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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67 추천 수 0 2023.05.14 1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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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7:22-33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722-33: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좇지도 말라 번개가 하늘 아래 이편에서 번뜻하여 하늘 아래 저편까지 비췸 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22-26: 25절 앞 절과 26절을 보면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서 버린바 되어야 할찌니라.’ 그러니까 이 세대란 예수님을, 구원을, 진리를,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버리는 그 세대.

 

그러니까 예수님을 버리는 이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이냐, 안 믿는 사람들이냐? 믿는 사람들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버린다는 말이니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예수 믿는 사람이 이룰구원이 없이 사는 것. 그 삶의 목적이 세상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 믿는 사람의 삶의 목적이 세상에 있다면 예수이름을 왜 부르느냐? 세상에 있는 자기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이게 예수님을 버리는 거다.

 

그런데 노아의 때에 된 것처럼이라고 했으니까 노아 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안 믿는다가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인데 이들이 무엇을 붙잡고 살았느냐? 노아홍수 때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느냐? 시집가고 장가가고 먹고 마시고 누림성으로 살았다.

 

그러면 그 때 노아의 세 아들들도 장가를 갔는데 노아의 세 아들들이 장가를 간 것은 먹고 마시고 세상을 누리려고 간 것이냐, 방주를 짓기 위해서 간 것이냐? 방주를 짓기 위해서 장가를 간 것이다.

 

그런데 노아 때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을 취해서 돌아가니 네피림이 나더라하는 것은 네피림은 영웅이라는 뜻으로, 물론 그 때 사람들이 시집장가를 가니까 영웅호걸들이 막 나온 건데, 이 표현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이치 사상은 기독교회가 물질을 붙잡고 살게 되면 영웅소리를 들을 수 있는 큰 건물을 세운다든지, 큰 운동을 한다는 그 면을 말하는 거다. 그렇지만 그 목적은 세상에 속한 뜻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예수이름으로 막 부흥이 되는 것 같은데 믿는 사람의 속정신 사상은 예수를 버린 셈이다. 성경을 가지고 믿으면서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의 뜻을 좇아가는 거다. 성경해석이 세상 쪽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시대의 교회가 이렇게 되고 있는데도 이걸 모르고 있다. 지금 그렇게 막 부풀어지고 있는데 그걸 모른다 그 말이다. 하지만 성경대로 이런 자들에게는 심판의 그 날은 오는 거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옛날보다 지금이 훨씬 더 많다. 우리나라만 해도 천만 명이 믿는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심판 때 심판을 안 받겠느냐? 그런데 성경을 보니 그 천만 명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을 때린다. 이게 이해가 되느냐? 예수는 누가 버리느냐? 성경에 보니 예수 믿는 사람이 예수를 버린다. 이게 인격적으로 자기의 정신 사상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그런 정신을 좇아간다. 변명도 많고.

 

구약시대에 안식일은 절대다. 이것에 대해 인간은 변명이 필요가 없다. 절대로 들어간 명령이요 큰 계명이다. 그런데 안식 후 첫 날 예수님이 살았다. 그래서 우리는 산 예수를 만난다는 의미로 안식 후 첫 날을 주일날로 지킨다. 그렇지만 우리는 주일을 구약 때 안식일을 지키는 정신으로 지키느냐? 그게 아니다. 제 멋대로다. 그러니 하나님이 어디로 심판을 하겠느냐?

 

26절은 영적 계시적으로 예수 믿는 기독자들이 정신 사상적으로 물질과 결합이 되면 그 신앙은 물질적 사상으로 돌아간 건데, 이런 신앙은 예수 믿으면 부자 되고 병 낫고그런 식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러니까 26절은 예수 믿는 기독자들이 물질사상과 결합이 되면 영웅소리를 들을 수 있는 종교적 업적을 이룬다는 말이다. 노아홍수 때도 그랬다 그 말이다.

 

교계에서 유명하다는 사람들이 진짜 성경의 바른 이치를 가르쳐 줘서 뜬 건지, 아니면 사역적으로 뭘 크게 이루어 놓았기 때문에 그렇게 뜬 건지? 그리고 그 사람을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자기는 유명하다는 사람을 어떤 것으로 유명하다고 하는 건지를 성경적으로 분석을 해야 한다.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 사람을 유명하다고 하며 그걸 돋보느냐그게 문제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의 신앙은 종교적 외식으로 흘렀다. 껍데기 운동이다. 그러나 성경을 가지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그들에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구원되는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무시를 당하고 고난을 받았다. 알고 보면 구약시대의 모든 율법의 진짜가 예수 그리스도인데 이 유대인들은 그걸 발견을 못했다. 율법 속에 든 알맹이를 발견을 못했다.

 

27-30: 홍수심판의 멸망이 임박했는데 그 임박성을 어떻게 알까? 심판은 오직 주님의 주권에 있다. 그럼에도 이 땅에서는 먹고 마시고 흥청거리고 누림으로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기독교회가 세상을 붙잡고 누림성적 건설로 들어가면 주님의 심판의 임박성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가정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그렇다. 그 이치는 똑같다.

 

본 절의 말씀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과 똑같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누림성으로 살았다는 말이다. 또한 롯을 때도 비슷했다. 예수님께서 재림으로 오실 때도 그런 현상이라고 말씀을 했다.

 

다니엘서에 보면 아파트를 벌써 말해 놨다. 집을 연달아 짓는다고 한 것이 아파트를 말하는 거다. 그리고 교통이 빨라진다고 했다. 그러니까 빠른 교통수단이 나오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 이게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점점 빨라지는구나그걸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걸 타지 말라는 건 아니다. 다 같이 차를 타고 다니는데 우리는 삶의 목적이 달라야 한다. 하나님은 그걸 보신다.

 

노아 때를 세상적인 종교적 부흥이라고 본다면, 롯은 음란의 도시 소돔 성에서 성주노릇을 하기 위해 들어가서 전도도 안 하면서 신앙정조 다 팔아먹고, 사람까지 다 잃어버린 신앙이고, 그 후에 보면 딸들로 통해서 자녀를 나았다는 것은 수치와 부끄러움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가 많으니 좋은 것만이 아니다. 물론 감옥이 많은 것보다 교회가 많은 게 좋긴 좋겠지만 영의 눈을 가지고 볼 때는 그렇게 보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여기 저기 십자가가 달리고 간판 걸고 복덕방 식으로 막 나온다는 건 많으니 좋은 것 같으나 속으로 들어가서 보면, 교훈으로 들어가서 보면 질이 본질에서 이탈된 교회가 많다. 이탈된 상태에서 각자 전도해서 자기 교회로 끄집어 당기는 거다. 따라서 교회는 많지만 진리를 찾기가 힘들다는 면에서 교훈 면에서 보면 벌써 진리환난은 왔다고 보는 거다. 눈에 보이는 환난은 없을지라도. 그 다음에 육신적 환난은 때가 되면 당신이 알아서 하실 일이다. 진리환난은 벌써 왔다. 옳은 것을 찾기가 힘들다. 이게 진리환난이다.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이룰구원 목적으로 사는 정상적인 삶이다. 그런데 노아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자꾸 노아를 꾀이고 시험하며 세상성적 사고방식으로 대거 나가는 사상이다. 그러니까 그들이 볼 때는 자기들과 같지를 않으니까 노아를 볼 때 이상하다고 한다.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이룰구원 면으로 볼 때는 정상적인 삶이다. ? 그들이 눈을 뜨자마자 뭘 지었느냐? 방주를 짓는다. 이 말의 뜻이 뭔가 하니 노아가 일도 안 하고 계속 방주만 지었다는 말이 아니라 밥 먹고 일을 하고 농사짓고 했는데, 그렇게 하는 그 속에 자기가 구원될 수 있는 믿음의 방주를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설계대로 지어나가는 거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런 거다. 노아 때로 올라가서 노아와 가족들이 방주를 짓는 것과 같은 거다. 우리의 이룰구원 차원에서도 하나님의 설계대로 딱딱 맞아 들어가야 네가 구원이 된다.

노아가 농사는 안 짓고 방주만 짓고 산 게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돈을 벌고 먹고 사느냐? 그런 사고방식으로는 성경은 못 깨닫는다. 글자 문자대로는 못 깨닫는다. 생활하는 모든 활동 속에 하나님의 설계대로 자기가 구원될 수 있는 게 들어있다. 그게 방주를 짓는 거다. 장사를 하면서 방주를 짓고, 공부를 하면서 방주를 짓고. 사상이 그렇게 들어가는 거다.

 

예수 잘 믿기 위해서 밥 먹고, 예수 잘 믿기 위해서 장사하고, 예수 잘 믿기 위해서 사업도 하고. 예수 잘 믿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은 전부가 주님의 사업에 목적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물질을 가지고 종을 실력을 연마시켜 보내고 하는 이게 주님의 사업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건 없고 자기 개인적인 목적으로 들어간 걸 자꾸 이뤄달라고 한다. 예를 들면 어느 식당에 가니 주인이 감리교 권사인데 주일날 장사하느냐하고 물으니까 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벽에 의례히 붙이는 건 이 집의 주인은 주님이시라.’ 이건 방주 짓는 게 아니다. 그 교회 목사도 그런 사람을 자기 교회에 직분을 세워놓고 하는 건 내 입장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쉽게 말하면 그건 장사꾼들이지 똑바로 안 보이는 거다.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이룰구원 목적으로 사는 정상적인 삶이다. 우리 모두는 구원을 이루며 사는 거다. 이룰구원은 교회에 와서만 이루는 게 아니라 밥 먹는 것도 구원, 잠자는 것도 구원, 일하는 것도 구원, 말하는 것도 구원. 이룰구원이란 이런 방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속 성품을 닮는 걸 구원이라고 한다. 아무리 구원을 얻었다고 말을 할지라도 사람이 이게 안 되면 (기본)구원을 받은 효력이 없다.

 

그러면 구원을 적게 받고 많이 받은 사람이 있느냐? 또는 구원을 많이 이룬 사람이 있고 적게 받은 사람이 있느냐? 이건 의미가 다른 거다. 구원을 많이 이룬 사람은 옳은 진리이치를 많이 받고 많이 깨닫고 많이 적용해서 자기 것으로 많이 만든 사람이다.

 

노아의 온 식구는 구원목적에 협조 동참이 잘 된 가정이다. 온 식구가 이룰구원의 교훈에 잘 순종해 나가는 가정이 구원의 가정이다. 그러나 육덩이 교회에 가면 이 구원이 안 이뤄진다. 이러면 기본구원은 얻었으니까 죽어서 천국은 갈 런지 모르지만 성경을 못 깨닫지, 사람이 바로 못 만들어지지, 그러니 사건의 바람이 불면 날아가게 된다. 저기에서 돈 바람이 불어오면 그리로 휙 날아간다. 그렇게 해서 돈을 많이 벌면 , 하나님이 축복을 주셨구나한다. 우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목사님들의 세계에서도 깨닫지를 못하면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부지런히 전도를 해서 자기 교회로 나오게 해서 옳은 것을 받아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거라해야 하는데 목사의 집 자식들부터 정신을 어디에 파느냐? 자식이 육덩이 교회에 나가도 그래, 열심히 다녀라. 하나님은 똑같다.’ 그래? 세상 만물은 하나님이 다 다스리는 거니까 하나님은 똑같다. 그런 식이라면 절간에 가서 하나님을 찾으면 안 되느냐? 절간에 가서 성경 펴놓고 예수 믿으면 안 되느냐?

 

롯의 처와 두 딸은 이룰구원에 반대적인 삶을 산 거다. 노아의 가정과 롯의 가정은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오늘날 마지막 시대에 사는 우리 가정의 식구들은 다 같이 합심하여 구원을 이루는 가정이냐, 구원과 상관없이 살고 있느냐?

 

우리교회 교인들은 부모의 그 신앙 믿음 하며, 자녀들의 공부 직장 하며 누구의 일 잘 되도록 사는 것이 구원의 가정이냐? 주님의 일이 잘 되도록 모든 계산을 그 쪽으로 짜라. 한 가족이라면 온 식구가 한 교회에 나가며 그렇게 살아야 그게 방주를 짓는 건데 이 진리를 받으면서도 그게 없는 가정이 있다.

 

오늘날 자기 가정의 모든 것이 모든 삶의 생활이나 돈 쓰는 거 하며 모든 면에서 방주를 짓는 위주로 나가야 옳다. 각자 개인적으로 부자가 되겠다이런 쪽으로 나가는 건 벌써 정신이 틀렸다.

 

하나님-->인간-->물질이 순서로 사는 게 정상이다. 하나님 없는 물질-->인간의 순서로 사는 건 이건 이방세상 사람들이다. ‘물질-->하나님-->인간이렇게 사는 건 비정상인데, 예수 믿는 사람이 이렇게 산다면 이 사람은 아무리 공부를 잘 하고 돈을 많이 벌고 말마다 예수 예수한다고 할지라도 타락이다.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지식이 타락이다. 노아 가정의 신앙이 앞의 순서에서 어떻게 가졌느냐? 또 롯의 가정의 신앙은 어떻게 가졌느냐?

 

그 사람의 하는 행동을 보고 믿음이 있네. 없네그것보다 그 사람이 신앙이라고 말을 할 때 나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그건 나오는 거다. 그래서 우리 입장에서는 정확한 신앙의 이치를 놓고 상대의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해도 그 사람의 믿음이 금방 드러나는 거다.

 

아닌 말로 자기 자식의 믿음이 좋다고 할지라도 그 말을 하는 부모의 말을 딱 들어보면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신앙이치가 어떻게 틀어진 건지가 나오는 거다. 본인은 자랑스럽게 말을 할지라도 그 자랑이 이치적으로 어떻게 들어가 있구나이게 나오는 거다. 오늘날 우리 가정의 신앙의 목적, 이방 불신자 가정의 사는 목적. 모두 그 결과는 다르니 어떻게 되겠느냐?

 

31-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이 말끝에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롯의 처가 하나님의 심판에 소금기둥이 되었다네단순히 그렇게만 생각을 말고 왜 소금기둥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롯의 처가 왜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을까? 뒤에 뭐가 있기에? 롯의 처 뒤에 무엇이 있었느냐? 보물, 재산, 귀중품, 세간, 진주, 보석, 옷 종류, 구두종류, 가방종류, 자가용, 집 등 금은보석으로 된 모든 물품이 롯의 가정에 있었을 것이다.

 

천사가 빨리 나가라고 재촉을 하며 손을 잡고 끄는 바람에 급하게 나오느라고 그런 것들을 차곡차곡 챙겨가지고 나오지를 못했다. 그래서 불이 곧 떨어질 판인데도 자꾸 뒤를 돌아보며 끌려간다. 앞으로 달리면서 뒤를 처다 보지 말라고 천사가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뒤에서 꽈광하고 번개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뒤를 처다 보니 그만 소금기둥이 돼 버렸다.

 

그러니까 이 롯의 처가 평소에 천국복음의 맛으로 살았겠느냐? 평소에 천국 신앙인의 맛으로 살았을까, 아니면 롯이라는 남편이 있지만 보석을 좋아해서 그걸 자랑하고 싶어서 그걸 달고 어디로 가겠느냐? 소돔 고모라의 술집에 가는 거고, 그런 모임에 가는 거다.

 

그리고 그의 딸들도 자기의 각선미를 드러내면서 소돔 고모라 성의 남자들과 손을 잡고 논다. 소돔 고모라 성의 폭도들과 잘 어울려서 돌아다닌다. 어울려 돌아다니게 되면 밤과 낮이 없다.

 

교회에서 오락시간을 갖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도 진리신앙에서 잠깐 몸을 푸는 정도는 좋은 건데, 그런데 육덩이 신앙으로 나간 상태에서 그렇게 하면 이게 그만 불붙은 곳에 기름을 붓는 것처럼 되어서 아예 그 위주로 교회가 돌아가게 된다.

 

성도는 천국을 소원 목적하고 가는 것이 앞으로 가는 거요, 성도는 하나님의 온전으로 구원을 이루며 가는 것이 앞으로 가는 거요, 성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깨닫고 가는 것이 앞으로 가는 것인데 예수를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세상에서 불타질 것을 가지고, 큰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는 것은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이게 마귀의 수법이다. 예수님에게도 그렇게 했다.

 

자꾸 물질적인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는 것은 성도로 하여금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해서 앞으로 못 가게 하는 것이다. 뱀이 발뒤꿈치를 깨문다고 했으니 깨물면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런 사상에서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은 뱀에게 깨물린 것이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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