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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
| 성경본문 : | 행3;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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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 : | 전원준목사 |
| 참고 : |
제 목 : 일어나 걸어라 !
< I have give I thee: rise up and walk>
성 경 : 사도행전 3장1절-10절(2023.6.18. 주일예배)
설 교 : 전 원 준 목사( http://cafe.daum.net/ssbbc )
< 찬송= 369내영혼에. 373태산을 377나의생명 >
< 추신= 그동안 저의 설교를 아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음 주 부터는 산상교회 카페에만 설교를 올립니다.
양해하여 주시면 감사하겟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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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3:1-10) 『(1) 이제 아홉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성전으로 올라갈 때에 (2) 사람들이 모태로부터 걷지 못하는 한 사람을 메고 왔는데 이 사람은 성전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구제물을 요청하게 하려고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 하는 성전 문에 두는 자더라.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하는 것을 보고 구제물을 요청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그를 눈여겨보며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매 (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받으려고 기대하며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거늘 (6)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7) 그의 오른손을 잡아 그를 일으키매 곧 그의 발과 발목뼈가 힘을 얻고 (8) 그가 껑충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9) 온 백성이 그가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보고 (10)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에 앉아 구제물을 바라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놀라며 경이롭게 여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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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도 소나 말을 사육하는 목장이 있지요.
그런데 호주나 미서부에서는 소를 정말 대규모로 사육하는 목장들이 있는데,
그런데 소나 말을 사육하는 목장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방법이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목장을 관리하기 위해서 울타리(fence)를 설치하는 겁니다. 울타리를 쳐서 소나 말이 목장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가두고, 그 안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형태입니다. 이것이 목장을 관리하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그런데 두번째 방법도 있습니다.
특별히 광활한 농장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법은 울타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우물(well)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깨끗한 물을 공급하는 좋은 우물을 개발하는 거죠.
그러면 소나 말과 같은 가축이 어느 정도 거리를 벗어나도라도 결국에는 좋은 우물이 있는 곳, 그래서 깨끗하고 시원한 물을 제공되는 장소를 과도하게 벗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교회나 목회에도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하나는 울타리(Fence)를 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교회 모임에 제대로 출석하는 지를 쉴 새 없이 체크하고 확인합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물을 개발하는 거지요. 깨끗한 생수를 충분히 공급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을 증거하는 것.
물론 교회는 성도들에게 울타리를 쳐주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단과 같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해야 합니다.
그러나 울타리를 치는 일과 깨끗한 생수를 공급하는 우물을 개발하는 일 가운데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이 두 가지 중에서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면,
당연히 울타리를 치는 일보다는 좋은 우물을 개발하는
일이 더욱 우선시되어야 합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초대교회의 거대한 부흥의 물결은 울타리(fence)를 쳐서 가능했던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조직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건물도 없었고, 그들에게는 재물도 없었고,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소유하고 있던 단 한 가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의 말씀(well)과
주님의 놀라운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도 이와같은 능력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1. 세상의 것에 빠지지 말고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행 3: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자신의 발로 도무지 걸을 수 없었던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 사람이 언제부터 도무지 걸을 수 없었는지를 알려줍니다. “나면서,” 태어나면서부터 걷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다가 불의의 사고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면,
자신이 겪는 장애의 원인이라도 알 수가 있었겠지요.
하나님은 왜 나에게 이와 같은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나게 하셨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 사람의 운명을 이렇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날개 없이 태어난 새의 운명,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새는 자신의 날개로 창공을 날아다니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그런데 새에 날개가 없습니다.
새라는 모습은 가지고 있었지만 날개가 없어서
날 수 없는 형편인 것입니다.
세상에 이처럼 불행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오늘날에도 불행의 늪으로 빠져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을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 주님의 부르심을 듣고 나아오는 자는
복있는 자들입니다.
구원함을 얻고 죄사함을 얻고 천국의 소망을 누리게
될 줄 믿습니다.
2. 내 모습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고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행 3:3-4) 『(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하자,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엇을 했습니까?
구걸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지금 이 장애인은 베드로와 요한에게 무엇을 구걸했을까요?
하나님의 사람, 베드로와 요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곧 복음을 구했을까요?
아니면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은전 한 닢을
구걸했을까요?
@ 어떤 분이 부자 친구를 만났습니다.
자기가 기진 것을 자랑하더라는 것입니다.
친구는 부자에게 ‘ 이제 당신도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아야 하지 않겟느나 ?’ 하였더니,
‘그럼, 내가 영어를 좀 하는데 재능기부 하려고 한다.’
친구는 부자에게‘영어가 아니고 돈으로 봉사하라는 말이다. 제가 아는 교회 월세를 못 내어서 목사님이 건물주을 피하여 다닌다니 그 교회를 좀 도와주라.’하였더니.
부자 친구가 헌신하여 약간의 도움을 주었답니다.
참 고마운 분이지요.
“영어 가 아니라 돈”
지금 생각해도 참 우서운 일이지만,
작년 년말에 레드먼 선교사님께 전화해서,
짧은 영어로, ‘당신 달라가 필요합니까 ?’하였더니.
선교사님 ‘YES’ 합디다.
그래서 천 불 보내드렸습니다.
올 년 말 쯤에도 전화할까 합니다. -딸라 필요합니까 ?’
이 병자는 베드로가 누구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성전에 기도하려 오니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고
밥 한그릇 사먹게 도와 달라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 그 사람에게
위대한 구원의 메시지를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여기에 교회의 사명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역할에 무관심합니다.
세상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세상 속에서 교회의 역할이나 사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세상은 복음을 기대하지 않을 지라도,
아니 때로는 세상이 교회가 가지고 있는 복음의 능력을 오히려 싫어할지라도
교회의 사명은 그들에게 복음의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베드로처럼 =
(행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베드로가 이렇게 선언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얼마나 멋진 선언입니까? 얼마나 위대한 선포입니까?
베드로의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습니다.
중세 스콜라 신학의 대가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가톨릭교회의 추기경 한 사람과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길가에는 돈을 구걸하는 걸인이 있었지요.
그때 추기경은 자신의 주머니에서 은화를 하나 꺼내
그 걸인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죠.
“얼마나 다행입니까? 초대교회의 베드로 사도는 은과 금이 내게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걸인들을 구제할 수 있는 은과 금이 있습니다.”
그러자 토마스 아퀴나스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지금 교회는 베드로 사도께서
하셨던 것처럼,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는 베드로 사도께서 외치셨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고도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이 없었지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는 능력을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부터 말미암는 능력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우리는 과거에 비해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제 어느 정도의 물질적인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절망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물질이 아닙니다.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손을 열어 물질로 누군가를 구제할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이 세상에서 참으로 해야 할 일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 전파입니다.
이 두가지 = 복음과 구제 = 는 중요한 것입니다.
(마 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3. 주님 능력에 의지하며 일어나 걸어야 합니다.
(행 3:7-8) 『(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1) 참으로 놀라운 역사가 알어났습니다.
평생 한번도 일어나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서 걸었습니다.
2) 오른손을 잡이 일으키니,
붙잡아 주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한번도 일어나 본적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일어납니까?
누군가 붙잡아주는 도움이 필요합니다.
능력은 주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신앙을 붙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0 놀라운 변화 =
발과 발목에 힘을 얻어. 걷기도 하고. 뛰기도하고...
성전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0 결 론 =
(행 3:16)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4. 믿음으로 일어나 걸으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쓰임 받습니다.
(행 3:9-10) 『(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 제 간증하기는 좀 죄송하지만...
근무중에 사고로 손을 다쳤습니다.
마음속에 내 인생은 끝나는 것이로구나. 생각함.
한 달 동안 정신을 못 차리고, 눈감고 잠만 잤습니다.
기력이 돌아와 병실을 다니면서 환자들을 보았습니다.
나는 환자도 아니였습니다.
팔이 없는 환자. 다리가 없는 환자. 등등.
= 믿음이 약한 나에게 주님께서 도전을 주셨습니다.
왼손으로 연습을 시작하였습니다.
원고지에 1.2.3.4.... ㄱ.ㄴ.ㄷ.ㄹ... 연습하였습니다.
왼손으로 탁구.... – 처음에는 힘들고, 지금도 잘 안됨.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 사람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러자 9절 말씀=
“모든 백성이,” 모든 백성이 요동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여러분, 이 세상을 뒤흔드는 것은
단 한 사람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저는 바로 여러분이
그러한 변화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 걸으십시오.
여러분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신앙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때, 여러분 한 사람의 변화로 말미암아 여러분의 가정이 변하고 여러분의 직장이 변화고 이 세상이 변화될 것입니다.
(요 12: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결론 = 내 믿음의 변화가 다른 영혼을 구원하게 합니다.
찬양 = 나의 등 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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