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2019강원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내 뿔을 찾아줘 / 이성엽
"어휴! 오늘은 또 어디서 자야 하지? 어젠 너무 더워 계속 잠을 설쳐서인지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네.”
난 오늘도 새로운 잠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찾아다닙니다.
아! 내가 누구냐구요?
난 땅에 사는 땅도깨비예요. 나 같은 땅도깨비들은 밤새도록 땅을 파서 잠자리를 만든 후 새벽녘 수탉이 울고 해가 떠오를 쯤이면 땅속에 들어가 잠을 자야 해요.
매일매일 잠자리를 옮겨야 머리에 봉긋 솟은 뿔이 자라나게 되고요, 그렇게 자라난 뿔이 빠지고 새로 나오면 비로소 우리 땅도깨비들은 하늘도깨비가 될 수 있어요.
하늘도깨비가 되면 땅도깨비처럼 매일 잠자리를 구하지 않아도 되고, 어디든지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밤새도록 신나게 놀 수 있어요. 노래하고 춤도 추고, 밤마다 즐겁게 노는 하늘도깨비들이 나는 너무너무 부럽답니다.
땅도깨비 뿔이 자라서 빠지면 그 뿔을 부엉이 굴에 가져다 줘야 해요. 부엉이는 그 뿔을 물어다 놓고는 도깨비방망이로 바꿔 준답니다. 도깨비방망이는 도깨비불을 켤 수 있어서 그 불을 타면 어디든 원하는 데로 훨훨 날아갈 수 있어요.
난 머리에 솟은 내 뿔을 살짝 만져보았어요. 우뚝하게 잘 자라서 이제 곧 뿔이 빠지려는 듯 흔들거리고 있었어요. 곧 이 뿔이 빠지고 나면 나도 하늘도깨비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며칠만 잘 견디면 하늘도깨비가 되어 도깨비불을 타고 온 세상을 돌아다닐 생각에 난 절로 콧노래가 나고 신이 났어요.
“옳지, 오늘은 여기에서 잠을 자면 되겠구나!”
오늘 내가 고른 잠자리는 대나무 숲이에요. 바람이 시원하게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고 대나무 잎들이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그곳은 아늑하기까지 했어요. 난 커다란 대나무 옆에 구멍을 파고 수탉이 울기 전에 몸을 숨겨 오랜만에 시원하게 대나무 잎들의 자장가를 들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어요.
너무도 곤히 잠이 들었는지 해가 지고 별들이 총총 뜬 밤이 되어서야 눈이 떠졌어요.
난 냇가로 달려가 시원한 시냇물에 세수를 했어요. 두 손 가득 물을 떠서 얼굴을 깨끗이 닦고, 내 소중한 뿔을 닦으려 머리에 손을 얹었어요.
“어! 머리가 왜 이렇게 허전하지?”
난 평소와 다른 머리를 냇가에 비춰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어요. 글쎄 머리 위에 있어야 할 뿔이 없어진 거예요.
“언제 빠진 거지? 빠진 내 뿔은 어디에 있는 거야?”
세수를 하다 말고 대나무 숲으로 재빨리 뛰어갔어요. 내가 잠을 잤던 구멍을 살펴보고 그 근처 대나무 숲을 찾아 봤지만 그 어디에도 뿔은 없었어요. 그 뿔을 찾지 못하면 난 영원히 하늘도깨비가 되지 못하고 땅도깨비로 살아가야 할 거예요.
그 생각을 하니 덜컥 겁이 나고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어요.
“어디로 갔지? 어디로 간 거냐고?”
나는 땅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음을 터트렸어요.
오늘 새벽 잠들기 전까지 분명히 머리에 붙어있던 뿔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믿기지가 않았어요. 난 대나무 숲 전체를 뒤져가며 뿔을 찾으러 다녔지만 내 뿔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어요. 그렇게 정신이 나간 듯이 뿔을 찾고 있을 때였어요.
“야! 땅도깨비!”
날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어요. 거기엔 지난번 만나서 함께 놀았던 붉은 박쥐가 거꾸로 매달려 날 보고 있었어요.
“너 지금 거기서 뭘 찾고 있는 거니?”
“박쥐야, 내 머리에 있던 뿔이 없어졌어.”
“뿔? 뿔이라고? 지난번 우리가 만났을 땐 니 머리에 그런 건 없었는데?”
“너랑 만나서 놀고 난 이후에 조금씩, 조금씩 뿔이 자라났었어.”
박쥐랑 만난 건 뿔이 나오기 전이라서 박쥐는 내 뿔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나봐요.
“그 뿔을 찾아야 해, 그렇지 않으면 난 영원히 하늘도깨비가 될 수 없단 말야, 네가 좀 도와주지 않을래?
난 박쥐에게 애원을 했어요.
“그래 내가 같이 찾아줄게.”
박쥐는 자기도 내 뿔을 찾아 주겠다며 긴 날개를 퍼득거렸어요.
“그런데 네 뿔이란 것이 어떻게 생긴 거니?”
“내 뿔은 뾰족하게 생겼어, 그 뿔에 예쁜 무늬도 새겨져 있어서 머리 위에 붙어있으면 얼마나 멋진데!"
“머리 위에, 뾰족하게 생긴, 예쁜 무늬.”
박쥐는 내 말을 따라하더니
“아하! 나 그거 어디에 있는지 알아.”
“진짜? 진짜 어디 있는지 알아?”
“날 따라와, 내가 찾아 줄게.”
난 박쥐의 말에 신이 나서 어깨를 덩실 거리며 박쥐를 따라갔어요.
“어디로 가는 거야?”
“산 아래 마을에서 머리 위에, 뾰족한, 예쁜 무늬를 봤어.”
박쥐와 나는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갔어요.
박쥐가 데려간 곳은 산 아랫마을 불이 훤하게 켜진 집이었어요.
“난 눈이 너무 부셔서 더 가까이는 못 가겠어, 네가 저 집에 들어가서 머리 위, 뾰족한, 예쁜 무늬 그걸 찾아봐, 저 집으로 가지고 들어가는 걸 분명히 봤어.”
박쥐는 눈이 부신 듯 얼굴을 찌푸리며 나에게 얘기를 했어요. 난 박쥐의 말을 듣고 살금살금 몸을 엎드려 아무도 모르게 그 집으로 들어가 소파 밑에 몸을 웅크리고 집 안 이곳 저곳을 살펴봤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내 뿔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때였어요. 방 안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 내가 숨어있는 소파 쪽으로 우르르 몰려나왔어요.
“빨리 이쪽으로 앉아, 도연이 생일잔치를 해야지.”
난 뿔이 없어져서 안절부절인데 잔치를 한다니 난 그 사람들이 얄밉게 느껴졌어요.
그들은 케잌을 꺼내와 초를 꽂고 불을 붙인 후 노래를 시작하려 했어요.
“잠깐, 도연이 고깔모자 써야지, 주인공들은 고깔모자를 써야 해.”
“연우야! 방에 가서 고깔모자 가져와, 형 씌워주게.”
방에 들어갔던 아이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나왔어요. 그건 바로 내가 찾던 뿔이 틀림없었어요. 뾰족이 솟은 내 뿔에 알록달록 그림을 그려놓고선 긴 끈을 매달아 오늘 생일이라는 아이에게 씌어주고 있었어요. 난 뿔을 찾았단 안도감에 긴 숨을 내쉬었어요.
“저 뿔을 어떻게 다시 뺏어간담?”
난 일단 가만히 소파 밑에 엎드려 기회를 엿보기로 했어요.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도연이 생일 축하합니다.”
짧은 합창이 끝난 후 천둥번개 같은 폭죽을 터트려 축하를 했어요. 그 순간에도 내 뿔은 저 주인공 녀석의 머리에 매달려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죠.
숨죽이고 기다리던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어요. 하나 둘 자리를 뜨자 주인공 녀석은 내 뿔을 머리에서 내리더니 방바닥에 휙 집어던지곤 어디론가 사라졌어요. 난 주위를 살펴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얼른 내 뿔을 집어 들고 마당으로 달려나갔어요.
“도연아 고깔모자 어디 뒀니? 다음 주 연우 생일 때도 쓰려면 잘 둬야 하는데.”
“거실 바닥에 있을 거예요.”
“없어, 네가 나와서 찾아봐.”
이렇게 이미 내 손안에 와 있는데 거실 바닥에 있을 리가 있나요? 난 마당을 재빨리 가로질러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박쥐에게 갔어요.
“박쥐야, 박쥐야. 이것 봐. 내 뿔을 찾았어!”
“히히, 다행이다. 내가 본 것이 그게 맞구나?”
“응, 고마워. 너 덕분에 다시 뿔을 찾게 됐어, 내가 하늘도깨비가 되면 이 은혜를 잊지 않을게.”
“박쥐야! 나랑 같이 부엉이 굴에 가지 않을래? 이걸 도깨비방망이랑 바꿔서 도깨비불을 피우면 널 태워줄게.”
“진짜야? 아 신난다, 꼭 한번 도깨비불을 타보고 싶었거든.”
박쥐와 나는 산길을 달려 부엉이 굴로 갔어요.
“부엉아, 부엉아, 이리 좀 나와 봐.”
나는 큰 소리로 부엉이 굴이 울리도록 부엉이를 불렀어요.
“무슨 일로 왔어?”
부엉이가 큰 눈을 깜박거리며 나타났어요.
“이것 좀 봐, 뿔을 가져왔어.”
난 자랑스럽게 뿔을 부엉이에게 내밀었어요. 부엉이는 내 뿔을 받아들고 이리저리 살피기 시작했어요. 그 녀석들이 달아놓은 끈도 당겨보고, 알록달록 그림을 그려둔 걸 쓱쓱 문질러 보기도 하면서 살피더니.
"이거 어디서 났어? 이건 네 뿔이 아니잖아.”
“그게 내 뿔이 아니라고?”
나는 깜짝 놀라 부엉이를 쳐다봤어요.
“이건 인간들이 생일날 쓰는 모자야, 얼른 제자리에 가져다줘, 인간 물건을 훔치면 영원히 하늘도깨비가 될 수 없다는 거 몰라?”
그것이 내 뿔이 아닌 인간의 물건이란 말에, 하늘도깨비가 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어 덜컥 겁이 나 몸이 떨렸어요.
“어서 제자리에 가져다 둬.”
부엉이의 말에 모자를 들고 다시 마을로 내려갔어요.
“어디 갔지? 분명 거실에 뒀는데.....”
없어진 모자를 찾느라 주인공 아이는 이곳저곳을 기웃대더니 다시 방으로 들어갔어요.
내가 재빨리 거실로 가서 모자를 제자리에 두고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안방에서 주인공의 엄마와 아빠가 갑자기 나타났어요. 난 다시 소파 밑으로 황급히 몸을 숨겼어요.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낮에 캐온 죽순을 그냥 두고 있었네?”
주인공의 아빠가 밖으로 나가 커다란 자루를 가지고 오더니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어요.
“어머! 이렇게 많이 캐왔어요? 주인공의 엄마가 기분이 좋은 듯 웃으며 자루 안에 든 물건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어요.
“올해는 죽순이 어쩜 이렇게 잘 자랐죠? 내일 아침은 이걸로 요리를 해야겠어요.”
“대나무 숲이 울창하니 여기저기 죽순이 쑥쑥 돋아났지 뭐요.”
주인공의 아빠도 기분이 좋은지 큰 소리를 내어 웃었어요.
그때였어요, 주인공의 엄마가 죽순을 하나 꺼내 들더니
“여보! 이건 좀 이상해요, 이건 죽순이 아니라 딱딱한 게 뭔지 모르겠는걸요?”
“어디 봅시다, 생긴 건 죽순 같이 생겼는데 정말 이상하네.”
“딱딱해서 먹지는 못할 거 같으니 그냥 버려요.”
난 그것을 보고 눈이 동그래졌어요. 주인공 아빠가 손에 든 그 딱딱한 죽순, 그건 의심할 여지없이 틀림없이 내 뿔이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낮에 잠을 잤던 잠자리 옆으로 뾰족한 죽순들이 솟아나 있었던 것 같아요.
“쳇! 내 뿔을 죽순인 줄 알고 캐간 것이었군!”
부엉이가 새로 가져간 내 뿔을 보더니 동굴 깊숙한 곳에서 방망이 하나를 가져왔어요.
"넌 오늘부터 하늘도깨비야, 그런데 이 방망이를 잃어버리면 또다시 땅도깨비가 될 테니까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 알았지?”
난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어요.
방망이를 땅에 세 번 내리치면 환한 도깨비불이 켜졌어요. 그 불 위에 올라타고 가고 싶은 곳을 말하면 순식간에 그곳으로 불꽃이 향했지요. 난 약속대로 박쥐를 태우고 바람이 시원하게 부는 밤바다로 날아갔어요. 그곳에서 박쥐와 나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들이키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를 밤새 뛰어다니며 신나게 놀았답니다. 바다 저편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할 즈음 잠자리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또다시 놀러오기로 했죠.
“박쥐야! 오늘 참 재미있었어, 다음에 또 오자.”
“그래 나도 너무너무 재미있었어!”
“그런데 박쥐야! 내 도깨비 방망이는 어디다 뒀어?”
박쥐랑 나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로를 멍하니 쳐다봤어요.
<당선소감>
"모든 아이 맑은꿈 위해 세상에 글의 나래 펼것"
당선 소식을 전해들은 순간 몇 해 전 꽃길을 따라가신 아버지가 생각났습니다. 당신께선 늘 어린 아들의 손을 이끌고 바닷가 고향마을 곳곳에 서려 있는 이야기를 과장된 몸짓과 함께 들려주셨고, 밤이면 뱃일로 고단할 텐데도 두 형제를 양팔에 끼고 누워 당신이 지어낸 상상의 이야기 속으로 데려가 맑은 꿈을 꾸게 해주셨습니다. 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시간을 주고 싶어 시작된 글들은 늘 조금 모자라지 않은지 의구심이 들곤 했었죠. 그러한 의구심에 큰 날개를 달아주신 강원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님들, 격려와 질타를 보내주신 사랑하는 문학연맹(詩房) 회원님들, 모든 글의 원천이 돼 주신 부모님, 가족과도 영광스런 이 시간을 함께 나눕니다.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맑은 꿈을 꿀 수 있도록 세상 속으로 나의 글들의 나래를 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성엽(47).
● 강원도 고성 生.
● 원광보건대 임상병리과.
<심사평>
"천방지축 동심 잘묘사 교시적인 힘 빼 신선해"
오랫동안 동화는 어린이의 현실을 바탕으로 한 현실동화와 아동소설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나 최근 몇 년새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판타지 동화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번 본심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숲의 정령들'과 `우당탕탕 날개들의 도서관'은 묵직한 주제를 판타지 형식에 담아 밝고 긍정적으로 풀어냈다. 다만 `숲의 정령들'은 글의 흐름이 빤해 결말이 예상됐고, `우당탕탕 날개들의 도서관'은 문장이 다소 거칠었다. 반면 `내 뿔 좀 찾아줘'는 문학이 뭔가 일깨워야 한다는 교시적인 힘을 뺀 동화여서 오히려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천방지축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이 특유의 동심을 자연스럽게 묘사했고, 동화에서 수없이 호명된 도깨비를 지루하지 않게 살렸다.
심사위원 : 원유순, 권영상
최신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