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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외계인과 용감한 녀석 (안효경)
외계인 정체를 숨기고 있는 내게 네 손가락 그 녀석이 다가왔다요
창수를 피해 도로로 뛰어든 우리는 내 초능력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요
여기는 지구다요. 내가 지구에는 왜 왔냐요? 엄마를 만나러 왔다요.
엄마가 왜 지구에 있냐요? 그건 아직 모르겠다요. 아마 엄마를 만나면 알게 되겠다요. 아무튼 나는 현재 엄마를 찾기 위해 지구의 미개한 아파트에 거주 중이다요. 내 말투가 이상한 건 아직 지구 언어에 익숙하지 않아서다요.
지구 아이들이 저녁을 먹으러 가서 텅 비어버린 놀이터는 이제 내 차지다요. 미끄럼틀 아래 엎드려 노을이 물든 하늘에서 고향별을 찾고 있었다요. 배에서는 꼬르륵 물 빠지는 소리가 난다요. 지구에서 적응하기 제일 힘든 게 배고픔이다요. 고향별에서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노릇한 생선구이가 툭 튀어나올 텐데…. 여기 지구는 미개해서 직접 사냥을 해야 한다요. 아직까지 지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서 오늘도 하루 종일 굶었다요. 내 정체를 모르고 접근하는 누군가가 있다요.
“와아! 예쁜 고양이다.”
지구 아이, 성별은 남, 나이는 대략 12세 정도, 나를 처음 본 반응은 보통 지구인들과 같다요. 아직 내 정체를 파악 못 했다요. 그렇다면 내 정체를 눈치채게 하겠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보였다요. 이제 내 정체를 알게 되면 대개 두 가지 반응 중 하나가 나올 것이다요. 하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자리를 피하는 것, 다른 하나는 나를 쫓아내는 것이다요.
그런데 녀석은 멈칫하며 눈을 크게 뜨더니 오히려 내게 손을 내밀었다요. 아주 드물게 우리를 환영하는 지구인도 있다요.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절룩거리며 녀석에게 다가가 고향별 인사로 녀석의 손바닥을 핥았다요. 가까이 와서 본 녀석의 몰골은 머나먼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진 나보다 못해 보였다요. 눈 옆에 파란 멍 자국도 있고 입술은 찢어져서 피가 말라붙어 있었다요. 옷은 어디서 뒹굴었는지 먼지투성이고 무릎도 까지고 긁혔다요.
“배가 고픈가 보구나. 엄마는 회사일 때문에 늦게 오시니까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가자.
녀석은 나를 번쩍 안아 들더니 자기네 집으로 데려왔다요. 녀석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서 냄비에 붓고는 따뜻하게 데워서 내게 내밀었다요. 내가 할짝할짝 핥아 먹는 모습을 보더니 녀석도 배가 고픈지 남은 우유를 마셨다요.
“영민아, 엄마 왔다.”
열린 문으로 찬바람이 들이치며 녀석의 엄마가 들어 왔다요. 나는 깜짝 놀라 녀석의 다리 뒤에 숨었다요.
“어! 엄마!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응, 다행히 일이 일찍 끝나서…. 어머! 너 얼굴이 이게 뭐니?”
“아! 학교에서 피구를 했는데 공을 얼굴로 받아 버렸어요. 헤헤.”
“어휴, 조심 좀 하지. 연고 발라야겠다.”
“씻고 제가 바를게요. 엄마는 들어가서 쉬세요.”
“그래, 근데 네 뒤에 뭐가 움직인 것 같은데…. 어머나! 세상에! 고양이잖아.”
“어…엄마, 주인이 없는 고양이 같은데 제가 키우면 안 돼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저런, 다리도 하나 없네. 재수 없으니까 얼른 내보내.”
“다리 하나 없다고 재수 없다니…. 그럼, 손가락이 네 개인 저도 그렇겠네요. 안 그래도 사손이라고 놀리는데….”
“뭐? 기껏 고양이랑 너랑 같니? 도대체 누가 놀렸다는 거니? 엄마가 혼꾸멍을 내 줄 테니까.”
“아, 아니에요. 고양이 데려다주고 올게요.”
나는 귀가 착 달라붙어서 녀석의 다리 뒤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요. 녀석은 나를 안고 다시 놀이터로 갔다요. 알고 보니 녀석도 나와 같은 외계인 취급을 받고 있었다요. 그래서 내 정체를 알고도 피하거나 쫓아내지 않고 쉽게 다가온 거였다요.
“아롱아, 미안해. 우리 엄마가 나쁜 사람은 아니야. 혼자 힘으로 나 키우느라고 피곤하고 지쳐서 그래. 대신 내가 매일 너 먹을 거 갖다 줄게.”
아롱이? 녀석이 나를 부르는 이름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매일 먹을 것을 갖다 준다고 하니 참기로 했다요.
다음날, 녀석은 약속대로 참치통조림을 가지고 왔다요. 납작한 그릇에 부어준 참치를 먹는 동안 녀석은 내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요. 머리를 쓰다듬게 두는 건 우리별에서 믿는다는 표시다요. 오랜만에 느끼는 평화로운 저녁이다요
창수 패거리가 나타나서 깨기 전까지는 말이다요. 내가 볼 때 지구인들 대부분은 평화를 싫어한다요. 그중에서도 창수 패거리는 평화를 끔찍이도 싫어해서 나와 같은 외계인뿐만 아니라 자기들보다 약한 존재를 못살게 괴롭히는 악당이다요.
“어? 이영민, 쥐새끼처럼 도망 다니더니 여기서 덜 떨어진 고양이랑 놀고 있었어.”
“큭큭큭, 진짜 끼리끼리 논다.”
“너 우리한테 빚진 거 있지.”
창수가 내 밥그릇을 발로 차며 녀석에게 시비를 걸었다요.
“아…알았어. 줄 테니까 아롱이 괴롭히지 마. 오늘은 이것밖에 없어.”
녀석이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내 창수에게 내밀었다요. 그건 지구인들이 가장 아끼는 돈이다요. 안 돼! 우리 외계인은 힘에 굴복하면 안 된다요. 맞서 싸워야 한다요. 나는 녀석에게 주면 안 된다고 소리 질렀다요
“갸르릉, 갸르릉…야옹! 야옹!”
안타깝게도 녀석은 내 말을 알아듣지 못 했다요. 할 수 없이 나는 창수에게 직접 대들기로 했다요. 내 날랜 몸을 활처럼 당겨서는 창수를 향해 날아갔다요.
“뭐야! 이 고양이가 미쳤나?”
아! 역시 악당은 세다요. 아직은 정의가 승리할 때가 아니다요. 창수는 날아오는 나의 몸통을 한 손으로 잡아채서는 내 목을 콱 움켜쥐었다요. 나는 온몸을 버둥거리며 창수의 얼굴이라도 할퀴려고 발을 뻗어 봤다요. 불행히도 우리 외계인은 손과 발이 짧아서 닿을 수가 없었다요. 도리어 창수의 화만 돋우고 말았다요. 창수가 내 꼬리를 잡아서는 마구 잡아당기려 할 때였다요. “땡!” 어디서 종 울리는 소리가 난다요.
“아야얏! 이게 뭐야!”
녀석이 투수 폼으로 내 밥그릇을 창수 머리를 향해 날린 거였다요. 정통으로 머리를 맞은 창수가 머리를 감싸고 비명을 질렀다요. 그 바람에 놓여난 나는 앞발로 창수의 못된 손등을 긁어주고는 녀석에게 얼른 도망을 갔다요.
“아롱이 괴롭히지 말라고 했잖아.”
“아이 씨! 가만두나 봐라. 야! 저것들 잡아! 빨리.”
창수의 명령에 창수 패거리가 우리를 향해 덤볐다요. 진짜 치사하다요. 저쪽은 창수까지 4명이고, 우리는 2명뿐이다요. 녀석도 상대가 안 되겠다고 느꼈는지 나를 향해 소리 질렀다요.
“아롱아! 도망가자! 달려!”
어쩔 수 없이 일단은 후퇴다요. 이 기회에 내 달리기 실력을 확실히 보여주겠다요. 저 먼 우주에서 지구를 통과할 때 강한 파동으로 다리 하나가 잘려나가긴 했지만, 우주에서 여기까지 온 실력이다요. 창수 패거리 따돌리기는 문제 없다요.
“어? 아롱아 멈춰! 도로로 달려 들어가면 위험해!”
나도 모르게 지구 도로로 뛰어 들었다요. 녀석이 나를 붙잡아 안는 순간 “빠아앙”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향해 달려드는 자동차가 보였다요. 나는 눈을 찔끈 감고 지구를 통과할 때 사용했던 내 능력을 발휘했다요. 자동차에 부딪히기 직전, 온몸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녀석의 주변에 방어벽을 쳤다요. 곧이어 “끼이익” 하는 자동차 급정거 소리와 “털썩”하며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요. 녀석이 나를 안고는 자동차 앞에 쓰러졌다요. 지구인들의 신고로 구급차가 달려오고 나는 기절한 녀석에게 안긴 채, 함께 병원으로 실려 갔다요. 구급차에 오르면서 보니까 우리를 바짝 뒤쫓아 오던 창수 패거리는 구급차와 함께 출동한 지구 경찰에게 끌려가고 있었다요.
병원에 온 녀석은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요. 내 능력 덕분에 약간의 타박상만 입었을 뿐이다요. 오히려 놀란 녀석이 기절하면서까지 내 목을 꽉 끌어안아서 내 꼴이 더 말이 아니었다요.
“얘, 크게 안 다쳐서 정말 다행이다. 네 엄마에게 연락했으니까 곧 오실 거야. 그 고양이는 씻기고 주사도 맞아야 하니까 잠깐 데리고 갈게.”
나는 무시무시한 지구 간호사 누나에게 안겨 거품 목욕을 당하고 주사를 맞고 목에 붕대도 감았다요. 외계인 체면이 말이 아니다요.
“참 예쁜 고양이네. 가엾게도 사고를 당했나 보구나. 많이 아팠겠다.”
지구 간호사 누나는 내 다리를 보고 “쯧쯧쯧” 혀를 찼다요. 응? 무슨 말이다요? 이건 내가 외계인이란 증거다요. 지구인 대부분이 나만 보면 이상한 눈초리로 보고 피한다요.
다시 녀석의 병실에 갔더니 녀석의 엄마와 창수 악당, 그리고 악당의 엄마가 와 있었다요.
“얼른 손이 발이 되도록 잘못했다고 빌어. 아휴! 내가 장사하느라 바빠서 이 녀석이 이런 나쁜 짓을 하는 줄도 모르고…. 미안하다. 이 녀석이 두 번 다시는 이런 짓 못하도록 단단히 혼을 낼 테니까 한 번만 용서해주렴.
“미…미안해. 나도 네가 차에 부딪혀서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정말 놀랐어. 다시는 괴롭히지 않을게. 다른 녀석들도 반성하고 있어.”
제 엄마에게 귀를 잡힌 창수 악당이 눈물, 콧물을 뚝뚝 흘리며 녀석에게 잘못을 빌고 있었다요. 녀석이 얼굴을 붉히며 괜찮다고 말했다요. 쳇! 우리 외계인은 마음이 너무 넓은 게 탈이다요. 나는 쉽게 용서해주지 말라고 녀석의 환자복 앞자락을 앞발로 긁었다요.
“아! 아롱이한테도 사과해. 그럼 용서해 줄게.”
이번에는 녀석이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다요. 창수 악당이 째려보는 제 엄마의 눈치를 보더니 머뭇거리며 내게 말했다요.
“고양이… 아, 아니… 아롱아, 미안해. 내가 발로 차 버린 네 밥은 다시 사줄게.”
역시 이 정도의 사과는 받아야 용서할 수 있다요. 결코 먹을 것 때문에 용서한 건 아니다요.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외계인은 그 정도로 속이 좁지 않다요.
나는 요즘 녀석의 집에 얹혀살고 있다요. 녀석의 엄마가 동지를 버릴 수는 없다며 나를 받아줬다요. 착한 지구인이 된 창수는 일주일에 한 번은 내가 먹을 걸 가져온다요. 이제는 지구 말도 익숙해졌다요. 말투를 바꾸지 않는 건 내 맘이다요. 아무튼 엄마를 찾을 때까지는 나도 지구인으로 살아야겠다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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