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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광주일보] 파랑새 시계탑 -이명선

신춘문예 이명선............... 조회 수 69 추천 수 0 2023.05.09 2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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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파랑새 시계탑 -이명선

파랑새 시계탑 (이명선)
2023005.jpg 
아침 안개는 철길 멀리, 호수를 품은 산자락까지 마술처럼 감춰버렸어요. 전철역 앞 소담한 광장 안으로 신호등이 바뀔 때마다 출근길 어른들이 우르르 뛰어 건너왔어요. 안개 속에 숨어 있다 나온 병사들처럼. 맑은 날 가끔은 시계탑을 힐끔 쳐다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큼지막한 숫자를 재빨리 확인하고는 전철역 계단으로 뛰어갔어요. 사람들은 시계탑 위에 파랑새 조각품이 있다는 사실은 아예 모르는 것 같았어요.

-철컥-
안개 속에서 커다란 분침이 움직이는 소리였어요.
-케켓-
안개 사이로 노란 부리가 보였어요.

오후가 되자 안개는 호수 속으로 서서히 사라져 갔어요. 안개가 묶어 둔 커다란 마술 자루 매듭이 풀어지자 광장 시계탑의 모습이 드러났어요. 상자모양 시계는 네 면에 똑같은 시계 바늘이 달려 있고 윗면에는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갈 듯 앉아있어요.

“휴우, 살았다! 사방이 답답해서 혼났네.”
시계는 네 면의 시계바늘을 반짝이며 말했어요.
“시계야, 안개만 걷히면 뭐 하니?”
파랑새는 안개보다 더 못마땅한 게 있는 것 같았어요.
“파랑새야, 더듬더듬 앞을 안 봐도 되니 좋지 않니?”
“시계야, 앞이 잘 보인다고 우리도 잘 보이는 게 아니잖아?”
“…….”

시계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어요. 정말이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아본 게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 했어요. 게다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손에 꼭 쥐고 다니는 휴대폰 때문에 관심 받기란 더 힘들었어요.

-삐이-
-다음 들어오는 열차는 이 역을 통과 하겠습니다-
“아! 시끄러워!”
파랑새는 미리부터 귀를 막으며 말했어요. 분침이 철컥이는 동안 열차 몇 대가 굉음을 내며 역을 지나갔어요.
“파랑새야, 광장이 철길 옆에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니?”
“열차가 통과할 때마다 고막이 찢어질 것 같단 말이야!”
시계는 파랑새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았어요. 파랑새는 귀가 밝아서 멀리서 나는 소리도 잘 들으니까 광장 바로 옆 철길을 지나는 열차 소리는 더 잘 들릴 테니까요.
“시끄럽지도 않고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는 곳으로 가고 싶어.”
파랑새는 간절하게 말했어요. 시계는 시무룩한 파랑새를 어떻게 도와줄지 생각에 잠겼어요. 시계는 아주 오래 전 파랑새 시계탑을 만들었던 시계공이 조수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자네는 시계가 뭐라고 생각하나?”
시계공은 시침을 시계 앞판에 꽂으며 말했어요.
“지금 시각을 알려 주죠.”
조수는 너무 쉬운 질문 때문인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어요.
“시계가 가리키는 지금 시각은 과거와 미래의 똑같은 시각이야.”
“네?”
조수는 고개를 갸우뚱 하며 시계공에게 네 번째 시침을 건넸어요. 시계공은 마지막 시침을 꽂았어요.
“이 상자모양 시계 위에 새 조각품을 얹는다고 했지?”
“네. 파랑새라고 하던데요.”
“이 시계탑과 잘 어울리겠군.”
“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요.”
조수는 시계 앞면 유리를 건네면서 말했어요.
“시계모양이 왜 상자인가요?”
“상자는 또 하나의 세상이야.”
시계공은 시계 네 면을 유리로 덮으며 말했어요. 조수는 상자모양 시계를 찬찬히 살펴보았어요. 하지만 상자 속에 세상이 있다는 말은 아리송하기만 했어요.
‘시계가 마술상자라도 된다는 건가?’

시계는 주름진 시계공의 얼굴과 굳은살 박인 손끝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 같았어요. 그날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이 마치 긴바늘과 짧은바늘이 포개지듯 겹쳐진 것 같았어요.
“파랑새야, 너 정말 이 곳을 떠나고 싶니?”
“물론이야.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
“그렇다면 상자시계 속으로 들어가 봐.”
“네 속으로 말이야?”
“시계공 아저씨가 그랬어. 상자 속은 세상이 있다고!”
“어떻게 들어 가?”
“…….”
시계는 고민이 되었어요. 정말이지 어떻게 상자시계 속으로 들어가는지 시계공이 말해 주지는 않았으니까요.

“아! 알았다!”
시계는 소리쳤어요.
“깜짝이야! 도대체 어떻게 상자시계 속으로 들어간단 말이야?”
“시침과 분침이 겹쳐질 때!
“정말?”
“내 생각이긴 하지만 한 번 믿어 봐.”
“뭐야? 내 머리가 부서지면 어떡해?”
“미래도 지금 시각이랑 같다고 했으니까 시계바늘이 겹치면 되지 않을까?”
“피-히 엉터리군!”
“분침은 미래의 시간으로 가고 있고, 시침은 과거일 수 있잖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뭐 한 번 해 보지.”
파랑새는 머리가 시계상자에 부딪혀 멍이 들게 뻔하니까 살살 시도해 보기로 했어요.

-철컥…철컥…철컥…철컥…철컥-
파랑새는 분침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이제 분침은 시침 바로 옆까지 움직였어요. 파랑새 날개깃이 살짝 움직였어요.
“이때야!”
-푸드득-
-철컥-
긴바늘과 짧은바늘이 포개지는 순간이었어요.
‘파랑새가 사라졌다!’
시계는 설마 했던 일이 진짜로 벌어져서 너무 놀랐어요.

파랑새는 시계 톱니바퀴를 피해 허둥지둥 날았어요.
‘으아악’
별 하나가 쏟아지듯 눈앞에 나타나자 파랑새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어요.
‘정말 시계 속으로 들어온 거야?’
파랑새는 믿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자 낯선 세계에 온 것은 틀림없었어요.
‘여긴 어디지?’
파랑새 눈에 호수가 보였어요. 광장 가까이에 있는 호수보다 몇 배는 넓은 호수였어요. 호수 한 가운데는 수풀과 나무가 섬처럼 떠 있었어요. 파랑새는 넋을 잃고 섬을 바라보았어요.
‘정말 광장을 떠난 거야!’
‘와! 새로운 세상이다!’
그때였어요.
“파랑새다!”
“우와. 색깔도 예쁘고 깃털도 부드러워!”
안전모를 쓴 젊은 인부가 파랑새를 처음 보았어요. 잠시 후 호수 주변 인공습지 공사장에 있던 인부들도 몰려들었어요. 인부들은 너도나도 파랑새 머리와 깃털을 쓰다듬기 시작했어요. 파랑새는 광장을 떠나 멋진 호수로 오게 된 것도 맘에 들었고 사람들한테 관심도 받으니 기분도 좋았어요.

- 투투투투 투투투투 -
굴착기는 날마다 쉴 새 없이 땅을 파고 있어요. 호수는 인공습지조성 공사 때문에 새벽부터 저녁까지 굴착기 소리가 끊이질 않았어요.
‘아! 시끄러워!’
파랑새는 머리 정수리 털과 날개깃이 한 움큼 빠진 채로 소리쳤어요.

철로 멀리, 호수를 품은 산 위로 해가 떠올랐어요. 시계는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파랑새에게 날마다 듣곤 했어요. 그때는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얘기였어요. 이제 시계탑 위 파랑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조각품일 뿐이에요.
‘파랑새는 잘 있을까?’
-철턱턱턱-
네 면의 시계 바늘 중에 분침 두 개가 분 턱을 넘지 못하고 제자리였어요.
‘어? 이상하다!’
시계는 힘을 주어 분침을 움직이려고 했어요. 하지만 긴바늘은 바르르 떨리다가 철턱 소리만 낼 뿐이었어요.

얼마 후 광장에는 디자인 멋진 돌 시계탑이 세워졌어요. 파랑새 시계탑은 트럭에 실려 멀리 가게 되었어요.
‘이렇게 멀리까지 왔으니 이제 파랑새는 영영 만날 수 없을 거야.’
-철컥-
시계 네 면의 시침이 다시 움직였어요.
날이 어둑해지자 시계 조명등이 밝아졌어요. 멀리서 보면 네모난 시계만 별빛처럼 하늘에 떠 있었어요. 시계탑 위 파랑새 조각품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았어요.

인공습지 공사장 굴착기 소리는 밤이 되어서야 들리지 않았어요. 인부들이 모두 공사장을 떠나자 파랑새는 고요한 호수 위를 날았어요. 그런데 그때 호수 가까운 하늘에 네모난 시계가 떠 있는 게 보였어요. 파랑새는 별빛 상자를 향해 날아갔어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아!’
별빛 상자가 가까워지자 낯익은 모습처럼 보였어요.
‘어! 어! 시계다!’
파랑새는 광장의 시계를 보게 되었어요. 시계도 가까이 날아오는 새를 보았어요.
‘파랑새?’
시계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더 크게 뜨고 날아오는 새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어요.
“시계야! 너 맞구나!”
“파랑새야!”
시계와 파랑새는 놀랍고도 반가웠어요.
“우리가 다시 만났어!”
“시계 속 세상에도 네가 있네?”
파랑새는 시계탑 조각품으로 들어가며 말했어요.
“내 미래에도 네가 있구나!”
시계는 조각품을 올려다보며 말했어요.
“시계야,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
“내가 고장이 났어.”
“그럼 광장은 이제 시계가 없겠네?”
“아니야, 멋진 돌 시계탑이 생겼지.”
“돌 시계탑에도 조각품이 있어?”
“아니, 사람들 말로는 광장에 어울리는 세련된 디자인이래.”
“디자인이 뭐야?”
“나도 잘 모르지만 모양 같은 게 아닐까?”
“모양은 우리가 멋지지?”
“마술상자 시계에 멋진 나까지. 하하”

파랑새는 광장에 새로운 시계가 세워졌다는 게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바람에 시계를 다시 만나게 된 일은 너무 기뻤어요.
“파랑새야, 난 네가 상자 속으로 들어갔을 때 너무 놀랐어.”
“아! 나도 마찬가지야.”
“상자 속에 다른 세상이 있다니!”
“상자 속으로 들어갔을 때 난 기절하는 줄 알았어!”
파랑새는 그때를 생각하니까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어요.
“파랑새야, 이곳은 맘에 드니?”
“조금 전까지는 광장으로 돌아가고 싶었는데 지금은…….”
시계는 파랑새가 지금은 어떤 마음인지 궁금했어요.
“지금은 너를 다시 만나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여기가 시끄럽기는 해도.”
“나도 너를 다시 만나서 광장은 안 가고 싶어.”
파랑새와 시계는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깜깜한 호수는 파랑새 시계탑이 내는 환한 빛으로 반짝였어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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