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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실물이 없는 용을 왜 성경에 기록했나?

요한계시 궁극이............... 조회 수 43 추천 수 0 2023.05.16 15:5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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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계12:3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용이 실물이 있느냐냐? 상상의 동물인데 성경에 용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용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실지로는 용이 없는 건데 왜 성경에 용처럼 말하더라. 용이 입에서 물을 토하더라라고 하는 거냐? 지구상에 사는 사람들이 소원 목적하는 것은 세상에서 돈 많이 벌고 부자가 되는 거다. 이거 빼면 없다. 돈이 있어야 존귀 명예 영광으로 알고, 이것을 위해 공부도 하고 장사도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을 아무리 크게, 많이 이뤘다고 해도 세상이 불에 타면 이런 것도 다 없어진다.

 

애고 어른이고, 부자고 가난하고 간에 돈 돈하며 사는데, 이걸 누가 가르쳤느냐? 누가 가르쳤건 눈에 보이는 거, 불에 타는 거, 없어질 것을 소원 목적하는 정신을 가졌다면 이게 한마디로 용이다. 사람의 입으로 이렇게 가르치면 이 자는 용의 하수인이요, 용의 졸병이요, 용의 군대가 된다. 예수를 믿더라도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용의 후손이요, 용의 졸병이요, 용의 일을 하는 거다.

 

없어질 것을 욕심내는 것은 용을 따르는 건데, 이런 것을 가지라고 가르치고 소원 목적하게 하는 게 땅에서 올라온 새끼 양이다. 이 새끼 양은 하나는 세상에서 받은 물질사상이 있고, 하나는 교회에서 받은 직분이 있다. 그래서 새끼 양에게는 뿔이 두 개다. 이게 남 얘기처럼 들리느냐?

 

예수 믿는 자기가 물질에 욕심내고, 물질을 자랑하고, 물질에 기대는 성질이 있고, 그러면서 교회에 다니고 직분을 받았다면 이는 뿔이 두 개가 있는 거다. 이런 사람은 평소에는 잘 모르지만 누가 자기를 건드리면 자기 속에서 이 성질들이 부르르 올라온다. 이게 새끼 양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자기는 속에서 무엇을 키우고 있느냐? 염소냐, 새끼 양이냐, 용이냐, 뱀이냐? 자기 속에 새끼 양의 뿔이 들어있으면 누가 자기에게 안 좋은 말을 하면 이 정신과 사상이 올라오는데, 이것은 거짓 자기요 옛사람이다. 이 거짓 자기가 참 자기를 먹어버린다.

 

용의 자손들의 정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자기를 못 다스린다. 사람이 안 된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도 모르고, 말씀도 모르고, 말씀을 못 깨닫는다. 이게 벌레들이다. 독사 새끼들이다. 그래서 말로 사람을 문다. 교회에서 목사가 교인들에게 용의 정신이 들어가게 가르친다면 이것은 독극물을 먹이는 거다.

 

:에 여자가 아기를 낳으니 용이 해를 입은 여자의 뒤로 돌아가서 여자의 아이를 집어삼키려고 한다. 이것은 성도라는 여자가 진리를 잉태해서 아름다운 의행과 선행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사단이 막는다는 거다. 우리가 진리생명을 잉태해서 이 생명이 자기 속에서 점점 커지면 선행도 나오고 의행도 나오게 되는데, 이렇게 만들어진 것은 전부 하나님께서 받으셔서 자기의 면류관도 되고, 실력도 되고, 능력도 되고, 축복도 된다.

 

용은 세상의 소원 목적을 가진 사람들 속에 든 정신을 말한다. 용은 실제가 없는 허망한 것인데 사람들 속에 이런 허망한 정신을 불어 넣어주고 가르치는 목사들은 아기를 낳은 여자 뒤로 가서 아기가 쓸려 내려가라고 강같이 물을 토하는 거다. 세상적이고 거짓되고 이단적인 자들은 물질적인 가르침으로 참 교회를 세상 쪽으로 떠내려가게 하려고 물을 토한다.

 

주님께서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했는데, 지금 이런 용의 가르침이 얼마나 많으냐? 이게 노아홍수 때와 같고 소돔 고모라 때와 같은 거다. 이게 용이 토하는 독극물이다. 이것을 모른 채 예수를 믿으면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자기에게서 허무하게 없어져 버린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 도둑을 맞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불에 타버리면 억울해서 속이 터진다. 자식이 죽어도 그렇다. 그런 것처럼 믿는 사람이 진리생명으로 자라지 못하면 이 사람은 희망과 소망과 기쁨이 없다.

 

예수 믿는 자기의 몸은 예수님께서 피로 값 주고 산 성령님이 거하는 전이다. 이 거룩한 몸을 가지고 없어질 것에 뜻을 두지 말고 없어질 것에 자기 목숨을 바치지 말아라. 우리가 예수 믿는 것은 그냥 사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날마다 사는 속에는 자기의 구원이 들어있다. 이걸 다 놓치고 살면 자기가 이 세상에서 아무리 날고 기어도 세월이라고 하는 벌레가 자기 머리를 다 파먹어서 껍데기밖에 없는 거다.

 

세상사람들은 항상 남 탓, 세상 탓이다. 에덴동산에서 남편은 선악과를 따먹고 아내 탓을 했고 아내는 남편 탓을 했다. 이렇게 되니 그다음에 이 집에서 살인이 일어났다. 동생을 죽인 가인은 잘못인 줄 알면서도 회개를 안 했다.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을 알아야 가능한 거지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양심적으로 자기의 잘못을 알지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가 안 된다, 자기의 마음과 소원과 목적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춰야 회개가 되는 건데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모르면 회개가 안 된다. 예수 믿으면서 양심은 찔리는데 회개가 없이 그대로 나가면 이 사람은 하나님이 없는 이방인처럼 되어버린다. 이러면 점점 더 악으로 나간다.

 

하나님께서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표를 줘서 사람들이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했는데, 사람들이 가인을 죽이지 못하게 표를 준 것은 이 말씀을 하실 당시에는 아담과 하와와 가인 외에 다른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많은 사람이 나기 전에 미리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 같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가인을 정죄하고 있다. 이것은 가룟유다에게 지옥에 갔다고 하는 것과 같은 거다.

 

우리가 현재 여기에 살아도 마음으로는 순식간에 에덴동산으로도 올라가고, 창세기로도 올라가고, 중세기로도 올라가고, 말세로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마음으로는 순식간에 번개처럼 미국에 갔다 올 수도 있다. 정신세계는 시간을 타지 않고 장소에 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을 기록해 놓고 우리로 성경을 통해 에덴동산에 가서 그 역사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서 현재에서 이룰구원을 이루라는 거다.

 

성경을 하나의 역사로만 보면 성경의 역사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에 나와 관계가 없다. 성경을 보고 그때 그런 사람, 그런 사건이 있었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한다고 해도 자기 마음이 하나님 앞에 이치적으로 잘못된 것을 모르면 아무리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라고 해도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이 바로 고쳐지는 것은 자기 마음의 결심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있는 거다.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예수 믿으면 지옥에서 천국에 간다는 뜻만 아니라 자기가 잘못되었을 때는 언제든지 하나님 말씀을 기준해서 고쳐나가야 한다는 뜻도 들어있다. 학교의 시험에서 틀린 답을 썼으면 자기 지식을 기준 해서 고쳐야 하느냐, 정확한 정답에 맞춰서 고쳐야 하느냐? 정확한 기준에 맞춰서 고쳐야 하듯이 예수 믿는 거, 성경을 깨닫는 거, 자기의 잘못을 고치는 것도 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 해야 한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감옥 속에 아무리 오래 있다가 나오더라도 자기를 고치는 게 없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옳은 사람이 되려면 땅의 생각을 가진 자기의 지식을 하늘의 지식으로 바꿔야 한다. 옳은 지식이 들어가면 하나님 앞에 옳은 사람이 된다. 구원의 사람이 된다. 세상사람들은 이게 없이 선악과 따먹은 지식으로 살기 때문에 옳은 교육이 안 되고, 정치를 해도 그렇고, 형벌을 해도 그렇고 모순투성이다. 그러니까 안 믿는 사람들은 바람에 불려 다니는 것과 같고, 영의 눈으로 보면 송장이 걸어 다니는 것과 같다.

 

교회는 사람을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의 사람으로 세워야 한다. 이 일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에 시급하다. 세상은 사회가 어지럽고 죄가 많아지면 문명이 어떻고, 돈이 어떻고하면서 해결점을 찾으려고 하지만 이런 것들은 인간이 바로 서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교회는 하나님의 일을 하는 곳이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감동 감화가 아니면 못한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했는데, 그러면 인간 자기가 계획을 해야 하느냐, 안 해야 하느냐? 이 말씀이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거냐? 그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다 보면 시간 속에서, 환경 속에서, 존재 속에서, 시대와 자기의 위치에서 자기의 언행심사가 지혜롭게 나온다. 여기에는 자기의 구원이 들어있고, 자기의 갈 길이 들어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길을 여신다. 그런데 말씀대로 하면 거지가 될 것 같고 굶어 죽을 것 같은 것은 자기가 계획을 해 놓고 하나님을 불러서 해 달라는 사고방식이 들어있는 거다.

 

믿는 우리는 사람 속에 살기 때문에 우리의 언행을 옆에서 보는 사람이 있다.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양심에 하나님이라는 빛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기쁘고 즐겁고 매사가 구별 분별이 된다. 성경에 나는 빛이요 진리요하는 게 다 이런 이치를 말하는 거다. 그런데 스스로 어둡게 살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길을 열어주시겠느냐?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낳았을 때 마리아와 요셉은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멀리 있는 동방박사들을 보냈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의 마음이 열려서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내놓았다. 요셉과 마리아가 애굽으로 피난 가서 이것을 팔아서 살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리아와 요셉이 평소에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을 보시고 미리 길을 닦아놓은 거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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