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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58 추천 수 0 2023.05.21 09: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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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7:31-37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731-37: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31-32: 교회에서 세상을 자랑하는 것, 또는 세상을 이루자 하는 것, 또한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들이 세상 것을 가지고 자랑을 잘 한다. 이게 다 뱀이 여자의 발뒤꿈치를 무는 것처럼 뒤를 보게 하는 것이다. 이걸 영의 눈을 가지고 신앙적으로 보면 그 정신 사상이 뒤를 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집안으로 가지러 가라. 아래로 뛰어 내려라등등 전부는 세상이다. 기도로 세상 것을 구하는 것 전부는 진노의 불에 탈 심판거리다. 그래서 예수님이 너희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 뭘 구하라고 했느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 그의 의는 하나님의 의. ‘천국의 의를 구하라. 너희들은 그걸 구할 백성이다. 그러면 세상의 모든 것은 덤으로 준다고 했다.

 

사람이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도 하나님의 옳음을 말하게 된다. 말하는 사람이 이게 하나님의 옳음이다그렇게 말을 한다는 게 아니라 말하는 게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옳음이 나오게 된다. 그러니까 믿는 사람이 가령 안 믿는 사람에게 말을 할 때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옳은 말이니 들으라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예수를 믿고 옳은 사람으로 돼 있으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정신이 들어가 있으니 자동적으로 말하는 게 하나님 나라에 옳은 말을 하게 된다.

 

안 믿는 사람들은 배가 고파하는 사람이 있으면 너 배고프니? 밥 먹어라.’ ‘먹을 게 없는 데요하면 먹을 것을 주기도 하는데, 안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밥을 먹고 기운을 돋우라고 하는 것이고, 예수 믿는 사람은 그런 경우 그렇게 말하는 정신은 밥 먹고 구원을 이뤄야지하는 마음이 깔려 있어서 밥을 먹으라고 하는 거다.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말을 할지라도 믿는 사람은 그 정신이 깔려나가는 거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농사를 짓더라도, 직업을 갖더라도, 장사를 하더라도, 공부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영광이 뭐냐? 영광이란 내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다. 여기에는 깨달음도 있고, 늘 무릎 꿇고 기도는 안 한다 할지라도 길을 가면서, 잠을 자면서, 생활을 하면서 생각은 하나님 뜻에 대해 올바로 살려고 하는 게 다 들어있는 것이다.

 

그 날에 지붕 위에서 세간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라.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그 날에.’ 그러니까 그 날이 얼마나 위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간이 없다. 잠깐도 안 된다. 급박하다.

 

그래서 그 날에 내려가지도 말고 뒤로 돌이키지도 말아라하는 이건 오전에 말을 했는데, 그 날에 하나님-->인간-->물질의 이 순서를 바꾸지 말아라. 그러니까 밭을 가는 자는 앞만 보고 가야지 뒤를 본다는 건 하나님과 물질을 바꿔놓는 것이다. 그거 바꾸지 말라. 그 날에, 그런 급박한 상황에 너의 사고방식이 하나님-->인간-->물질이 순서를 바꾸지 말아라. 롯의 처는 이 순서를 바꿨다. 불이 떨어지는데 순서를 바꿨다.

 

우리는 항상 평상시 자기의 사고방식이 하나님-->인간-->물질의 이 순서를 바꿔놓으면 안 된다. 이방인들은 하나님은 없고 물질-->인간의 순서다. 그런데 세상에 속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신앙사상이 물질을 이뤄달라고 예수이름을 부른다. 그러니까 이건 물질-->하나님-->인간의 순서다. 하나님 자리와 인간 자기 자리를 바꿔 놨다.

 

그 순서를 이렇게 바꿔놓으면 어떻게 되느냐? ‘물질-->인간-->하나님으로 순서를 바꾸면 하나님은 맨 밑에 있게 되는데, 이건 어떻게 되는 거냐? 하나님은 인간의 종이 된다. 물질을 위한 기도를 하면 하나님을 인간차원으로 끄집어 내리는 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은 그 자리에 두고, 이건 건드리면 안 된다. 하나님 다음에 순서는 인간 너다. 인간 너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지 않았느냐? 예수님을 향해서 올라가는 거고, 하나님 다음에 너고, 너 다음에 물질의 순서다.

 

그런데 물질이 위로 올라가게 되면 사람이 물구나무를 서게 된다. 사람이 물구나무를 서서 어떻게 활동을 하고 밥을 먹고 걸어 다니겠느냐? 그러니까 바꿔놓으면 네가 힘들다. 이 이치를 바꾸면 네가 죽고, 네가 힘들고, 네가 바로 못 산다.

 

이 이치를 바로 알면 신앙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건데, 이 이치를 모르면 그만 무덤덤하다. 감각이 없다. 이치를 아는 사람은 그게 굉장히 날렵하고, 빨리 움직이고, 끊고 맺고 하는 게 분명한데 그렇지 않으면 둥글둥글 그냥 넘어가 버린다. 이건 안 된다. 이러면 문제는 네가 죽는다.

 

그렇게 돼 놓으면 그런 사람이 돈을 잡으려고 한다면 그 돈이 가만히 있느냐? 돈이 자기를 따라오느냐? 돈은 사람의 주머니에 있다. 그렇다면 돈을 벌려면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그러니 힘들어서 어떻게 사느냐? 돈을 가지려고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게 참 우습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게 아니다. 세상을 지키고 다스리는 게 들어있다. 그런데 이게 안 믿어진다는 게 문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이 안에 다 들어간다. 그냥 따라가는 거다. 우리가 깨닫지를 못하면 가령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보는데, 세상에서 일등을 하니 돈과 명예가 다 따라간다. 이런 걸 보고라도 깨달아라.

 

그러니까 집안에 뭘 가지러 가지 말고, 뒤로 돌이키지 말고한 건 원리적 이치로 순서를 바꾸지 말라는 것이다. 순서를 바꾼 사람은 그냥 가지러 들어간다. 이치가 바꿔진 사람은 사건이 닥치면 벌써 어떻게 나오고, 어떻게 나오고하게 되는 거다. 롯의 처가 평소에 이치를 바꿔놓고 살았다. 우리 각자 속에서 그 사고방식 인격 소원 목적 등 모든 면에서 이치를 딱 갖다 대면 그냥 나온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거다.

 

세계적인 모든 정상들이 하나님-->인간-->물질의 이치대로 사느냐, 다 바꿔놓고 사느냐? 바꿔놓고 살고 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타락된 사람이다. 왕도 지도자도 대통령도 다 바꿔놓고 산다. 그러면 거지는 바꿔놓고 사느냐, 안 바꿔놓고 사느냐? 거지도 바꿔놓고 산다. 잘 사는 사람도, 거지도 다 바꿔놓고 산다. 똑같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질 때는 심판이 똑같이 내려간다. 말씀의 이치에서 심판이 그냥 들어간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봐주고 그런 게 아니라 우리가 신앙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이치로 보는 것이다.

 

보는 것으로써 판단하면 이건 선악과 먹고 나오는 판단이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기준을 삼아서 제 마음에 들면 좋다. 아니다한다. 세상의 선악과 먹은 판단은 그렇다. 우리는 생명과 먹은 판단으로 이치적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다.

 

이치는 외우고 있어라. 외우지 못한다면 틀렸는지 맞았는지를 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신앙이 좋은 사람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이치는 하나님-->인간-->물질의 순서다. 이건 외워라. 그러나 안 믿는 사람은 물질-->인간의 순서다. 그러니 늘 물질부터 먼저이니 친형제라도 통하지를 않는다. 믿는 사람은 누굴 걱정을 해도 신앙을 염려로 생각을 하는 건데 안 믿는 사람은 아무리 부모형제라도 월급은 얼마냐, 월급은 얼마냐맨 그러니 통하지를 않는다.

 

그런 사람이 교인은 얼마나 되느냐하는 건 헌금이 얼마나 나오느냐하는 거다. 이건 장사꾼이 하는 말이다. ‘어느 직장을 다니느냐하는 건 월급을 얼마나 많이 타느냐하는 생각으로 하는 말이다. 세상에 속한 교인들은 물질-->인간-->하나님의 순서다. 예수는 맨 밑에 있다. 예수는 자기의 종이 돼 있다. 자기가 주인이 돼 있다. 이건 예수 바로 믿기 참 힘들다.

 

우리교회의 설교는 그 순서를 바로 놓는 면으로 뒤집어 놓는 건데, 순서를 바로 놓게 하는 건데, 그러면 네가 편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성경이 깨달아지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은혜를 받는 건데 교회에서 세상을 이뤄달라는 건 이치적으로 틀렸다. ‘잘 믿고, 못 믿고가 아니라 이치적으로 틀렸다. 그러니까 이건 교회가 할 짓이 아니다.

 

자기에게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보통 보면 자기의 현실적인 문제를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한다. 우리는 그런 기도보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찾고, 그 다음에는 자기가 현재에 처해진 이것이 자기 힘으로는 탈출을 못하니 탈출을 하려면 거기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거 안 되겠다하고 거기를 나오면 내일부터 굶는 한이 있더라도 탈출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죽느냐. 사느냐가 들어있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믿음이 약하거나 한 게 있으니까 그럴 때 자기 몸 밖의 상황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고 그 상황에 처해진 자기의 신앙의 정도가 있으니까 그런 것을 생각을 해서 하나님께 아뢰라. ‘하나님, 내 몸 주위의 상황이 이런 데 내 신앙 믿음이 미련하고 잘 알지를 못하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걸 이기고 나가겠습니다. 지혜를 주십시오하라. 또 지혜는 성경에 있으니 성경을 봐라. 지혜를 구하는 사람이 성경도 안 보고 날마다 지혜를 구하면 주시겠느냐? 성경에 있으니 성경을 많이 보려고 애를 쓰고. 열심이 있는 사람은 밥을 먹으면서 성경을 본다. 어떤 사람은 화장실에서도 성경을 본다.

 

뒤로 돌이키지 말아라. 세간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아라.’ 하나님-->인간-->물질의 이 순서를 바꾸지 말아라. 예수를 믿어도 순서를 바꾸고 사는 것은 타락적 사상이다. 선악과 먹고 나온 심판 받을 정신이다.

 

33: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세상 소원 목적으로 사는 자는 잃을 것이요.

 

문제. 이 말의 뜻이,

 

1.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육신의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다? 2. 영인 성장적 생명을 잃는다는 말이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세상 소원 목적으로 사는 자는 잃을 것이요.’ 이게 육신의 목숨을 잃는 것을 말하는 거다? 아니다. 영인 성장적 생명을 잃는 걸 말하는 거다? 어느 것이냐? 2.

 

잃는 자는 살리라.’ 여기서 잃는다는 말은 결단적인 말인데, 말하자면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기를 부정하고 따라야 잘 따라갈 수가 있다. 인간의 타락되고 저주받은 선악과 먹은 자기 주관성을 부정하고, 그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는 예수로 다시 살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을 따르는 자는 살리라. 믿음의 사람으로 영인성장으로 살고, 육신도 살고. 그러니까 세상에서 부자로 살 목적으로 예수를 믿으면 영인성장이 죽는다. 참 실상적인 자기는 죽는다. 자기의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그런 게 다 죽는다. 영인성장 이룰구원으로 살면 육신도 살게 되고. 어떻게? 의의 병기로 산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려면, 자기의 육신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려면 일반적으로 세상 소원 목적을 따라야 한다.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했는데 잃는 자는 뭐를 잃는다는 것이냐? 육신의 목숨을 보전하려다가 육신의 목숨을 잃는다는 말이냐? 아니다. 영인성장 면에서 다 잃는다. 자기 목숨을 세상위주로 살면 영적 성장적인 면에서 영인성장을 다 잃는다.

 

그 다음에 잃는 자는 살리리라했는데 뭘 잃는다는 것이냐? 육신위주로 살고자 하면, 세상위주로 살고자 하면 영인성장 면에서 죽는 건데, 신앙 쪽으로 취해서 살면, 하나님 쪽으로 택해서 살면, 신앙생명 쪽으로 취하면 그 쪽은 사는 것이 되는 거다. 그런 자는 산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 말씀을 하심은 신앙은 살고 육신은 죽인다가 아니라 둘 다 원하시는데, 신앙생명이 자라는 것은 그 육신이 의의 병기로 쓰여질 때라야 되는 거다. 그러니까 자기의 몸을 의의 병기로 쓰라고 육신도 살리는 거다. 영도 육도 살리는 것이다. 육을 살리는 것은 의의 병기로 이룰구원으로 잘 살게 하려고 살리는 거다.

 

이 말씀을 자칫 하면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마음으로 나가면 육신이 산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육신이 살려고 벌벌 떨고 있으면 그 육신은 죽는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아니다. 정확한 걸 갖다 대야 한다. 왜냐하면 살리라. 죽으리라. 잃으리라했으니까. ‘잃을지 안 잃을지 잘 모르겠다가 아니라 잃을 것이다. 살리라.’

 

34: ‘부부가 같이 있다고 하지 않고 왜 두 남자가라고 했나? 이것은 아무리 똑같이 누워있고, 쌍둥이처럼 자고 있어도, 아무리 캄캄하고 안 보여도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있으니 모르는 사람은 방 안에 두 사람이 자는지, 열 사람이 자는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캄캄하고 안 보여도 하나님의 온전으로 쓸모 있게 잘 만들어졌고 구별된 존재는 데려간다.

 

그런데 한 사람은 버려졌다. 가는 사람이 자는 사람을 깨워서 인사를 하고 가면 안 되나? 하나님의 대 명령인데 그런 인간적인 발상은 통하지를 않는다. 병원에 입원해 있어도 구별해서 데려간다. 병원에 있으면 집에 가서 말하고 올께요하는 건 그 날에는 안 통한다. ‘다 나으면 데려가겠다그것도 없다. 뒤를 돌아보는 것도 용납이 안 되는데, 일각이 여삼추인데, 분초찰나 순간을 말하는 건데, 지금 사건이 그렇고, 또 자기가 분별 구별력으로 빨리 순종해서 가져야 할 판이니 그 어떤 인간의 발상도 통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잠을 자더라도 구별될 수 있는 일을 해 놓고 자야지. 잠을 자도 잠자기 전에 성경 한 장이라도 읽고 자야지. 그런 거냐? 아무렴 성경을 안 읽은 사람보다 읽은 사람을 데려가겠지.

 

35: 같은 날에,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이 일을 했으니, 그러니까 둘이서 매를 잡고 갈이 돌리고 있었으니까 빻아진 양은 하나로 들어가서 있다. 그런데 어떻게 구별이 되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림을 당했을까? 버려진 여자는 밉게 생겼고, 데리고 간 여자가 예쁜가? 사람들은 그렇게 볼 런지 모르지만 주님이 보는 눈은 하나님의 온전을 닮은 영모의 미모성이다. 그러니까 데려감을 당한 사람은 영모의 미모성이 잘 다듬어져 있고, 버려진 사람은 그게 안 된 것이다.

 

영모의 미모성으로 잘 다듬어진 여성은 하나님 앞에 심성이 참 곱다. 어른들을 보면 심성이 고운 사람이 있다. 사람은 심성이 고와야 한다. 마음이 차가운 사람이 있고, 뜨거운 사람이 있다.

 

매를 갈아도 마음의 심성이 고운 사람은 열심히 돌린다. 버려둠을 당할 여자는 열심히 돌리는 사람을 따라 건성건성 돌린다. 한 사람은 구원을 위해 돌리고, 한 사람은 세상적인 욕심을 품고 잘 먹고 잘 살아야지하는 마음으로 돌린 게 분명하다.

 

일을 하는 모습은 누가 봐도 둘 다 똑같은데 주님은 여자의 소원하는 마음중심을 보신 것이다. 목회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들의 중심을 아시고 데려갈 목회자도 있을 것이고, 버려둠을 당할 목회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버려둠을 당할 것인지, 데려감을 당할 것인지를 그 날에 가봐야 아느냐? 본문의 말씀을 미리 주신 이유가 뭐냐? 믿음의 신앙심의 심성이 좋아야 한다.

 

37: ‘독수리가 모인 곳에는 가지 말아라.’ 죽음이 있는 곳, 죽어서 썩는 곳, 신앙생명이 죽는 곳.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이다. 신앙생명이 어디에서 죽느냐? 세상에 속한 교회에서 죽는다. 이게 죽음이 있는 곳이다.

 

이방인들처럼 세상에 있는 것을 소원 목적하여 사는 곳, 세상 것을 구하는 곳, 세상 것을 구하는 교회, 세상 것을 구하는 교인은 다 버리움을 당한다. 그런데 교인들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 올라만 가라. 뒤를 보거나 밑을 보지 말아라. 세상을 소원 목적하지 말아라그렇게 외쳐도 뒤를 처다 보는 열심히 더 하다. 아예 눈알이 뒤통수에 박혔구나. 마지막 시대의 교회의 현상이다. 신앙이라고 하는 현상이 그렇게 돼 있다.

 

천 일 제단 쌓기? 올 적마다 빈손으로 오지 말아라?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냐? 제각기 얼마 이상 헌금을 하겠다고 정해놓고 천 일 동안을 가지고 오면 금방 예배당을 올릴 수 있을 거다. 성경구절을 들고 그렇게 돌려놓는 이게 마귀의 수법이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걸 신앙이라고 보지 감쪽같이 영적이치 면에 신앙사상을 돌려놓는 마귀의 수법을 모르는구나.

 

우리의 삶이 구원목적이라고 해도 육신을 가진지라 육신축복, 세상축복을 해 줘야 잘 믿어드리겠습니다. 축복을 안 해 줘서 교회 못 나오겠습니다하는 교인도 있다. 그러니까 세상 물질축복을 해 줘야 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이건 억지를 부리는 격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성도가 잘 사는 것도 아시고, 못 사는 것도 아시고, 중간쯤 사는 것도 다 아시는 분인데 인간 편에서는 하나님이 그걸 모르는 것처럼 그러고 있다.

 

그런 자들의 신앙 믿음이 죽은 자냐, 산 자냐? 죽은 자이다. 그러니까 죽은 자는 무엇이 와서 뜯어먹을까? 독수리다. 신앙생명이 죽은 자는 마귀가 와서 뜯어먹게 돼 있다. 거짓 종들이 와서 이용해 먹고 뜯어먹게 돼 있다. 원리가 그렇다. 아무리 목숨을 바쳐서 열심히 충성봉사를 해도 영인성장이 없으면 죽은 자요, 이건 독수리의 밥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대인들의 신앙 믿음이 죽은 것이다. 그래서 독수리 마크를 한 로마군인들이 들어와서 유대백성을 짓밟아 버렸다. 영적으로 보면 영인성장이 없는 곳에는 마귀가 독수리처럼 자기의 영의 눈을 쪼아 먹고 있다 그 말이다. 성경에 부모를 대적하는 자는 독수리가 눈을 쪼아 먹는다고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모는 세상 육신의 부모보다도 자기가 영적으로 길리움을 받는 그 말이다.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의 신실한 종을 대적하면 너의 영적인 면의 눈은 뜨이지를 못하고 마귀에게 먹히고 이용을 당한다는 것이다. 진리이치를 무시하면 그 사람은 소경이 된다. 선지자를 무시하면 자기의 미래는 어두워진다. 자기의 미래를 선지자가 밝혀주는데.

 

세상 마지막 날도 본인들이 만들어진 대로, 자기가 산 대로 데려갈 자로, 또는 버려둘 자로 구별되어질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은 반드시 온다.

 

이때의 독수리는 혹시 비행기가 아닐까? 남아있는 그들에게 비행기라고 하는 독수리가 불을 퍼 부을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잘 믿는 성도들을 먼저 데리고 올라가고, 믿기는 믿는데 세상적으로 믿는 교인들은 지옥이 아니라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취급을 당한 후에 데리고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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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48 사도행전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 행10:34~43  정용섭 목사  2022-11-16 84
17647 요엘 기뻐하고 감사하라 욜2:21-27  강승호목사  2022-11-15 360
17646 누가복음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눅13:34-35  김경형목사  2022-11-13 69
17645 요한복음 사람들이 자기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3:18-19  김경형목사  2022-11-13 62
17644 역대상 야훼께 감사하라 대상16:29-36  강승호목사  2022-11-12 224
17643 시편 감사신앙이 주는 놀라운 축복 시편75;1-2  전원준목사  2022-11-10 519
17642 사무엘상 아들아 그리 말라 삼상2:22-36  강승호목사  2022-11-09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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