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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쁜 악
요한일서 4:1~10
밀과 가라지는 비슷합니다. 양과 염소도 비슷합니다. 바다 물고기 홍어와 가오리, 광어와 가자미 역시 서로 비슷하여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물질과 사유와 신앙에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잘 분별하지 않으면 그게 그것 같아 보입니다. 다 똑같다고 하는 이가 범인입니다. 그래서 나는 문화상대주의에 호감을 가지면서도 몰입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요한은 분별하고 시험할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요일 4:1).
나치 권력에 맞서 싸우다가 옥고를 치른 마틴 니뮐러(1892~1984) 목사는 『전쟁책임 고백서』에서 “전쟁의 책임은 히틀러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인 나에게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의 시로 알려진 <그들이 처음 왔을 때>는 마음을 저미게 합니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그들이 유대인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므로. 그들이 천주교인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천주교도가 아니므로. 그 후 그들이 나를 덮쳤을 때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 무관심과 침묵은 악보다 더 나쁩니다. 유대인 철학자 아브라함 조슈아 헤셸(1907~1972) 랍비는 ‘악에 대한 무관심이 악 자체보다 더 나쁘다’고 했고, 한나 아렌트(1906~1975)는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고 했습니다.
남을 헤치는 것은 나쁜 일이지만 그런 사람을 방치하는 것은 더 나쁜 일이고, 그런 사람을 칭찬하는 것은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교회 안에서는 흔합니다. 동성애는 성경이 금하는 행위입니다. 간통과 이혼과 낙태와 이자 소득에 대하여서도 성경은 엄히 금합니다. 토지 매매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어서 희년이 되면 모두 처음 제자리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독 동성애만 콕 집어서 정죄하고 모멸감을 주는 일을 영웅심으로 하는 행위는 더 나쁜 악이 아닐까요? 이슬람은 기독교와 다른 종교입니다. 세상에는 무슬림 말고도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유독 무슬림에 대하여 예민하게 반응하여 그들의 집회장 건설을 방해하고, 그들이 금기시하는 돼지고기 파티를 하는 것은 더 악한 일은 아닐까요?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요일 4:6).
영원을 부정하고 절대자를 비웃는 패악한 시대에도 하나님의 진리와 평강을 변함없이 추구하며 빛으로 살고자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사랑의 주님께서 동행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하나님, 하나님께 속한 자는 주님의 따뜻한 심정으로 다른 이들을 대하여야 마땅합니다. 제 안에 상대를 너그럽게 보는 따스한 마음을 주십시오.
찬송 : 218 네 맘과 정성을 https://www.youtube.com/watch?v=uZRK48vIyBk
2022. 12. 2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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