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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광남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제비집 (안형미)
삽화 한부철
돌고래가 그려진 벽화를 지나 골목을 돌아 흙빛 돌계단을 오르면 너희 집이 보여. 대문이 끼익 하고 초인종처럼 울리는 집. 거친 연둣빛 넝쿨들이 타고 오르는 스레트집. 나무기둥 사이로 마루가 한눈에 보이는 집. 그리고 우리 집.
아저씨가 일을 다녀왔어. 오자마자 마루 앞에 비스듬히 놓여있는 작대기를 들었어. 동시에 우리 집을 향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는 거야. 난 깃털이 삐쭉 서고 다리가 후들거렸어.
그때 오소소 들어오는 너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그제서야 작대기를 툭 하고 마당으로 던지셨지. 흙물이 툇마루까지 튀겼어.
“에이, 비가 와서 오늘도 허탕이야.”
흙과 비가 진득하게 엉겨 붙은 운동화 밑창을 툴툴 털었어. 그리곤 금방이라도 ‘우르릉’하며 울림이 시작될 거 같은 하늘을 물끄러미 보시는 거야.
“망할 하늘!”
난 많은 곳을 여행하다 왔지만 말이야. 회색빛 하늘에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대드는 사람은 처음 봤어. 저렇게 무서운 아저씨와 함께 올해를 무사하게 보낼 수 있을까.
아무리 그래도 사실 선택의 여지는 없어. 집을 찾는 건 여간 어려운 게 아니거든.
한 번은 지붕이 있는 집을 못 찾아 높은 건물 안에 둥지를 만든 적이 있어. 엄마는 사람들을 나르는 기계를 놓는 창고라 했어. 나는 말했어. 여기는 네모 세상 같다고, 사람들을 나르는 기계도 네모고, 기둥도 네모고, 사람들의 집들도 네모라고.
예전엔 풀 냄새 나는 흙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흙이 없다고 엄마는 한탄하며 흙을 구해왔어. 아빠가 볏짚을 물어오고, 흙과 볏짚을 이었어. 볏짚을 더 이상 구할 수 없었던 아빠는 빨간 끈을 부리에 물고 왔지. 나일론이라던가. 암튼 이상한 실오라기 같은 거였어. 아빠는 아쉬운 대로 그걸로 이어보자 했어. 부실공사가 될 거 같아 불안했지만, 만들어보니 괜찮았어. 네모 속은 생각보다는 따뜻했거든. 바람도 불어오지 않았어. 바람의 향기가 꽃내음처럼 향기롭다지만 중요하지 않았어. 엄마는 따뜻하면 됐다 했어. 저녁이 되자 붕붕거리며 네모들이 들어왔어. 네모들이 줄줄이 개미떼 같았어.
“조용히 해야 해. 사람들한테 들키면 힘들어” 엄마는 날갯죽지로 우리들을 감싸 안으며 속삭였어.
그때였어. 엄마의 왼쪽 깃털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동생의 시선이 그리 향하는 거야. 곧 ‘휘릭’ 하고 깃털을 주우려 동생이 내려갔지. 신기한 것들을 본거처럼 두리번거리더니 지지윅! 지지윅윅! 나를 부르는 거 있지. 동생의 등에 아슬아슬하게 줄을 메달아 놓은 것 같았어. 떨어질 듯 말 듯 낮게 날고 있었지.
“주차장에 웬 제비들이죠?”
“경비아저씨!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예요?”
“새로 산 차에 새 똥이 묻었잖아요.”
몇 마디의 앙칼진 목소리들이 흩어졌어. 곧 마녀빗자루 같은 게 다가왔어. 공들여 지은 둥지는 차가운 아스팔트위에 널브러졌어.
그렇게 다시 떠돌이가 되었지. 아침이슬이 차가울 때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건물위에 올라가 잠도 잤어. 또 어떤 때는 전깃줄에 앉아 날을 지새우기도 했지. 돌아가서 쉴 곳이 없다는 건 참 슬펐어. 그때 엄마가 태어난 둥지가 너의 집 처마 밑에 온전히 보이는 거야. 둥지를 발견 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는지 아니? 이렇게 귀한 집을 두고 내가 어디 갈 수 있겠니.
어둑한 구름 사이로 달빛이 얼굴을 내밀고 들어가. 저기 너의 아빠가 보여. 아저씨가 좋아하는 먹이가게, 아니, 포장마차라고 불렀던가. 포장을 한 마차. 나는 이 이름이 좀 재밌어. 아저씨는 마차 아줌마에게 말해.
“곧 물어 드리리다. 요 며칠만 기다려 줘요.”
마차 아줌마가 뭔가를 따각따각 썰다말고 아저씨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었어. 마차 아줌마가 소금까지 길가에 뿌렸어.
네 아빠 흉을 보면 기분이 상하겠지만, 아저씨가 잘못한 거니까 욕을 들어도 괜찮다 생각했어. 아까 우리 집을 부수려 했다는 복수로 마차 아줌마 편을 드는 건 아니야. 정말이야. 나는 생각보다 공평하다고. 우리도 그래. 엄마가 이웃아줌마에게 애써 잡은 벌레를 빌려오면, 그 대신 집짓는 걸 도와주곤 하지. 하다못해 올이 고운 볏짚이 있는 곳을 알려주기도 해. 그런 거잖아. 무엇인가를 누군가에게 받았으면, 당연히 보답해야 되는 거라고.
“일한 일당을 열흘 치나 밀렸지 뭡니까. 그거 나오는 대로 내 가장 먼저 외상값부터 갚겠수다.”
하지만 아저씨도 누군가에게 보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지. 아저씨의 목소리가 밟힌 지렁이처럼 꼬불거리며 작아졌어. 뿌연 하늘에 대고 욕을 하던 아저씨의 목소리가 아니었어. 나는 마차아줌마가 세상에서 가장 무섭구나 생각했어. 저 마차를 지날 때 조심해야겠다고도 말이야. 터덜터덜 걸어가다 말고 아저씨는 노란 천막 앞에 또 스셨어.
“붕어빵 팥고물 든든하게 배 채운 걸로 두 봉지 줘요.”
미안한데, 너의 아빠 거짓말쟁이 인가봐. 분명 없다고 했던 하얀 종이가, 주머니에서 두 뭉치로 나왔어, 구겨진 돈을 입김까지 후후 불며 폈어.
“째앵하고, 해뜰 날 돌아온단다.”
뭐, 그리 좋은 음성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저 노래를 들으면 아저씨가 안 무서워. 아저씨가 흙빛 계단을 위태롭게 걸어가. 너 그거 알아? 너희 집 가는 골목의 벽화고래와 아저씨그림자는 친구사이야. 아저씨의 그림자와 돌고래 그림들이 어두워지면 만나거든. 매일 밤 고래그림들은 아저씨그림자에게 인사를 해. 늦은 시각 고래를 만나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힘내라, 잘했다, 멋있다, 내일은 잘 될 거다. 잘은 모르지만 그런 말들 아닐까. 사람들은 그런 말 들을 아끼니까, 고래가 그림자들에게 해주는 게 아닐까.
참, 지금 보니 아저씨와 우리아빠가 닮았다. 아빠도 매일 맛있는 먹이를 물어 오시곤 하셨거든. 함께 드시라 하면, 날갯죽지 치켜 올리며 부른 배를 볼록하게 내밀었지. 아빠는 늘 배가 부르다고 했어.
그래서 난 세상을 향해 빨리 날아보고 싶었어. 세상엔 먹을 것이 많고 재밌는 곳이라 생각했지. 하지만 내 날개가 점점 구름에 가깝게 되었을 때 쯤 알았어.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에서 먹이를 구하는 게 쉬운 게 아니란 것을 말이야. 아빠는 어디에서 그렇게 매일 먹고 오셨을까.
삽화 한부철
오늘은 맑은 햇살이 더욱 눈부신 날이야. 이렇게 햇살이 커튼처럼 쳐져있는 날엔, 벌레들이 보이지 않아. 난 배가 고픈데. 독립을 하고 나서 늘 배가 고파. 희망초등학교. 너의 학교가 보여. 저기 분홍색 롱티를 입은 연두가 있어. 연두가 너를 보며 인사를 하네. 너희 둘은 살랑거리는 꽃대처럼 손을 흔들 거렸어.
그때 네 옆에 한 녀석이 성큼성큼 다가왔어. 두툼한 인중에, 깨알 같은 점 하나가 박힌 아이였어.
“너희아빠 로열 빌라에서 일한다며?”
얼떨결에 대답을 한 너에게 녀석이 어깨를 으쓱거렸어.
“네 아빠에게 우리 아파트 빨리 좀 지어달라고 좀 해. 다 지어야 거기로 우리집 이사간다고. 거긴 놀이터도 엄청 근사할 거야.”
너의 앙다문 입술이 조금 떨리는 게 보였어.
“너희 아빤 왜 매일 남의 집이나 지어주고 다니냐, 너희 집은 언덕배기에서 넘어져 가고 있는데. 바람을 ‘후’ 불면 날아가겠더라.”
녀석이 하얀 덧니를 보이며 사라졌어.
너는 연두에게 말했지. 좋은 집이 되려면, 짓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정성이 만나야 되는 거라고. 어른처럼 녀석에게 말해 줄까 하다 참았다고 했어. 왜냐하면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이 있다고 했지. 녀석은 분명 그런 아이 같아.
얼굴이 붉어진 연두에게 너는 멋진 집을 그려 준다고 했어. 빛바랜 노란색 가방을 뒤적여 작은 분필 하나를 꺼냈지. 바닥에 큰 사각형을 그렸어. 그 위에 지붕처럼 삼각형도 그렸어. 사각형 안에 또 반듯한 사각형이 있고, 또 각진 삼각형이 따라 붙었어. 그리고 테두리마다 올망졸망한 꽃들과 넝쿨잎을 그려 넣었지.
“이건 땅따먹기 그림이잖아.” 연두가 그림을 가리키며 피식 웃었어.
“이건 그냥 땅따먹기가 아니야. 바로 하늘로 만든 집이야. 여기 사각형들이 우리방 이고, 여기는 우리 놀이방, 여기는 침대가 있는 아빠엄마 방, 따뜻한 물이 나오는 콸콸 나오는 욕실, 여기는 꽃들이 많은 정원, 그리고 이렇게 하늘을 올려다봐.”
너는 엄지와 검지로 만든 둥근 원으로 하늘을 쳐다봤어. 나도 하늘을 담은 방을 보았어. 햇살처럼 반짝이고, 구름처럼 따뜻하고, 꽃향기가 나는 근사한 집이었어.
연두가 잿빛 사금파리 하나를 주워 왔어. 번갈아 가며 한발을 들고 콩콩 뛰었어.
그때, 그 옆에 깨알만한 그림자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게 보여. 얼마 만에 보는 건지. 나는 사냥이 익숙하지 못해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거든. 벌레를 먹으려고 내려가는데 연두의 검지가 나를 가리켰어. 바닥 가까이 날지 말라고 말했어. 내가 낮게 날면 비가 오고, 비가 오면 아저씨가 화를 낸다고. 화를 내서 아줌마가 사라졌다고. 난 너희들의 즐거운 놀이를 방해하고 싶은 게 정말 아니야. 배가 고파서 그냥 먹이를 따라 난거뿐인데. 오늘은 입맛이 없는 날이야. 그렇다고 너희 때문은 아니야. 입맛이 없는 게 꼭 이유가 필요한건 아니니까.
빗물을 털며 우리는 함께 집으로 돌아왔어, 돌고래가 그려진 골목을 지나고, 삐걱거리는 문을 초인종처럼 울리며 왔지. 연두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했어. 나는 본적이 없지만 반짝이는 네 눈을 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푸른색 초원을 천 미터 앞에서도 볼 수 있는 예쁜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들었어. 보라색 풀꽃을 참 좋아하는 사람. ‘닐!’. 나중에 알게 됐지만, 그 이름이 몽골어로 제비꽃이라는 이름이란 걸 알게 되었지. 참 예쁜 이름이다.
“왜 편지도 전화도 없을까? 비가 오니까 엄마가 더 보고 싶다. 그치. 그날 밤, 비가 내린 날. 그 소리 땜에 엄마 발걸음소리도 못 듣고 잠만 잤어. 엄마의 발을 잡았으면, 엄마의 손을 놓지 말았다면…….”
연두가 말끝을 흐리고는 툇마루에 앉았어. 구슬 같은 눈물들이 또르륵 떨어졌어.
“연두야, 몇 년 전 아빠가 제비둥지를 헐려고 하니까, 우리가 헐지 말자고 말했던 거 기억나?”
연두가 눈물을 그치고 고개를 까닥였어.
“둥지를 그냥 두니까, 올봄에 제비가 다시 찾아왔잖아. 우리 집이 여기 있으니까 엄마도 제비처럼 다시 올 거야.”
곧 낡은 슬리퍼를 신고, 부엌으로 갔어. 복지사 언니가 가져온 탱탱한 수박을 쟁반위에 아슬아슬하게 놓았지. 연두를 달래기 위해 너는 재밌는 노래를 불러줬어.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흥부 놀부 살았다네. 맘씨 고운 흥부는 제비 다리 고쳐 주고 박씨 하나 얻어서 울 밑에 심었더니 주렁주렁 열렸다네. 복 바가지가 열렸다네…….”
너는 빙싯 웃으며 그 수박이 흥부네 아저씨 수박이라고 했어. 복지사 언니가 특별히 흥부아저씨한테 부탁 한 거라 했지. 그 속에서 나왔으면 하는 것들을 상상하며 씨앗을 심자고 했어.
연두가 말했어. 요정이 그려진 운동화,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 리본 단추로 열수 있는 가방, 움직이는 토끼모자, 비와도 양말이 안 젖는 핑크 장화, 너와 함께 쓸 수 있는 이층침대, 그리고 '닐'. 네가 ‘푸’ 하고 불었어. 연두는 ‘투’ 하고 뱉었어. 씨앗이 마당에 별처럼 콕 박히고 있어. 난 사실 박씨 같은 거 어디에 있는지 몰라. 내가 진짜 알았다면 너에게 일순위로 물어다 줬을 거야. 넌 흥부아저씨만큼 따뜻한 아이니까. 근데 말이야, 무슨 소리 안 들리니? 바퀴두개가 바쁘게 돌아가는 소리 같은 거. ‘부웅’하고, 서두르는 소리 말이야. 저 소리는 네모난 기계 창고에서 들은 소리 같지만, 분명 다른 소리야. 나를 믿어 보라니까. 이래봬도 우리 조상님 대대로 반가움의 상징이라고. 저 중에 너희들이 원하는 반가운 선물이 있을 것만 같아. 어쩌면 아주 먼 나라의 푸른 평야의 냄새도 갖고 있지. 보라색 꽃냄새도 난다. 그치. 기다렸던 것이 오면 우리 또 하늘을 담은 집을 그려보는 거야.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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