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계시보기)사랑으로 정복하는 게 기독자의 삶이다.

디모데후 궁극이............... 조회 수 43 추천 수 0 2022.06.05 10:13:08
.........
성경본문 : 딤후3:16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출생해서부터 죽는 날까지 육신의 마음과 세상의 마음이 더 굳어지면 굳어지지 질적으로 변화가 없다. 변화가 있다고 한다면 어릴 때는 욕심이 적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고집만 있었는데 나이 들어갈수록 더 고집스러워진다. 옹고집이다. 그러나 어린아이 때나 어른 때나 그 질은 세상성이다. 믿는 우리는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이룰구원을 생각해야 한다.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많이 했어도 세상 것을 위한 머리는 잘 돌아가지만 질적으로 보면 그 마음이 구원 쪽으로 변화되는 것은 없다. 마음이 신령성으로 변화되는 것은 없다. 이렇게 살면 살수록 자기의 세상욕심을 위해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꾀만 늘어나게 되는데, 이런 것은 전부가 세상에 속한 거고, 사망에 속한 거고, 선악과 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데서 나온 거다.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니 마음이 질적인 면에서 신령성으로 변화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예수 믿기 전의 변화되지 못하고 바꾸지 못한 것들이 자기의 생활로 통해 많이 나타난다. 여전히 세상을 소원 목적하고 세상의 것을 자기에게로 가져오려고 한다.

 

예수를 믿으면 자기의 소원 목적을 천국으로 하고 대인 대사 대물관계를 항상 천국에 놓고 현재를 살아야 하는데 이렇게 살지 않고 자기의 고집과 성격과 성질대로, 즉 거듭나지 못한 상태로 살면 인격과 성품이 신령성으로 만들어지지 못하니 이렇게 산 요소는 신령성이 아니라서 천국에 갈 때 가지고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 세상이 불바다가 될 때 심판을 받게 된다.

 

교회에서 흔히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과 예수를 믿게 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예수 믿는 목적이 일 충성봉사라는 말이 된다. 이것은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할 수 있고, 몸이 건강해야 할 수 있고, 많이 배워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불공평한 분이 된다.

 

예수 믿는 목적이 자타의 이룰구원임을 아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불공평이 아닌 전부가 공의가 된다. 가령 하나님께서 전도하라. 인도하라고 하시는 것을 사역목적이 아닌 자타의 이룰구원을 위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고 먼저 자기 속을 말씀으로 충만히 채우면 자기가 주님의 성품을 입게 되고, 아울러 성령님의 인도로 지혜롭게 말씀을 전하게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은 세상의 조건과는 상관이 없이 자기의 믿음으로 되는 거다. 이게 이룰구원의 정신이다. 자기가 알지 못하면 안 믿는 사람에게 끌려가게 되지만 알면 가르치고 인도하게 된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세상을 사는 소원 목적이 옳아야 하고, 자기의 속이 말씀으로 충만성이 되어야 한다. 그다음에 사람과 사건과 환경에 따라 이치대로 다양하고 지혜롭게 방편을 써나가야 한다. 이게 사랑으로 정복하는 거다. 한 마디로 인간창조의 목적을 알게 해서 이 목적에 합당하게 살게 하는 게 교회의 할 일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옳음에 정복당해야 기쁘고 행복하다.

 

예수 믿는 것은 순리적으로 되어야지 혼돈이 되면 마찰과 충돌과 대립이 일어나기 때문에 자타가 고통이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다. 교회에서는 질서정연한 사람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이룰구원은 이렇게 되어지는 거지 무조건 믿사오니로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상태에서의 충성봉사는 사랑이요, 희생이요, 말씀에 순종이요, 이건 자기 복이 된다. 복된 사람이 된다. 이렇게 충성봉사 하는 것은 짐이 아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 교인들은 활동 충성봉사를 짐으로 맡겨놓았다. 왜 짐이 되느냐? 율법을 문자적으로만 해석을 하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율법은 그 이면에 말하고자 하는 은밀계시가 있는 건데, 이것을 모르면 활동강조가 될 수밖에 없다. 율법 속의 은밀계시를 아는 사람은, 즉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행동은 깨달은 대로 자동으로 나오게 되는데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행동 위주로 나가게 되면 육적인 정신과 사상이 자기 주관화되어서 자기처럼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게 된다. 이건 알고 보면 자기 고통이요 자기 병이다. 예수님 앞에 나오면 이걸 고쳐주신다.

 

눈에 보이는 현상적인 것을 신앙의 주격으로 세워서 말을 하는 것은 신앙도 아니고,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을 취하는 것은 선악과를 먹는 거다.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 심판이다. 반면에 생명과를 먹으면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지배하는 게 질서정연하게 나오고, 이게 점점 확장되는데,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먼저 신앙의 질부터 옳아야 하고, 옳은 신앙을 가졌으면 질적으로 커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옳은 행동 옳은 활동이 나오고 가르치게 된다. 이게 신앙의 세계다. 예수 믿으면서 혼자만 알고 혼자만 사는 건 안 된다.

 

예수님은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고 죄 아래 있는 인간을 구원하러 오셨다. 이 구원에는 기본구원과 이룰구원이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해 이 현상세계에서 죽음 저 너머 영원히 가는 실상세계 가르치셨다. 즉 눈에 보이고 변질되는 것을 들어서 영원한 천국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성경을 들고 불에 타질 물질의 것을 자랑하고 가지라고 한다면 이런 가르침은 거짓된 가르침이요 이단적인 교훈이다. 이런 정신으로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 앞에 거짓된 사람이다.

 

믿는 사람이 진리본질의 교훈을 들으면 자기 속에서 이것을 잡아야 하느냐, 저것을 잡아야 하느냐?’ 하는 이해타산이 생긴다. 이게 없이 예수를 믿게 되면 행동 활동 위주로 나가기 때문에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만사형통 된다고 생각하는 물질주의 기복주의 신앙이 되고,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는 차원의 신앙에 머물게 된다. 성경의 만사형통은 세상의 모든 일이 잘된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사건 환경을 줘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면에 유익을 본다는 의미다.

 

일반적으로 아무리 옳은 말을 할지라도 성경이 기준 된 말이 아니면 전부가 선악과를 따먹고 나온 저주받고 타락된 말이라서 하나님 앞에 심판이다. 이렇게 세상을 기준으로 예수를 믿는 것은 거짓된 사람이요, 이렇게 가르치면 거짓된 인도자요, 자기의 배만 불리는 사람이다.

 

인간은 영육 결합체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이 사실을 몰랐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육 결합체로 만드신 목적은 우리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게 하기 위해서다. 세계 어느 종교도 사람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만드는 것은 없다. 아무리 예수를 믿고, 교인이 많고, 건물이 웅장해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게 없다면 헛믿는 거다.

 

지옥에 가고 천국에 가는 것은 주님이 책임지고 있고, 기본구원에서 좌우되는 것이니 이미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천국에 간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이치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면에 힘써야 한다.

 

성경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는 것은 껍데기 큰 거, 외모 모양을 기준으로 사람을 보지 말라는 거다. 안 믿는 세계는 공평도 없고 공의도 없는 경쟁의 곳이라서 으레 사람을 외모로 취하게 되어있고, 불법으로 서로 속이며 사는 곳이다. 그러나 기독자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보시니 우리도 사람의 중심을 봐야 한다. 안 믿는 사람은 한마디로 세상 이해타산으로 사람을 대하지만 믿는 우리는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려니 이렇게 저렇게 방편을 써야 하는데, 문제는 방편이 주격이 되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늘 성령의 감화 감동을 받고 진리충만으로 살아야 한다.

 

성경에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은 정로로 가라는 거다. 우리는 이런저런 소리가 많을 때 정로로, 즉 법대로 가야 한다. 우리가 잠시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세상에 있는 동안에 온전케 되는 이치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 중에 이렇게 만들어지며 사는 게 거의 없고, 이 면을 강조하는 교회가 별로 없다.

 

예수 믿는 우리가 이룰구원 차원에서 자기 속에 무엇이 자라고 있느냐? 예수 믿으면서 이룰구원으로 살지 않는다면, 즉 만들어지는 목적으로 살지 않는다면 세상에 치우쳐서 사는 것이니 이건 악이다. 그런데도 믿는 사람이 이 죽을 것이 죽지 않는 것에 삼킨 바 되게 살지 않고 오히려 죽어지게 사는 일이 많다. 이건 악한 거다. 교훈적으로도 진리이치의 가르침이 아니면 악한 교훈이요 썩은 누룩이다.

 

믿는 세계에서는 선하다. 악하다하는 것을 바로 알아야 구별력 분별력이 예민해진다. 하나님께서는 신령계와 물질계를 들어서 우리의 이룰구원의 도리를 깨닫게 하시니 우리가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의 목적에 맞게 써야 만이 이룰구원의 삶을 살게 되고, 이게 하나님을 바로 믿는 거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이 무엇이냐? 세상 것을 이용 사용 활용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만들어져서 하늘나라에 가서 이 땅에 살 때 온전케 된 것만큼 그 나라를 영능의 실력대로 주님과 함께 다스리고 누리는 거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것을 다 가르치셨으니 목사님들도 이렇게 가르쳐야 하고, 믿는 사람은 이 가르침대로 살아서 천국에서 그 효력을 봐야 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sort 조회 수
17502 사도행전 성령님이 행하신 일 행2:42-47  강승호목사  2022-06-22 165
17501 누가복음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눅12:47-48  김경형목사  2022-06-20 58
17500 요한복음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1:15-18  김경형목사  2022-06-20 188
17499 마태복음 (계시보기)가룟유다가 지옥에 갔을까? 마27:3  김경형목사  2022-06-16 131
17498 고린도전 성도가 가져야 할 영적 은사 고전14;1-40  전원준목사  2022-06-16 172
17497 누가복음 소명에 충실한 사람 눅3:15-20  강승호목사  2022-06-15 161
17496 창세기 (계시보기)죄가 짐승에게도 해당이 되는가? 창2:9  김경형목사  2022-06-14 50
17495 사도행전 믿음의 눈을 뜹시다 행7:55-60  강승호목사  2022-06-14 244
17494 누가복음 주인의 뜻대로 행치 않은 자. 눅12:41-48  김경형목사  2022-06-13 80
17493 요한복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15  김경형목사  2022-06-13 98
17492 요한삼서 (계시보기)만사형통의 신앙. 요삼1:2  김경형목사  2022-06-12 83
17491 고린도전 사랑의 행복 고전13;5-7  전원준목사  2022-06-09 196
17490 빌립보서 (계시보기)구원해서 곧바로 천국에 데려가지 않는 이유./(외) 빌2:12  김경형목사  2022-06-08 47
17489 사도행전 성령이 임하시면 행1:8-11,2:1-4  강승호목사  2022-06-08 174
17488 누가복음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한 자. 눅12:45-48  김경형목사  2022-06-06 82
17487 요한복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1:13-14  김경형목사  2022-06-06 82
» 디모데후 (계시보기)사랑으로 정복하는 게 기독자의 삶이다. 딤후3:16  김경형목사  2022-06-05 43
17485 사도행전 생각지 못한 은혜 행3:1-10  강승호목사  2022-06-04 268
17484 열왕기상 지혜로운 자가 되라 왕상10:1-8  강승호목사  2022-06-03 194
17483 고린도전 참 사랑의 무지개 고전13;4-5  전원준목사  2022-06-02 172
17482 스가랴 열조를 본받지 말라 슥1:1-6  강승호목사  2022-05-31 111
17481 누가복음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종의 주인이 오리라. 눅12:42-48  김경형목사  2022-05-30 99
17480 요한복음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 요1:12-14  김경형목사  2022-05-30 108
17479 야고보서 (계시보기)낮은 자는 높음을, 부한 자는 낮아짐을 자랑하라/(외) 약1:9-10  김경형목사  2022-05-28 80
17478 마태복음 (계시보기)말세에 거짓 선지자가 많이 나타난다. 마24:11  김경형목사  2022-05-28 89
17477 요한복음 (계시보기)하나님과 의사단일의 시랑이어야 한다. 요14:20  김경형목사  2022-05-28 39
17476 베드로후 (계시보기)구원을 얻었으면 신앙이 자라야 한다. 밷후3:18  김경형목사  2022-05-28 50
17475 고린도전 사랑이 뭐길래 ? 고전13;1-3  전원준목사  2022-05-26 192
17474 골로새서 성숙한 성도가 되라 골1:24-29  강승호목사  2022-05-25 235
17473 말라기 하나님의 사랑 고백 말1:1-5  강승호목사  2022-05-23 121
17472 요한복음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1:1-12  김경형목사  2022-05-23 78
17471 누가복음 때를 따라 양식을 줄 자가 누구냐? 눅12:42-44  김경형목사  2022-05-23 94
17470 요한복음 (계시보기)빛 앞에 서야 자기의 어두움이 드러난다/(외) 요1:9  김경형목사  2022-05-23 28
17469 마태복음 (계시보기)새사람으로 사느냐, 옛사람으로 사느냐? 마10:28  김경형목사  2022-05-23 52
17468 에배소서 (계시보기)옛사람과 새사람의 구분. 엡4:22  김경형목사  2022-05-23 69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