님 당시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세계적인 지도자들인데, 오늘의 원어학자들도 그 사람들을 못 따라갈 정도다. 그리고 성전도 그곳에 하나밖에 없고, 세계 제1의 인물들이 그 안에 다 들어 있다. 예수님을 시험할 정도였으니 어느 정도였겠느냐? 그러나 마귀는 이들보다도 더 고차원적이다.
마귀가 제일 먼저 예수님을 시험했다. 마귀는 영물이다. 마귀가 예수님께 한 시험은 정신 면에서 눈에 안 보이는 고차원적 시험이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이 시험의 대상이 되고, 시험을 당하고, 이기신 것은 당신이 그 시험을 이겼듯이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이기라는 거다. 이런 시험을 이기려면 예수님의 하늘의 지혜지식과 도덕성과 능력성을 가져야 하는데, ‘예수 믿어서 부자 되자’ 하는 정신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이는 마귀의 물질적 시험에 넘어간 상태이니 어떻게 예수님께서 겪으신 고차원적인 시험을 이길 수 있겠느냐? 사람이 아무리 외모적으로 건전하게 보일지라도 정신과 사상을 성질적 성분적으로 구별 분별을 못하면 언제 누구에게 잡혀가고 사기를 당할 런지 모른다.
예수 믿는 것은 사람 속에서 움직이는 영의 활동을 보는 거다. 사람 속의 정신과 사상이 천국을 향한 주님의 정신 사상이 아니면, 즉 하나님의 본질로 된 신앙이 아니면 이 사람은 여호수아가 기브온 족속에게 속아 넘어가서 평생을 골치를 앓듯이 골치 아픈 일생을 살게 된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가나안에 들어가는 대로 그곳의 거민을 씨도 없이 다 죽이라고 했는데 여호수아는 기브온 족속의 말을 듣고 이들을 남김으로서 그와 그의 후손들에게 고통을 남겼다.
오늘날 우리 기독자들은 이 역사를 보면서 자기 안에서 육 주격의 정신이 움직이는지, 새 사람의 영적 구원의 정신이 움직이는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이걸 깨닫지 못하면 자기가 죽을 때까지 기브온의 정신으로 살면서 고통을 겪게 된다.
우리는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구별 분별만 아니라 ‘내 속에 옛사람이 주격이냐, 새사람이 주격이냐? 영의 생각이냐, 육의 생각이냐?’ 하는 걸 봐야 한다.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게 일반적인 좋은 생각인지, 영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생각인지? 어디에 이해타산을 두고 세상을 사는지?’를 알면 이 사람이 신앙의 사람인지, 아닌지가 금방 드러난다.
주님을 따라가는 길은 좁고 험한 길이냐, 넓고 내 멋대로 가는 길이냐? 좁고 험한 길이다. 좁은 길은 생명길이요, 넓은 길은 사망 길이다. 좁은 길을 알면 넓은 길은 저절로 알게 된다. 정답을 알면 틀린 것은 저절로 알게 된다. 좁은 길은 하나님의 의사단일의 길이요, 내가 주님의 그 의사에 맞추는 거다. 이게 생명길이다.
거짓 교회, 거짓 종이란 제 멋대로 세상의 소원 목적을 가진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것이니 이 최고의 것을 가져라’ 이 말이다. 이게 예수 믿는 거고, 예수를 따르려면 이 길을 가는 거고, 영원히 살려면 이 길 가는 거고, 이 길은 죽어도 안 죽는 길이요, 살아 있을 동안에 안 죽는 것으로 믿고 길러나가고 만들어 나가는 게 예수님을 믿는 거다. 이렇게 되는 게 하나님의 온전의 성품을 입는 거다.
성경이 성령님의 감화로 기록이 된 것은 우리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닮아야 하나님의 자녀다. 그런데 마귀는 세상 것을 가지라고 한다. 성경을 못 깨달으면 마귀의 이런 시험에 넘어가게 되고 만고의 멍청이로 살게 된다. 성경은 안 보면서 교회 안에서 성령을 받았다고 떠든다면 이 사람은 일반인보다도 못한 최하의 몹쓸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생각이 건전하면 자기의 집을 다스려 나가고, 사회를 바로 볼 줄 아는 맛이라도 있지만 예수 믿는 사람이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살림을 살 줄도 모르고, 자식들의 밥을 챙겨줄 줄도 모른 채 늘 산 속이나 예배당에 처박혀 있으면 이건 저질 중에 저질이요, 어느 남편이 이런 아내를 좋아하겠느냐?
예수를 믿어도 잘못 알아서 안 볼 피해를 만들어서 보는 사람이 많다. 이는 지혜롭지 못하고 슬기롭지 못해서 그렇다. 우리는 이렇게 믿어서는 안 된다. 인생살이를 실패했다고 생각이 되는 부모들은 성경을 바로 배워서 사람 보는 눈을 제대로 가지고 자녀들에게 바른 교육을 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을 보게 하는 눈은 성경밖에 없다. 하나님은 한 분이요, 주님은 한 분이요, 성경도 하나이니 하나님의 신적 도덕성을 알려주는 것은 성경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려고 이 성경을 주셨다.
주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세상에 오신 것은 세상에는 하늘의 교육이 없기 때문에 하늘의 교육을 하시려고 하늘에서 오신 거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으로부터 하늘의 정신을 배우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영능의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세상의 사건 환경을 동원해서 훈련과 연단을 하시는 거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와서 의식주에 관한 시험, 종교적인 장자리 시험, 세상부요 시험을 건다. 예수님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시험을 한다. 예수님 속에는 순전히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 그러니 마귀가 예수님을 넘어뜨릴 수 없는 거다. 사단이 땅으로 쫓긴다는 것은 예수를 믿어도 신앙정신이 땅에 속한 사람들에게 들어간다는 거다. 아무리 예수를 믿어도 땅에 속한 정신과 사상과 소원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여지없이 사단 마귀의 밥이 되는 거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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