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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선교의 환상 시리즈
79. 일본의 무교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조명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계를 바라볼 때 참으로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크고 작은 교회들마다 분쟁과 분열로 인한 진통 속에 갈등하고 있음을 목격하면서 참담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 목사와 장로의 갈등은 더욱 심각하여 미래가 불안할 뿐만 아니라 교회몰락이라는 세간의 이야기들이 현실로 나타날까 심히 두려워진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경쟁적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교회를 짓기 위한 엄청난 예산을 투입하면서 교인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교회상인가를 다시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야만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상태로 계속 지속한다면 교회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한국교계를 바라보면서 일본의 무교회주의에 대한 사상을 통하여 새로운 교훈을 얻고자 한다.
무교회주의(無敎會主義, Non-church movement)는 일본의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1861-1930)에 의하여 시작되어진 교회관에 대한 새로운 개혁운동이다. 무교회주의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교회당이 없는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교회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신앙을 고백한 사람들 자신을 가르치는 것이고, 교회당이란 그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다. 고전6:19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의 몸이 성령의 전(교회)이 되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교회당(건물)를 위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교회당(건물)을 교회(성령의 전이 된 사람)로 착각하므로 불필요한 종교적인 의식 속에 진정한 교회(사람)가 속박당하고 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무교회주의는 성전(교회당)이라는 미명아래 속박된 교인(교회)들을 왕같은 제사장의 권위를 회복하고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개혁해 나가는 운동인 것이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진정한 교회(사람)는 바로 세워나가고 교회당(건물) 교회는 없어도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세상 속에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회제도를 개혁한 것이다.
무교회주의는 성서중심의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기독교 사상이다.
무교회주의자들은 기독교의 믿음과 신학의 근거는 눈에 보이는 교회와 전통이 아니라 성서라는 복음주의사상을 갖고 있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기독교의 사상가이기 전에 철저한 애국자요 민족주의자라고 불려진다. 왜냐하면 그는 오직 두 가지 J을 위한 삶이었는데 첫 번째 J는 예수(Jesus)를 위한 것이고, 두 번째 J는 일본(Japan)를 위하여 일생을 바쳤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은 자기들의 역사와 전통에 맞는 기독교를 만들었다면 무교회주의는 일본토양에 맞는 일본적인 기독교를 창출하기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교회의 본질(신앙)은 변할 수 없지만 교회의 형태(교회당, 종교의식 등)는 그 민족의 역사와 전통에 따른 민족적인 교회로 변화되고 개혁되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이와 같은 기독교적인 사상은 일본 민족성을 고려하고 먼 미래를 내다본 가장 이상적인 교회형태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무교회주의의 교회는 지금까지 분쟁이나 분열이 없는 조용한 성장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형교회의 형태를 원하지 않고 교회가 성장하면 나누어서 작은 형태로 만들어 가기 때문에 늘 가족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게 된다. 그들도 예배를 드리고 있지만 전통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주로 성서강론과 연구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예배보다는 집회라는 말을 더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무교회주의는 교단이나 교파의 권력투쟁이나 명예욕이나 이권의 다툼이 없는 가장 이상적인 교회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위대한 점은 일본의 미래를 미리 내다보면서 일본의 토양과 민족성에 알맞은 일본적인 기독교를 창출하였다는 사실에 경탄할 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한국의 기독교가 본받아야 할 모델이 될 수 있음을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의 불미스럽고 추한 모습들을 바라보면서 교회개혁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고 있는 때에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교회관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세상을 염려하고 구제하기 위한 대안과 노력보다는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염려하면 고민해야하는 기가 막히는 세상에 살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한국교회가 밤낮 싸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무엇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자못 염려스럽고 불안하기만 한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누구보다도 일본교회의 미래를 내다보면서 가장 이상적인 교회관을 정립하고 참신앙의 길이 무엇인가를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일본 민족에 가장 적절한 성서적인 교회관을 도출하여 낸 신학자요, 사상가요, 교육자로 평가되고 있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기성의 교회제도와 조직을 비판하고 기독교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기초한 복음의 자유적인 영적생명을 강조했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의 무교회주의란 속죄의 복음으로서 사람이 죄의 용서함을 받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며, 율법의 행함이나 어떠한 제도적인 규칙이나 예배에 있지 않음을 주장하였다. 단지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임을 강조할 뿐이다.
무교회주의는 일정한 교리나 신조에 얽매이지 않고 각자가 완전한 자유적인 입장에서 성서를 바탕으로 한 성서제일주의를 신앙의 근본으로 삼는다.
그래서 성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생명에 접하고, 하나님과 공존하는 실존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 위한 신앙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무교회주의의 신앙을 신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철저한 보수, 전통적이며 결코 자유주의적인 신앙이 아님을 천명하고 있다.
무교회주의자들은 어떤 외부적인 형태에 속박당하지 않고 다양한 변화를 수용하고 신앙적인 생명을 그 어떤 규정이나 제도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들의 마음에 넘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 이상 자기를 제도와 조직 속에 있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만 전심전령(全心全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믿음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미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자각하며 살기를 강조했다. 그들은 자유 독립한 신앙의 입장에서 부패한 정치를 규탄하고 사회의 불의를 비판하였다. 무교회주의는 일본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순수한 복음을 성서로부터 직접 배우고 전하는 일본적인 기독교를 주창하였다.
무교회주의는 외국의 선교단체로부터 지원을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교회의 자립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들은 교회당 건립을 반대하였고, 신앙적인 이외의 정치적인 권력과 사회적인 세력을 배격하고 교회가 경제적인 재산을 축적하는 일을 철저하게 경계하였다. 그들은 무교회주의의 신앙이 가장 성서적이고 전통적이라고 자부하면서 성서에 없는 것은 철저하게 배격하므로 기성교회와는 거의 단절된 상태로 독립되어 있다.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는 1930년 3월 28일에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묘지의 비문에 매우 감동적인 유언을 남기고 있다.
“나는 일본을 위하여, 일본은 세계를 위하여, 세계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고 모든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참으로 의미 깊은 뜻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한국기독교계의 새로운 각성을 기대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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