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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78 추천 수 0 2022.11.13 15:5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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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3:34-35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334-35: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이 일이 2천 년 전에 지나간 역사이지만 그러나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기독자들의 정신 사상, 세상에 속한 기독자들의 정신 사상, 진리를 따르는 성도들의 정신 사상이 다 보이는 거다. 세상은 세상대로의 정신 사상이 훤히 보이는 거다. 다시 말하면 현재 그러한 세력이 슬슬 확장이 되는 그 운동이 보여진다 그 말이다.

 

34: 당신의 백성들이 큰 환난 고통을 당할 것을 보고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예수님의 슬픈 마음을 우리가 볼 수가 있다. 효자는 부모님의 아픈 가슴을 볼 줄 안다. 참 옳은 인도자는 신앙이라고 하는 성도들의 정신 사상 속의 미래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예루살렘 성읍은 구약시대 다윗 왕이 진리통치 말씀통치를 하던 성읍이었는데, 이 성읍의 사람들이 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였을까? 죽이는 일이 왜 나오는 거냐? 의사와 뜻이 잘 맞으니까 죽이느냐, 안 맞으니까 죽이느냐? 안 맞으면 눈으로 보여지는 인간 대 인간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고, 또 정신 대 정신으로 죽이는 게 있다. 모든 게 그렇게 들어간다.

 

선지자들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죽이는데 그 죽이는 이유가 다윗 왕이 죽은 후에 비진리로 나가는 세상을 좋아하는 왕을 세웠다는 말이고, 또 선지자가 미래에 너는 어떻게 될 거다. 망할 거다. 형벌 받을 거다하고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데 그 하나님의 말씀이 듣기 싫다는 것이다.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예루살렘 거민이 하나님의 말씀보호는 싫고, 쉽게 말하면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의 보호는 싫고 세상에 속한 물질보호가 더 좋다는 것이다.

 

설령 말은 그렇게 안 한다고 해도 말씀의 칼날이 날카롭게 서서 너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물질이 너를 보호한다고 생각하느냐?’ 해야 하는데 믿음의 식구들이 신앙의 본질에서 어떻게 이탈이 돼 나가는지는 보지 못하고 안 믿는 사람들처럼 잘 먹고 잘 사는구나. 교회에 나가는구나그런 정도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 그러니 어떻게 거짓교회를 알 수가 있느냐? 그 속에서 흐물흐물한 그 자체가 세상을 향한 것이다. 물질이 너를 보호해 주느냐? 그렇다면 물질이 풍부한 사람은 병이 안 들고 안 죽어야지. 그런데 왜 죽느냐?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에서 빗나가 살고 있는 건 못 보고 생활적으로 조금 어려워지고 병이 들어서 어떻게 되니까 하나님, 구원해 주십시오하는 건 이미 늦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당해도 수입을 봐야 한다.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 그들은 하나님의 재앙과 복된 소식은 듣기 싫고 불탈 세상이 더 좋다는 것이다. 기독자들의 정신 사상이 결과가 그렇게 나올 때는, 현재적으로 물질주의 구복주의 기복주의로 나갈 때는 세상이 더 좋다는 것이다. 질이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외식운동, 껍데기 운동을 하는 그 때 당시의 그들에게만이 아니고 지금도 앞으로도 세상으로 흐르는 교회들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걸 훤히 내다보고 하나님의 재앙이 너희들에게 어떻게 올 것이라는 걸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도 미리 그걸 본다면 정신이 흐릿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항상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깨어있으라는 것은 말세에만 아니라 에덴동산에서부터 항상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암탉이 병아리를 언제 모으느냐? 위험에 처할 때, 그리고 밤에 잘 때, 솔개가 뜰 때. 밤이 되면 잠자러 들어가느라고 어미 날개 밑으로 들어가고, 자기들의 목숨에 위험을 느낄 때 다 들어간다. 그런 걸 보고 우리가 신앙 믿음을 깨달을 수 있는 이치가 있다.

 

지금은 위험한 시대냐, 평화시대냐? 표면적으로 보면 지금 남북이 평화시대냐? 대치상태다. 허점만 보이면 먹힌다. 오늘날 기독자들이 옛날처럼 배를 곯고 살지 않으니까 먹는 것이 남아돌아가도, 썩어나가도 그게 아까운 줄을 모른다. 그러니까 마냥 행복한 것 같다. 그러나 아니다. 영의 눈을 가지고 영적 정신 상태를 보면 정말 위험한 시대다. 항상 위험은 도사리고 있고, 눈으로 보여지는 사건은 언제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특히 교회의 졸고 있는 상태를 보면 더 그렇다. 그런데 그걸 보는 눈이 잠겼거나 졸거나 모르거나 하고 있다.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면 언제부터 주님의 이 말씀이 있었느냐? 전도할 때부터 3년간? 아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부터가 벌써 그 사상이 들어있는 것이다. 오셔서 30세가 되기까지를 신학적 용어로는 사생애라고 하는 거지만 우리는 용어적으로야 그렇다고 해도 30세가 되기까지의 예수님의 그 정신을 보면 그 때도 우리의 구원을 위한 준비상태로 언제든지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라고 친구가 없겠느냐? 그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어쩌든지 하나님 쪽으로 모으려고 대화를 했을 것이다.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몇 번이냐? 항상이다. 말씀 메시지가 항상이다. 안식일에 여러 회당에서, 길을 가시면서, 배를 타고, 또는 바닷가에서, 산에서, 집에서, 방에서, 이적기사와 표적으로서, 비유로서, 공동묘지에서, 이 고을 저 고을에서, 들판에서 여러 활동의 모습으로 항상이다. 당신의 삶 자체가 그렇다. 주무실 때도 기도하면서 항상 당신의 백성을 하나님 쪽으로 인도하기 위한 기도이다. 온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 다 깨닫도록 활용을 했구나. 그런데 우리 기독자들은 자기의 세상일에 대해 잘 봐달라는 식의 기도가 많다.

 

그렇게 모으려 했는데, 하나님 품 안으로 그렇게 들어가도록 했는데 그런데 유대 부모들과 유대의 어른들은,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훗날 전쟁 중에 일어날 자기 자녀들의 그 비참성 그 처절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받지 않도록 해 주시려는 주님의 마음을 모르는 이 유대백성들은 예수님에게 핍박을 주고 죽였다. 그들은 구원의 예수님을 원치 않았다.

 

오늘날 교회들이 존재적 예수는 믿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33년의 그 삶속에 들어있는 뜻은 모르고 있다. 그 뜻은 교회에 들어왔어도 그 눈이 땅 쪽으로 소원 목적을 가진 소경 되어 있는 온 세상 사람들을 눈을 띄워서 하늘의 뜻을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 소원으로 간절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마지막 교회가 어떤가? 땅을 향해 전부 부르짖고 있지 않느냐? 그건 구원이 안 된다. 신앙 믿음의 성장 면에서 구원이 안 된다. 그런 정신은 소경에서 눈 뜨임을 받는 믿음은 안 된다. 그러니 소경인 채 죽는 수밖에 없다. 세상과 땅의 것을 구걸하다가 죽는 수밖에 없다.

 

거짓 인도자들은 성경에 있는 솔로몬이 드린 일천 번제를 어디에 쓰느냐? 세상부요에 붙인다. 그렇게 하는 속셈을 아느냐?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서 뭘 이뤄놔야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고, 영광 받으라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그 믿음이 하나님 앞에 거짓된 믿음인 줄을 안다면 왜 그러겠느냐? 좋게 말해서 모르니까 그런다.

 

여기 예수님을 죽인 이 자들도 모르니까 그러는 거다. 알면야 왜 예수님을 죽이겠느냐?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 증거를 여러 면으로 나타내줘도, 마음속에 들어있는 그들의 죄를 지적을 해도 양심은 찔리지만 귀를 막고 예수님을 죽이더라.

 

옳은 이치의 말씀을 들을 때 양심에서 그걸 듣는 거다. 그럼에도 그 양심을 죽이면 그건 성령 훼방 죄로서 사함을 못 받는다.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니고 구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에게 지적이 될 때 안 고치면 그 부분에서는 사함을 못 받는다. 그게 자기 속에서 힘을 얻어서 그게 자기를 집어삼킬 날이 있다. 그러니 자기를 누가 죽이느냐? 자기의 죄가 자기를 죽인다. 곤충도 잡아먹혔는데 배속에 들어가서 자기를 잡아먹은 그 자를 속에서 야금야금 파먹고 죽이고 나오는 게 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진리생명의 말씀의 깨달음을 받고서도 성령 훼방 죄를 짓게 되면 참 자기의 미래의 구원을 죽이는 셈이 되고, 역사적 사건적으로는 원수의 손에 자기 자식을 메어치는 것을 눈으로 보게 된다.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지금도 자기 자녀를 거짓 종들이나 세상사상이 와서 이렇게 저렇게 홀리고 놀리는 장면이 있는 건데 왜 그걸 못 볼까? 자기 자식이 동네에 가면 깡패들이 돈 내놔라하며 옷도 벗기고 놀리는 게 있다. 영의 눈을 가지고 보면 지금도 거짓 종들이나 세상사상이 와서 믿는 자기를 놀리고 있고, 자식을 이리저리 굴리고 놀리는 게 있다. 그럼에도 이건 영적인 면이라서 수치감을 못 느낀다. 예를 들면 어수룩한 남자가 창녀 굴에 들어가면 여자들이 자기를 놀린다. 이걸 자기는 아느냐? 돈 주고, 몸에 병 얻고, 얼마 못 살고 죽고.

 

35: 왜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었느냐?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으니까. 그러면 예수님의 가르침의 내용이 뭐냐? 그 내용을 모르면 안 된다. 알고 모르고 하는 거기에서 신앙성장에 큰 차이가 나는 거다.

 

오늘날 거짓 종이나 이단자도 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가르치셨다고 한다. 그 말은 맞다. 그런데 문제는 뭐가 하늘나라의 것이냐? 인격적 가치 판단적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라야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이 보내신 종이란다면 그게 나와야 한다. 안 나온다면 아니다. 아무리 성경구절을 들고 천국을 말씀하시더라해도 그건 소용이 없다. ‘이게 수박이다해도 소용이 없다. 쪼개서 맛을 봐야 이게 수박이로구나하고 안다. 모양만 봐선 속는다. 오늘날 교회성도들이 왜 속고 있느냐? 맛을 몰라서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면 짐승이 가는 길이 아닌 사람이 가는 길이다. 사람이 가는 길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셨으니까 예수님은 하늘 길을 밝혀준다. 세상길이 따로 있고, 하늘 길이 따로 있다. 그러면 하늘 길로 가려면 넓은 길로 가야 하느냐, 좁은 길로 가야 하느냐? 좁은 길로 가야 한다. 좁은 길이란 인간 네 주관성적 네 마음대로 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사단일로만 가는 길이 좁은 길이다. 이 정도만 볼 줄을 알아도 오늘날 교회가, 목사님의 의사성이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가는 정신인지, 아닌지가 보여진다. 그 의사단일로 가는 그 길이 진리 길이다.

 

그 다음에 진리요는 뭐냐? 진리 속에는 하나님의 속성이 들어있는데, 이 속성은 지혜지식성, 도덕성, 능력성이다. 이건 인간이 닮을 수 있는 속성이다. 성도가 이 하나님의 속성을 입으면 자기의 가치판단 평가성 소원 목적이 전부는 죽음의 선 저 넘어 천국에 내려져 있다. 가서 취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지금 내 앞에 갖다놓고 이루며 가는 게 진리다. 그게 하나님의 속성으로 들어간 거고, 그게 그 사람의 참 실상이다.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다.

 

그 다음에 생명이요? 누구 생명? 하나님의 생명, 죽지 않는 생명.

 

그러니까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하고 사람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예수화로 되는 것이요, 예수는 곧, 구원이니 내가 그렇게 되는 것이 바로 구원이다. ‘날 따라오면 너도 그렇게 나처럼 만들어진다하는 거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우리교회도 이게 나와야 한다. 그래야 구원이 된다. 구원은 바로 너다. 사람이다. 하나님의 온전이 된 것은 구원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은 예언 방언을 해서가 아니라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로서 그 감화성이 되고, 정신이 그렇게 되고 그렇게 들어가지는 거다. 그게 그리스도의 사람이고 그리스도인이다. 성령님의 역사로 된 이게 기름부음이고 성령으로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그리스도라. 예수는 그 성격 성질 성분 전체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성이라는 것이다. 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렇게 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게 신앙이다.

 

우리가 주기도문을 늘 외우는데, 주기도문의 사람으로 만들어져야지 주기도문을 백날 외우기만 하면 뭐하느냐? 예배를 마치면서 주기도문을 안 외우는 게 이단이냐, 안 만들어진 게 이단이냐? 그러니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을 받지 않았구나.

 

지금도 성령님께서 역사를 하느냐, 안 하느냐? 예언 방언만 하면 그게 성령님의 역사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훈이 나가는 곳에는 예수님도 계시고 성령님도 계신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라인이 딱 쳐 있다. 그게 하나님 아버지의 예정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렇다. 이 정신을 받는다. 이런 사람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영능의 실력자로 무장이 된다. 이게 하나님의 예정 안에 든 자녀들이다.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의 교훈을 받게 하여 죄에서 탈출을 시킨다. 하나님의 구원계대의 집으로 바로 세워주시고. 우리 궁극교회는 바로만 들어갔다면 마:의 주님의 족보에 사상이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를 영능의 실력자로 만들어서 천국에 들어가서도 영원히 영광의 존영자로 만들어 주려고 주님께서 오셨는데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관원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구원의 말씀을 받지 않고 환난 핍박을 주고 있으니 어떻게 그들의 자녀들에게 집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교훈이 내려가겠느냐? 안 내려간다.

 

목사면 뭐하고, 장로면 뭐하고, 권사면 뭐하느냐? 교육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교육이 내려가야지 안 내려간다면 교육이 무슨 소용이냐? 일반적으로도 세상에서 영리하고 똑똑한 사람은 자식에게 기술을 넘겨주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서 뭘 넘겨주느냐? 뭘 넘겨줘야 하나님의 가정이냐?

 

진리생명이 되는 교훈을 받지 않으면 사람의 머리는 세상 불탈 정신으로 황폐화 된다. 그러니 그 가정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선 가정이 아니다. 오늘날 사람 돼먹지 못하고 깨우침을 받지 못한 기독교 가정이나 목사의 가정이나 할 것 없이 일반적으로 세상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살면 그게 복인 줄로 안다. 착각이다. 정말 못 쓴다.

 

하나님의 진노의 전쟁이라는 재앙을 당하면 참으로 비참한 거다. 6. 25 때 길거리에서 사람이 죽어서 거적대기를 덮어놓았는데 여름이니 파리가 붙어서 구더기가 나오고 개들이 배가 고파서 사람의 피를 핥고, 정말 비참하다. 왜 그렇게 어리석었나?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어리석었나? 부모형제가 죽은들 누구에게 원망을 하랴. 국가의 지도자가 정치를 잘못하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 교회도 마찬가지요, 가정도 마찬가지다.

 

예수님 당시 이후에 유대인들이 크게 보면 왜 그런 참상(주후 70년 디도장군의 침략)을 당한 것이냐? 한 가정이 잘못된 것이냐, 유대 종교 지도자들, 가르치는 두령자들이 잘못된 것이냐? 그들이 누구의 말을 안 들었느냐? 예수님의 말을 안 들었다. 그들의 죄를 지적해주고 가르쳤는데도 안 들었다. 그러면 지금은 듣느냐? 똑같다. 안 듣는다. 외국으로 도망을 가면 편할 것 같으냐? 아니다. 달나라 별나라로 도망을 가 봐라. ‘내가 너를 끄집어 내리겠다.’ 그게 안 믿어지는 모양이다.

 

진리생명이 되는 교훈을 받지 못하면 사람의 머리는 깨우침이 없는 거다. 안 되는 거다. 그 가정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선 가정이 아니고, 그런 유대국가도 역시 하나님의 재앙을 맞는구나. 기둥이 바로 서지 못하면 그 집은 무너지게 돼 있다. 원리다. 신앙의 원리다. 신앙의 원리를 알라고 눈에 보이는 것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만 알지 신앙의 이치를 모른다. 그러니 보여줘도 모르는구나.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이게 무슨 말씀일까?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받아서, 전란을 당해서 달아나다가 잡혀죽기도 하고, 도망간 자도 있고, 숨어서 사는 자도 있고, 포로로 잡혀간 자도 있고, 폐허에 돌아다니며 사는 자도 있고, 가족도 나라도 다 무너졌다. 살아있는 자는 그 비참한 생활과 환경이 언제 그칠지 알 길이 없는 눈물과 고통과 한숨뿐 기약이 없다.

 

여기에서 사는 길이 있다면 주님의 교훈을 무시하며 교만히 산 그 죄를 회개하든지, 주님의 구원의 손길을 바란다면 주님께서 그 마음을 보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실 때 진리진실의 사자를 보내주신다면 그 때 그게 주님의 구원인줄을 알고 기뻐서 영접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볼 것이다. 그런데 교만해서 그 구원의 기회를 모르고 구원의 기회를 놓친다면 이제는 구원이 없는 비참의 연속이라는 말씀이다.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라.’ 반갑게 영접하여 맞아들이는 것. 그게 언제 오느냐? 전란을 당했으니까, 비참을 당했으니까 올 때까지의 자기의 마음이 있는 거다. 좋게 말해서 예수 믿으라고 해도 안 믿고 있다가 이런 저런 굿은 일을 많이 당하니까 누가 옆에서 교회나 나갑시다해서 마음의 위로를 받을 데가 없으니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는 경우가 있는데 이걸 확대시켜 본다면 전란을 당했으니, 많은 고통을 당했으니 이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지그러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나오는 것을 볼 때 거기에서 하나님의 본질로 진짜를 찾으려고 하고 바로, 믿으려고 하면 좋겠는데 교회에 나오는 게 다인 줄로 알고 허리끈을 풀어놓고 도무지 사람이 깨닫는 면으로 올라가지 못한다면 그 사람이 아무리 교회에 나온다고 해도 네 눈은 안 열리고 네 정신면에서 잘못된 걸 못 고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예수를 만나야 고친다. 우리는 지금 그걸 알아야 한다. 자기의 생명이 사망 쪽으로 달아나는 게 보이느냐? 그렇다면 예수 헛 믿었구나. 헛 살았구나.

 

어찌하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그 주님을 만나서 주님께 손을 한 번 대어보려는 마음을 가진 그 믿음에 대해 예수님의 선언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예수님을 만날 준비상태가 된 것이고, 그렇게 해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만 만나면 이제는 철커덕하고 생명으로 사는 거다. 이게 구원이다.

 

혈루증 여인도, 소경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는 선언을 받았다. 이걸 영의 눈으로 보면 오늘날 기독자들이 자기가 땅의 것만 생각하고 땅만 쳐다보는 소경인 줄을 모르고 있다. 눈이 떠야 하늘의 것을, 위의 것을 보는 건데 오늘날 주님을 바라보는 소경은 그렇게 많지를 않다. ? 육신의 눈이 보이니까 자기는 본다고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게 바리새인이었다. 외식자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자기 아버지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모양을 보는 게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 목적을 알아야 한다. 나에게 뭘 원하고 나에게 뭘 해 주려는 건지? 이걸 못 보는 소경은 구원을 못 얻는다. 이 말은 지옥 간다는 말이 아니라 질 낮은 차원에서 고차원으로 높이 오르는 그 구원이 없다는 말이다. 성장이 없다는 말이다.

 

우리교회 교인들은 성장이 돼야 한다. 영의 눈이 뜨여지고 영적으로 고상하고 어디에 내놔도 일등 목사, 일등 장로, 일등 집사, 일등 교인이 돼야 한다. 그러나 세상욕심에 거짓 종들이나 슬슬 따라가고, 그들이 꾀이니 좇아가고 하면 그 사람은 망하는 수밖에 없는 거다. 그 일생은 그렇게 끝나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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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31 에배소서 주님의 교회를 영광ㅅ럽게 하자 엡5;25-27  전원준목사  2022-10-28 281
17630 마가복음 (계시보기)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막16:18  김경형목사  2022-10-27 114
17629 민수기 (계시보기)모세의 혈기는 천국에 못 들어간다. 민20:11  김경형목사  2022-10-25 230
17628 빌레몬서 타인의 가슴에 감사를 몬1:1-7  강승호목사  2022-10-24 166
17627 누가복음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눅13:22-31  김경형목사  2022-10-23 61
17626 요한복음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4-15  김경형목사  2022-10-23 81
17625 열왕기상 (계시보기)산 아이와 죽은 아이의 엄마를 분별하는 재판. 왕상3:16  김경형목사  2022-10-22 77
17624 데살로후 사도들이 자랑한 교회 살후1:1-4  강승호목사  2022-10-19 181
17623 골로새서 (계시보기)위엣 것을 찾는 게 신앙이다. 골3:2  김경형목사  2022-10-18 127
17622 마가복음 나중 된 자와 먼저 된 자가 있다. 눅13:28-30  김경형목사  2022-10-16 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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