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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삭개오를 우러러 보신 예수님.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51 추천 수 0 2022.05.19 10: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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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9:5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예수님께서 뽕나무에 올라간 삭개오를 우러러봤다. 우러러본다는 게 무슨 뜻이냐? 위를 본다는 거다. 일반적으로 높은 사람을 부러워하는 뜻으로 이 분을 위로 본다고 말하기도 한다. 좋은 뜻으로 보면 네가 나보다 높구나. 과연 우러러볼 만하구나하는 게 있는데, 뽕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가 예수님보다 높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러러본 거냐?

 

예수님께서 삭개오에게 속히 내려오라고 하신 것은 건방진 놈아, 빨리 내려와라이런 뜻이냐? 삭개오가 건방진 놈이라면 내려오겠느냐?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뽕나무 위에 올라간 거지 교만하거나 건방진 마음으로 올라간 게 아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라고 하신 것은 네가 나를 보고 싶어서 올라가다가 떨어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비상수단을 쓰는 마음으로 뽕나무 위로 올라갔구나하고 칭찬을 하시는 거다.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서 내려와서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니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삭개오가 뽕나무 위에 올라간 것은 교만이고, 내려온 것은 회개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사람이 있고, 또 뽕나무 위로 올라간 것은 교만이고, 내려온 것은 타락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건 아니다. 무슨 뜻으로 올라가고 내려가는 게 있는 것이니 우리는 이것을 알아서 자기의 신앙을 점검해야 한다.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기 집에 모시고 하는 말이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삭개오가 지금까지 남의 것을 사기 치고 빼앗았지만 주님을 만나고 보니 그게 잘못인 줄을 알게 되어서 그걸 갚아야 하겠다는 뜻으로 이 말을 한 거냐? 아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소개하고 천국의 사람으로 만드는 일을 하러 오셨느냐, 이 땅의 것을 간구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러 오셨느냐? 하늘의 것을 가르쳐서 질적 본질적으로 하늘의 사람으로 만들어서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려고 오셨다. 이게 인간창조의 목적이다. 세상의 복을 주고 아픈 자를 고쳐주는 일을 하러 오신 게 아니다.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거짓이냐? 거짓은 이단과 연결이 된다. 거짓과 이단은 사역이 아닌 질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성경은 천국을 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을 간구한다면 이 사람은 거짓이요 이단이다. 신앙의 질이 세상으로 들어가 있으면 사람이 고쳐지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 바로 놓이지를 않는다. 이렇게 자꾸 부흥되어 나갈수록 하나님의 징계가 점점 가까이 온다.

 

국가의 지도자들이 젊은 사람들로 채워지면 그 나라의 미래는 암울한 거다. 그리고 나라의 법을 만드는 사람이 법을 안 지키면 이건 국가적 재앙이다. 하나님의 재앙은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 국가적 재앙이 있다. 하나님께서 안 믿는 사람도 당신의 백성을 위해 주관하신다. 그래서 이방의 왕도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을 위해 세우기도 하고 폐위시키기도 한다.

 

고레스 왕이 하나님께 감동이 되어서 성전을 건축하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향으로 보냈는데, 고레스 왕의 신앙이 좋아서 이 명령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게 아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보고 고레스 왕이 구원을 얻었다고 말하면 안 된다. 첫째는 주님을 기준으로 놓고, 그다음에 이 주님과 질적으로 의사 단일적으로 가까워지는 면으로 성경을 봐야 한다.

 

민주주의는 인간이 만든 최고로 좋은 제도이지만 아무리 좋은 제도라고 해도 자기 개인의 이익만을 위해 민주주의를 이용하게 되면 결국은 나라가 무너지게 된다. 많은 사람이 모여서 큰소리를 해서 자기의 이익을 얻는 게 민주주의가 아니다. 자기의 인권을 내세우며 국가를 위해 적과 싸우는 군대에 안 간다면 이건 일반적으로도 규모가 없는 거고, 신앙적인 면으로도 규모가 없는 거다. 상이 자꾸 땅 쪽으로 내려갈 때 하나님의 사람은 자꾸 올라간다. 올라가는 사람이 신앙의 질적인 면에서 구원이 되는 사람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법이요, 성도의 구원의 생명을 위한 말씀이요, 인생이 사는 길이 제시가 되어 있는데 기독교인이라면 매사에 어디에 맞춰야 하느냐? 아무리 부모 형제 일가친척 이웃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이 없이 물질적 이해타산으로 돌아갈 때는 반드시 서로 죽이는 일이 나온다. 원수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항상 자기 집안 식구 중에 있다. 개체적으로는 자기 속의 옛사람이 자기의 원수다. 자기의 새사람이 자기의 옛사람을 다스리지 않으면 옛사람 주격으로 살게 되는데, 이 사람이 상대의 옛사람과 죽이 맞아서 어떤 일을 도모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단체가 되면 전쟁이 일어난다.

 

비진리가 자꾸 커질수록 하나님의 재앙이 가까이 온다. 이러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다리시는 때가 차면 반드시 하나님의 재앙이 떨어진다.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고쳐야 하겠는데, 이것도 때가 있는 거다. 하루하루 미루다가 이제는 안 된다하게 면 이미 늦은 거다. 이게 주님의 때다. 이때까지는 나의 때로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의 때다. 주님의 때라고 할 때는 거의가 재앙의 때다.

 

주님의 날이다. 주님의 때다하는 또 다른 뜻은 주님의 때가 되기 전까지는 자기가 진리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면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을 누릴 때다. 이런 시간이나 사건은 알고 보면 사람을 통해서나 환경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나이적으로 주님이 찾아오신 거다. 그런데 이걸 영적 영감적으로 알아차리지 못해서 자기의 때를 다 흘려보내다가 죽을 지경에 다다라서 주님 앞에 나온다면 이미 늦었다. 이제는 걸레를 빨듯이 땟국물을 빼고 천국으로 가자고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이런 것을 듣고 보고 느끼고 의식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맞춰 살아야 하겠느냐, 인간기준에 맞춰서 살아야 하겠느냐?

 

엄밀히 말해서 국가를 위한 기도는 참 성도라야 할 수 있는 거다. 하나님의 본질을 아는 성도가 국가를 위한 중보기도를 기도를 할 수 있는 거지 마귀가 좋아하는 인본주의 사고방식이나 사회주의 사고방식으로 하는 기도는 중보기도가 아니다. 자기 속에 천국성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대한 부요성에 욕심을 품고 이것을 채우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게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다. 그런데 심령이 가난한 사람을 육적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말한다고 해석을 하면 기준이 어디로 간 거냐? 이건 주님의 의사성으로 만족하게 해 주겠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거다.

 

자기의 신앙의 질이 장로교의 질이냐, 감리교의 질이냐, 은혜와 진리의 질이냐, 성결교의 질이냐? 오늘날 기독교 안에 여러 교파가 있는데 주님은 어느 질이냐? 주님이 교단 교파가 있느냐? 인간이 교단을 만든다면 천국의 교단이어야 하고, 천국의 질이어야 한다. 천국은 본질이다. 기준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단들은 파벌싸움이다. 가정에서 형제들끼리 싸운다면 부모가 누구 편을 들겠느냐?

 

성경해석이 영적인 이치로 바로 되면 세상의 일반적인 이치도 자동적으로 알게 된다. 영적인 이치가 안 열리면 자기감정대로 나가게 된다. 이러면 어떻게 깨우침이 되겠으며 만들어지겠느냐? 이건 마귀의 꾐에 빠진 거다. 믿는 우리는 하나님을 기준으로 자기가 주님께 일대일로 밀착이 되어야 한다. 이룰구원 면으로 볼 때 자기 마음속에서 세상의 성질로 예수를 믿고 있다면 이 사람에게서 성령님이 떠났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그렇고 마음이 세상을 붙들고 있으면 성령님은 떠났다.

 

:에서 성령님이 떠나고 귀신 집, 마귀 집이 된 교회를 보여준다. 인본주의 사회주의 국가주의 염세주의 신비주의 구복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에게서는 성령님이 떠났기 때문에 진리를 못 받는다. 믿음에서 믿음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눈 밝을 때 부지런히 성경을 봐라. 그래야 누가 성경을 해석할 때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알 수 있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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