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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 노릇
마태복음 7:21~29
아침에 배달된 신문 펼치는 일을 인생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신문의 기사를 통해 세상에서 전개되는 일들을 상상하고 판단하고 걱정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담배가 나쁘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런 기사가 계속되자 그는 신문 보급소에 전화를 걸어 항의하고 구독을 끊었습니다.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과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을 ‘확증 편향’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는 자기중심적 왜곡이라고도 합니다.
오늘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무지하고 상상력과 이해심이 있는 사람은 의심하고 주저한다.” 버트런드 러셀의 말입니다. 이념의 확증 편향이 이 땅에 전쟁을 가져왔고, 여전히 증오와 대결을 부추기며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평화 공동체가 되려면 확증 편향을 극복하는 건강한 상식이 자리매김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만큼 확증 편향성이 강한 집단도 없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순교에 이르기도 하지만, 그래서 화해와 일치의 마중물이 되기보다 분란을 만들고, 갈등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나는 틀릴 수 있는 존재입니다. 틀렸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이 맞을 수 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바가 다 옳은 것은 아닙니다. 겸손과 자기 객관화는 이 시대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중요한 삶의 태도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주님은 겉만 번지르르한 그리스도인에게 경고하십니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은 거짓 확신에 살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신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을 최종적으로 신뢰하는 불신앙입니다. 그런 자들은 업적과 신앙을 혼동합니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마 7:22).
열심히 쌓은 선행과 업적이 자신의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처럼 보이는 것과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교훈이 귀하면 그 내용을 본받고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경우가 다릅니다. 주님의 교훈이 귀해서 권위있게 들려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권세 있는 교훈을 하신 것입니다. 말을 잘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고, 좋은 글을 쓰려고 애쓸 것도 아닙니다. 선지자 노릇을 하려고 하지 말고 선지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오롯이 왕의 길을 따라 살기를 애쓰는 하늘 백성에게 주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이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선지자 노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선지자가 되고 싶습니다.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기보다 하나님 나라 정신에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이끌어주시고 다듬어주십시오.
● 찬송 204 주의 말씀 듣고서
2023. 2. 3 금
댓글 '1'
최용우
고대 이스라엘은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이 완전히 구별되었습니다. 선지자는 성전 밖에 길거리에서 외쳤고, 제사장은 성전 안에서 제사(예배)를 고수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과 선지자는 항상 일정한 긴장감을 유지했습니다. 오늘날 목사들은 교회당 안에서 제사장 역할만 할뿐입니다. 제사장은 어떻게든 성전(교회)이라는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 애쓰느라 '선지'의 메시지를 선포하지 못합니다. 그랬다가는 교인들 다 도망갑니다. 제사장은 제사장의영을 받고 선지자는 선자자의영을 받아야 합니다. 제사장의 영을 받은 목회자들이 '선지자' 흉내까지 내려고 하니 '진짜 선지자'가 아니라 '선지자 노릇'을 하는 것이죠. 진짜 선지자는 그때도 밖에 있었고 지금도 밖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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