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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117 추천 수 0 2022.12.25 10: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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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3:36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아들을 믿는 것과, 아들의 말에 순종하는 것과, 영생은 같이 들어 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이 분에게 순종이 없으면 영생이 없다. ‘영생이란 영원히 사는 건데, 여기에서의 영생은 생명적으로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한다. 즉 기쁨과 즐거움과 쾌락과 향락 가운데 영원히 사는 거다. 그런데 영생의 이 누림과 기쁨은 성도 각자가 이 땅에 살면서 인격과 성품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즉 아들처럼 얼마나 만들어졌느냐?’ 하는 것에 따라 차이가 있게 된다.

 

아들을 믿는 자라면 말씀대로 아들에게 순종이 되어야 하고, 이 순종 뒤에는 영능의 실력적 영생이 따라 오게 된다. 그래서 자기가 영생을 하고 싶으면 아들을 믿으면 된다. 이 믿음은 말로만 믿는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이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까지 들어 있는 것이니 아들인 이 분을 믿으려면 아들이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하고, 이 분을 안다는 것은 이 분이 나와 어떤 관계인지, 나에게 뭘 주려는 건지, 뭘 요구하는 건지?’를 아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라고 할 때는 믿는 그 분과의 인격적 성품적 관계가 들어 있다. 그 분을 믿는 믿음은 자기 속에서 발생이 되는 게 아니라 아들로 통해서 아버지의 것이 자기에게 들어오는 거고, 그 다음에 아들을 더 잘 알아갈수록 그 분의 말씀에 순종을 하게 되는 거다. 그런데 세상 속화되고 타락된 믿음은 자기의 세상적인 어려운 일을 해결해 달라는 식의 믿음이고, 자기의 기도대로 이뤄주실 줄을 믿는 믿음이다. 우리의 믿음은 이방종교처럼 일방적 자기의 구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되는 거다.

 

우리가 그 분을 믿는 믿음은 그 분과 인격적 성품적 수수관계로 되는 것이라서 내가 아들의 것을 받으면 받느니만큼 그 분께 순종이 들어가고, 이러면 나는 영능의 실력이 자라게 되고, 이렇게 되면 아들이 아버지와 직통이듯이 내가 아들과 직통이 되니 아버지도 잘 알게 된다. 그러니까 내가 아들의 말대로 순종을 하면 이것이 곧 아버지를 공경하는 셈이 되는 거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아느니 만큼 예수를 알게 되고, 예수를 알면 아느니 만큼 하나님을 알게 된다. 아들은 영생하는 곳에서 오셨고, 아들의 지혜지식성, 도덕성, 능력성, 아들의 모든 가치판단 평가성, 아들의 모든 소원 목적성 취미성 간구성 지향성, 아들의 희로애락성은 전부가 영생에 속한 거다. 그래서 자기가 영생을 하고 싶으면 이 아들을 믿으면 된다.

 

세상사람들이 구하는 것은 전부가 사망성 심판성 타락성이다. 그리고 세상의 것은 임시성에 속하는 것이니 믿는 사람이 임시성에 속하는 세상의 것을 소원 목적한다면 죄 아래 있는 거다. 세상은 어두움의 곳이요 빛이 없는 곳이라서 세상을 소원 목적하며 살면 뭐가 영생이고, 뭐가 임시성이고, 뭐가 세상이고, 뭐가 천국인지를 성질과 성분적으로 구별 분별을 못하게 된다. 그래서 어두움을 좇아 사는 사람은 산다는 자체가 항상 사망적이요 시험덩어리다.

 

세상 것을 많이 주시면 믿음으로 바로 살겠다? 하나님은 인간의 그런 말에 속지 않는다. 이게 아닌 말씀을 바로 깨닫게 해서 말씀의 사람으로 만들어 주옵소서라고 한다면 때가 되면, 그리고 자기가 노력을 할수록 말씀이 열리게 된다. 그런데 대부분 보면 자기 속에서 세상적인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이뤄달라고 한다.

 

요즘 교회이름이 비전교회가 많던데, 그 교회가 어떤 비전을 가졌기에 교회이름을 그렇게 지은 걸까? 대부분 세상성이다. 교회이름은 대부분 교회 목사님의 정신이 세상적이던 신앙적이던 그 목사의 정신대로 짓는다. 그러면 교회이름의 뜻이 좋으면 그 교회 목사님의 신앙사상도 그 뜻대로 옳으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신령천국의 것과 세상의 것은 질적 본질적으로 다르다. 세상의 것은 성도들이 임시성적인 세상에 사는 동안에 자타의 구원에 이용 응용 활용하는 재료들이다. 사람도 여기에 포함이 되는데, 사람을 자타의 구원에 이용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자기의 세상적 육적인 유익을 위해 이용해 먹는다는 게 아니라 인인관계 가운데 상대에게 진리를 줘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해서 영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아들을 믿으면 영생이 되는데, 아들을 믿는다면 아들에게 순종을 하게 되고, 아들을 믿지 않으면 아들에게 순종을 하지 않는다. 이러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 한 마디로 아들을 믿으면 영생이고, 안 믿으면 진노다. 그러니 인간의 입장에서는 믿던 안 믿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예수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말씀을 받을 때는 다 예수를 믿는데, 믿되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잘 만들어지는 게 하나님의 뜻대로 옳게 믿는 거다. 이렇게 되면 안 믿는 세상에서도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자가 되면 이 사람에게 권세가 주어지고, 영광이 주어지고, 물질이 따라오듯이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자타의 구원을 위해 쓰라고 세상의 모든 만물을 동원시키시고, 천국의 영광자리에 앉히신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당신의 일을 맡기겠느냐? 일을 잘 하는 사람에게 맡기시겠느냐, 못 하는 사람에게 맡기시겠느냐? 우리가 이치를 무시하면 안 된다. 이치에 밝지 못하면 사람이 무디다. 이러면 자기 몸 안팎에서 항상 일어나는 유무형적인 크고 작은 사건을 어떻게 감당할 거냐? 그래서 우리가 믿되 정확한 것을 요한다. 그러면 무엇이 정확한 거냐? 정확한 것은 하나님의 본질이다. 내가 이 본질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그 부분만큼은 심판에 해당이 된다. 사람이 살려면 반드시 숨을 쉬어야 하듯이 믿는 우리는 본질이던 비본질이던 어느 쪽을 선택하고 살아야 한다.

 

타락되고 저주 받은 세상사람들은 자기의 타락성을 모른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입장에서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볼 때 이게 옳은 거냐, 타락성이냐? 타락성이다. 이 타락성은 선악과 먹은 질과 같은 거다. 그러나 안 믿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내려가는 게 타락이 되어서 내려가는 것이라는 차원을 모른다. 믿는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실 때 마음이 아프시겠느냐, 빨리 내려가라고 하시겠느냐?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실 때 네가 그리로 내려가야 산다라고 하시겠느냐, ‘그리로 내려가면 너는 죽는다라고 하시겠느냐? 죽는다고 한다. 그러면 남방 왕이 아브라함이 남방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면 뭐라고 할까? 어서 오라고 한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남방 왕의 생각의 질이 같은 거다.

 

믿는 우리는 가치판단이나 평가를 늘 하나님의 본질에 놓아야 하고, 지식 면에서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옳은 지식을, 즉 절대 공의성을 취해야 한다. 지혜지식성도, 도덕성도 마찬가지다. 자기 속에 이런 정신이 들어 있다면 옳은 거고, 이러면 자기 속에서 하나님 공의가 움직이는 거고, 아들이 움직이는 거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 완전자가 아니니 하나님의 옳은 것을 찾아서 자꾸 자체화 시켜야 한다. 아들이라면 당연히 주님처럼 되어야 하고, 그래야 영생이 되고, 하늘나라를 상속받게 되는 것이니 이게 진짜 아들이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이고 벧엘을 통해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갔는데, 도망을 가는 야곱의 성질과, 롯이 소돔 고모라의 평야가 멋있게 보여서 그것을 가지겠다고 하는 성질과, 또한 야곱이 도망을 간 후에 부자가 되어서 올라오는 그 성질이 비슷하냐, 전혀 다르냐? 비슷하다. 눈이 어두운 아버지를 속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큰 죄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서 이런 일을 당했을 때 내가 눈이 어두우니 이놈이 나를 속이는구나라고 하면서 자기 눈이 어두운 것을 탓을 해야 한다. 영적인 면으로 하는 말이다.

 

돈을 좋아하는 가룟유다 속에 든 것도 세상성이요, 야곱 속에 든 것도 세상성이요, 남방으로 내려가는 아브라함의 속에 든 것도 세상성인데, 이들이 만나서 대화를 한다면 서로가 잘 통할까, 안 통할까? 잘 통한다. 이들은 다 자기가 타락된 것을 모르는 상태인데, 같이 모여서 서로가 자기 자랑을 한다면 아브라함이 남방에 가서 어떤 자랑을 할까?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라고 할 거고, 야곱은 자기의 신앙을 자랑하기를 하나님께서는 내 기도를 잘 들어주시더라라고 할 거다.

 

믿는 사람들을 보면 이런 수준이 참 많다. 말하자면 믿음이 어쩌고 저쩌고라고 말은 하지만 자기의 사고방식과 이해타산은 여전히 세상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입에서는 항상 자기 교만이 나오고, 남 정죄가 나온다. 자기 속에 세상이 들어 있으면 이걸 피할 수 없다. 원리가 그렇다. 자기 속에 진리본질의 말씀이 들어 있다면 주님이 말씀하신 진리이치가 나오게 된다. 자기 속에 그게 들어 있으면 그게 나오는 거다.

 

성경은 나의 온전을 위해 주신 것이니 자기를 떼놓고 성경을 말을 할 수 없는 거다. 그런데 오늘날 마지막 시대의 교회는 열심히 충성봉사를 하고 열심히 교회활동을 하는 것을 신앙이 좋다고 하지 하나님의 본질에서 이탈된 것은 모르고 있다. 그러니 이단들의 가르침은 말할 것도 없다.

 

신천지에서 만든 전단지를 보니까 내용 중에 자기들은 말씀대로 한다고 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일을 한다고 한다. 자기들 딴에는 자기 교회를 자랑하려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그건 성경과 다른 거다. 이 세상에 평화는 없다.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봐도 세계평화는 없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믿음을 잃지 않고 구원을 이뤄가는 게 하나님의 뜻이지 세계평화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은 교회가 할 일이 아니다.

 

타락되고 저주받고 영이 죽은 세상사람들은 자기의 타락성을 모른다. 성경이 아니면,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지 않으면 자기의 타락성을 모른다. 그리고 안 믿는 사람들은 자기의 영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영육 결합체라는 것도 모른 채 물질 이해타산으로 살고 있고,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세상사람들은 자기의 타락성을 모르기 때문에 어떤 종교를 가지든지 안 가지든지 하는 것은 자기의 자유라고 한다. 성경에는 이런 수준으로 사는 사람을 짐승과 같다고 한다. 그런데 인간 자기를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그게 아니라 반드시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공경하는 것이 인간의 본분이라고 한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라는 말 속에는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자기의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나고, 일상생활 속에서 영능의 실력을 만들 수 있고, 더 좋은 부활로 나타날 수 있는 영원히 행복과 영광과 쾌락과 존귀 영광을 누릴 자라는 뜻이 들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들을 믿어야 하고, 믿되 진리본질로 적중으로 믿어야 한다.

 

진리본질에 적중성의 교훈을 받지 않으면 이 사람이 존재적으로 예수를 믿더라도 영능의 실력적으로 예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지지를 않는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안에 예수이름을 가지고 교인들에게 세상 넓은 길로 가게 하고, 멸망 길로 가게 하는 거짓된 인도자가 많다. 본질에 적중으로, 하나님의 온전에 적중으로 인도하지 않고 자꾸 세상길로, 사람을 실족케 하는 거짓된 길로 인도하는 아들이 많다. ‘아들이라고 하면 본질에 적중적인 교훈을 해야 하고, 이런 교훈을 받아야 하는데, 이런 걸 생각하지 못하고 무조건 교회에 나와라. 예수를 믿어라하는 거짓된 인도자가 많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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