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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70 추천 수 0 2022.06.27 13: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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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2:45-48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245-48: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알지 못해서 맞을 일을 했을 때는 참작이 가지만 빤히 알면서도 안 하면 더 많이 맞는다. 그러면 알면서도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있으면 안 얻어맞는 것이냐? 일을 해도 시간은 가고 노쇠도 되고, 그러면 가만있으면 시간도 정지가 돼 있고 노쇠도 안 되는 거냐? 움직이는 사람에게만 시간이 가느냐? 죽어있는 송장에게도 시간은 간다. 그래서 썩고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알면서도 맞을 일을 했으면 연타적으로 녹초가 되게 얻어맞을 것이고, 알지 못하면서도 맞을 짓을 하면 살살 얻어맞는다. 그러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안했다면 이건 살살도 안 얻어맞는 거냐? 이런 사람은 자기가 얻어맞아도 왜 맞는 줄을 모른다. 그러니 이 사람은 맞는 게 자기로서는 억울한 거다.

 

때릴 때는 미리 가르쳐줘 놓고 때린다. 시험을 칠 때는 알게 해 놓고 시험을 친다. 주님의 뜻을 알면서 맞을 일을 했다는 것은 시간도 물질도 세월도 낭비를 했다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그 자기의 중심은 옛사람 주격으로 산 거다. 예수 믿는 자기가 지금 옛사람 주격으로 사는 건지, 새사람 주격으로 사는 건지 생각을 하느냐?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서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참 온전한 새사람으로 만들어지기는커녕 시킴을 받아서 충성봉사 일만 죽도록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되게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른 채 충성봉사를 하게 되면 얻어맞는 거다. 예를 들면 도둑 밑에서 목숨을 걸고 충성봉사를 하는 것도 있다. 그러면 법이 와서 용서를 해 주느냐? 교회적으로 볼 때도 거짓 종들에게 충성봉사 하는 것은 얻어맞는다. ‘나는 몰랐습다하면 그게 통하느냐? 안 된다.

 

교회에서 내 개인적으로 하나님을 상대해서 충성봉사를 했다고 할지라도 교회가 내 개인적이냐? 교회는 구약시대로 보면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서 가는 것인데, 개개인마다는 그 소원 목적이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서, 위로부터 오는 만나를 먹으면서 애굽성을 뽑아내며 가는 길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에서 애굽성이 가득 들어있으면서 그 애굽성의 축복을 내려달라는 개념으로 충성봉사를 하면 그건 얻어맞는 거다.

 

교회라 할 때는 그 기본이 구원을 이루면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으로 가는 게 교회다. 아무리 세상에서 알아주는 교회라도 성격과 성분과 성질이, 소원 목적이 세상성적인 물질 축복적 개념으로 된 애굽성이 들어있으면 재앙이 따른다. 열 가지 재앙이 따른다.

 

구약시대에 대표로 보면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가는 것이 모세요, 이 모세는 신실한 종이요, 모세 속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들어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이 잡고 쓰시는 종이다. 또 어떤 면으로 보면 신약에 예수님께서 교회를 약속의 땅, 축복의 땅으로 뺑뺑이를 돌리면서 새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구약 때 이스라엘의 두령들 중에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자꾸 반역을 일으켰는데 이게 불신자들이냐, 안 믿는 박사고, 안 믿는 정치인들이냐? 지금으로 말하자면 그게 목사들이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것을 볼 줄을 아느냐? 왜 알지를 못할까? 아는 자가 있음에도 안 가르쳐줘서인가? 이런 경우 자기가 알아내지 못하면 모르는 거다. 아는 사람이 안 가르쳐줘서 모르는 거고, 또 자기가 알아내지 못한다면 모르는 거다.

 

지상의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가 하나님께서 알아주시는 교회라면, 그 다음에 그 옳은 교회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게 있다. 무슨 말씀이냐?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역사는 그렇다. 그 다음에 천국을 침노한다고 했다.

 

이 말씀을 들고 와서 나에게 뭘 말하는 것이냐? 네가 교인이냐? 율법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라. 들었느냐? 그러면 그 다음에 그 속에서 선지자의 말을 들어라. 신앙사상이 질적으로 그렇게 들어가는 거다. 그 다음에 그 선지자의 말은 예수님 오시기 직전 세례요한의 사상까지 가는 것이다.

 

자기 신앙의 질도 이렇게 돼야 한다. 그래야 만이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을 두고 내가(예수님) 내 사자를 네(세례요한) 앞에 보낸다했는데 이게 역사적으로 보면 세례요한이지만 이 말씀을 나에게 적용해서 신앙 사상적으로 보면 그게 바로 내 앞의 사자다.

 

그러면 왜 내 앞에 주의 사자를 보내느냐? 주의 사자의 역할은 예수를 만나게 하는 지름길을 닦는 것이다. 질적인 면에서 신앙사상이 그렇게 타고 들어가야 예수를 만나게 돼 있는 거다. 만나서 예수를 따르는 것은 이룰구원 차원에서 영능의 실력적으로 천국을 침노하는 것이다. 이게 우리 신앙의 이치다.

 

또한 마태복음을 통해 보면 원리적으로 신앙은 어떻게 생기는 것이냐? 마리아의 신앙처럼 하나님께서 전해주시는 진리의 말씀이 성령으로 잉태된 이것이 신앙의 원리는 이렇다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진리생명(예수님)이 잉태되었느냐? ‘그러면 마리아처럼 목숨을 걸고 말씀의 지시대로 따라라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교인들이나 목사들의 신앙사상에서 이걸 보기가 참 힘들다. 그러니 교인이라는 게 뭐냐? 선악과 따먹은 일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기독교라는 모자를 쓰고, 옷을 입고 있는 하나의 기독교라는 종교생활일 뿐이로구나.

 

종교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자는 종교생활도 들어있지만 종교생활 기준을 가지고는 신앙생활이 안 들어간다. 그건 왜 그러냐? 종교생활에서는 진리지식의 생명잉태가 안 돼서이다. 그래서 평신도부터 목사까지 보면 생명이 잉태된 것이냐, 안 된 것이냐가 나오는 것이다.

 

자기 신앙의 위치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신앙이 반석 위에 설 수 있는 것이다. 장로라고 해서 반석 위에 선 신앙이냐? 목사라고 해서 반석 위에 선 신앙이냐? 아니다. 신앙은 외형적인 기준에서 보는 게 아니고 보이지 않는 자기의 인격과 성품, 영적 기능 지능, 모든 면이 진리 자체화 되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성품으로 실상화 되는 것이요, 이게 예수를 닮는 것이요, 이게 신앙인이다.

 

진리본질을 알지 못하면 못 가르친다. 인도를 못 한다. 신학교를 나오면 인도가 되느냐? 아니다. 왜 그러냐? 여전히 눈으로 보이는 기준을 가지고 잣대를 잴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건 세상이 하는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속사람, 진리 따르는 양심 그걸 보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대 왕을 뽑을 때 건장하고 키 큰 것을 봤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꾼을 그렇게 본다. 이게 뭐냐? 눈으로 보이는 기준을 가지고 사람을 논하고, 부피 덩어리 큰 것을 가지고 사람을 논하는 정신 사상이 들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안 보신다.

 

사람이란 활동하는 존재다. 하나님의 뜻을 알던 모르던 무슨 생각이던 자기가 생각한대로의 활동을 하게 되어있다. 세상만사는 내가 활동을 하면서 분초찰나 순간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지혜지식성으로 도덕성으로 능력성으로 이뤄갈 수 있는 재료다.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네가 몰라서 그랬구나하고 그냥 넘어가지를 않으신다.

 

내가 안 가르쳐줘서 몰랐습니다한다면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실까? ‘너는 글씨를 모르느냐? 성경 볼 시간이 없었느냐? 물어볼 수가 없었느냐? 너는 발이 없었느냐? 너는 차비도 없었느냐? 너는 듣는 귀도 없었느냐? 너의 두 발을 누가 꽁꽁 묶어 놓았더냐?’ 그런 물음을 하실 것이다.

 

내 자신의 구원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는 거냐? 자신이 지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의 목회자는 그 교회의 대표자다. :에서도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말씀을 하신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에게 큰 책임이 있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걸 못 느낀다. 목회자의 말씀의 깊이, 그 중심의 깨달음에 대한 것의 중요성을 거의가 못 느낀다. 아무리 떠들어도 90% 이상이 못 느낀다. 우리는 90% 외에 있어야 되겠는데, 우리교회는 몇 %에 들어갈까?

 

내 자신에 대한 책임은 바로 내가 지는 것이다. 내가 얻어맞는 것을 남에게 책임전가하지 말라. 모르면 모르는 대로 얻어맞으니 그 말이다. 내가 몰랐으면 하나님께서 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님을 불러다가 왜 안 가르쳐 주었느냐하고 목사만 때리는 게 아니라 너는 눈이 없었느냐하고 나를 때리는 거다.

 

자기가 주님의 참 청지기라고 여겨진다면 반드시 교인들에게 주님의 뜻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주님의 뜻을 모르면서도 충성봉사적인 일만 시키고, 그 일을 잘 하면 추켜올리고 칭찬하고, 그렇게 해서 덩어리를 키운다고 해서 주님께 영광처럼 생각을 하면 이건 큰 오산이다. 주님의 뜻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사단 마귀의 종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 계신 분들이 설교를 들을 때 판단을 잘 해야 한다. 설교를 들을 때 하나님께 정확한 것을 가르쳐 달라고 하고, 영의 귀를 열어달라고 하라. 말씀을 들을 때 옳은 것을 들어야 하는 건데 내가 좋아하는 소리만 쏙쏙 빼서 듣고 있다면 네가 하나님이냐?

 

아무리 목사라도 인간인지라 부족성은 있을 테니 목사의 설교를 잘 분별을 하라. ‘목사의 정신 사상이 이단성이구나. 참단성이구나하는 것을 분별하라. 분별한다고 해서 그게 죄는 아니다. 또한 옳은 설교를 들을 때 그 설교를 가지고 나를 분별하라. 옳은 말씀이면 아멘하고 그 일에 동참하고 수종들고 해야 한다. 분별도 안 하고 하나님의 종의 말이니 옳은 말이겠지하면 안 된다. 속에는 사기성이 들어있는 목사도 많기 때문이다. 세상 소원 목적적으로 가르친다면 전부는 사기꾼이요 거짓 종이다. 하나님 앞에 질이 그렇다.

 

사람이 말로써 얻어맞는 게 있고, 사건으로 얻어맞는 것도 있다. 직접 자기 몸이 얻어맞는 것도 있다. 씨름도 힘 센 장사들이 힘 대 힘으로 넘기는 씨름이 있고, 토론이라는 말씨름도 있다. 말로 사람을 때리는 것도 있고, 말로써 사람을 추켜올려 세우기도 하고, 말로써 사람을 번쩍 들었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도 있다.

 

인간 자기가 살아오는 동안에 한 번도 안 얻어맞은 사람이 있느냐? 얻어맞을 때 깨달았느냐? 그게 문제다. 이제는 깨달아야 한다. 자꾸 얻어맞으면 맷집이 단단해지느냐, 자꾸 얻어맞으면 결국은 피부조직에 골병이 들어서 무너지느냐?

 

48: 성경에 보면 많이 받은 자도 있고 많이 맡은 자도 있다. 받았던 맡았던 어쨌든 자기의 것은 아니다. 돈은 누구 거냐? 자기 것이 아닌 사용하고 활용하는 것이다. 노력의 대가이기 때문에 자기 것이라고 하는 것은 세상적인 정신으로 말하는 것이고, 신앙인들은 자기의 모든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다. 관리하고 사용하는 차원에서 네가 사용하라는 것이다.

 

자기 것이란다면 자기가 다 만들어야 한다. 자기라는 존재도 스스로 생겨져야 하고. 그런데 그런 것은 없다. 그러니까 자기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네 몸이 그렇게 크기까지도 어머니의 젖이 들어갔고, 영양이 들어갔고, 수고와 노력이 들어갔다. 부모의 보살핌이 들어갔다. 그래서 신앙심을 가지고 보면 자기 혼자 독불장군은 없는 거다. 그렇다면 감사할 줄을 알아야 한다.

 

부모들을 보면 다 자식을 사랑한다. 그런데 부모는 자식에게 교육이 들어있다. 정서적인 교육이 들어있다. 가치판단을 알게 하는 지식적인 교육이 들어있다. 그런데 성경이라는 기준으로 볼 때 부모들이 모순투성이이고 모자라는 것이 참 많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보듯이 자식이 판단자가 돼서 그런 우리 부모는 나쁘다하면 어떻게 되는 거냐? 그건 잘못 생각하는 거다.

 

부족한 부모이지만 그 시대에 그 나름대로의 깨달음대로 각자의 몸을 가지고 먹이고 입히고 가르치느라고 힘을 쓴 것이다. 그것을 먹고 피와 살이 된 것이니 고맙고 감사합니다이렇게 들어가야 하고, 부모에게 모자라는 것이 발견이 되면 자기는 그 점을 자기에게 보충을 시켜서 부모가 몰랐던 때의 고생한 것을 자기는 안 해야 한다. 그게 바로 배우고 깨닫는 것이다. 안 그러면 너는 고마움도 모르고 감사치도 않고 원망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그러면 사람이 뭐가 되느냐? 모든 존재물들은 다 사람의 이룰구원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무릇 많이 받은 자.’ 뭘 많이 받았느냐?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다른 사람보다 많이 받은 게 있느냐? 사람인지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느낄 것이다. 인간 자기에게 많이 주었다면 많이 준 자가 누굴까? 그 분을 안다면 나중에 또 찾아갈 것이다. 창세 이후로 사람마다 받은 면에서 각 종류마다 차이가 있지만 무엇이든지 다 받았다. 안 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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