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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 된 자와 먼저 된 자가 있다.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47 추천 수 0 2022.10.16 16: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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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3:28-30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328-30: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석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28: 밖에 쫓겨난 이 자들이 예수님을 안 믿는 이방인들이냐,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냐? 믿는 자들이다. 이방정신 사상을 가지고 살면 즉, 안 믿는 사람들과 똑같은 소원 목적 세상풍습 절기 그런 정신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살면 어떻게 된다고 하는 것을 이미 구약에서도 역사적으로 보여줬고, 신약에서도 역사적으로 그 결과를 보여줬다. 이방나라에 붙잡혀서 포로생활을 하게 된다. 신앙 정신적 소원 목적적으로 이방정신 사상에 포로가 되면 전쟁이나 육신의 눈에 보이는 쪽으로 포로로 잡혀가는 거는 시간문제이다. 그걸 알아야 한다.

 

밖에 쫓겨난 자들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인데 왜 밖으로 쫓겨나서 울고 있는 것이냐? 신앙을 한다고 하면서 이방인들이 선악과 먹고 그대로 사는 것처럼 타락된 정신 사상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안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선악과 따먹은 데서 나오는 말이니 전부는 땅에 속한 것이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인간세상 말이다. 목적이 그렇다. 그런데 신앙을 한다고 하면서 선악과 먹고 타락된 세상의 소원성을 가지고 사니까 이런 사람은 예수 믿는 것을 타종교와 같은 그런 사고방식으로 하나의 종교인으로만 살고 있지 천국복음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 복음통치는 못 받는다. 교훈적으로 못 받는다. 이 말은 구약에도 있는 것이고, 신약의 계:에도 이미 다 있는 거다. 이런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진리통치는 못 받는다. 이런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정신으로 통치를 받으며 교회에 다니는 것이다.

 

진리통치를 받는 사람은 깨달음의 수준이 상당히 올라간다. 고차원적으로 올라가고 질적으로 주님의 것과 똑같이 올라간다. 충만성에는 주님과 비교는 안 되지만 그러나 질적으로 보면 주님과 같다. 그럼에도 진리통치를 받지 못하는 교인들도 있구나. 주님의 말씀은 안 받고 병을 고친다고 하는 또 다른 무리들이 있구나.

 

본문을 통해서 보면 하나님 나라에 있는 자들이 누구라고 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 ‘하나님 나라에 있고하는 것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통치를 잘 받고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잘 만들어진 사람들을 말한다. 아브라함의 신앙정신 사상 그런 걸 말한다.

 

구약시대에 아브라함이 말씀을 받고 사는 그 자체가 신앙생활이다. 아브라함 속에 든 사상은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계속 떠나는 것이다. 살면서 계속 떠나는 것이다. 양을 치려니까 한 자리에서 천막을 치고 살아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러면서도 아브라함의 그 신앙사상은 계속 떠난다. 세상 안에 살면서 세상 소원 목적성이 자기 속에 들어오지 않고 그걸 자꾸 떠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모든 선지자라고 말을 하는 그 속에는 교육의 질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들어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잘 만들어진 사람이다 그 말이다. 아브라함도 아삭도 야곱도 잘못된 것이 많지만 잘못되었을 그 때마다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본질로 빨리 돌아왔다.

 

오늘날 육적 세상으로 믿는 것은 거짓 교회요 거짓 목사인데, 교회가 그렇게 나가니 이단자들이 그냥 나오는 거다. 교회가 잘못되면 안 보이는 세상도 혼란스러워지는 거다. 불이 꺼지면 어두우니 혼란스러워지듯이. 그러니 진리의 등불을 어디서부터 켜야 하느냐? 교회에서부터, 먼저 목사부터 켜야 한다.

 

진리의 불이 없으면 불 꺼진 종들이요 땅에 떨어진 별이다(:). 이렇게 되면 신28:에도 있듯이 너희들이 붙잡혀 가서 이방인들이 조각한 데 가서 숭배한다고 했다. 인간의 수공물, 건축물, 세상 사람들이 그것만 있으면 하나님처럼 여기는 그걸 예수 믿는 사람이 소원 목적하고 달라고 하는 건 전부가 포로들이다. 그렇게 되면 가정이 어떻게 되며 교회가 어떻게 되겠느냐?

 

오늘날 교회가 얼마나 속화가 됐는지 선악과 따먹고 나온 일반사람들의 도덕성을 가지고 십계명도 해석을 하고, 성경의 평화나 화목도 유엔의 평화로 부르짖는다. 지금은 문화 과학이 옛날보다 훨씬 더 발전을 했고 더 잘 사는데, 너무 많아서 탈이다. 버리는 음식이 먹는 것보다 더 많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전부는 세상으로 다 치우쳐 있다. 포로로 잡혀갔다 그 말이다. 이걸 섬긴다고 표현을 하는 것이다. 섬긴다는 것은 그걸 돋보고 부러워하는 마음을 말한다. 돋보면 섬기고 쳐다보기 마련이다. 그러면 마음 빼앗기고 정신 빼앗기고. 그게 이미 포로가 된 것이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사모하고 있으면 몸은 따라가게 돼 있다.

 

밖에 쫓겨난 자들은 하나님을 안 믿는 자들이 아니고 믿기는 믿는데 하나님의 뜻은 내버리고, 온전한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면은 내버리고 인간 자기 주관적인 뜻에 즉, 신념적 신앙으로 나간 자들이다. 예수를 모르는 신념적 신앙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많이 알아 들어가는 신의적 신앙이다. 이러면 그 분을 아느니만큼 신념도 나오고 신의도 나오는 거다. 이건 옳은 거다. 그러나 신의를 모르면 자기 뜻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이렇게 되면 예수를 믿는 일에 자기 프로그램, 자기 고안을 머리로 짜서 자꾸 그걸 끄집어내는 거다. 그런 건 아무리 끄집어내도 거기에는 성령님의 역사는 없다. 그러니까 이런 곳에서는 종교적 잔꾀만 배운 대로 자꾸 불어나는 것이다.

 

성경구절을 자기 주관적인 뜻에 붙여서 예수님을 부르면서 자기 딴에는 신앙을 했다고 하는 신앙정신 사상의 질은 하나님의 통치권, 하나님의 애정권, 하나님의 생명권 밖의 교인이다.

 

부모라도 어느 자식에게는 마음이 가고, 어느 자식에게는 마음이 안 가는 자식이 있다. 또 인인관계에서도 마음이 가는 사람이 있고, 안 가는 사람이 있다. 미운 짓을 하면 마음이 안 간다. 하나님께서도 누구는 좋아했고, 누구는 미워했고하는 게 있다. 그렇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타락을 해서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말씀하심 속에는 인간 자기가 하나님 앞에 어떻게 보였구나하는 게 들어있는 거다. 미워하고 좋아하는 게 공의성으로 들어 있어야지 사감적으로 들어있으면 그건 불법이다.

 

그들의 신앙정신 사상은 육적 세상적 옛사람 부패성적 마귀적인 신앙이요, 그들의 가르침은 세상 넓은 길 사망 길 멸망의 길이다. 하나가 가면 다 따라가는 거다. 뭉쳐져 있는 걸 풀어 헤치니 이런 저런 표현을 하는 것이지만 그걸 다 합쳐놓으면 세상이다. 믿기는 믿는데 그 속에 든 게 안 믿는 사람의 질이다. 그러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그런 신앙사상을 가지게 되면 바벨론이나 앗수르가 와서 잡아가 버린다. 잡혀가면 그들이 다스리는 거다. 그들 밑에서 종살이를 해야 하고, 밥술이나 얻어먹으려면 예 예하며 머리를 굽신 거려야 한다.

 

밖에 쫓겨난 자들은 좁은 문으로 즉,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들어가지를 않았는데, 주님께서 괜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는 거냐? 아무리 충성봉사를 해서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았다고 해도 이런 신앙정신은 슬피 울며 이를 갈고 가슴을 치며 통곡할 날이 오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을 주님이 더 잘 아신다.

 

진리생명의 말씀 냉대는 결과적으로 자기 냉대다. 자기 처참이 된다. 네가 옳은 진리의 말씀을 버리고 밟았지? 그렇게 되면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섭리로 오는 건데 그 역사가 그 사건이 그런 너를 짓밟을 것이다. 사건이 와서 너를 냉대할 것이다. 인간세계도 그런 게 있는 거다.

 

29: 동서남북은 전 세계적이다. 창세 이후로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성도들을 말한다. 전 세계적이고 전 우주적으로.

 

어떤 자들이 잔치자리에 앉을까? 진리생명의 신앙노선으로 살아온 자들 즉, 좁은 문으로,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들어온 자들이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한다.

 

잔치라 할 때는 기쁜 걸 의미한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잔치니까 이건 그 이상 없는 최고의 기쁨의 잔치다.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그 신앙의 질이 그렇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깨닫지 못한 사람은 그 기쁨이 저질이다. 어린아이들은 노는 데서 기쁨을 가지려고 한다. 어린아이들의 기쁨을 어른들의 기쁨과 비교를 하면 저질이라고 보는 거다. 아무 의미와 뜻도 없는 데서 기쁘다고 한다. 구슬치기를 해서 이기면 기쁘다고 한다. 차원이 그렇다. 어리거나 사람이 저질이면 기뻐하는 요소가 다르다. 인격적 고차원이 되면 정신적으로 올라간다. 예수 믿는 사람은 신앙 사상적으로 올라간다.

 

목사님들 세계에서도 사람을 만나면 기쁘다. 목사님들 친구 중에는 예수를 믿는 친구도 있고, 안 믿는 친구도 있는데, 믿는 친구를 만나면 더 반갑다. 더군다나 목사다하면 더 반갑다. 그런데 그들을 만나서 대화를 하면 슬슬 벌어지면서 안 본만도 못한 그런 친구도 있다. 기쁨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배도 잔치라면 잔치인데 이 잔치에서 뭘 가지고 무엇을 먹으며 잔치를 하느냐그게 있다. 세상 모든 소원 목적을 놓고 듣기도 하고 가르치고 한다면 이건 세상잔치다. 질적으로는 비진리다. 그 가운데 악령이 활동을 한다. 천국복음이라야 천국잔치가 되는 거다.

 

자기 속에서 말씀을 듣고 기쁨이 자꾸 솟구쳐 나오면 이건 영생수이다. 그게 늘 있으면 목마르지를 않다. 그러나 그게 없는 사람은 목이 말라서 이런 저런 부흥회를 막 찾아다니고 자꾸 기도원으로 올라가고 굴속에 처박혀서 기도를 하고 한다. 백 날 그렇게 찾아가봐야 사람의 마음만 자꾸 메말라 간다.

 

좁은 노선 생명노선 의사단일의 노선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를 한다. 참으로 귀한 자리다. 이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수준이 높고 인품이 고상하고 최고의 신분을 가진 곳이다. 그렇지 못한 자가 그 자리에 가서 않으면 쫓겨나서 슬피 울며 이를 갈며 통곡을 한다. 쫓겨나서 통곡을 하는 이 자들이 이방인들은 아니다. 예수 믿는 교인들이다. 교인들이라도 이런 질적인 차이가 있는 거다.

 

성경에 주인이 손님을 초청을 했는데 변명이 많아서 안 왔다. 그래서 종들을 길로 내보내서 아닌 말로 강권적으로라도 데리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잔치자리에 들어와 앉았는데 그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 때의 풍습적인 의미로 보면 식사자리에는 문 앞에 들어올 때 예복을 주는데 한 사람이 그 예복을 안 입은 것이다.

 

그런데 목사님들마다 깨달음에 따라 이것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할 수가 있는 것이지만 그것이 기본구원에 속한 거냐, 이룰구원에 속한 거냐할 때 그걸 기본구원에 속한 것이라고 하게 되면 그 해석은 문제가 된다. 이룰구원 차원에서 해석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룰구원 차원에서 해석을 해야 하겠는데, 예복이라는 게 뭐냐? 다른 사람들은 일률적으로 예복을 다 입었다. 군대식으로 다 입었다. 그런데 한 사람은 그 예복보다 자기 옷이 더 좋다고 여긴 듯하다. ‘귀찮게 예복을 왜 입냐할 수도 있고. 그러니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식사자리에 앉으면서 그 마음의 태도의 예가 벌써 틀린 것이다.

 

목사님들 세계에도 이런 게 많다. 말씀을 들으러 왔으면 마음의 예가 있고 태도가 있는 거다. 그런데 그렇지를 않은 목사들도 많고 교인들도 많다. 그런 자는 쫓겨나게 된다. 제외된다. 말하자면 그 분위기에 안 맞을 바에야 뭐 하러 그곳에 가느냐? 그런 면에서 청한 자는 많되 택한 자가 적다는 것이다. 우리는 택한 자가 돼야 한다.

 

30: 성도들이 세계 각 국에서 우주적으로 몰려온 잔치자리다. 말씀을 받는 자리도 잔치자리다. 이걸 하늘나라로 확대해서 볼 때 그 때에 무엇을 보라고 하느냐? 세계 각국에서 성도들이 모였는데 무엇을 보라고 하느냐? 세상 잔치자리에 오면 무엇부터 보이느냐? 사람이 보이는데, 특별한 사람이 오면 사람들이 하면서 그 사람을 맞으러 간다.

 

그런데 세계 각국에서 모여서 잔치를 할 때 무엇을 보라고 하느냐? 먼저 된 자 나중 된 자가 있으니 그걸 보라는 것이다.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다고 했으니, 쉽게 말해서 먼저 믿었다고 해서 늘 먼저 되라는 법도 없고, 또 나중에 믿었다고 해서 늘 나중 되라는 법도 없다. 그러니까 나중 믿었어도 영능의 실력이 먼저 될 수도 있고, 먼저 믿었어도 나중 될 자도 있다. 이건 예수님께서 그렇게 정한 게 아니다. 진리생명으로 잘 만들어 졌으면 언제 믿었건 가장 훌륭한 자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남보다 먼저 앞서 가는구나.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하다보면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무슨 뜻으로 모태신앙이라고 하는 거냐? ‘나는 부족합니다해서 하는 말이냐, 어딘지 모르게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혜택을 받고 나온 복된 사람입니다하는 뜻으로 즉, ‘나는 신앙이 좋다라는 쪽으로 들어가 있는 말이냐?

 

지금 이 자리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앞서거니 뒷서거니가 들어가 있다. 평신도이면서 목사보다 앞 선 자도 있고, 목사요 학박사라도 이론만 알지 사람이 돼먹지 못한 교회 인도자도 많다. 그렇다면 평신도는 볼 것도 없다.

 

세상을 구하며 세상 종교적 주의로 나가는 신앙노선에서는 나중 되고 먼저 되고 하는 것은 없다. 진리신앙 노선에서 그게 보이고 정확한 거지 일반적으로는 다 세상 판이다. ‘누가 장기(재간)를 더 잘 쓰느냐하는 것뿐이지 하나님 앞에서 앞서고 뒷서고는 없다. 전부는 세상 판이다. 그건 다 넓은 길이요 망할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것에서는 앞서거니 뒷서거니로 보는 게 아니다. 다 타락이다. 교인들을 보고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는 것이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 물렁하면 어떻게 자라겠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무슨 사랑을 받겠으며, 무슨 은혜를 받겠느냐? 일반은혜도 그렇다. 가정에서도 말을 잘 듣는 자식은 그 자리에 없어도 맛있는 걸 준비를 해 둔다.

 

이 세상에서 먼저 되고 나중 되고 하는 게 있어서 먼저 됐으면 먼저 뛰고, 먼저 뛴 자가 머리가 되고 하면 좋은데 세상은 그렇지를 않다. 세상 속화된 교회에서 하나님 앞에 목숨 바쳐 충성봉사를 해도 상은 없다. 하나님의 형벌밖에 없다. 신앙의 본질을 가르쳐 주지 않으면 그냥 속아 넘어간다.

 

이 세상에서 자기와 같이 태어난 자가 한 두 명이 아닐 텐데 모든 면에서 열심히 노력한 자는 모든 면에서 앞설 것이고, 게으름뱅이는 모든 면에서 뒤쳐질 것이다. 죽은 자도 많을 것이고. 이건 무엇을 말하는 거냐? 이 세상에서도 보면 한 날 한 시에 같이 태어나도 따라갈 수 없는 실력과 능력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예수님을 믿으면서 믿음에 대하여 알고 깨닫는 실력이 차이가 분명히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 실력은 자기 존영성으로 영원히 가는 것인데 왜 그 면에 대해 등한히 여기는가?

 

고속도로에는 추월선이 있다. 신앙 믿음의 사람들이 잘 깨달으라고 그렇게 하게 한 거다. 이 세상에서도 믿음실력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일단 천국에 들어가면 추월선은 없다. 천국에 들어가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싶으냐, 아니면 가장 낮은 자리에 앉고 싶으냐? 자리가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그런 분발력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다. ‘영원 전부터 너는 낮은 자리에 앉게 돼 있다그런 건 없다. 잔치라고 하는 건 자동적으로 먼저 된 자 나중 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자기요, 믿는다는 건 그런 게 있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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