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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사무엘상 30:21~31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과 평강이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질서를 따라 오롯이 사는 주님의 백성 가운데에 함께 있기를 빕니다.
“사람도 착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착함을 지킬 독한 것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마치 덜 익은 과실이 자길 따 먹는 사람에게 무서운 병을 안기듯이, 착함이 자기방어 수단을 갖지 못하면 못된 놈들의 살만 찌우는 먹이가 될 뿐이지요. 착함을 지키기 위해서 억세고 독한 외피를 걸쳐야 할 것 같습니다.” 자연을 스승 삼아 순응하며 살던 농부 전우익1925~2004 님의 책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1993, 현암사)에 나오는 글입니다. 바로 이 시대 이야기를 하는 듯합니다.
다윗은 아말렉을 응징하여 빼앗겼던 가족들을 되찾고 많은 전리품을 차지하였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안고 돌아오는 길, 앞서 전쟁을 향해 치달릴 때 기운이 진하여 끝까지 전장에 나가지 못하고 브솔 시내에 머물게 한 이백 명이 다윗 일행을 기쁨으로 맞이하였습니다. 다윗은 아말렉 전쟁에 끝까지 참여하지는 않은 그들에게도 동일한 전리품을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조치에 대하여 강하게 불만을 터트린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논리에 맞는 말처럼 보입니다. 생명을 내건 전쟁에 끝까지 참전하지 않은 자들이 자신들과 동일한 취급 받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목숨 걸고 싸운 군인과 그렇지 못한 자는 마땅히 차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을 ‘악하고 불량한 사람’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우리 시대에도 그런 논리는 흔합니다. 보편적 복지와 무상급식과 최저임금 등을 공산주의 정책이라고 몰던 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 이런 말을 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만을 위해 오시지는 않았지만 가난한 자를 외면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도리어 주님은 포도원 일꾼의 비유(마 20:1~16)에서 한 시간 일한 자에게도 하루 종일 일한 자와 동일한 품삯을 주셨습니다. 악하고 불량한 이들이 내세운 논리는 욕심에 불과하였습니다.
“동지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고, 우리에게 쳐들어온 습격자들을 우리의 손에 넘겨주셨소. 주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가 그렇게 처리해서는 안 되오. 또 동지들이 제안한 이 말을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소. 전쟁에 나갔던 사람의 몫이나, 남아서 물건을 지킨 사람의 몫이나, 똑같아야 하오. 모두 똑같은 몫으로 나누어야 하오.”(30:23~24 새번역) 다윗은 단호하게 악하고 불량한 자들의 주장을 윽박질렀습니다. 지도자의 결기를 느끼게 합니다.
전우익 선생은 짐승을 예로 들며 욕심 사나운 사람들을 나무랍니다. “그들은 평생 동안 남의 흉내는 내지 않지요. 개는 개소리, 닭은 닭소리, 새들도 각각 그들만의 독특한 소리를 내지요. (중략) 인간만이 남의 흉내를 내기 위해 안달을 하고 그걸 못하면 좌절하는 것 같아요.” 사람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그립습니다.
하나님, 사람들의 욕심이 점점 드세어지고 있습니다.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야단입니다. 주님의 나라는 함께 사는 세상입니다. 공생을 꿈꿉니다.
찬송:357 주 믿는 사람 일어나 https://www.youtube.com/watch?v=0aQ7CcMQT68
2022. 6. 24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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