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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번제단에서 죽어야 법궤 앞에 나갈 수 있다/(외)

레위기 궁극이............... 조회 수 68 추천 수 0 2022.05.09 09:4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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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레4:10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 일반적으로 자기 집에 곡식이 있는데도 없는 사람에게 나눠주지 않으면 저주의 사람이다. 자기가 많이 가지고 있으면 나눠줄 줄 알아야 한다. 나눠준다고 해서 가난해지거나 죽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눠줄수록 무한히 나온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복음으로 상대를 정복할 수 있다. 우리는 정복을 하되 옳은 것으로 정복을 해야 한다. 사람의 마음 밭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진리말씀을 주어야 하는데, 말씀을 주는 것에는 밭갈이도 들어있고, 물을 주는 것도 들어있고, 양육을 하는 것도 들어있다. 아울러 이로 인한 열매가 복합적으로 나오게 된다.

 

말씀을 전하는 입장에서 좋은 밭만 찾아서 전하는 것은 잘못된 거다. 전할 때는 이룰구원 면에서 네 가지 밭의 비유의 첫째 밭에서 넷째 밭까지 다 전해야 한다. 정복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정복하는 사람들이 다 자기의 밭이다. 자기 밭에 좋은 씨를 하나만 아니라 많이 심을수록 수확이 많다. 길가 밭이나, 가시 밭이나, 돌짝 밭에 있는 돌이나 풀이나 가시덤불 등을 다 골라내고 불태운 다음에 받을 갈아엎어서 좋은 밭으로 만든 후에 좋은 씨를 뿌리고 잘 가꾸면 자기에게 수입이 많다.

 

좋은 밭을 만들어서 많은 수입을 본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나온다. 이게 없으면 수 년 수십 년 예수를 믿었어도 저주를 받은 무화과나무와 같은 거다. 그리고 알고 보면 좋은 밭을 만들어서 많은 열매를 거둔 사람은 육신이 먹고 마시는 것도 충분히 받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없다면 이건 이스라엘 전체가 저주의 대상이 된 거다. 하나님의 형벌과 진노가 내려진 거다. 쓸모가 없어진 거다. 그래서 당신의 백성들을 쓸모가 있게 하느라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지자도 보내고 신실한 종도 보내서 사람들의 마음의 밭을 갈아엎는 거다. 이렇게 해서 자기가 값이 나가는 밭이 되면 자기에게 깨닫는 면의 소산, 생활 면의 소산이 많다.

 

세상성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개념으로 세상 것을 구하는데, 구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느냐? 자기의 마음 밭이 가시 밭으로 되어있고, 돌짝 밭으로 되어있고, 길가 밭으로 되어있는데 이것을 그대로 둔 채 자꾸 좋은 씨를 달라고 하면 주시겠으며, 좋은 열매가 맺히겠느냐? 밭 주인은 좋은 밭으로 된 자를 이미 아신다.

 

◆ 마리아는 오라비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예수님께서 빨리 와서 오빠를 살려줬으면 했는데 예수님은 죽도록 내버려 뒀다. 그래서 마리아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참 야속한 거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든 기도를 하면 들어준다고 말씀을 했는데 오빠가 죽었으니 얼마나 야속하겠느냐?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가 아플 때 얼른 와서 고쳐주면 당신이 영광을 받게 되겠지만 이게 문제가 아니라 나사로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려고 나사로가 죽도록 내버려 둔 거다.

 

주님의 이 처사가 일반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이룰구원 면으로 보면 얼마든지 아멘이 되는 거다. 왜 그러냐? 우선 나사로가 아플 때 가서 고쳐주지 않으신 것은 예수님은 병이 든 사상으로 연속이 되는 곳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는 거다. 그러니까 나사로가 죽어야 그 다음에 하나님의 역사가 들어가는 거다. 나사로가 죽어야 그 다음에 영능의 역사가 들어가는 거고, 그래야 새사람으로 사는 거다.

 

나사로를 살리신 후에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곳마다에서 예수님 옆에는 살아난 나사로가 있다. 살아난 나사로가 예수님 옆에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증거가 된다. 이게 무엇을 말하는 거냐? 옛사람의 상태에서, 죄 된 상태에서, 병 든 상태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소용이 없고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가 되고 거듭난 상태라야 주님의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거다. 이게 중요한 거다.

 

나사로가 가는 곳에는 예수님이 있고, 예수님 옆에는 늘 나사로가 있다는 것은 교인들로 말을 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있는 곳에 거듭난 자기가 있어야 하고, 이 자기는 질적으로 주님과 그만큼 가까운 거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역사로 거듭난 성도가 가는 곳에는 예수님도 계신다. 이것은 예수님과 동거 동행이다. 그래서 우리가 말씀을 바로 보고, 바로 듣고, 바로 깨닫고, 바로 살면 하나도 손해가 없다.

 

그런데 자기의 주관성이 예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게 되면 하늘로부터 오는 거나, 물질적인 거나, 신령한 깨달음이 완전히 막힌다. 이러면 그 인생은 비참하다. 이런 일이 자기가 사는 가운데서 되어지는 거다. 우리가 성경을 기준하고, 하나님을 기준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따라 살면 자기에게서 하나님의 생명적 역사가 되어지는 건데 이렇게 살지 않고 세상이 기준이 되어서 인간의 머리로 계산을 하며 세상을 가지려고 한다면 자기에게서 하나님의 생명적 역사는 없다.

 

믿는 사람이 이런 정신과 소원 목적으로 살면 그 마음은 벌써 저주로 들어간 것이라서 이 사람은 말하는 것마다 저주요, 먹는 것마다 저주요, 하는 것마다 저주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잘못 보이면 자기 목숨대로 못 산다는 말이 나오는 거다. 우리가 이렇게 살지 않고 자연목숨이 다할 때까지 이룰구원으로 참사람으로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으냐?

 

믿는 우리에게는 이런 게 있기 때문에 교회 인도자는 이 이치를 명확히 가르쳐 줘야지 등이나 토닥거리며 헌금만 내게 하는 건 안 된다. 이건 강도요 도둑이다. 신학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았다고 해서 목사가 되는 게 아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목사가 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께서 세우는 거다. 목사는 양육자다. 생명수로 성품적으로 주님을 닮게 양육을 해야 한다. 사람이 이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으로, 성령님의 감동 감화로 되는 거다.

 

구약에 왕들이 많이 나오는데, 별의 별 왕이 다 있다. 목사도 각자마다 별의 별 성격과 성질을 가지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인 각자마다 믿음의 수준이 같지를 않다. 그래서 사람은 신앙의 기준이 될 수 없고 예수님만이 절대적인 신앙의 기준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의 왕들을 보면 산당을 없이 하지 않은 왕이 있고, 헐었던 주상을 다시 세운 왕이 있고, 헐어버리는 왕이 있고, 선과 의를 행한 왕이 있고,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긴 왕이 있는데, 이런 별의 별 왕들을 우리에게 왜 보여주는 거냐? 남을 보기 전에 나를 보라는 거다.

 

◆ 한 나라의 대통령이 연설을 하고 있는데 장관이 불쑥 일어서면 대통령이 하는 말을 가로막게 된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회는 하나님 앞인데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는데 듣는 사람이 자기 딴에는 ‘목사님이 저 말을 할 때 내가 나서서 말을 해야 사람들이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라는 생각으로 ‘이 때다’ 하고 불쑥 일어나서 말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중단이 된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건 일반사람만도 못한 거다.

 

일반적으로도 도덕성이 반듯한 사람은 남의 말을 다 듣고 자기의 의견을 말을 한다. 교인들 간에도 누가 말을 하면 그 말을 다 듣고 ‘무슨 뜻인가?’ 하면서 생각을 정립을 하고서 자기의 생각을 말해야 한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했다. 이런 일이 일상생활에서 흔히 있는 건데 믿는 사람이 이런 것을 조절을 못하고 아무 때나 툭 툭 말을 하는 것은 성령님에 감화된 행동이나 활동이 아니라 귀신이 들린 거다. 성격이 급하고 성질이 더러운 사람은 남이 말을 할 때 중간에서 그 말을 끊고 자기 말을 한다. 이런 사람과는 가급적 대화를 하지 말아라. 대화를 하게 되면 싸움만 일어난다.

 

질문을 할 때나 대답을 할 때는 가부를 분명히 하라. 믿는 사람으로서 일상생활에서 이런 것을 바로 하면 은혜를 받고, 사랑을 받고, 이룰구원이 잘 이뤄진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일반 도덕성을 기준으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이룰구원을 놓고 하는 거다. 사람을 교육하는 것은 말로만이 아니라 언행심사 전부로 교육이 들어가는 거다.

 

어느 인간도 하나님처럼 완벽하지 못하다. 그래서 자기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은 다 자기의 선생이다. 혹시 남이 나를 볼 때 나에게 나쁜 점이 없겠느냐? 하나님께서 보실 때도 나에게 나쁜 점이 없겠느냐? 자신의 잘못된 점을 자신이 못 볼 수도 있는 것이니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볼 때 자신을 되돌아봐야지 자꾸 상대를 정죄하고 들어가면 하나님 앞에 긍휼이 없는 심판을 받게 된다.

 

이런 것은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사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거다. 특히 목사의 입장에서는 이런 걸 보는 눈이 정확하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이고 자기에게 맡겨진 성도들까지 저주의 자리에 처박게 된다. 우리에게는 자기의 성격과 성질로 되어지는 이룰구원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기를 살펴볼 때 자기에게 주님의 사랑이 없으면 사랑의 성정을 달라고 하고, 지혜가 없으면 지혜를 달라고 하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이런 것을 달라고 하면 기꺼이 주는 분이다. 우리에게 성경을 주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나에게 주려고 창고의 문을 열어놓았다는 의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로 법궤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놨다. 그런데 반드시 번제단에서 자기가 철저히 잡혀 죽어야 만이 법궤 앞까지 나갈 수 있다. 번제단에서 잡히지 않고 자기 스스로 살아서 법궤 앞까지 뛰어가서 엎드린다면 응답은커녕 그 자리에서 죽는다. 그런데 자기를 잡으려고 자기를 번제단 위에 올려놓고 몸을 묶으려고 하면 벌떡 일어나 도망을 가서 하나님을 잘 믿겠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법궤 앞까지 가려면, 즉 하나님 앞에 가려면 반드시 네가 먼저 번제단에 놓여져서 죽어야 된다’ 라고 하신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예수를 믿어오면서 번제단 앞에서 이렇게 도망간 횟수가 몇 번이고, 몇 년째더냐? 이건 수십 년이 흘렀어도 자기의 옛사람성이 하나도 안 죽은 거다. 번제단에 놓여지지 않은 거다. 그러니 물두멍에서 씻을 수도 없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께 자꾸 무엇을 달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서 어긋난 거다. 신앙이 아니다.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는 일은 외면한 채 자기 몸 밖의 것을 어떻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미련한 기도다. 주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신적인 지혜지식성자로, 신적인 도덕성자로, 신적인 능력성자로 만들어서 몸 밖의 것을 다 다스릴 수 있는 게 진짜 믿음이요, 참사람이요, 주님의 사람이다.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심은 나를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려는 거다. 그러니 미련한 기도는, 응답이 안 되는 기도는 하지 말아라. 이런 기도를 하면 시간만 가고, 입만 아프고, 미련하다는 소리를 듣고, 기도의 응답이 없으니 사람이 허망해진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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