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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외식신앙은 저주다.

갈라디아 궁극이............... 조회 수 50 추천 수 0 2022.05.08 18:3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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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갈5:22-23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 갈5:22-23에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라고 했는데,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어디서 열리는 거냐? 어떤 신앙이라야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는 거냐? 충성봉사를 많이 해야 열리는 거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에서 맺어지는 거냐? 교훈에서 맺어진다. 이 교훈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일을 많이 하라. 충성봉사를 많이 하라’ 하는 교훈에서는 사람이 변화가 안 된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인데, 이것은 자기 마음에서 열리는 거냐, 자기 몸 밖의 나무에서 열리는 거냐? 자기 마음에서 열린다. 이게 다 하나님의 속성적 성품이다.

 

막11:에서 예수님께서 멀리서 잎사귀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는데 무화과의 때가 아니라서 잎사귀 외에 열매가 없자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라고 저주를 하셨고, 이어서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들어가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고 상을 둘러 엎었다.

 

그러면 주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만드셨고, 그래서 열매를 맺는 시기도 잘 아시고, 열매가 어떻게 맺히는지도 다 잘 아시는데 왜 열매의 때도 아닌 것을 아시면서 저주를 했을까? 한 마디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렇게 하신 거다. 즉 외형적인 활동을 많이 한다고 해서 그것을 ‘성령의 열매겠구나’ 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행동적 교훈이다.

 

그리고 성전 안에 들어가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쫓고 상을 둘러 엎은 것은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하는 자들은 종교 지도자들인데 이들의 교훈에, 이들의 가르침에, 지금으로 말하면 그런 교회에 들어가지 말라는 거다. 그런 곳에서는 열매가 안 맺히고 저주라는 거다.

 

저주를 받은 무화과나무가 그 이튿날 뿌리까지 말라버렸다. 그러면 제자들이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마른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삽을 가지고 땅을 파서 확인을 한 거냐? 잎사귀가 말랐으니까 뿌리까지 마른 것으로 안 거다. 이것을 보여주심은 열매 없는 신앙은 근원부터 근본부터 저주라는 거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외식신앙이다. 껍데기 위주의 신앙이다. 모양을 어떻게 함으로써 좋은 신앙이라고 하는 기준을 가진 자들이다. 이 외식신앙은 주님이 보시는 성령의 열매가 없다. 처음에는 바로 믿다가 외식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부터 잘못된 외식신앙의 교회에서 배워서 외식신앙이 될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외식신앙은 전부가 기독교 안의 함정인데 신비주의, 구복주의, 구국주의, 사회주의, 현세주의, 극기 극복주의, 초절주의 등등은 전부가 외식신앙이다.

 

주님은 이런 걸 보고 믿음이 좋다고 하시지 않는다. 이건 이방신관이다. 무당 식이다. 창조의 목적을 알면 사람이 자유스럽다. 하나님의 믿음 안에서 자유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외식신앙을 기준을 세워서 신앙 믿음이라고 하게 되면 죄에 매이게 된다.

 

일반사회를 보면 돈 많고, 학력 높고, 세상의 지위가 높고 하면 최고로 여기고, 처녀들은 이런 남자를 만나서 시집을 가면 천국생활을 할 것으로 생각을 한다. 그래서 이런 남자를 만나서 시집을 간 여자가 다 행복하게 사느냐? 사람은 속이 문제다. 껍데기는 자타의 구원을 이뤄가는 면에 무난하면 된다.

 

사람이 튀는 색의 옷을 입게 되면 사람들의 눈길이 가게 된다. 범죄의 요인을 만들지 말아라. 예수 믿으면서 품행이나 옷을 입는 것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은 영적인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범죄성의 옷을 입지 않는다. 왜 눈으로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하는 것에 욕심을 내게 해서 범죄케 하느냐? 이게 전부가 외식이다.

 

일반세상에서는 속 다르고 겉 다른 게 외식이라고 하지만 주님은 사람의 속이 주님처럼 만들어지는 게 아닌 껍데기 위주로 나가는 게 외식이라고 하신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근본부터 하나님의 본질에 맞지 않는 것은 다 외식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저주한 무화과나무가 뿌리부터 말랐다는 것은 외식신앙은 처음부터 저주라는 뜻이다. 왜냐? 외식신앙에서는 아무리 오래 믿고 열심히 믿어도 주님이 원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외식신앙으로 되어있으면 이 사람은 마르기 전에, 주님이 오시기 전에 이미 저주로 들어가 있는 거다. 문제는 교회 인도자들의 교훈인데, 열매가 없는 교훈은 항상 열매 맺는 때가 아니다. 그래서 열매가 없는 교훈은 처음부터 저주가 들어간 거다.

 

그런데 무화과나무가 열매가 없는 게 아직 열매 맺는 때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으니까, 그렇다면 주님이 조금 더 있다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을 때 가서 열매를 따면 될 텐데 미리 가서 저주를 해 버렸으니 그때까지 못 기다린 주님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그리고 이런 의미로 말을 하게 되면 무화과나무의 뿌리까지 저주가 된 게 부인이 된다. 우리는 말이 돌아가는 의미를 잘 봐야 한다.

 

그러니까 저주를 받은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열매 맺는 때가 아니라는 말을 ‘조금 있으면 열매를 맺게 된다’ 라는 생각 하에서 주님이 우리에게서 열매를 찾을 때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 줄 수 있도록 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말씀이라고 해석을 하게 되면 말 자체는 맞지만 외식신앙은 처음부터 저주가 되는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희미해진다.

 

외식신앙은 처음부터 저주가 들어간 거다. 교회 인도자가 외식신앙을 가르치면 교인들도 저주다. 그런데 외식신앙 노선으로 나가는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가 항상 열매를 준비해 두었다가 언제고 주님이 원하시면 드립시다’ 라고 한다면 맞는 말이냐, 틀린 말이냐? 말 자체는 맞으나 말하는 뿌리는 세상이라고 하는 모양새나 덩어리 큰 것에 기준이 박힌 것이니 저주의 신앙이다. 신앙의 뿌리가 세상에 박혀있으면 이 사람은 성령의 열매가 안 맺힌다. 준비가 안 된다. 그러니 저주다.

 

준비되는 신앙은, 열매를 맺는 신앙은 어디서 되는 거냐? 생명의 말씀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말씀의 이치에 뿌리를 박아야 한다. 예수님의 성품, 정신, 감화성에 뿌리를 박아야 열매가 열린다. 이게 아닌 외식적인 신앙으로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녀도 열매 대신 저주에 놓여진다. 그러니 하루를 믿어도 외식신앙의 사고방식으로 믿지 말아라. 자기에게 저주다. 저주라고 하니까 ‘몸에 병이 온다. 빨리 죽는다’ 이렇게만 생각하지 말고 가정적으로건 자식적으로건 사회적으로건 어떤 모양으로서건 저주가 들어온다.

 

주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시느냐, 중심을 보시느냐? 신앙의 중심을 보신다. 세상정신으로 나가면서 ‘열심히 믿어야지’ 라고 하는 걸 보시는 게 아니라 ‘너의 양심이 마음이 하나님의 진리를 붙잡고 가느냐, 안 가느냐?’ 이걸 보신다. 그러니 자기의 신앙을 잘 분별하라. 웬만하면 자기의 마음이 세상에 내려졌는지, 말씀에 내려졌는지 알 수 있다. 교회에 열심히 다녀도 언행심사가 일반화로 되어있으면 사람이 안 바뀐 거다. 그래서 첫째로 중요한 것은 교회 인도자들이다. 교인들은 인도자를 따라가게 된다. 목사가 교인들을 세상 길 넓은 길로 인도하면서 ‘왜 열매가 없느냐?’ 라고 한다면 이건 마귀의 말이 된다. 주님은 사람의 말 자체를 보시는 게 아니라 사람의 중심을 보시되 그 중심의 감화성의 정신이 어디로 돌아가는지를 보신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은 세상을 살면서 겪는 사건과 환경 가운데서 되는 거다. 성경에 오리를 가고 십리를 가라고 하는 것은 마음속에서 정신적으로 맺어진 열매를 말하는 거다.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라는 것은 주님의 성품을 나타내라는 거다. 이게 다 생활 속에서 열매로 되어나오는 거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실 때 ‘내가 예수다’ 하고 오시는 게 아니라 보혜사 성령으로 오신다. 보혜사 성령은 항상 진리의 교훈과 함께 하신다. 그런데 그 방편이 사람을 붙잡고 오시도 하고, 사건을 붙잡고 오기도 하고, 돈을 붙잡고 오기도 하고, 인정정실을 붙잡고 오기도 하고, 전쟁을 붙잡고 오기도 하신다. 이런 게 다 상황적으로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거지만 그 사건의 배후에 주님이 우리의 구원의 깨달음을 가지고 오신다. 믿는 사람이 사건 속에서 주님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고차원이다.

 

믿는 자기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한 사건을 이기지 못했다면 이 사건이 자기의 영능의 실력을 말해주는 거다. 자기의 실력은 자기 속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거다. 자기가 실력이 없으면 사건에서도 케오요, 이단자들에게도 케오다. 믿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났을 때 좋은 품행이 나오지 않아서 욕이나 먹고 하면 자기가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는 것 이전에 자기의 영능의 실력이 드러나는 거고,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이 되는 거다.

 

믿는 사람이 누가 자기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고치라고 하면 이런 말은 듣기가 싫고 거짓 종이 와서 업어주고 등 두들겨 주고 하면 ‘헤헤’ 한다면 이걸 빨리 회개해야 한다. 안 그러면 세상을 살면서 사건과 환경과 존재가 와서 부딪히면 팍팍 넘어질 수밖에 없고 신앙에 발전이 없다. 발전이 없는 신앙은 뿌리에서부터 저주를 받은 성격 성질이니 이런 신앙의 노선과 입장을 가지고 백날 예수를 믿고, 목회를 하고, 박사가 된다고 해도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전체 교회의 신앙이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국지전이던 세계전이던 들고 나오신다. 전쟁과 재판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거다. 유대백성이 로마에 짓밟히는 거,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거, 북조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잡혀가는 게 다 보이는 역사인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건을 들고 그들의 영적인 면을 말씀하신다. 그들이 영적인 면을 깨달아서 성장하고 장성하게 만들려는 거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서 눈에 안 보이는 그 이면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은 열매를 눈으로 보고 ‘콩이니 팥이니’ 하는데 이 열매의 성분과 질을 아는 게 더 정확하다. 우리의 신앙도 신앙의 성격과 성질과 성분을 바로 알아야 주님과 의사단일에 적중한 신앙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의 생명과 짐승의 생명이 같으냐? 용어와 글자는 같으나 질이 전혀 다르다. 우리가 어떤 신앙 정신 사상을 받아야 바른 신앙의 길로 갈 수 있겠느냐? 주님의 생명을 받아야 한다. 자기가 이걸 구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보통은 자기를 알아주고 위해주는 교회로 간다.

 

우리는 항상 열매를 준비하고 있다가 주님이 원할 때 드릴 수 있는 신앙이 되어야 하는데, 이러려면 항상 드릴 수 있는 신앙의 노선이 아주 중요하다. 신앙의 이치를 어기면 일반이치도 어기는 사람이다. 이건 무대포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생각을 하며 살아도, 안 하며 살아도 어차피 한 세상을 사는 거다. 말씀대로 행하고 살아도 한 세상이요, 이렇게 안 살아도 한 세상이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안 바뀐다. 믿는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결과적으로 승리가 될까?

 

예수 믿는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고 말을 하면서 왜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자로 사느냐? 열매 맺을 때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진리신앙의 노선이 아니면 백날을 가도 열매 맺는 때가 아니라는 거다. 그래서 이건 뿌리까지 잘못된 거다. 그래서 저주가 들어간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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