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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56 추천 수 0 2023.01.08 12: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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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4:34-35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434-35: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 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하시니라.

 

34: 소금의 특성이 무엇이냐? 소금은 짜다. 안 짜면 소금이 아니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그걸로 끝이다. 대체할 수가 없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고유한 소금의 그 짠맛. 하나님이 만드신 짠맛을 잃어버리면 마귀가 와서 짠맛을 대신 낼 수는 없는 것이다.

 

소금은 물에 녹기 때문에 물을 많이 부을수록 싱겁게 되는데, 소금이 불속에 들어갔다 나오면 왜 더 짜질까? 이거 신앙의 무슨 의미가 있다. 소금도 물질이기 때문에 태우면 탄다. 그러면 소금이 탄 재도 짤까? 설탕으로 달고나를 만들다 보면 탄다. 타면 맛이 쓰다. 그런 것처럼 소금도 타면 쓴가? 쓰다면 짜서 쓴 거냐, 써서 쓴 거냐?

 

소금은 눈으로 보기로는 희고, 그 깊은 맛은 짜다. 배고플 때 반찬이 없어서 소금을 찍어먹은 때도 있다. 소금의 용도가 많다. 소금은 각 나라 사람마다 다 필요하다. 집집마다 소금은 다 있다. 추운나라나 더운 나라나 다 있다. 소금에 곰팡이가 피느냐? 소금은 어느 환경 어느 장소에 갖다놔도 변질이 없다. 본문에 말씀하신 소금도 그렇고, :에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했는데 모두 우리를 보고 하는 말씀이다.

 

그런데 사람이 짠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은 이 말씀에 부합되는 사람은 아니다. 이건 다른 짠돌이다. 그런 짠돌이가 돼서는 안 된다. 이거는 소금 짠돌이는 아니다. 타락된 인간성을 의미한다.

 

소금은 어느 환경이나 장소에도 변질이 없고, 소금은 또 부패 방지용으로도 쓴다. 바닷가에는 싱싱한 고기들이 많은데 육지 쪽에는 싱싱한 팔팔 뛰는 고기가 없다. 그래서 소금간질을 한다. 육지에 사는 사람은 천상 펄펄 살아있는 고기를 먹기가 힘들다.

 

각 나라 사람마다 음식을 만들 때 자기 입맛대로 음식의 맛을 내어서 먹는다. 이 때 소금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소금은 천국복음, 또는 진리생명의 말씀, 또는 신실한 제자나 사도들, 또는 하나님의 종들, 또는 성도로 비유하기도 한다.

 

요셉이 애굽에서 감옥 속에 들어가도 요셉이 있는 그 감옥은 천국처럼 된다. 요셉이라는 소금이 들어가니까 이런 성격의 사람에게는 이렇게 간질을 해서 사람 됨됨이로 만들어내고, 저런 성격의 사람에게는 적당히 지혜를 써서 옳은 사람으로 돌리고 한다. 또 구약성경에 보면 물이 어떻게 됐는지 농사가 안 되고 열매가 다 떨어지니까 엘리사가 소금 한 줌을 갖다가 물 근원에 넣으니 물이 좋아져서 농사도 열매도 잘 됐다. 이게 우리에게 계시로 보여주는 복음사상이다.

 

소금을 물에 넣으면 물이 짜지는 건데, 그런데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계시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것은 복음의 질이다. 복음이라야 된다는 거다. 그러면 복음이 뭐냐? 부자 되는 거? 병 낫는 거? 인간 우리에게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닮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닮으면 하나님을 닮는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를 안 닮는다면 그게 뭐냐? 의미가 없다. 뭐 하려고 주일마다 설교 듣고, 집에 가서 성경 읽고 하느냐? 사람이 안 될 바에야 뭐 하려고 성경을 보느냐?

 

우리 입장에서 진리이치의 사람이 되면 어느 장소 어느 곳에 누구 앞에 내세워 놔도 참 맛을 내는 사람이 된다. 맛을 내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진짜 좋은 사람이다. 믿는 우리에게는 일반적으로 마음이 좋다하는 걸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아무리 마음이 좋아도 지혜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못 산다. 그렇게 마음이 좋으면 안 믿는 사람들로부터 이용물이 된다. 그럼 뭐냐?

 

일반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은 마음이 좋다할 때 우리 입장에서 볼 때는 그건 마음이 좋은 거냐, 어리석은 거냐? 어리석은 것이다. 왜 죄악적인, 또는 이방 불신세계의 이용물이 되느냐? 우리의 몸은 주님께서 사신 주님의 몸인데, 예수님의 피 공로가 입혀진 영이 중생된 성령님이 거하는 전인데 왜 그들의 이용물로 사느냐?

 

소금은 정말 좋다. 천일염이 참 좋다. 굽고 볶고 한 것은 소금 맛은 안 난다. 짜기는 짠데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그 맛은 아니다. 그런 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걸 인간이 머리를 써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고유의 맛이 없어져 버린다.

 

자연조건에서 해 놓은 게 정말 하나님의 솜씨다. 그런데 세상은 갈수록 하나님의 솜씨가 점점 없어지면서 돈 때문에 인간이 자꾸 조작을 한다. ‘많이, 그리고 아름답게, 돈 많이자꾸 이런 식으로 나가다 보니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솜씨를 보기가 힘들다.

 

소금은 정말 좋다. 창세 때에 만든 소금의 그 짠맛은 변질 없이 수백 년 수천 년이 흘러서 예수님께서 보실 때의 소금의 맛과 똑같다. 집집마다 소금이 없는 집이 없고, 맛을 내기 위해서 먹을 때는 꼭 소금을 친다. 한국소금의 맛은 된장 맛이냐? 아프리카 소금은?

 

우리가 소금의 비유를 통해서 정신 사상 소원 목적이나 교훈에서 소금의 역할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소금으로부터 얻을 깨달음이 참 많다. 소금은 선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도 소금 그대로의 짠맛이요, 악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도 여전히 짠맛이다. 소금이 선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면 단맛을 내고, 악한 사람의 입에 들어가면 쓰고 그런 게 없다. 그 대함이 그렇다. 광야의 짐승들도 소금을 찾는다. 코끼리도 보니까 소금을 찾아 길을 떠난다. 또 나비들도 소금 맛이 나는 곳에 가서 빨아먹는다. 혹시 나비나 코끼리가 예수를 조금 아는 게 아닐까?

 

소금은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이나, 사시사철 사계절이나,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올 때나 안 올 때나 짠맛을 잃어버린 때가 없다. 그 짠맛이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건 없다. 그대로 짠맛이다. 식당의 양념 통 안에 있는 소금 맛이나, 시골 부뚜막의 불티를 둘러쓰고 앉아있는 항아리 속의 소금 맛이나 똑같다.

 

소금도 만일.’ 만일이라고 할까? 누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가? ‘만일이라는 거기에 네가가 들어가는 말이다. 그래서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하는 거다.

 

소금 맛의 대체품이 없느냐? 다시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무엇으로 맛을 낼까? 귀신들린 걸로? 장기자랑으로? 뭘로 맛을 내느냐? 사람들의 마음속에 뭘로 맛을 내느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가지고 맛을 낸다.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 복음의 맛을 잃은 사람들이 참 많다. 사람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맛이라야 인간의 참 맛인데 그 맛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다. 그래서 목사님들의 세계나 타 교인들의 세계에서 얘기를 해 보면 영의 눈을 가지고 볼 때 맨날 세상 불타지는 단내, 썩는 냄새, 세상 소원 목적적인 돈 소리, 큰집, 부자, 잘 사는 거 이런 것밖에 없다. 이거는 썩는 냄새가 나는 거다. 불타지는 거고, 마지막 심판 때는 부끄러움과 수치로 나오는 것이다. 어느 성이 불탈 때 그랬느냐? 소돔성이 불탈 때 그랬다.

 

창세 이후 세상 끝 날까지 모든 사람에게, 전 세계 인류에게 하나도 빠짐없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복음이 다 필요하다. 인간이란다면 다 필요한 거다. 왜 그러냐? 예수 그리스도를 예정 설정 계획 기준하고 너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의 형상 모양 너의 실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만들어지는 게 너의 참 실상이다. 이게 그리스도인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냥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예수 믿으면서 왜 복음의 맛을 못 낼까? 인격과 성품적으로, 소원과 목적적으로, 취미와 추구성적으로 왜 맛이 없느냐? 왜 안 믿는 사람과 똑같으냐? 그러니 사단 마귀가 얼마나 좋아할 것이며, 자기와 비슷한 자들이 자기와 어깨동무를 하려고 하지 않겠느냐?

 

교회가 즉, 기독자가 이 맛을 잃으면 무엇을 가지고 사람이 변화되는 맛을 낼 수 있겠느냐? 마지막 시대에 거짓 종이 많다는 것은 그 맛이 없다는 것이다. 거짓된 맛, 세상 불탈 맛, 썩을 맛으로 들어있다 그 말이다. 모든 이해타산 가치평가 평가성, 자기의 행복성이나 영광성이 전부는 선악과 따먹은 데서 나온 세상목적에 붙어있다는 말이다.

 

소금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게 분명하다. 이 소금의 색깔은 하얗다. 이것도 어떤 의미가 있는 거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거룩해야 되겠는데 인격이나 성품이나 속에 들어있는 것이 시커멓다.

 

복음의 맛은 그 인격과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그 속성이 자체화 되게 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그 속성이 주님처럼 하나님처럼 변해지는 것이 옳은 거다. 그런데 지금 세상 속화된 교회가 무엇을 가지고 복음의 맛이라고 떠들고 있느냐? 안 믿는 세상에 나가서 불쌍한 사람들을 싸매주고, 돈 주고, 밥 주는 게 복음을 나타내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알고 있다. 그건 돈이고, 먹을 거고, 쌀이지 복음은 아니다. 착각을 하는구나.

 

사람이 하나님 앞에 만들어지는 면에 들어있으면 만들어진 것만큼 그런 것은 나오게 돼 있다. 그런데 왜 이치를 어기느냐? 간단히 말해서 학생이 선생님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면 선생처럼 실력이 만들어져서 나중에 또 그걸 가르칠 수 있는 거다. 그런데 그 실력이 없이 칠판 앞에 서서 가르치면 그게 되느냐?

 

복음의 맛은 사람의 성품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가진 자로 변해지는 것이다. 그게 소금이다. 그런데 그 맛을 잃어버리면? 잃어버리기는커녕 알지도 못하니 잃고 말고가 없는 거다. 아예 없는 거다.

 

안 믿는 사람들이 세상의 소금이냐? 그 말은 없는 거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향한 말이니, 예수 그리스도로 실상화 되는 복음을 전제로 하고 하는 말이다. 그게 아니면 소금의 맛을 못 낸다.

 

예수를 믿으면 소금의 맛을 낼 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면 만들어진 맛을 낼 줄 알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실상화 되는 것이 아닌 것은 복음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이 변화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맛을 내면 그 맛이 무슨 맛이냐? 진리의 맛도 나오고, 또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킨다. 소금이 들어가면 , 짜구나하는 것을 느끼듯이 , 복음은 이런 것이로구나하게 되니 정신과 사상과 소원 목적이 쓱 변화가 된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이 예수 믿는 나를 아무리 봐도 예수 믿는 냄새가 안 난다면 그게 뭐냐? 이런 사람은 소금 맛을 못 낸다. 예수를 믿으면 맛이 나는 게 원칙인데 맛이 안 나면 이건 잘못 믿은 것이다. 혹시 예수 믿는 게 귀찮은 사람이 있느냐? 안 믿는 사람이야 열외이고 말할 가치도 없는 거다.

 

35: 거름에도 쓸 데가 없고 땅에도 쓸 데가 없다. 말하자면 맛을 못 낸다면 그런 저주받은 인간이 된다는 것이다. 복음의 맛,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지식성 그 도덕성 그 능력성이 있어야 하는 건데 맨날 예수 믿어 부자 되고, 병 낫고, 성령 받았네하는 건 복음의 맛이 아니라 귀신의 맛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처럼 참 사람으로 만드는데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지식전환. 선악과 따먹은 지식의 기준으로 사는 우리를 주님 당신처럼. 당신은 생명과다. 하늘의 맛을 내는 하늘의 사람으로 진리지식으로 지식전환이다.

 

그 지식에서 경험을 하면서 인격과 성품으로 전환시키는 게 하나님의 사람이요,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어도 그런 맛이 없이 안 믿는 사람과 늘 이해타산 평가가 똑같다면 이건 안 믿는 사람과 똑같다. 이건 소금 맛이 아니다. 그러니 그런 교인은 쓸모가 없다. 땅의 소원 목적을 위해 사는 자는 기독자들에게 천국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맛은 낼 수가 없다.

 

땅에서 부자 되고, 커지고자꾸 이렇게 하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맛을 못 낸다. 그러니까 그런 게 기독교가 아니다 그 말이다. 사람이 만들어져야 맛을 낼 텐데 사람이 안 만들어지니 어떻게 맛을 내느냐? 기독교인은 많은 사람이 있는 데 가면 참 사람 맛을 낼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교인들끼리 모여도 건설적인 맛이 나느냐? 맨 세상 썩은 맛만 내고. 정말 이거 예수 헛 믿는 거다.

 

땅에도 쓸모가 없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으로서 땅에 속한 소원 목적을 가진 사람은 맛을 잃은 기독교인이니 쓸모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맛을 못 낸다 그 말이다.

 

그 다음에 거름으로도 못 쓴다. 거름이 뭐냐? 거름은 썩은 물질이다. 완전 타락. 인간쓰레기로 사는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의 맛을 낼 수가 없으니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 사람 쓸모없는 거 참말로 귀찮다. 일만 만들어 놓고. 사람은 어디를 가나 쓸모가 있어야 한다.

 

인간쓰레기로 사는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맛을 낼 수가 없다. 이건 인간 저주다. 너 저주 받았구나. 사람 사는 세상에 일반적으로도 사람의 맛을 낼 줄 알아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사람의 맛을 낸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맛이 들어가는 건데 이게 없다면 너는 저주다.

 

저주받은 인간은 병들어 죽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가운데서 사람 사는 맛을 낼 줄 모른다면 저주받은 사람이다. 맨 이기성적인. 목사도 저주받은 목사는 복음의 맛이 없는 거다. 세상을 가르치고 있다면 저주받은 목사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찌어다.’ 다 들었느냐? 뭘 들었느냐? 소금의 맛을 내라. 귀는 사람에게 다 있다. 짐승에게도 있다. 짐승들도 소리를 분별하여 다가오든지 가든지 한다. 사람마다 육신의 귀는 있는데 소리 없는 소리, 진리이치의 영의 소리를 듣는 귀는 따로 있다.

 

사람들의 세계에서 액면 그대로 듣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사람은 귀가 없는 것이다. 말속의 말을 못 듣는 사람은 귀가 없는 거다. 소리를 듣는 귀는 있는데 뜻을 헤아리는 귀는 없구나.

 

사건을 보고 피하라고 하는구나하는 걸 알 수 있는 거다. 돌을 던지려고 할 때 돌을 던지면 그 돌이 날아가는 방향이 있다. 그걸 보고 피할 줄 알아야 한다. 해가 넘어가는 소리는 뭐라고 하느냐? 해가 넘어가는 소리를 못 듣느냐? 해가 넘어가는 소리가 들리느냐? 안 들리는 것을 소리로 표현하려니 힘이 든다.

 

해가 넘어가며 하는 말은 하던 일을 빨리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라그 말을 한다. 그 소리를 듣겠느냐? 나그네는 그 소리를 잘 듣는다. 시간이 가는 소리, 시간이 말하는 소리. 자기의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면서 나에게 하는 소리를 느낄 수 있느냐? 거짓된 목회자가 많이 일어나서 떠들고 하는 그 사건이 나에게 말하는 소리가 있다. 사람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말은 하지 않지만 얼굴만 봐도 말은 그 사람의 속에서 느껴져 오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마다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신다. 우리도 하나님의 자식이니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속에서 기뻐하는 소리인지 슬퍼하는 소리인지, 울고 있는 소리인지 기도하는 소리인지 항의하는 소리인지 그 소리가 느낌적으로 들리는 거다. 그런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자는 눈치가 빠르다. 좋게 말하면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이다. 눈치가 없으면 미련한 사람이다.

 

오늘날 예수 믿는 자기는 소금의 맛처럼 복음의 맛을 내며 사는 건지? 우리는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아니면 일반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복음의 맛이 없는 자로 사는 건지?

 

맛을 잃어서 땅의 운동을 하는 자들에게도 쓸모가 없고, 세상 일반적으로 사는 자들에게도 쓸모가 없다면 그러면 인간 자기는 어떤 사람인가? 사람은 사람인데 이거는 짐승과 같구나. 참으로 불쌍하고 처절하고 비참하고 거름보다 못한 인간쓰레기가 아닌가? 인간쓰레기는 아무 짝에도 못 쓴다. 산천초목이 썩으면 식물의 거름이나 되지만 인간쓰레기는 쓸모가 없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생명이 있는 활동을 하고 백배의 열매를 맺을 것이냐? 영인성장과 영능의 실력을 배양하여 영원히 존귀영광 쓸모 있는 인간이 될 것이냐? 이 쪽 저 쪽 아무 쓸모없는 자로 살다가 저주의 사람으로 불속에 들어가고 싶으냐? 사람이 쓸모가 없으면 불속에 들어가 버린다. 꼭 지옥이라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쓸모가 없으면 불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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