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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86 추천 수 0 2023.01.29 14:10:08
.........
성경본문 : 눅15:4-10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54-10: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4-6: 양 백 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보통 양 한 마리를 찾는데 신경을 쓰지 아흔 아홉은 산이나 도의 봉우리나 영생초 생명초가 있는 곳에 둘 줄을 모른다. 그러면 그곳에 둘 줄을 모르면 한 마리를 찾아올 실력은 있느냐? 없다. 아흔 아홉 마리를 들판에, 영생의 말씀이 있는 곳에 둘 줄을 모르면 잃어버린 한 마리도 못 찾아온다. 또한 아흔 아홉 마리를 둘 줄을 모르면 한 마리를 찾으러 나간들 아흔 아홉은 잃어버리게 돼 있다. 원리가 그렇다.

 

무조건 끌어다 놓으면 그게 양떼냐? 속에 여러 가지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그런 성격 성질이 양떼들을 다 잡아먹고 해코자 한다. 아흔 아홉 마리를 온전하고 완전한 곳에 둘 줄 알아야 그 영능의 실력을 가지고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와서 백이라고 하는 아구를 채울 수 있다. 신앙의 원리는 그렇다.

 

7: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오는 기쁨이 얼마나 클까? 여기서 회개란 자기 일생을 하나님의 본질로, 길이요 진리요 그 생명의 길, 그 목적으로 바로 놓은 것이다. 바로 놓았으면 마치 기차가 철로 위로 달려가듯이 목적지까지 바로 갈 수가 있다.

 

자기 일생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성질로 바로 놓으면 그 다음에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먹을수록 자기에게 영능의 실력이 쌓인다. 실력화 된다. 이게 아니라면 예수를 수 년 수십 년을 믿어도, 직분을 갖고 있어도 실상적인 면에서 실속은 하나도 없다. 이건 속은 거다. 신앙생활 헛 했다 그 말이다. 예수 헛 믿었다 그 말이다. 하나님은 실속적인 사람을 대단히 기뻐하신다.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했으니 스스로 의인이라고 자칭하는 바리새 지도자들보다도 잃어버린 한 마리를 찾아오는 것을 하늘에서는 더 기뻐한다는 면도 들어있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안 믿던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려고 눈에 보이는 교회에 들어왔다단순히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안 된다. 교회에 들어왔느냐? 그 다음에 정신과 모든 마음이 질적으로 길이요 진리요 하나님의 생명의 교훈 안으로 쑥 들어와야 그 사람은 회개가 붙는다. 그 회개가 옳은 회개다.

 

세상의 질로 가던 성질이었는데 교회에 들어와서 말씀을 받다보니 그 정신이 천국 쪽으로 향해진 게 회개다. 그런데 교회에 나왔어도 세상 소원 목적을 그대로 가지고 예수님 앞에 와서 그 세상 소원 목적을 더 이뤄달라고 하니 이것은 회개가 안 된 사람이다. 그러니까 하늘에서 기뻐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 안 된다 그 말이다.

 

당시의 유대 종교인들은 성경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정신이 회개가 안 됐다. 그들은 성경 율법대로만 하면 의인인 줄 아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의 속 중심을 들여다보니 그 정신이 하나님 앞에 바로 놓여지지를 않았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으면서 세상정신이 그대로 들어있다.

 

오늘날 예수 믿으면서 자기 소원대로 세상살이를 이뤄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예수를 믿지만 회개가 안 된 거다. 목사가 그렇게 가르친다면 회개가 안 된 목사다. 다른 말로 하면 마귀의 종이다. 그래서 오늘날도 진리이치의 신앙생명의 말씀을 들을 때 자기 속에서 양심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회개를 하지 못하고 옳은 진리이치를 자기 속에서 계속 죽이고 있는, 그리고 자기 주장을 자꾸 세우는 사람은 예수님 당시의 예수님을 죽이려드는 종교인들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오늘날도 이런 사람이 많다. 옳은 진리이치를 죽이는 바로 되지 못한 목사들 교인들이 많다.

 

본문을 보면 양을 지키는 목자가 잘못했는데 왜 나간 양을 찾아오는 것을 회개한 교인처럼 말을 할까? 앞에서도 말을 했지만 여기서 착각을 하면 안 된다. 백이라고 하는 온전에서 하나가 빠진 것은 목사의 사고방식이 하나님의 온전에 관한 신앙에서 진리이치의 나사가 하나 빠졌다면 그게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려고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다.

 

진리의 세계에서는 한 이치가 빠지면 다 어그러진다. 이치는 한 이치가 어그러지면 다른 것도 다 어그러진다. 이게 신앙의 세계다. 십계명을 다 잘 지켰는데 그 중에 하나가 어그러지면 다른 것도 다 어그러지게 된다. 왜 그러냐? 신앙사상의 질이 하나로 들어있어서이다. 똑같이 들어있어서이다.

 

양을 지키는 목자가 잘못했는데 나간 양을 찾아오는 것을 회개한 교인처럼 말을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본문에서 자신들을 의인이라고 자칭하고 백성의 지도자들이라고 하며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죄인, 죄인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그러는 자신들이 그 죄인을 찾아서 하나님 앞에 데리고 와야 할 입장인데,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는 건데 그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그 일을 보면서도 자신들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의 나사가 빠진 걸 모른 채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같이 한다고 하면서 흉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하신 것이다. 그러니 신앙의 이치를 가지고 그들의 정신 사상을 보면 정말 엉터리다. 오늘날 교회도 그걸 볼 수 있다.

 

신촌에 20층 교회가 있는데 그 교회를 신천지가 점령을 했다고 하는데, 기존에 있던 교회나 신천지라도 사람의 행동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하는 사람은 영적인 사람이 아니고 육적인 사람이다. 그런 요소가 인간들 속에 다분히 들어있다. 이렇게 되면 이단자들이 교회에 들어와서 집사가 어떻더라. 목사가 어떻더라하며 그 행동에 맞는 성구를 딱 들이대면 아이고, 이게 성경과 같구나하게 된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그 누구든, 집사든 장로든 목사든 어떤 행동을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건 아니다. 그 사람은 영의 사람이 아니고 육의 사람이다. 거기에 맞장구를 치게 되면 다 같이 육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진리이치의 옳은 교훈이라면 그 이치를 말을 할 때 듣는 사람 속에서 , 이게 잘못했구나. 이 행동은 고쳐야겠구나해야 한다. 이건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단자들 또는 거짓 종들이 육적으로 돌아가는 기성교회에 들어와서 눈에 보이는 것을 들어서 살살 건드리면 그들을 좇아가는 파가 자꾸 많아지게 되고, 많아지게 되면 여기에는 주먹싸움이 나게 된다. 그런데 명칭상 교회이기 때문에 주먹질은 못한다고 해도 결국은 안 믿는 재판장 앞에 가게 된다. 이게 뭐냐? 이건 주님의 얼굴에 똥칠이 되는 거다.

 

그 이치가 뭣과 같은가 하니 이건 산 사람이 송장 앞에 가서 재판을 해 달라는 격이다. 교회가 세상을 심판할 권이 있거든 영이 죽은 자들인 세상 앞에 가서 심판을 받는다니 이게 무슨 꼴이냐? 이게 성경을 아는 사람들이냐? 그러니까 이건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마음을 가지고 믿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 먹히게 돼 있다. 결국 이단에게 잡아먹히게 된다.

 

이 진리입장에서는 모든 이단이 판단이 돼야 한다. 왜 그런가 하니 교훈의 질 속에는 정신과 사상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많은 함정이 있는데, 극기 극복주의니 사회주의니 기복주의니 이런 것들이 우리교회에서는 판을 못 친다.

 

그런 건 신앙이 아니다. 그런 것으로 나가면서 거기에 아무리 성경구절을 붙여도 천국복음이 아니고 한 마디로 그런 건 다 세상에 속해있는 세상성질로 들어간 신앙의 질들이다. 천국복음이 아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예언이니 방언이니 하는 걸 다 성경으로 해석해 내는 거다. 오늘날 그런 걸 하는 자들이 자기들이 하는 게 성경인 것처럼 말을 하지만 아니다. 성경은 이제 다 끝났다. 그들이 하는 건 약령의 짓이다. 악령이 아니란다면 진리를 헐뜯지 않는다. 진리를 듣고 자신을 고치고 진리의 사람이 된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하면서 옳은 진리를 헐뜯고 걸고 들어온다면 이건 악령이다. 악령의 역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그 면을 반대를 한다. 그러면서 보았네. 꾸었네. 들었네하는 그걸 자꾸 신경을 쓰고 자랑하고 한다.

 

귀신이 들리는 것은 사람의 성격 성질과 관계가 있다. 사람이 귀신이 들리면 밤낮이 없다. 귀신이 들리면 사람이 추해진다. 성경에 보니 귀신이 들려서 옷을 벗는 사람도 있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한다. 그게 귀신이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참 많이 귀신이 들려있다. 그런데 못 고친다. 옳은 진리이치가 들어가야 사람이 안정이 돼서 바로 되겠는데 그건 없이 그런 사람들끼리 모여서 자기들끼리 안수하고 하지만 정신이 벌써 그 모양인데, 그 사람 속에 진리가 없는데 어떻게 바로 앉겠느냐? 사람이 귀신이 들려놓으면 시도 때도 없다. 기도만 하면 눈을 뒤집고 한다. 사람을 못 알아본다. 예수 믿는 사람인데도 그 모양이다.

 

그러면 마귀는 뭐가 마귀냐? 마귀는 성경을 가지고 세상을 자랑하면서 가르치는 게 마귀다. 이런 일을 하는 게 마귀의 운동이다. 그러면 사단은 뭐냐? 사단은 환난 핍박을 주고 한다. 그러니까 알고 보면 이런 게 다 악령류의 일들인데, 사람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장소에 따라서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거다. 옛 뱀이나 용이나 사단이나 마귀나 다 똑같다. 사람에 따라서 다른 짓을 하는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 말고 눈에 보이는 그 속에 뭐가 움직이고 있나를 잘 봐야 한다.

 

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양들을 모세처럼 광야로 인도하지 못하고 있다. 광야로 인도한다는 것은 애굽세상을 등지고 광야로 나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니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는 정신이 들어있다. 그래서 참 종은 가르침을 가지고 성도들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세상성을 자꾸 빼내도록 한다. 그렇게 빼내도록 하니 그 성도의 마음이 마치 광야에 있는 것처럼 자기 혼자 있는 것처럼 된다. 이 상태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다. 다시 말하면 성도야,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라하는 것이 광야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 종은 세상으로 끌고 가서 세상을 자랑하고 부자 되라고 한다. 이건 하나님을 못 만난다. 교훈적으로는 진리이치를 못 깨닫는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회개도 안 되고, 자기들은 의인이라고 하면서 죄인 하나를 찾지도 못하고, 결국 우리만 의인이다하는 외식자들이다. 그러니 이들이 하는 게 뭐냐? 실속도 없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걸 헐뜯기나 하고, 죽이려 하고.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완전을 염두에 두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에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찾아서 자기가 하나님의 본질을 바로 갖는 것이 회개다. 바른 것을 찾아오는 것이 회개라. 즉 옳은 것을 찾아서 내가 갖는 것이 하나님 앞에 내가 바로 돌아선 것이다.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질이 같고 성분이 같은 영적 신령한 이치를 광범위하게 깨달음을 주셨다. 그러니까 우리가 셈적으로 센다고 하면 ‘98, 99, 100’ 하고 채워 넣을 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것으로 채워 넣을 줄을 아는 그 자가 회개하는 사람이다. 회개를 하면 완전으로 돌아선다. ‘이것이 잘못됐느냐? 바로 해야지. 저게 잘못됐느냐? 바로 해야지.’ 이게 회개이면서 완전에 도달이 된다.

 

8-10: 돈을 찾으면서 왜 죄인을 말하느냐? 돈이 죄인가?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었는데 하나를 잃었다.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면서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열 드라크마가 있었는데 그걸 세어봤으니까 하나가 모자란 줄을 알지 세어보지 않고는 몇 개가 없어졌는지를 모른다.

 

어쨌든 하나를 잃어버린 것은 누구 잘못이냐? 돈 잘못이냐, 여자 잘못이냐? 여자다. 그런데 그 돈이 누구의 돈이며, 얼마나 귀한 돈이기에 그렇게 애타게 찾느라고 등불을 켜서 들고 빗자루로 쓸며 찾았을까? 결혼 지참금인가? 머리에 장식을 하려고 은돈에 구멍을 뚫어서 모아둔 돈인가? 아니면 온전하게 하나님께 드리려고 한 것인데 잃어버려서 걱정이 되어서 애타게 찾은 것이냐? 어쨌든 자기가 잃어버린 것은 남이 찾아야 하느냐, 자기가 찾아야 하느냐? 자기가 찾아야 자기가 옳게 되는 거다. 자기가 옳은 사람이 된다 그 말이다.

 

밤에 잃어버렸으니 등불을 켜고 찾아야 한다. 그런데 집안에서 잃어버렸다. 그래서 찾느라고 이 물건 저 물건을 다 옮겨도 보고, 책상 밑으로 침대 밑으로 장롱 밑으로 의자 밑으로 등등 얼마나 열심으로 찾았는지 기를 쓰고 찾은 끝에 찾아서 너무 기뻐서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한 것이다. 그러니 찾기 전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9절에 보니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이거 대단한 모양이다. 요새 돈 500원짜리 잃어버리면 찾느냐?

 

10: ‘내가 너희에게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은돈을 잃었다가 찾은 것과, 죄인 하나가 회개하고 돌아온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 은돈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으나 은돈을 잃어버렸다는 여기에는 큰 책임이 붙어있다. 양도 마찬가지였다. 큰 책임이 붙어있다.

 

백이라는 온전과 완전, 열이라고 하는 온전과 완전. 이 온전과 완전에서 하나라도 잃는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추궁이 따른다. 어디에서 떨어졌는지, 어디에서 잘못됐는지 그 잘못된 곳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 등불을 켜고 빗자루로 쓸어서 잃었던 것을 찾아서 돌아와 기뻐한 것은 그 잘못된 것을 찾아서 깨달았다는 의미다.

 

자기가 오늘날까지 예수 믿으면서 뭐가 잘못됐는지, 뭐가 바로 됐는지를 모른 채 멍청하게 그냥 세월만 보내면 뭐가 될까? 만고의 멍청이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잘못된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치적으로 깨달아야 하고 질적으로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절대 정확한 것으로 자기가 가져야 한다.

 

온전하고 완전한 것, 절대 정확한 것을 하나를 잃으면 어떻게 되는 거냐? 아홉은 그대로 있는 거냐, 다 잃어버리는 거냐? 다 잃어버린다. 그런데 예수 믿는 이치에 대해서 우리 입장에서 보면 말세 된 오늘날의 교회가 너무나도 황당하게 예수를 믿고 있다.

 

하나님의 온전과 완전에 즉, 이룰구원에 재산도 재물도 쓰임이 돼야지 그렇지 못한 것은 다 잃어버린 것이다. 가졌다고 해도 하나를 잃어버리면 다 잃어버린 거다. 다시 말하면 가졌다고 하는 그것도 궁극적으로 너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궁극적인 것을, 죽음의 저 넘어 세계의 것을 갖지 못했으니 그렇다.

 

쉬운 예를 들자면 학생이 학교에 돈을 갖다 줬으면 지식을 배워와야 하는 건데 지식을 못 배워온다면 이런 꼴이 어디 있느냐? 그러면 돈만 날아갔느냐? 배우는 시간 젊음 노력투자가 다 날아간 것이다. 자기 일생 전폭이 손해가 되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할 게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면 한 이치라도 깨닫고 궁극적인 것을 갖고 가야 네가 바로 된 것이다.

 

양들을 생명초 영생초 들에 두고 나가서 찾아야 찾아오게 된다. 분명한 양들의 먹이가 있는 곳에 두고서 찾아야 찾아오게 된다. 이걸 모른 채 양들이 먹을 수 있는 들판이 아닌 곳에 양들을 두고 찾으러 간다면 그 양들도 다 잃어버리게 된다.

 

하나님의 온전과 완전을 바로 깨닫고 돌아오는 것이 회개를 하고 돌아온 것이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신다. 잘못된 것을 바로 깨달았느냐? 그걸 기뻐하신다. 바로 고쳤느냐? 그걸 기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온전에 관한 깨달음 그 하나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 찾아서 온전으로 완성시키는 것이 그렇게도 기쁜가? 하나가 없으면 완전이 아니니 이렇게 되면 언제든지 모자람이 되는 게 분명하다.

 

내가 하나님의 온전을 찾으려고, 온전한 사람이 되려고, 온전을 찾으려고, 완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고 애쓰고 있느냐? 안 그러면 너는 모자라는 사람이 된다. 죽음 저 너머 가서도 너는 모자라는 사람이다. 이제 모자라는 사람이 바로 보이느냐? 예수를 믿어도 사람이 그렇게 보이면 되겠느냐?

 

마음의 소원성이 마음의 취미성이 하나님의 옳은 것으로 진리지식으로 넣으면 누가 기뻐하느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온 교회가 기뻐한다. 그런데 이 이치를 몰라서 여기저기서 속고, 일생을 다 낭비하고. 이건 덜떨어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어디다 쓰겠느냐?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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