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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눅12:39-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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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 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12장 39절-44절: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도적이 들어올 때 들어올 시간을 가르쳐 주고 들어오느냐? 주인 몰래 들어와서 훔쳐간다. 그러니까 도적이라는 말을 안 붙여도 무엇이던 몰래 훔쳐가는 게 도적이다. 어느 때라도 밤낮이 없고 1년 열두 달 사시사철이 없이 어떤 연령대도 상관없이 도적은 온다.
물건이나 재산이나 재물을 훔쳐가는 것보다 사람도둑이 더 많다. 우리는 사람도둑을 알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 ‘성령의 활동이냐, 악령의 활동이냐’를 빨리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소원 목적성이 세상성으로 들어가 있다면 마귀가 예수님에게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넘어지게 하려고 했던 그게 들어있는 거다. 그래서 어느 교회든지 목사가 세상 소원 목적적으로 들어있다면 그거는 마귀의 종이다. 이치적으로 이 말이 맞지 않느냐?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게 하는 거기에는 진리이치의 교훈이 들어가 있고, 생명 길 좁은 길을 가게 한다. 이게 참 종이다. ‘참 종이다. 거짓 종이다’ 하고 말을 안 해도 생명 길 좁은 길을 가게 하는 건 참 종이다. 기독교 사역주의 사업주의 즉, 종교적으로 부흥 발전 운운하며 자꾸 키우는 것은 거짓 종이다. 그렇게 가려니 수단 방법을 막 써야 한다. 이건 넓은 길이다. 여기엔 주님의 의사단일성이 필요가 없는 거다.
사람도둑이 참 무섭다. 재산이나 재물을 도둑맞는 것보다 사람도둑을 맞으면 그 마음이 평생을 두고 어떻겠느냐? 그런데 사람을 등에 업고 물건처럼 훔쳐가는 도둑도 있긴 하지만 우리가 영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보면 그런 도둑보다도 사람의 정신을 훔쳐가는 도둑도 있다. 일반적으로 정신을 훔쳐 가면 그 사람의 몸은 자기가 좋아서 그리로 가게 된다. 그냥 사람도둑은 안 가려고 버틸 수도 있지만 사람의 정신을 가져가면 정신을 도둑맞은 그 사람은 자동적으로 그리로 가는 거다.
그 다음에 성령의 눈으로 보면 교인들의 영혼을 도적질하는 도둑이 최고의 고차원적이다. 왜 그러냐? 성경구절을 가지고 오니까. 이게 마귀의 수법이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와서 ‘몸이 어떻고 당신의 정신이 어떻고’ 이런 식으로 성경구절을 가지고 마음을 정신을 살짝 돌린다. 이게 마귀수법이다. 그걸 아느냐? 그런 경우는 그 사람이 자기가 좋아서 하는 충성봉사로 인해서 자기 일생이 통째로 날아간다. 자기 일생을 통째로 신앙사기 당하는 거다. 그걸 명심하라.
그 차원을 못 보면 그 아래의 차원에는 다 눈을 감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님의 눈을 가지고, 예수님이 성령의 일곱 눈을 가졌다. 그 눈으로 일곱 교회를 보신 것처럼 우리가 그 눈을 가지고 ‘교회의 모든 신앙활동 종교활동의 배후에서 무슨 영이 움직이고 있구나. 그리고 거기에서 주장하는 설교에서 무슨 영이 움직이고 있구나’ 하는 걸 알아야 한다.
어떤 목사이건 자기는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그 메시지를 전하는 목사의 정신의 배후에는 악령이 아니면 성령이다. 둘밖에 없다. 중간은 없다. 무슨 말을 해도 그 사람 속에서 어떤 감화성을 입고 나오는 거다.
우리의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예수님께서 가진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것과 동질 동성 분분 동등적이다. 같다 그 말이다. 이 하나님의 것은 시간적으로나 성분적으로나 성질적으로나 장소적으로나 어느 때든지 어느 환경이던 썩지 않고, 불타지 않고, 세상이 변해도 영원히 가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는 하나님의 지혜지식성, 또 하나님의 도덕성, 이 도덕성에는 선 사랑 거룩 진실, 또 하나님의 능력성, 이 능력성에는 의와 주권이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 그 설계에서 나온, 그 소원 목적에서 나온 구원이니, 이것을 우리의 영원 궁극적인 구원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시하처를 막론하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영원 궁극적 구원을 염두에 두고 교육도 들어가고, 훈련도 들어가고, 언행심사도 다 나가는 거다.
여기에서 비뚤어지면 너는 비뚤어진다. 네 정신 사상에서 그것부터 명확히 붙잡아라. 그러면 모든 것이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하나님께서 지혜도 주시고 한다. 그게 틀려버리면 자기 평생 예수를 믿어도 통째로 신앙사기 당한다. 그래서 예수님께는 바리새교인들이 부활도 믿고 천사도 알고 죽으면 천국에 가는 것도 다 아는 정통이요 전통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속사람의 주격은 옛사람의 세상 성격 성질이 그대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들을 향해서 ‘화 있을진저’ 하고 저주를 하신 것이다.
그러니 그걸 나쁘게 말하면 성경구절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의 이용물이 된다. 그들은 스스로가 성경을 자신들의 세상적인 목적에 이용물이라고 하지 않고 바른 신앙을 한다고 하는 거지만 그들은 속은 세상성이 가득 들어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의 그러한 속 중심 사상을 지적을 하니까 그들이 그렇게 싫어했고, 예수님을 죽이려 했고, 사사건건이 모함을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들의 배후에 사단 마귀가 역사를 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귀의 새끼들아’ 한 것이다.
뱀은 의례히 마귀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뱀은 먹잇감을 머리부터 통째로 집어삼킨다. 뱀이 마귀라는 말이 아니라 뱀의 이러한 특성을 들어서 마귀가 교회 안에서 어떤 방법을 쓴다고 하는 것을 말을 해 주려고 세상에 뱀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거짓 종들의 형태가 성경을 가지고 교회를, 교인들을 통째로 집어먹어 버린다. 그걸 아느냐?
신앙의 본질을 모르면 단순히 물질도둑만 알지 가만히 앉혀놓고 그 사람의 일생을 도둑 당하게 만드는 영적인 도둑은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수 년 수십 면을 믿어도 한 이치도 못 깨달았다면 도둑을 맞았다고 보는 것이다.
자기의 정신 마음 생각하는 것에 허점이 있다. 자기는 똑똑타고 하는데 허점이 있다. 자기 속에 세상성으로 들어가 있다면 이게 허점인데, 이건 담이 없는 집과 같다. 그러니 오만 잡스러운 것들이 사방에서 자기 속으로 막 들어갈 수가 있다. 이런 것들이 내 안으로, 자기 생각 자기 마음속에 자기 계획안으로 막 들어오는 이게 큰 문제다. 이게 허점이다.
심지어 부모나 형제나 아내나 남편에게까지 세상정신이 몰래 들어가서 그만 그 집안 식구들이 도둑을 맞는 일이 많다. 쉽게 말하면 이단이나 그런 데로 그만 가버린다. 이게 허점이다. 아내가 그런 데로 가고 나서 법에 고발은 이미 늦었다. 왜? 억지로 끌려간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좋아서 그리로 갔기 때문이다. 찾아오려면 건져 와야 하는데, 그러려면 남편의 차원이 아내의 차원보다 높아야 한다. 윽박질러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 정신면에서 비진리적 세상적인 사상이 몰래 들어오면, 비진리는 다 세상성이 들어있고 귀신의 장난이 들어있다. 자기 정신세계에 비진리적 세상성이 들어오면 신앙정신 면에서의 도둑을 모르고, 또 그것을 도둑이라고 취급을 안 한다. 왜? 진리본질 모르기 때문에. 그런데 보통 보면 교회에서 그것을 알려고 하지는 않고 일한 양, 믿은 시간을 가지고 기준시하고 신앙을 판단을 한다. 그러면 안 된다.
우리는 진리본질의 신앙을 가지고 도둑을 익히 알아서 도적을 맞지 말아야 한다. 신앙의 도적을 맞지 않으려면 첫째는 모르는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면 사람분별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어디서, 어느 교회에서 왔는지 그걸 분별해야 한다.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신앙사상 면에서도 분별을 해야 한다. 이게 중요한 건데, 신앙의 본질이 아닌 이질적인 신앙이 많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영분별을 해야 한다. 요일4:에 ‘분별하되 영을 분별하라.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다’ 라고 했다. 이게 무슨 말이냐?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 즉,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을 부인한다가 아니라 우리는 더 깊이 들어가서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신 그 살으심 속에는 내 대신 100% 하나님의 지공법에 만족이 되도록 사심이 들어있고, 이차적으로는 내가 예수 믿은 후에 이룰구원의 이치가 그 안에 또 들어있다. 복합적으로 들어있다. 그걸 부인하는 게 적그리스도이다.
우리의 기본구원은 하나님의 주권과 독권적으로 돼 있다. 즉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은 영을 당신의 구속의 피로 살려놓는 당신의 주권과 독권적인 이 역사에는 마귀가 터치를 못한다. 터치할 권도 없고 능력도 없고 실력도 없다. 그 다음에 이룰구원 성화구원 있고, 그 다음에 부활구원 있는데,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성도들을 다 부활시킬 때 마귀가 그 부활을 못하도록 할 권도 없고 실력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러니까 기본구원과 부활구원에는 사단 마귀가 터치를 못한다. 즉 당신의 백성을 천국에 올리는 데는 터치를 못한다. 마귀가 성도를 지옥으로 못 끌고 간다 그 말이다.
마귀가 예수 믿는 사람을 아무리 꾀어도 지옥에는 못 데려간다. 기본적으로 그렇게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구원 얻은 사람이 마귀의 시험을 당해서 넘어졌더라도 그 사람의 영은 기본구원이 입혀졌기 때문에 천국은 들어간다. 마귀가 지옥에 보낼 수는 없다. 그런데 이룰구원 성화구원에는 믿는 내가 성령님과 유기적으로 되어지는 영능의 실력이 들어있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는 마귀가 시험도 주고 하는 거다. 그래서 믿는 사람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마귀의 시험에 이길 수가 없기 때문에 실력화로 들어가지를 못한다. 그러니까 우리의 이룰구원 성화구원에는 우리의 실력을 주님처럼 성장을 못하게 만드는 면에서 사단 마귀가 여러 가지 수단 방범을 쓰도록 주님의 허용이 되어있다.
그 다음 마지막에는 영화구원이 있는데, 여기는 이미 마귀는 가둬졌고 없기 때문에 마귀가 방해를 하지 못한다. 그래서 영분별을 해야 한다.
교회의 인도자는 교인들로 하여금 그런 면을 속속들이 알겠금 마귀의 수단 방법을 정확히 가르쳐 주어야 한다. 말씀의 이치로써 이것을 밝히면 마귀의 수단 방법이 막 드러난다. 믿는 우리가 죽을 때까지 시험을 안 타면 좋겠지만 혹 넘어간다고 할지라도 마귀의 수단 방법을 알게 되면 빨리 회개가 들어간다. 모르면 종별적 회개 즉, 반성에 불과하지 참 회개가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은 지옥에 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니까 부모형제 처와 자식이 다 있어도 그냥 겉으로 ‘내 자식이니, 내 부모니’ 그렇게 보지 말고 영분별로 들어가야 한다. 다를 수가 있으니까. 도적을 안 맞으려면 자기의 일생이 예수 믿는다로만 보지 말고 신앙사상 정신이 늘 깨어있어야 한다. 깨달음으로 분별로 늘 깨어있어야 한다. 도적을 안 맞으려면 자기를 늘 점검하면서 진리와 성령의 영감의 감화성으로 늘 깨어있는 수밖에 없다.
등불에 기름이 떨어지면 불이 서서히 어두워지면서 나중에는 꺼진다. 그럴 때 등잔에 석유를 부으면 환하게 불이 올라온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달을 것이 있듯이 세상 모든 면에는 신앙을 깨닫게 해주는 이치가 다 들어있다. 자기가 못 깨달아서 그렇지. 그래서 교회에서 설교를 할 때 석가나 세상 철학적인 용어를 들고 와서 성경처럼 얘기하면 안 된다. 왜 예수 안 믿는 철학자니 누구니 하는 사람들의 말을 끌어다가 말을 하느냐? 그렇게 하는 사람은 성경을 봤겠지만 실은 그 사람은 성경을 모르는 거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은 자기는 다른 책을 많이 봤다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왜 남의 말을 하느냐? 남의 말은 다 죽은 말이다. 선악과 따먹고 죽은 말이다. 성경은 전부가 살아있는 말씀이다.
40절-44절: ‘너희도 예비하고 있어라.’ ‘너희’란 제자들이고, 사도들이고, 모두 교회의 대표들이다.
교회는 세상의 주인이다. 세상을 지키고 다스리고 하는 세상의 주인이다. 교회는 교인이다. 이 세상을 왜 만들었느냐? 구원을 잘 이루는 성도를 위해서, 생명과를 먹는 성도는 위해서 지키고 다스리라는 명령이 들어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의 주인이다. 그런데 교회가 세상을 주인으로 삼고 있으니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세상의 주인은 교회,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세상을 왜 만들었느냐? 교회 때문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교회로 통해서 구원운동을 하려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신 불신 간에 누구든지 인간 자기를 빼놓고 하시는 말씀은 아니다.
그런데 오리라고 하신 인자 즉, 사람의 아들이 나와 세상 모든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오리라고 하신 이 예수님 즉, 인자라고 했으니까 그 사람의 아들이 나와 안 믿는 세상 사람들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이냐? 인자되신 분을 내가 알던 모르던 그 분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인간으로 오신 그 예수님이 현재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느냐? 인자란 분이 그렇게 유명한 분이냐? 창세 이후로 세상 마지막 그날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반드시 알아야 할 인자이시다.
선악과 따먹은 타락된 세상에는 유명한 사람들이 많다. 정치계 공업계 상업계 농업계 체육계 예술계, 그리고 각 분야에 유명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래서 누가 어디로 간다고 뉴스에 한 번 나가면 미리 가서 환영식을 준비하느라고 세상이 떠들썩하다. 그런데 아무리 세상이 떠들썩해도 하나님의 자녀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면 그런 건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다.
백두산 천지가 터지던 말던 나와 관계가 없느냐? 아파트 집값이 올라도 내려도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느냐? 정말 그러냐? 신앙의 본질을 염두에 두면서 말하는 거다. 그런데 인자되신 이 분은, 사람으로 오신 이 분은 시골에서 태어났던 도시에서 태어났던 짐승 밥통에서 태어났던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한다.
불교를 모르면 지옥 가느냐? 석가를 모르면 지옥 가느냐? 아니다. 몰라도 그만이다. 예수를 알려면 석가를 알아야 하느냐? 아니다. 그러나 예수를 잘 알면 석가도 공자도 알게 된다. 정확한 그 분을 알게 되면 다른 사람을 다 알게 된다. 당신은 빛이시요 성령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밝기 때문에 그 분을 알면 다 안다. 예수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너희들은 사람에게 속지 말라는 그게 들어있다. 그러니 정확한 그 분을 알아라. 그러면 거짓 것들에게 안 속는다. 당신의 복음의 질이 아니면 다른 복음이다. 다른 복음은 저주를 받는다.
인자되신 이 분은 지구촌 어느 구석에서 태어났건 인류 전체가 다 연관이 돼 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창세 이후로 마지막 그날까지 다 연관이 돼 있다. 그래서 믿는 사람만이 아니라 안 믿는 사람도 다 알아야 하는 거다. 만일 모르고 간다면 예수님이 섭섭하시겠느냐, 인간 자기의 존재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냐? 그 분을 모르면 인간 자기의 존재가치는 없는 거다. 그런데 자기의 존재가치를 거의가 물질, 돈, 불에 탈 소유성에 두고 있다.
자기의 존재가치를 어디서 찾느냐? 그 분은 우주만물을 만드신 분이요, 그 분은 우리 인간을 만드신 분이요, 죄에 대해 죽은 우리를 살리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본질의 성품을 입히시기 위해 성령으로 역사해 주시고, 이를 위해 모든 사건과 환경과 존재를 다 동원시키고, 우리를 존귀영광자로 만들어 주실 그 분이요, 나중에 가서는 그 분이 심판자가 되신다. 그런데도 몰라도 되느냐? 알되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밥을 한 끼 못 먹어도 그 분을 알고 가야 한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그 분을 알고 가야 한다. 왜? 나의 존귀영광성이 행복성이 그 분에게 들어있기 때문에. 따라서 그 분을 자기의 생명으로 여긴다면 자기의 생명은 그 분의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거니까 나는 그 분의 생명으로 영원으로 연장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독교를 거의가 일반 이방인들이 알고 있듯이 하나의 종교로 알고 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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