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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계1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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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경형목사 |
참고 : | 궁극교회 주일예배 |
◆ 새끼 양과 어린 양이 다른 점이 무엇이냐? 원어로는 똑같다. 그러나 어린 양은 예수님을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대속하게 하셨다. 죄인 된 우리가 심판을 받아서 죽어야 하는데 구약에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양을 잡아 하나님께 드렸듯이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할 완전한 어린 양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거다.
새끼 양은 계:에 보면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라고 했는데, 땅의 일을 하는 교회의 모든 인도자들을 말한다. 땅에 소원 목적을 두고 교인들을 인도하고, 또한 이 인도자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은 다 새끼 양에 속한다. 쉽게 말해서 이들은 마귀의 이용물이다. 새끼 양은 땅에서 왔고 우리의 죄를 대속해서 죽지도 않았다.
어린 양과 새끼 양이 글자적으로 같다고 해서 예수님이 새끼 양이 하는 일을 하셨다고 하면 틀린 말이 된다. 마치 천사라고 하면 우리의 구원에 심부름꾼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이룰구원에 대적을 해서 결과적으로 우리의 영능의 실력을 키우는데 이용물이 되는 천사가 있는데, 이 두 종류의 천사를 같은 것으로 말을 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틀린 말이 된다. 글자가 같다고 해서 같은 것으로 말을 하면 교훈도 없어지고, 우리의 영능의 실력도 없어진다.
‘생명’이라고 할 때 나무에게도 생명이 있고 인간에게도 육신의 생명이 있는데, 둘 다 용어가 ‘생명’이지만 질적으로는 전혀 다르다. 모기의 생명과 코끼리의 생명의 질도 각기 다르다. 모기 속에 코끼리의 생명을 집어넣으면 모기가 코끼리가 되느냐? 이런 일은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용어가 같다고 해서 나무의 생명이나, 사람의 생명이나, 짐승의 생명이 같은 것으로 말을 하면 안 된다. 이러면 구별 분별이 없는 어리석은 사람이 된다.
일반이치로도 과학적인 법칙을 잘못 쓰면 자기가 해를 당한다. 모든 것에는 이치와 법칙이 있는 것이니 인간이 자연법칙을 거스르면 육신이 죽는다. 육신의 건강도 법칙에 따라 도모를 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사람은 낮에 일을 하고 밤에 잠을 자야 몸이 건강한 건데 타락된 욕심으로 밤낮 잠을 안 자고 일을 하게 되면 결국은 몸이 망가진다. 욕심을 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은 구원이 없이 사는 것이니 하나님 앞에서 죄다.
욕심을 따라 인간의 수단으로 밤낮으로 일을 해서 자기 몸을 혹사하면 결국은 자기의 이 죄로 인해 자연목숨이 죽게 되고, 반대로 게을러서 아무 일도 안 하면 몸이 약해져서 자기의 자연목숨이 건강을 잃고 죽게 된다. 모든 것에는 적절성이 있는 거다.
◆ 오늘날 교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소리를 하는 것을 행2:에 나오는 방언과 같은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행2:의 방언과는 다른 거다. 방언은 글자대로는 각 나라의 말이고, 좁혀서 말을 하면 못 알아듣는 말이 방언이다. 한국말인데도 한국 사람이 그 말을 못 알아들으면 이 사람에게는 그 말이 방언이다.
신앙 면으로 보면 세상 육에 속한 사람은 하늘나라의 뜻을 못 알아듣는다. 못 알아듣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방언처럼 들리는 거다. 세상 육에 속한 사람은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받지도 못한다. 그 세계를 모른다. 영은 영으로 알아보듯이 예수님의 영이라야, 진리의 영이라야 천국의 말씀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다.
땅에 소원 목적을 둔 사람은 아무리 하늘의 소원 목적에 대해 말을 해줘도 못 알아듣는다. 하늘의 소원 목적과 땅의 소원 목적은 말의 뿌리가 하나는 천국으로 되어있고, 하나는 땅으로 되어있기 때문에 땅의 소원 목적을 가진 사람은 열매도 모르고, 목적과 방향도 모르고, 그 결과도 모른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시는데 땅의 것을 비유로 들어서 가르치셨다. 그래서 그 안의 뜻은 영적이다. 그러나 가룟유다는 세상의 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말씀을 못 알아듣고 못 깨닫는다. 우리 교회는 이룰구원, 즉 하나님의 온전, 하나님 뜻, 인간의 마음의 정신과 바탕을 많이 말을 하는데 육에 속한 교인은, 즉 존재적 역사적 문자적으로만 성경을 보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도무지 못 알아듣는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온전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종교적 육적으로 믿는다면 이건 미혹의 영을 받은 거다. 세상을 소원 목적하게 하는 설교를 한다면 이는 미혹의 영의 감화를 받은 거다. 우리는 이룰구원에 총 집중인데, 이 이룰구원은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의 사람이 되는 것에 집중한다.
이 온전으로 들어가는 일에 있어서 첫째는 진리본질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두 번째는 받은 말씀을 따라 살면서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거다. 인도자부터 이렇게 만들어지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역사하기가 어렵다.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가신 후에 우리에게 보내셨다. ‘보혜사’란 ‘협조자. 돕는 자’라는 뜻이다.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신 것은 육체적으로 계셨던 주님께서 우리와 마음과 마음으로 결합을 하고 싶어서 진리의 성령으로, 보혜사 성령으로 오시는 거다. 그래서 이 영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를 할 때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하는데, 예수이름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은 기도 끝에 ‘예수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기도의 내용이 자타가 예수님의 성품의 사람이 되기를 구하는 것을 말한다.
육덩이 세상을 위해 기도를 하고 끝에 가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예수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다. 자타의 구원이 아닌 기도는 안 들어주신다. 그 내용이 그 정신이고 그 내용이 예수님의 성품이어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거다. 이게 안 되어있는 사람은 세상 육적인 것을 구하게 되니 이런 기도는 예수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마귀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된다.
성경에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시행하리니’ 라고 약속을 하셨는데, 어떤 사람에게 해당이 되는 말씀이냐?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에게 하는 말씀이다. 신령한 말씀성이 들어있는 기도를, 즉 자타의 구원을 위한 기도를 들으신다는 거지 이방우상 앞에 하는 기도는 백날을 해도 안 들으신다.
예언이나 방언이나 입신 등을 성경처럼 여기지 말아라. 이런 것에 치우치면 바른 신앙생활이 안 된다. 가정생활도, 부부생활도, 자녀교육도 바로 안 된다. 귀신들린 거다. 이런 사람은 바른 교훈을 듣지 않는다. 이미 잘못된 게 심겨져 있기 때문에 옳은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마음의 밭이고 땅의 밭이고 간에 잘못된 게 한 번 심겨지면 바로 서기가 힘들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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