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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모든 것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있다.

민수기 궁극이............... 조회 수 55 추천 수 0 2022.05.10 14: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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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민22:28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 나귀가 사람의 말로 발람 선지자에게 말을 했는데, 나귀가 신앙이 있어서 성령에 감동이 되어서 발람에게 말을 한 거냐? 하나님께서 짐승의 입을 열어서 말을 하게 한 거다. 그러면 나귀는 자기가 사람을 말을 한다는 것을 알까? 발람 선지자로서는 짐승이 사람의 말을 할 때 얼마나 놀랐을까? 하나님께서 짐승의 입을 열어서 사람의 말을 하게 할 정도면 짐승이 높다는 거냐, 사람이 높다는 거냐?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많다.

 

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했는데, 베드로의 이 말은 베드로 자신의 신앙에서 나온 거냐, 주님께서 ‘옳은 신앙은 이런 거다’ 하고 베드로의 입을 열어 말을 하게 해서 우리로 깨닫게 한 거냐? 베드로는 자기가 이 말을 해 놓고서 성령에 감동이 되어서 말을 한 것임을 모른 채 자기 생각으로 말을 한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베드로는 이 말을 해놓고 자기도 깜짝 놀랐을 거다.

 

그 다음에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님을 놓고 ‘한 사람이 죽어서 민족을 살리는 것이 옳다’ 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죽으러 오신 것인데 가야바가 이것을 알고 말을 한 거냐, 예수님께서 이적 기사를 행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몰리자 ‘유대민족이 없어지고 외국에 백성을 빼앗기겠구나’ 해서 이 말을 한 거냐? 후자다. 그러면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게 영의 생각이냐, 육의 생각이냐? 육의 생각이다.

 

그런데 가야바가 이 말을 한 후에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예수님께서 죽는다는 뜻의 유월절 절기가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이 절기를 통해 가야바가 육의 생각을 가지고 한 말을 영의 뜻으로 바꿔서 교훈을 하셨다. 가야바가 한 말은 신앙에서 나온 게 아닌 육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지만 주님께서는 이 말을 영적인 면을 깨닫는 쪽으로 사용을 하셨다.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이요, 온전이요, 죄에서 해방이다. 이게 구원이다.

 

주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것을 비유적으로 가지고 오셔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데, 가야바의 입을 열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도 했고, 베드로의 입을 열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도 했고, 나귀의 입을 열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도 했다. 우리는 이런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주권 섭리가 사랑하는 성도들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신자던 불신자던 세상이던 다 붙잡고 쓰시는구나. 그런데 믿는 사람들이 이런 걸 보면서 하나님의 깊은 중심을 깨닫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 같은 물이지만 얕은 물에는 송사리 같은 게 산다. 그러나 깊은 물 속에는 큰 고기들이 산다. 다시 말을 하면 깊은 물일수록 많은 생물을 살리듯이 깊은 신앙정신은 어떤 형태로건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구나. 이걸 깨달아라. 이러면 마음도 생각도 넓어진다. 어떻게 깨닫건 하나님의 본질로 들어가야 참 신앙이고, 주님의 천국복음이지 교회간판을 붙이고 십자가를 세우고 예수이름을 부른다고 해서 진리본질이 아니다.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했으니 말세가 될수록 본질이 아닌 신앙이 많아지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 하나님의 온전을 이뤄가는 게 하나님 앞에 공의의 사람으로 정확한 거다. 이게 아니면 옳은 길이 아니요 인간 자기를 세상에 만들어 놓으신 목적에서 빗나간 거다. 우리의 신앙에는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신앙을 말할 때 ‘이질이니, 육적이니, 인본주의니, 세상주의니, 물질축복 중심이니’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서 병을 고치겠다고 하는 것은 그 정신이 세상적이요 육의 생각이다. 그 뒤에는 물질부흥이 붙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을 목적으로 교훈하시지 않았다. 그런데 이질적으로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의 결과가 좋게 나타나니까 그런 것들을 자기 속에 심지로 놓고 이런 것을 목적적으로 붙잡고 나가기 때문에 마치 신앙처럼 보이는 거다.

 

이런 게 있기 때문에 자기가 교회에 다니면서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는 게 옳게 하는 건지, 아닌지를 정확히 분별해야 한다. 직분을 가지고 수 년 수십 년 교회에 다녔어도 이치적으로 깨달은 것은 없이 활동적 유형적인 것에 열심을 내는 것을 신앙으로 알고 있다면 이 사람은 헛 믿었다. 하나님 앞에 심판거리만 장만했다. 이게 거짓된 교회요 거짓된 교인이다.

 

‘거짓이다. 참이다’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눠지는 거지 일을 크게 하고 안 하고 하는 것을 기준으로 따지는 게 아니다. 교회가 이런 것으로 신앙을 따지게 되면 예수님의 기준은 없어지고 예수 비슷하게 해 놓은 게 기준이 되어서 ‘충성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은 이 사람이 기준이고, 도덕성은 이 사람이 기준이고’ 이런 식으로 나가게 된다. 이러면 기준이 다 다른 거고, 틀린 거다.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이라는 것은 인간의 오각의 오감성의 희로애락의 감성이나 인격이나 정신이나 소원 목적이 하나님의 것으로 되는 거다. 믿는 사람 속에 하나님의 것이 아닌, 아가페가 아닌 인조사랑이 들어있으면 이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된 게 아니고 하나님의 온전으로 된 게 아니라서 이 성분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 사람이 통째로 천국에 못 들어간다가 아니라 안 닮아진 요소는 못 들어간다.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보면 이 사람은 이 면이 좋고, 저 사람은 저 면이 좋은 게 있고, 또는 이 사람은 이 면은 좋은데 저 면은 안 좋고 하는 게 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자기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 자기가 잘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고서 다른 사람이 자기처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해서 비난을 하게 되면 말은 옳은데 이 사람은 자기를 못 보는 거다. 우리는 이런 면까지 생각을 해야 한다.

 

음식 탐이 많은 사람은 아무 데고 쓸모가 없느냐?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을 때 일행 중에 음식 탐이 많은 사람이 있으면 남는 음식을 처리하는데 유용하다. 그러니까 자기가 음식을 많이 안 먹는다고 해서 무조건 음식 탐이 많은 사람을 정죄하면 안 된다. 그러니까 남을 보기 전에 자기부터 봐라. 남도 못 보고 자기도 못 보면 이기적인 사람이다.

 

사람은 오각의 오감성을 가지고 있는데, 생각이 잘못되어서 행동이 이상하게 나오는 게 있다. 우리는 이렇게 살면 안 된다.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남의 말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돈 욕심이 많은 사람도 있는데, 돈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기심이 많고 거짓말이 많다. 그 안에는 사기꾼의 습성이 들어있다. 그리고 속이 좁고 이해심이 없다. 말을 하는 것마다 자기 것으로 들어있다. 세상사람들 거의가 그렇다. 이런 사람을 보면서 자기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예수를 믿는다면 성정이나 도덕성이 예수님과 같아져야 한다.

 

세상사람들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이 되었지만 이들보다 더 타락된 사람은 종교라고 하는 옷을 입고 있는 종교인들이다. 그러면 무엇이 옳은 종교냐? 인간관이 반듯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가족관 사회관 국가관이 반듯해야 한다. 이 면에 연관관계가 반듯해야 진짜 옳은 종교다. 종교라면 그래야 한다. 그러면 세상의 이방종교 중에 이런 종교가 있느냐?

 

세상에는 여러 종교가 있으니까 세상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표현을 하느라고 기독교를 종교라고 하는 거지만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게 사람의 근본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인간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종교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본분이다. 그런가 하면 같은 기독교라고 해도 타락되고 저주받고 속화된 교회도 많기 때문에 신앙의 노선에 따라 신비주의니 국가주의니 내세 복음주의니 등등의 여러 표현을 하는데, 기독교 안에서 이런 명칭들이 본질과 이질, 선과 악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래서 ‘어느 종파다’ 하게 되면 ‘그곳의 정신이 어떻다’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에게 각자의 이름이 있으면 길을 걷는데 누가 뒤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면 금방 자기를 부르는 것임을 알 수 있지만 이름이 없으면 누구를 부르는 것인지 어떻게 구별을 하겠느냐? 이런 것과 같은 거다.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고, 말씀을 듣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성을 바로 붙잡기 위해서다. 바로 붙잡으면 이 사람은 신앙 면에서 옳고, 세상 위에 있는 거다. 세상의 것은 땅의 거고, 주님의 것은 하늘의 거다. 주님의 것은 위치적 질적 본질적 도덕성적으로 최고의 고상한 위의 것이니 우리가 이것을 가지면 모든 게 구별 분별이 된다. 성경에는 이게 들어있으니 우리는 성경에서 이것을 발견해서 자기 것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교회는 ‘충성봉사를 잘 하자’ 이전에, 이것은 자기가 만들어진 것만큼 나오는 거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본질을 찾아 들어가는 거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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