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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59 추천 수 0 2022.12.11 14: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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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3:31-34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331-34: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위로부터 오신 이는 위의 말을 하고, 땅에서 온 자는 땅의 말을 한다. 땅의 소원 목적을 가지고 있으면 땅의 말을 하게 된다.

 

주님이 땅에서부터 왔다면 세상에서 부자로 살아라하며 마귀 같은 말을 하겠지만 하늘에서부터 왔기 때문에 위의 것, 하늘의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 당신의 백성에게 해 주고 싶은 소원을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 사람도 하나님의 뜻, 자기의 온전에 관한 것, 이치에 관한 말씀을 들어야지 세상 것을 이뤄달라고 하는 것은 땅의 신앙이요, 땅의 교훈이요, 어두움의 자녀요, 심판 받을 사람이다. 이건 신앙이 아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하게 되면 마귀의 일을 열심히 하는 거다.

 

32-33: ‘그가 그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는 하나님을 참되시다 하여 인쳤느니라.’ ‘그가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하되.’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보고 들은 것을 증거한다는 거다. 삼위일체 하나님이신데 왜 삼위삼체 식으로 말을 하는 거냐? 그것은 교회인 우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씀이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것을 보고 듣고서 아버지의 말을 하듯이 목사가 아들(예수님)의 말을 잘 듣는다면 이는 곧 아버지의 말을 듣는 거다.

 

그의 증거를 받는 이가 없도다.’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을 인간들이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하늘의 증거를 받지 않는다면 어떤 식으로 신앙을 하는 거냐? 예수님 당시로 올라가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누구 밑에서 누구의 일을 하고 누구를 따라갔느냐? 다 로마를 따라갔다. 대제사장들, 장로들, 서기관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전부 헤롯 밑에 들어 있었고, 헤롯은 또 빌라도를 등에 업고 있었고, 빌라도는 로마황제를 등에 업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한 마디로 세상을 업고 있구나. 세상을 의지하고 있구나. 이것은 세상을 소원 목적하는 거고, 그러니 성경을 가지고 땅의 것을 말할 수밖에 없는 거다.

 

예수님은 오셔서 하늘의 것을 말씀하셨다. 병을 고치는 것도, 귀신을 쫓는 것도 다 영에 속한 병을 고치고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육신의 병을 고치신 것은 의학이 아무리 발달을 해도 인간들이 전혀 고치지 못하는 영에 속한 병을 고침 받아야 함을 말해주는 거다. 영에 속한 것, 영적인 것, 영인성장 면에서 병들고 귀신들리고 한 이것은 오직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구원의 주님만 고칠 수 있는 거다.

 

주님이 입으로 교훈을 하는 것도, 병자의 몸에 손을 얹는 것도, 제자들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는 것도, 산에서 내려오는 것도 다 영적인 교훈이 들어 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를 믿으면서도 땅에 속한 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하늘의 일이 아닌 땅의 일을 하신 것을 생각을 한다. 그래서 무리들에게 떡을 먹이신 것을 보고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게 주님의 일이요 복음으로 생각을 한다.

 

교회가 주님을 땅의 일을 하는 분으로 알게 되면 주님께서 하신 교훈과 모든 일들이 하늘의 뜻은 없어지고 주님은 사람들을 먹고, 마시고, 입고, 병고치고, 부자 되고 하는 일을 하는 분으로 알게 되고, 이렇게 되면 교회는 일반적인 구제기관이 되어버린다. 쉽게 말하면 세상 밑으로 들어가서 세상사람들의 종노릇하는 것을 주님의 사랑이라고 하게 되고, 이 일을 하는 것을 복음이라고 하게 된다.

 

불쌍한 사람을 돌보고 돕는 것은 좋은데 문제는 그런 것을 기준으로 신앙을 가지니 문제다. 교회는 하늘로부터 오신 주님의 말씀을 가르쳐서, 하늘의 사람으로 교육을 시켜서 주님 오실 때 변화 부활을 통해서 하늘의 것으로 닮은 것을 가지고 하늘나라에 들어가도록 인도하는 곳이다.

 

세상사람들의 소원 목적은 세상에서 잘 먹고 편히 살다 가자하는 거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이 이것을 위해 열심히 살면 거듭난 사람이 되느냐? 안 된다. 이런 일에는 성령이 역사를 안 하는데 어떻게 속사람이 바뀌느냐? 안 바뀐다.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대로 보면 저 사람은 이방 불신적 신앙을 가지고 있구나. 교회에 다녀도 안 믿는 신앙정신이구나하게 된다. 예수를 믿는다면 세상을 향한 자기의 성격도 고치고 성질도 고쳐야 하는 건데 안 고친 채 자기의 세상적인 소원 목적을 이뤄달라고만 하고 있으면 이건 기독교인의 자세가 아니다. 이건 하나님 앞에 교만한 거다.

 

34: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의 보내신 이란 주님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 하나님의 신의 감동을 주신다고 한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라고 하는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모든 신실한 종들도 포함이 되는 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라고 하는 게 성경구절을 말한다는 거냐,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는 거냐? 후자다. 성경구절 속에는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는데, 이 뜻은 잘 안 보인다. 이 성경구절을 해석하기 위해 저 성경구절을 붙이고, 저 성경구절을 해석하기 위해 또 다른 성결구절을 붙이고 하면서 돌림노래처럼 성경 여기저기를 붙여가면서 말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성경을 이렇게 푸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말씀을 옷깃에 달고 아침저녁으로 암송을 했으나 성경 문자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예수를 잡아 죽였다.

 

성경구절을 많이 외우는 것은 안 외우는 것보다야 좋지만 문제는 이런 식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성경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의 이치를 무시하게 될 수 있다. 성경구절 속에는 말씀의 이치, 즉 하나님의 뜻이 들어 있는 건데 이걸 알지 못하게 된다. ‘성경 속에 들어 있는 뜻이란 영적인 면을 말하는 건데, 이걸 못 알아듣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의 심령골수를 쪼갠다는 것은 말씀의 이치가 사람들의 마음 속의 정신과 사상을 분리해 낸다는 건데, 이렇게 되려면 성경 문자 속에 들어 있는 영적인 이치를 알아야만 가능하다.

 

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자기가 하나님의 보내신 종이냐? 진정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를 말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이치는 하나님의 신의 감화 감동이 아니면 나오지를 않는다. ‘예수 믿어서 부자 되자라고 한다거나 종교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서 많이 끌어 모으자라고 한다면 이건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 아니다.

 

예수를 믿는다면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인격으로 다듬어져야 하고, 품행도 다듬어져야 하고, 사람과의 관계성도 다듬어져야 한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오셨는데 성령이 없이 몸만 온 거냐? 예수님의 언행심사의 모든 움직임 속에는 하나님의 애정도 들어 있고, 신의 감동도 들어 있고, 당신의 인격 자체가 하나님의 것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의 것이라면 여기에는 성령님의 감화 감동은 자동적으로 들어가 있는 거다. 따로따로가 아니다. 예수님은 다 소유하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둘씩 보내실 때도 세상 이방정신을 가진 자들을 보내시지 않았다.

 

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 안에 세상을 자랑하고 세상을 구하게 하는 자들이 많이 있는데, 이런 자들은 주님이 보내지 않았다. 목사가 아무리 유명하고, 그 교회에 사람이 아무리 많이 모여도 세상과 세상의 것을 소원 목적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예수님의 종도 아니고, 천국백성도 아니다. 우리교회에서도 이런 짓을 한다면 이는 마귀의 작당들이다.

 

구약 때 선지자를 보낼 때도 그렇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보내실 때도 그렇고 당신의 말을 입에 넣어서 보낸다. 그러면 이 선지자나 종들이 자기의 말을 하는 거냐?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거다. 그 뜻을 말하다가 맞아죽기도 했는데, ‘내가 이 말을 하면 맞아주겠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전하게 되면 자기가 죽을 지경에 처하면 도망을 가게 된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창조주시요, 나를 만든 분이요, 이 하나님의 뜻이 자기에게 올 때 물리치지 않고 자기의 생사를 주님께 맡기고 말씀을 붙잡고 나가면 하나님의 은혜가 있게 된다. 자기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올 때에 물리치면 하나님의 눈에 밉보이게 된다. 물리치는 자체가 교만이다. 이러면 은혜를 못 받는다.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보내실 때는 성령으로, 신의 감화 감동으로 말씀을 하게 하시는구나. 인간 자기의 성격 성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성령을 한량없이 주신다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케 하신다는 건데, ‘성령충만이란 자기의 심령상태가 온전히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되어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성령을 한량없이 주신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종은 그 모든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성 희로애락 전부가 신의 감화 감동으로 들어 있다는 거다.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고 할 때 무슨 복을 말하는 거냐? 돈 복? 부자 복? 잘 사는 복? 뭐가 참 복이냐? 주님의 사람으로 잘 만들어지는 게 참 복이다. 이게 인간의 원 축복이다. 그런데 은근히 물질적인 것에 욕심을 품고 내가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안 해 주시겠나?’ 라고 하는 것은 옳은 신앙이 아니다.

 

야곱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내가 너에게 이렇게 해 주겠다라고 하셨으면 하나님께서 약속대로 해 주시기까지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것을 자기가 이루려고 한다. 이건 인본주의 신앙이요 비신앙이다. 하나님께서 너에게 물질적인 면으로 이런 복을 주겠다라고 하시면 그걸 기다리면서 그 물질을 받아서 육적으로 쓰지 않고 자타의 구원에 잘 활용할 수 있는 인격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게 복인데 이건 없이 자꾸 물질의 복을 받으려고만 하는 게 문제다. 이건 신앙의 이치를 몰라서 자기가 자기에게 속는 거다.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겠다는 것은 행동만이 아니라 행동 이전에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는 마음의 감화 감동성 이걸 구별 분별케 해 주신다는 거다. 성령님은 영이시니 영에 대한 일에 대해 말씀을 하시는 거지 먹고 마시는 육의 것을 말씀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종은 성령님으로 말씀을 하게 하시는 것이니, 신의 감화 감동으로 말씀을 하게 하시는 것이니 성령충만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못하는구나.

 

성령으로 충만 된 사람이 전하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이룰구원에 관한 말씀이다. 그러니까 성결구절을 들어서 세상을 구하는 것은 전부가 마귀 짓이다. ‘세상은 다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라고 말을 하고서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세상 것을 주길 원하시니 구하라라고 한다면 그 마음은 천국이 아닌 세상 땅으로 간 마음이다. 성경구절을 붙여가면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완전히 마귀 짓이다.

 

:의 마귀의 두 번째 시험에서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했는데, 예수님께서 스스로 성전 꼭대기에 올라갔느냐, 마귀가 데리고 올라갔느냐, 아니면 예수님 스스로 올라가면서 마귀를 데리고 올라갔느냐? 올라갈 때 둘이서 올라갔느냐, 예수님 혼자 올라갔느냐?

 

예수님 스스로 혼자 올라갔다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 이러면 성전은 세상에 있는 것으로 이 꼭대기에 올라간다는 것은 종교적인 명예영광, 장자리를 얻으려고 올라갔다는 말이 된다. 예수님께서 이런 게 탐이 나는 분이라면 하늘에서 내려올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예수님 스스로 성전 꼭대기에 올라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면 마귀와 같이 올라갔다고 하면 어떻게 되느냐? 좋은 뜻이 되느냐, 나쁜 뜻이 되느냐? 예수님께서 마귀를 데리고 성전 꼭대기에 올라가서 너는 여기 있으라하고서 당신 혼자 뛰어내려서 높은 자리에 올라갈 분이냐? 그러니까 마귀와 같이 올라갔다고 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혼자서 스스로 올라갔다고 해도 말이 안 되고, 마귀와 같이 올라갔다고 해도 말이 안 되고, 마귀가 예수님에게 높은 자리에 올려줄 테니 같이 올라가자고 해서 같이 올라갔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데, 그럼에도 마귀가 예수님을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웠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어떻게 올라가셨던 우리에게 신앙의 이치를 깨닫게 해 주려는 거다. 그 증거는 성전 꼭대기에서 마귀가 예수님에게 하는 말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첫째는 이 땅에서 사람들이 높은 장자리에 앉는 것은 마귀와 같이 올라갈 수도 있고, 자기 노력으로 올라갈 수 있고, 남의 도움으로 올라갈 수도 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세상에서 높아지려는 것은 마귀의 꾀임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거고, 두 번째는 마귀가 예수님께 같이 뛰어내리자고 한 게 아니라 예수님 혼자서 뛰어내리라고 했는데, 이 말을 듣고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면 뛰어내리는 방향이 하늘 쪽이냐, 땅 쪽이냐? 뛰어내리면 방향과 목적이 땅이 된다. 그러니까 마귀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고 하는 말 속에는 예수님에게 땅의 운동을 해서 영웅소리를 들으라는 정신이 들어 있는 거다.

 

예수님께서 마귀의 명령대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면 성령으로 충만해지겠느냐? 마귀의 명령을 듣고 뛰어내린다면 이미 마귀의 정신이 들어간 거다. 마귀에게 점령이 된 거다. 이런 것을 성경을 통해 보여주시는 것은 우리로 세상목적으로 예수를 믿게 하려는 마귀의 교묘한 수법을 알라는 거고, 그런 짓을 하지 말라는 거다.

 

믿는 사람이 정신, 사상, 마음, 즉 자기의 전 인격이 성령충만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알지 못하고, 전하지 못한다. 로고스를 전하지 못한다. 살아 있는 말씀을 전하지 못한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타의 이룰구원에 관한 말씀을 전한다. 그리고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성령님의 감화 감동이 된 거다. 질적으로 같다.

 

오늘날 교인들이 말씀을 들을 때 자기를 살피고 아멘을 하는 건지? 그리고 말씀을 전할 때도 먼저 본인을 잘 살피면서 자신을 바로 세워나가야지 이건 없이 교인들의 귀를 즐겁게 하려는 것은 육에 속한 생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에 속한 것으로 이 말씀을 들으면 소원 목적이, 인격과 성품이 하늘에 속한 것을 가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영원히 공의요, 영원히 하나님의 선이요, 영원히 하나님의 사랑의 사람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인격화로 삼으면, 즉 하나님의 지혜지식성을, 하나님의 도덕성을, 하나님의 능력성을 자기 인격화 시키면 자기가 영원히 존귀 영광자가 되고, 마귀의 시험과 유혹에 걸려서 사망적인 것에 빠지는 일이 없게 된다.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는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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