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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한계(약간 길어요.)

가족글방 김완섭 목사............... 조회 수 30 추천 수 0 2022.11.22 0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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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한계(약간 길어요.)
어제는 모처럼 평균연령 30대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참 신선했다. 나는 찬양을 뜨겁게 드리는 교회가 좋다. 오직 하나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 시간은 누구에게 빼앗기고 싶지 않다. 혼자서는 어렵지만 찬앙단과 여러 성도들이 어우러져 찬양할 때에는 앞으로 뛰쳐나가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다. 그 교회는 일단 찬양이 좋았다.
토요일 밤에 집으로 오면서 예배시간을 확인했는데, 오전 10시30분으로 되어있었다. 지금까지 모든 교회에서는 11시에 드렸는데 그 교회만 10시 30분에 드린다니까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하도 이상한 교회가 많으니까 조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홈페이지 주소가 있기에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예장 합동에 속해있는 교회였다. 2014년에 설립되었으며 다른 곳에서 이전해온 교회였다.
주일 아침에 평소보다 30분정도 일찍 집을 나왔다. 예배당이 4층에 있어서 엘리베이터를 다고 올라갔더니 젊은 사람들이 여럿이 분주하게 왔다갔다 하고 있었고 강단 앞에는 찬양단이 예배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싱어들이 세 명, 기타, 드럼 등 세팅을 마친 채 준비하고 있었다. 주보에는 정확한 예배시간이 안 나와 있었고 10시 30분부터 감사와 회개의 시간을 갖는다고만 나와 있었다. 아마도 정규예배시간은 11시인 듯했다. 오늘이 추수감사주일이라서 강단 옆에 쌓아놓은 가을걷이 농산물들이 멋지게 펼쳐져있었다.
안내위원인 듯한 젊은 여성도가 자리마다 초콜릿 사탕을 하나씩 놓아주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전부 이삼십대들이었다. 찬양이 시작되었고 은혜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중간중간에 오른쪽 팔을 높이 들어 내 마음을 표현하였다. 아쉬운 것은 찬양단원들의 표정이 좀 굳어있었다는 점이었다. 한국 사람들의 특징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까지 그렇다니...
이윽고 모두를 일어서게 하였다. 인도자가 다리가 불편하신 분들이 아니라면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하고 안내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렇게 35분쯤 찬양하고 나서 한 사람이 나와서 대표기도를 드리는 것이었다. 마치 청년회 예배처럼 느껴져서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면서 문득 내가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내 나이가 한국 나이로 일흔 하고도 하나가 아닌가? 내가 좀 철이 덜 들기는 했다.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보니 50대 이상은 불과 몇 명 되지 않았다.
오늘이 추수감사절이라 교회소개영상을 보여주었다. 그 교회만의 특징과 지나온 행사 사진 등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영상과는 관계없이, 사실 난 이런 예배진행이 마음에 들었고 몇 달 전에 이와 유사하게 진행되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마음에 들어서 아내에게 이야기했더니 가본다고 하여 가서 예배를 드리고 와서는 지금은 그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찬양단의 찬양과 곧바로 대표기도, 설교 등으로 이어지는데 중간에 두 차례의 통성기도 시간까지 다해서 거의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었다. 순서마다 하는 안내 멘트도 전혀 없다. 내가 목회할 때 그렇게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신선한 시간이 지나고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무슨 현미경과 천체망원경 사진을 비쳐주는데 맘에 들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을 보는 눈을 이야기하기 위한 영상이었다. 설교는 잘 하는 설교였다. 그렇게 설교를 듣는 동안 살짝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너무 긴 설교에 몸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적당한 유머도 곁들이면서 성도들로 하여금 설교의 내용을 각인시켜가면서 그렇게 좋은 설교가 이어지고 마침내 모든 예배를 마쳤다. 시간을 보니 12시 50분을 넘기고 있었다. 무려 2시간 20분 동안 예배를 드렸던 것이다.
성도들은 대개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목회할 때에도 예배시간 1시간 5분을 넘기지 않았다. 물론 이 글은 예배시간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예배 중간까지도 내가 아는 젊은 사람들에게 그 교회 출석을 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긴 설교시간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지난 6개월가량 다녀본 교회 중에서 누구에게 강하게 추천하고 싶은 교회에서의, 약간은 지루했지만 나름대로 예배를 통한 위로를 받았던 그 교회를 통해서 무엇을 분별해야 하겠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그 교회는 오히려 요즘 상황에서도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은 교회인 것은 분명하다. 설교시간이 너무 긴 것을 제외한다면 내가 조만간에 출석할 교회를 정한다면 그 교회로 정할 것같은 교회이지만,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전체적인 형편을 생각할 때 오히려 분명하게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교회의 한계? 그것은 기독교의 종교로서의 한계를 뜻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고들 말한다. 나도 그렇게 말한다. 그런데 기독교가 종교가 아니라고들 이야기하면서도 종교로서의 한계 가운데 갇혀있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한 것이 또한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 교회는 모처럼 신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교회의 한계가 더 뚜렷이 드러나는 진리의 모순을 또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한계를 무엇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그것을 나는 자기 중심이라고 말하고 싶다. 결국 모든 설교의 초점이 자기중심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별별 말을 다해도 결국은 '나'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종교라면 내가 중심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세상에서 '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내가 사라지면 세상이 없는것인데 내가 빠지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내가 잘 되고 내가 성공하고 내가 행복해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믿음이라는 것도 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가지는 것이지 그 밖에 다른 것이 목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이 종교이다. 그런데 어느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도 전부 이 '나'를 중심으로 설교하고 듣고 은혜를 받고 있으니 거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개입하신다는 말인가? 이것이 내가 그 동안 드린 예배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결론이었다.
종교는 당연히 '내'가 중심이다. 그러나 진리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어야 한다. 설교이든 찬양이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희생이든 '내'가 주체가 되면 그것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모두들 그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추지만 하나님은 그런 자기중심적인 모든 행위들을 모른다고 하실 것이 확실하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 중심적으로 하면 하늘에서 상이 내려지지만 생명까지 바친 헌신이라도 자기가 중심이 되면 한낱 아무 쓸 데 없는 헛되 몸짓에 불과할 따름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기독교로서의 교회의 분명한 현실이다. 내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전부 하나님이 주신 재능, 능력, 물질, 건강, 성품으로 섬기는 것일 뿐이다.
자기를 드러내면 있던 것도 빼앗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과연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인가? 내가 사라진다면 믿음이 다 무슨 소용인가? 맞는 말이다. 내가 없는데 다 무슨 소용인가? 내가 사라지고 주님만 드러낸다고 할 때 사라져야 하는 '나'는 무엇인가? 물론 내가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면 안 된다. 아무리 내가 잘 믿어도 '나' 자체가 사라질 수는 없다. '나'는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의 '나'는 헌재의 '나'가 아니라 영원한 '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원한 나를 위해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기독교의 진리이다. 그렇지 않고 현재의 나만을 생각한다면 단지 종교에 머물 뿐인 것이다. 이것을 믿고 이것을 소유하지 못하면, 그래서 종교의 한계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하면 교회는 당연히 쇠퇴해갈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종교성을 극복해야 복음은 더욱 완전해질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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